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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알려준 세상

이강기 2020. 5. 6. 14:59
코로나가 알려준 세상

  • 이동신 서울대·영문학
  •  대학지성
  • 승인 2020.05.03 17:00

        

[아카데미쿠스]

걱정할 게 점점 많아지는 학기다. 처음엔 그저 다른 나라의 전염병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우리나라에 와있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까이는 나와 가족·친지들의 건강 걱정,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강의와 학생지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염병은 사회문제, 경제문제, 정치문제, 외교문제, 인권문제, 생태문제 등으로 번져가고, 내게는 멀다고 느꼈던 것들과 곳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이게 그 문제인가라고 물으면 그것만인 적이 없고, 나하고 상관있겠나하고 생각하면 이미 그런 적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로 초유의 학기를 겪으며 어설프게나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상상하면서 깨닫는 점은 우리가 복잡하고도 거대한 관계망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어놓은 선들이 그저 선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라 사이에, 계층 사이에, 분야 사이에, 인간과 동물 사이에, 심지어 생명체와 비생명체 사이에 그어졌던 선들은 경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연결을 확인시켜주는 거였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고민해왔고, 최근에는 인간동물관계에 관한 프로젝트를 하는 연구자로서 캐서린 헤일즈의 “스플라이스”(splice),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 카렌 바라드의 “얽힘”(entanglement), 티머시 모턴의 “거대사물”(hyperobject)과 같은 용어들에 익숙했기에, 그러한 관계망이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하지만 관계망이 드러나는 속도와 강도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촘촘하고 긴밀했던 거였다.


언급한 용어들은 그런 세상을 나름대로 그려왔다. 동물과 기계 등의 비인간과 인간은 이제  가장 기본적인 단계부터 연결되어 있다. 이들 각각이 행위자인 세상에서 하나의 문제는 여러 행위자를 거치며 다양하게 변화하고, 따라서 그에 맞는 다변화된 시각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세상의 얽힘은 누가 문제의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도 쉽게 단정할 수 없게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문제는 규모와 파급력을 가늠하기 힘든 거대사물이 되어 기존의 합리적인 인과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코로나19도 이런 방식으로 따져보기가 어렵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일은 애초에 그렇게 따져봐야만 하는 목표, 21세기의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망 속의 그 어떤 문제도 일부만을 위해 지엽적으로 풀어가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원칙은 흔들리고 있다. 국경선은 벽이 되어가고, 계층은 의료혜택이나 경제활동의 차이로 때로는 삶과 죽음까지 결정짓는 간극으로 변하고, 인간생명권의 위중함에 생태와 환경은 사회적 논의와 투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물론 당장은 급하니 그처럼 관계망을 닫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할 거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와 같이 광범위한 문제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로 예측한다. 그럴 때마다 관계망을 닫으며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지엽적 대응은 촘촘한 관계망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문제를 이리저리 돌려막는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결국에 그 문제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더 크고 복잡해진 문제로 언젠가 되돌아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19는 관계망을 열고 닫는 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관계망은 이미 우리가 어쩌지 못할 정도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가 한 사회 속에 산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출입국 금지가 모든 나라들이 한 세계에서 속한다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건강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과 공존하는 수많은 비인간 개체들의 건강에 그 성패가 달려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코로나가 알려준 세상은 그처럼 끊임없이 연결된 곳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코로나로 닫힐 수도 없고, 닫혀서도 안 되는 곳이다.


이동신 서울대·영문학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관심사는 포스트휴머니즘, 현대 미국 소설, SF 문학 등이며, 현재 인간동물관계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A Genealogy of Cyborgothic: Aesthetics and Ethics in the Age of Posthumanism (2010)을 펴냈으며, 주요 논문으로 「좀비 반, 사람 반: 좀비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2017), 「좀비라는 것들: 신사물론과 좀비」(2017), 「망가진 머리: 인공 지능과 윤리」(2018), "Gulliver, Heidegger's Man: Swift's Satire of Man in Captivatio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