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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선방한 한국… 숫자로 본 ‘코로나가 망친 경제’

이강기 2020. 10. 6. 14:10

그나마 선방한 한국… 숫자로 본 ‘코로나가 망친 경제’

WB, WTO, ILO 등 국제기구 경제 통계 살펴 보니
빈곤 증가와 일자리 감소, 국경 봉쇄 등 부정적 징후 나타나

 

국민일보 신준섭기자

2020-10-06 

 

 

 

 

 

한 시민이 9월 9일 서울 성동구청 일자리 게시판 앞에서 게시물을 살피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2708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27만4000명 감소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을 바꾸는 법은 잔인하다. 전 세계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온 경제 질서를 손쉽게 무너뜨린다. 빈곤층에게 특히 가혹하다. 올해는 하루 1.9달러(약 2200원) 미만 생활비로 사는 이들의 수가 증가할 전망이다.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들다가 코로나19라는 특정 질병 때문에 상황이 반전됐다.

일자리의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6일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의 올해 1분기 근로시간은 지난해 4분기보다 5.4% 감소했다. 1억5500만개의 전일제 일자리가 사라진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가 간 이동의 제한은 경제 상황 악화에 기름을 붓는다. 올해 항공 수요는 지난해보다 59~62%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19를 우려해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까지 나온다. 그 흔한 비누마저 수출 제한 품목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원활하지 못한 국가 간 물류 흐름은 특히 제조업에 악재다. 국제기구들이 쏟아내는 코로나19와 관련 경제 통계를 살펴보면 급변한 경제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코로나19, 한국 인구보다 많은 빈곤층 생산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빈곤의 증가다. 세계은행(WB)은 하루 생활비가 1.9달러 미만인 인구가 올해 6억8400만~7억1200만명 정도일 거라고 전망했다. 지난해(6억3200만명)와 비교해 5200만~8000만명 정도가 늘어나는 셈이다. 한국 전체 인구를 넘는 수준의 빈곤층 증가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외환위기 여파를 맞은 1998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던 빈곤층이 22년만에 처음으로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WB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흐름이 읽힌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하위 20%의 근로·사업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8.0%, 15.9% 감소했다. 나머지 80%와 비교해 하락폭이 가장 크다. 하위 20% 중에서도 소득이 낮을수록 코로나19 영향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 중에 하루 2200원 미만으로 사는 빈곤층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안타까운 부분은 빈곤의 증가가 아이들을 굶주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세이브 더 칠드런은 빈곤한 가정에 속해 있는 아이가 올해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최소 9000만명에서 최대 1억1700만명 늘어난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전 세계 노동시장 짓뭉갠 코로나19

 

빈곤의 증가는 코로나19가 야기한 노동시장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다. ILO에 따르면 전 세계의 올해 1·2분기 근로시간은 지난해 4분기 대비 각각 5.4%, 14.0% 감소했다.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경영 악화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사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단순화하기 위해 이 시간을 전일제 일자리로 환산해보면 눈앞이 깜깜한 수준이다. 각각 1억5500만개, 4억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환산치가 나온다.

그나마 한국은 실업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시간 감소의 주원인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좀 더 나은 편이다. 3~4월 기준 한국의 근로시간 감소 이유의 56.0%는 근로시간 감축 때문이었다. 미국(5.0%)이나 영국(27.0%)에 비해 일자리가 잘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안심하기가 어렵다. 아예 실업자가 된 이들도 14.0%가 된다. 상반기 집계인 만큼 코로나19가 이어진 현 시점에서는 이 비중이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에 취약한 일자리가 많다는 점이 위기감을 더한다. 한국을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 일자리의 40%는 코로나19에 민감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이 큰 직군만 분류했을 때의 수치다. 간접적인 영향이 미치는 일자리까지 포함하면 4개 중 3개의 일자리가 위험군에 속한다. 도·소매업 등 소상공인 비중이 전체 근로소득자의 20% 이상인 한국도 이 수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코로나19, ‘경제국경 봉쇄’를 불러왔다

 

국가 간 교류의 감소도 세계경제를 침체기로 빠트리는 데 한 몫 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보고서에서 “항공 여행은 불구가 됐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꺼내들었다. 항공 수요의 급감이 영향을 미쳤다. 월별 집계로 보면 지난 4월에 전년 동월 대비 -91.6%를 기록하며 저점을 찍었다. 손해가 막심하다. 상반기에만 전 세계 항공사 수익은 1600억 달러(약 185조7440억원) 감소했다.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손해를 메우기는 힘들어 보인다. ICAO는 연간 항공 수요가 전년 대비 -59.0~-62.0%를 기록할 거라고 전망했다.

항공편 감소는 수출 품목 감소와도 직결되는 주제다. 만국우편연합(UPU)은 코로나19 위기가 극에 달했던 지난 4월 기준 국제 우편물 2개 중 1개가 배송 지연되거나 제대로 배송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통상 분야에서는 예기치 않은 국경 봉쇄도 등장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85개국이 코로나19 관련 제품 수출을 제한·금지했다. 한국도 이에 속한다. 마스크를 비롯한 얼굴·눈 보호용품 수출음 금지한 국가가 77개국으로 가장 많았다. 비누 수출을 제한한 국가가 2곳이나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제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한국 정도만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는 보고서에서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생산 수준이 유지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