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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의 대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인터뷰기

이강기 2020. 8. 19. 15:31

“공부 부족한 운동권, 도덕적 우월 의식이 자기 성찰 방해”[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

2020-08-19 03:00수정 2020-08-19 03:00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을 만난 곳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이 단체의 회의실이다. 그는 20년 넘게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안 테러 위협 때문에 공개적인 사무실을 둔 적이 없다. 거주지도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는 “늘 조심해야 하는 생활이 아내와 두 아들에겐 미안하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현 정부의 주축인 1980년대 중후반 학생 운동권 출신들 가운데는 당시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58)이 수시로 작성해 회람시킨 팸플릿 ‘강철서신’을 읽으며 북한에 대한 동경을 키운 이들이 많다. 1991년 김일성이 보내준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두 번 만나고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주사파의 대부’는 1997년 전향한 후로는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강철서신’의 영향을 받았던 친북 정부로부터 북한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고 있다니 ‘업보’라 해야 할까. 북한이 ‘끝까지 쫓아가서 응징하겠다’고 벼르는 터라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국회의원 수준의 경호를 받고 있는 그를 조심스럽게 만났다.》

 

“北인권단체 탄압, DJ-노무현 정부 땐 없었다”

 

―현 정부 출범 후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나.


“정권 바뀌자마자 기업 후원이 80% 줄었다. 원래 기업들은 대북 사업의 가능성을 고려해 북한 인권 단체에 후원을 잘 안 한다. 그마저도 끊긴 거다. 정부와 관련된 곳의 강연 요청도 끊겼다. 대북 단체들의 주 수입원인 미국 국가민주기금회(NED)와 북한인권법에 따른 미 국무부 예산 지원으로 버틴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체 2곳의 설립 인가를 취소하고 탈북·북한 인권 단체 25곳을 사무검사하고 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도 검사 대상인가.

“등록 요건 점검 대상인 64개 비영리 민간단체에 속한다. 1999년 12월 창립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북한에서 대북전단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니 대북 단체 탄압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땐 지원도 없었지만 탄압도 없었다.”

 


―대북 단체 활동을 했던 전수미 변호사가 ‘북한 인권 단체에 지급된 후원금 일부가 유흥비로 쓰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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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탈북민이 법률지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예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단체가 있다. 통일부도 이 문제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라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바로잡아 발전시키려는 데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내 최초 오로라 구현 상업시설

 

―대북전단 살포 금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북전단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전단 살포 실험을 했는데 풍향이 좋을 때도 북한에 가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드론을 쓰지 않으면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통일부가 대북 라디오 방송 제한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라디오 방송은 북한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다. 청취율 조사를 하면 1∼3%가 나오는데 1%만 돼도 25만 명이 듣는다는 얘기다. 다행히 방송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 방송이고, 우리가 하는 국민통일방송은 콘텐츠는 여기서 만들지만 전파 발신지는 중앙아시아, 송출은 영국 회사가 한다. 외국 회사를 어떻게 제한하나. KBS 라디오 방송도 있는데 수십 년 전통의 대북 방송을 금지할 수 있을까.”

 

“이인영 장관, 민족해방론 공부 제대로 안 한 사람”

 

―운동권 출신 여권 인사들은 왜 탈북민을 ‘배신자’라고 미워하나.


“북한 체제를 선망했던 사람들이다. 탈북은 북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부도덕함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정서가 습관이 된 듯하다. 아니면 진실과 대면하려는 용기가 없거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민족해방(NL) 주사파로 통하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이다. 그런데 장관 인사 청문회에선 ‘대학생 시절에도 주체사상 신봉자는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고 했다.

“스스로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히 선망했을 뿐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임종석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공부를 더 안 했다. 심상정 노회찬 김성식 같은 민중민주(PD) 그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NL 그룹 중 주체사상이 뭔지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100명 중 1명도 안 될 것이다. 이념이 아니라 정서에 기초한 집단이다. 친북 반미 반일 우리민족끼리 이런 정서가 강할 뿐이다.”

―친중 정서도 강하지 않나.

“원래 친중은 아니었다. 운동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인데 중국 문화대혁명을 미화한 책이다. 그런데 중국이 문화혁명을 부정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가면서 운동권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졌다. 논문이나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글을 보면 현 정부가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뚜렷한 이념이나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중국이 경제적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척지면 안 된다 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반미보다 반일 정서가 더 강한 것 같다. ‘토착왜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주사파 대부’라 불리는 입장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구시대적인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할 때 빼고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없다. 중국 중화주의, 아랍 민족주의, 아프리카 민족분쟁을 봐도 그렇지 않나. 1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민족주의 의식이 약해진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극복했어야 했는데, 최고위급 관료들까지 반외교적 언사로 일본을 공격한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반일 정서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패거리주의 강한 NL, 민주적 사고-행동 훈련 못 받아”


―NL이 공부 제대로 한 PD를 제치고 주류가 됐다.

“제대로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주류가 될 수 있었다. PD 그룹은 이념에 기초한 조직이어서 이념적 토대가 변화하면 결속력도 약해진다. NL 그룹은 이념 자체가 빈약한 대신 인적 유대와 패거리주의가 강하다. 북한 방송에서 나오는 것 그대로 따라 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그런 문화가 강했다. PD가 엘리트주의적인 데 비해 NL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면 안 된다고 철저히 교육받았다. 6월 민주항쟁 때 NL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대중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다른 그룹이 주도했다면 민주항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화엔 공이 있지만 민주적이진 않다.

“민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 2012년 이석기 의원의 통진당 부정 경선 사태가 터졌을 때 난 놀라지 않았다. 경기 남부가 아니라 어느 지역 주사파라도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다.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그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중앙위원장이던 시절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회 책임자였다)”

―민주화에 공이 있다는 도덕적 우월 의식도 강하다.


“야권은 도덕적 우월 의식이 없다 보니 자기 성찰을 하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 반면 운동권 사람들은 오랫동안 내재돼 있던 사고방식을 끄집어내 성찰하려는 자세가 안 돼 있다. 대학 다닐 땐 탄압받는 위치였으니 문제될 게 없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지위도 올라가고 돈도 여기저기서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니….”

―학생 시절 이념 성향으로 지금의 정치 성향을 규정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그만큼 예전 생각이 변하지 않은 듯하다.

“공부가 부족해서다. 시대 변화에 따라 반미를 했던 논리가 바뀌면 반미를 안 하게 된다. 그런데 공부를 안 한 사람은 반미 할 때도 논리적이지 않았으니 반미의 논리가 바뀌었다고 미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그냥 마음속 깊숙한 정서를 따라간다.”

 

“북한의 정권교체, 인생을 걸 만한 가치 있는 일”


그는 학생 시절 지하혁명조직 민혁당을 결성해 활동하다 적발돼 고문당하고 2년간 옥살이를 했다. 전향 후 북-중 국경지대를 오가며 북한 내 지하혁명조직 ‘횃불’을 만들어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2012년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114일간 구금돼 있으면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북한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하나.

“중국에 일시적으로 나오거나 체류하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국에서 수년간 쌓아온 조직활동 노하우를 전수해준 뒤 북한에 가서 활동하게 한다.”

―중국 입국 금지 후 활동이 어렵겠다.

“위축됐지만 멈춘 건 아니다. 2011년 김정은 집권 후부터 이미 국경 통제가 심해져 운동에 타격을 받고 있었다. 부정부패 단속을 엄격히 하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북한 주민들도 줄었다고 한다. 국경 넘을 때 경비대원 몫으로 떼 주는 뇌물이 예전엔 300달러였는데 지금은 3000달러다. 뇌물 받다 걸리면 총살이다. 탈북민 수도 줄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들 중엔 조국 전 장관,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가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나.

“친척 어른들이 아깝다, 아깝다 하신다. 공부를 했으면 판사가 됐을 거고, (전향하지 않고) 그냥 있었으면 장관이 됐을 텐데 하신다. 하지만 북한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북한 곳곳에 생겨나도록 하는 것,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생전에 민주화된 북한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나.

“그런 믿음이 없으면 이 일을 하겠나.”

주사파 운동권 길을 함께 걷던 동지들이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간다. 정권의 실세로 자녀의 해외 유학비 출처를 추궁당하는 고위 관료들, 북한의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혁명가, 그리고 종북 세력의 핵심으로 정당 활동을 하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선고를 받은 정치인도 있다. 중국에서 추방된 후 현장에서 멀어진 그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잊게 될까 두려워 겨울에 난방을 끊고 산다고 했다. 냉골에서 겨울을 나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