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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완장 찬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멸시한다

이강기 2020. 11. 2. 23:20

[이하경 칼럼] ‘민주화’ 완장 찬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멸시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02

 

 

 

 

이하경 주필

 

 

참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바친 인물들이 주류인 ‘민주당’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다름’을 적대시하면 다원주의를 대전제로 한 민주주의는 시들어버린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은 위헌 소지
집권세력의 역사해석 독점 의도
‘항미원조’는 ‘민주주의 동맹’ 도전
문 정부, 중국·북한에 왜 쩔쩔매나

 

집권당이 토론도 없이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한 5·18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은 “오직 나의 생각만이 옳다”는 ‘정의 독점법’이다. 무엇이 허위인지는 집권세력이 판정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므로 당연히 위헌 소지가 있다. 기존 형법에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어서 명백한 과잉입법이다. ‘민주화’ 완장을 찬 세력의 신성한 율법을 거스르는 불온한 역사해석은 최고 7년의 감옥행을 각오해야 한다. 압도적 다수의석의 오만이다. 이러려고 민주화운동을 했고, ‘민주당’이란 간판을 내걸었는가.

5·18 민주화운동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돼야 할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벌을 역사에 맡기자”며 봉인(封印)하려다 민심이 반발하자 사법처리로 선회했듯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해석 독점 시도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다. 이론(異論)을 봉쇄하는 것은 신정(神政)국가에서나 가능하다.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민주주의 공론장은 “북한군이 개입했다”같은 허위사실은 사법의 개입 없이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통계왜곡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것도 수상하다.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한 뒤 소득분배가 악화하자 대통령은 통계청장을 갈아치웠고, 새 청장은 조사 방식을 바꿨다. KB부동산이 ‘주간 매매·전세지수’ 제공을 한때 중단했던 것도 정부에 불리한 숫자를 내놓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도 문제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통해 창조적으로 진화한다. 민주주의가 없었으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비판의 근거를 없애는 것은 민주주의를 죽이는 짓이다.

집권세력의 사고가 경화(硬化)되면 대외정책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주권자의 의식과 정서는 매순간 활짝 열려 있는 민주적 토대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정권이 팩트와 비판을 통제해 국민을 가상현실 속에 가두는 순간 민주주의의 모든 장점은 소멸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했다. 중대한 사실 왜곡이다.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 중국 마오쩌둥의 승인을 받고 1950년 남침했다. 중국은 1949년 조선족 2개 사단을 포함한 4만 명의 병력을 북에 넘겼다. 이들은 남침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침략국이고, 한국이 공범국이라니 적반하장이다.

중국은 한국을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민주주의 동맹’의 약한 고리로 보고 공격 중이다. 이런데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시 주석 발언이 역사왜곡이냐”는 질문에 “우리 입장에선 그렇다”고 했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한국전쟁이 미국의 침략이라는 뜻인가. 오죽하면 여당인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분명한 의사표시가 필요하다”고 비판했을까.

중국이 거칠게 나오는 것은 우리가 허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최근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맹을 지켜야 한다는 건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남관표 2차장(현 주일대사)은 2017년 중국에 사드 ‘3불(不)’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도 같은 해 “중국은 큰 산,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했다. 이러니 북한 매체가 “미제와 이승만 도배들이 도발한 침략전쟁”이라고 중국과 맞장구치는 것이다.

 


김일성은 1975년 4월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주언라이를 만나 “잃어버릴 것은 군사분계선이며 얻는 것은 통일”이라며 무력통일 의사를 밝히고 지원을 요청했다. 마오쩌둥은 고령, 주언라이는 병중이어서 덩샤오핑에게 공을 넘겼다. 다행히 덩샤오핑은 “중국은 이미 혁명의 깃발을 내려놓았으며 경제건설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반대했다(정종욱, 『저우언라이 평전』, 민음사). 문 정부의 평화공존 노선은 좋지만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아서는 안 된다.

초대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은 조선을 속국처럼 묶어 두려는 청나라 위안스카이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1888년 워싱턴에 부임했다. 백악관에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조선식 큰절을 올렸다. 그는 11개월간의 미국 경험을 토대로 ‘미속습유(美俗拾遺)’라는 보고서를 썼다. “이 나라는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해 만든 나라로 권리가 주인인 백성에게 있다”고 적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 선각자의 지혜가 담겼다.

국민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가치를 ‘민주화’ 완장을 찬 사람들이 멸시하고 있다. 안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밖에서는 ‘민주주의 동맹’을 허물려는 중국· 북한에 쩔쩔매고 있다.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