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다”… 상실과 소외의 시대 위로한 계관시인
2020 노벨문학상 美 시인 루이즈 글릭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 2020.10.09 03:00
스웨덴 한림원은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77)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림원은 “개별적 실존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분명한 시적 목소리를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글릭은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고 한림원은 전했다.
글릭은 1996년 폴란드 작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첫 번째 여성 시인이며, 16번째 여성 수상자다. 1968년 첫 시집 ‘맏이’(Firstborn)를 낸 뒤, 1993년 퓰리처상을 받은 ‘야생 붓꽃’(Wild Iris)을 포함해 12권의 시집을 펴냈다. 2003년에는 12대 미국 계관시인이 됐다. 미국 여성 문학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지난 1993년 흑인 여성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7년 만이다.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지난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이후 9년 만이다.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글릭은 퓰리처상에 이어 2014년에는 전미(全美)도서상을 받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을 폭넓게 활용해서 유년 시절과 가족사의 주제를 다뤘다.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어요’로 시작하는 ‘야생 붓꽃’은 상실과 소외의 시대에 고통받는 많은 사람을 위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안데르스 올손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글릭의 시는 솔직하고 타협하지 않는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유머와 신랄한 위트로 가득 차 있다”면서 “그녀의 시 세계는 지속적으로 명료함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글릭이 자전적 요소의 중요성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고백적인 시인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림원은 글릭의 시집 가운데 2006년에 나온 ‘아베르노’(Averno)를 꼽으면서 “이 작품이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하 세계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몽환적으로 해석한 거작”이라고 호평했다.
글릭은 미국으로 이민한 헝가리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뉴욕에서 식료품점 등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웨슬리대를 졸업했다. 글릭은 네댓 살부터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었고 시작(詩作)을 할 만큼 문학적으로 조숙했다.
하지만 글릭은 고교 졸업반 때 극심한 거식증으로 학교를 중퇴한 뒤, 정신분석학자에게 7년간 상담 치료를 받은 정신적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죽고 싶지 않다는 사실도 더욱 분명하고 강렬하게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라로렌스대와 컬럼비아대에서도 시 문학 수업을 받았지만, 정식 졸업하지는 못했다.
이 같은 사춘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혼돈 속에서도 ‘타고난 초연함’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일찍부터 시인의 뚜렷한 시 세계가 됐다. 이 때문에 에밀리 디킨슨부터 엘리자베스 비숍으로 이어지는 미 여성 시인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현대 미국 시를 전공한 양균원 대진대 영문학과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굉장히 언어가 간결하면서도 투명해서 어려운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간결하고 투명한 언어 속에서도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양 교수는 2009년 글릭에 관한 논문에서 “자아의 혼돈 상태는 글릭의 시적 진리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
그녀는 어린이처럼 자연과 트라우마(상처), 욕망의 문제는 글릭의 문학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가 됐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삶의 냉혹함과 차가운 일상 속에서도 자연의 치유력을 노래한 시인의 시 세계가 주목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노벨문학상 상금은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원). 오는 12월 시상식은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개최될 예정이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백수진 기자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
한겨레신문
2020-10-08
20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2016년 모습. 워싱턴/EPA 연합뉴스
2020년 노벨 문학상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77)에게 돌아갔다.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과 시상식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각) <아베르노>의 작가 루이즈 글릭을 2020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한림원은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나타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글릭은 현재 예일대 영문학과 교수다. 그는 1968년 시집 <맏이>로 문단에 등단한 뒤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저명한 시인의 하나로 명성을 얻어왔다. 지금까지 12권의 시집과 시론을 출간했다.한림원은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정생활, 부모와 남매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곤 했다”며 이번 수상으로 이어진 중심 주제를 설명했다. “고통스러운 가족관계를 잔인할 정도로 정면으로 다뤄, 시적인 장식이 없이 솔직하고 비타협적인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가다.아울러 “그는 시 속에서 자신의 꿈과 환상에 스스로 귀를 기울이면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환상과 정면으로 대응해왔다”고 한림원은 논평했다. 글릭은 자전적 배경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고백적인 시인으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한림원은 지적했다.그가 보편성을 추구한 작품 세계는 신화와 고전작품들의 모티브에서 얻은 영감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표 시집의 하나인 <아베르노>(2006)는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의 신인 하데스에게 붙잡혀 그의 지옥으로 떨어진 페르세포네 신화에 대한 시각적 해석으로 유명하다. 최근 시집인 <독실하고 고결한 밤> 역시 시각적으로 장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993년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노벨 문학상은 2018년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지난해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8)를 2018년 수상자로,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페터 한트케(78)를 2019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2018년 5월 한림원의 지원을 받은 사진작가가 여성 18명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뒤 종신위원들이 대거 사퇴했고, 한림원이 종신위원과 수상위원회를 새로 꾸리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수상자는 전년까지 900만크로나의 상금을 받았으나, 올해부터는 1000만크로나(약 12억9900만원)를 받는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자들은 고국에서 메달과 상장을 받게 되며, 이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예정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노벨문학상 수상 글릭, 퓰리처상·전미도서상 휩쓴 미 대표 시인2020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글릭 신화와 역사·고전 소재로 개인 경험과 상처 보편 문제로 확장
2020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이즈 글릭.
노벨 문학상이 여성과 시인, 미국 작가에게 야박했다는 평을 의식했던 것일까.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은 스웨덴 한림원이 자신들을 향한 여러 따가운 시선을 두루 고려한 선택처럼 보인다.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겠지만, 루이즈 글릭은 적어도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는 2003~2004년 미국 계관시인을 지냈으며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단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아킬레스의 승리>(1985)나 <아라라트>(1990) 같은 시집 제목에서 보다시피 그리스 신화와 성서를 비롯한 신화와 역사, 고전 등에서 소재를 취해 개인적 상실과 욕망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 동원된 개인적 경험과 상처는 인간 보편의 문제로 확장되고는 한다.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어릴 적부터 그리스 신화와 잔다르크 이야기 같은 고전들을 가르쳤고 그는 어린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거식증을 앓았으며 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정신분석 요법을 통한 치료에 집중했다. 그는 세라로런스대학과 컬럼비아대학의 시 창작반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으며, 학교를 떠나서는 비서 업무로 생계를 해결했다.글릭은 1968년에 첫 시집 <맏이>를 출간했고 이 책은 몇몇 긍정적인 평을 듣기도 했지만, 글릭 자신은 그 뒤 한동안 집필 불능 상태에 빠졌다가 1971년 버몬트의 고더드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 일을 맡으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1975년에 두번째 시집 <습지대>를 펴냈고, 이 작품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뚜렷한 목소리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1992년에 낸 시집 <야생 붓꽃>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2014년에 낸 시집 <독실하고 고결한 밤>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다룬 장시 <10월>을 펴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동원해 트라우마와 고통의 양상들을 탐구했다. 이해에 그는 예일대 상주 작가로 임명되었다.
2016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전미 인문학 메달 수여식에 앞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을 감싸안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글릭은 언어적 정확성과 엄정한 어조를 지닌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거의 각운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반복과 구 걸치기(enjambment) 등의 기법으로 리듬을 확보한다. 그의 시는 자주 일인칭 화자를 동원하고 시인 자신의 개인사에서 촉발된 내면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자전적이며 고백적인 시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허구적 장치라는 해석도 만만찮다. 주제 측면에서 글릭의 시는 죽음과 상실, 거절, 관계의 실패 같은 아픔과 치유 및 회복을 향한 시도를 노래한다. 그와 함께 사랑과 관심, 통찰, 그리고 진실을 전달하는 능력을 향한 갈망 역시 표현한다. 그의 시는 또한 자연에 대한 관심을 표나게 드러내는데, 가령 시집 <야생 붓꽃>에서는 정원의 꽃들이 지능과 감정을 지닌 주체들로 등장하기도 한다.양균원 대진대학교 교수는 <현대영미시연구> 2009년 가을호에 실은 논문 ‘자아의 부재에서 목소리를 내다―루이스 그릭’에서 “그릭(글릭)의 목소리는 가장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보다 포괄적인 인간의 문제에로 확장하도록 하는 언어에 의해 종래의 서정시에 새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최
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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