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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것을 얕잡아 본다

이강기 2021. 3. 5. 21:31

우리는 우리것을 얕잡아 본다

 

이규태 기자

조선일보1975년 8월 23일자 조간 4면

 

※ 원본 데이터가 손상된 경우 글자가 ㅁ 또는 공란으로 표기됩니다.우리는 우리것을 얕잡아 본다

 

열등감(劣等感)

한국인(韓國人)은 누구인가‥그 의식구조(意識構造) 밑바닥을 본다

체질화(體質化)된"민족비하(民族卑下)"

전통(傳統)경시「외래(外來)」추종

"엽전(葉錢)은‥‥"하면서 자기(自己)만은 예외(例外)취급

 



고여취(高麗臭)가「고린내」로

이 글도「한국인(韓國人)은…」으로 시작되고 또 이 글의 모든 주어(主語)가 한국인(韓國人)으로 시종되겠지만 근간에 이「한국인(韓國人)은…」으로 시작되는 한국인 비판의 소리를 너무 자주 듣는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단결심이 없다, 한국인은 보수적이고 봉건적이다, 한국인은 공덕심(公德心)이 없다, 한국인은 셋만 모이면 배가 산으로 을라간다느니. 물론 한국인은…하고 주야로 반성한다는 것은 좋은일이긴하고 별반 비난할 것이 못된다. 하지만 어딘가 그말을 음미해 보면 손톱으로 유리바닥을 긁듯 신경을 건드리는 게 있다.

「그것은 한국인은…」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 한국인이라는 집단속에 자기자신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로써 나타낸 것은 아니나 「나만은 예외이지만」하는 단서가 붙거나 「이렇게 말하는 나 이외의 한국인은…」라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 장소에다 벽보를 붙이지 마십시오」하는 벽보를 그 장소에 븥이는 것과 같은 논리다.

우리는 좋아하건 싫어하건 이 한국에 태어나 그 문화권 속에서 자라왔다. 한데 「(나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인은…」함으로써 예외인간으로 소외시키고  또 그 소외행위에 대해 이렇다할 알레르기 반응도 없이 들어내린데는 그러할만한 의식이 한국인에게 체질화돼 있다고 일단은 봐야할  것이다.

일상의 회화에서 우리는「조센진(조선인(朝鮮人))」이란 말을 곧잘 쓴다. 이 말은 그 말뜻대로 순수한 조선사람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의 경멸이 가미된 그린 변질된 조선사람인 것이다. 단수나 복수의 상대방에게 조센진이라고 쏘아 붙일때 그 쏘아 붙인 조센진은 조센진에서 소외된 예외인간이 된 것이다.

엽전이란 말도 그 범주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은전(銀錢)이나 금화(金貨)가 못된 값싸고 열등화폐인 엽전은 곧 한국인이란 뜻을 내포하고있다. 엽전이 그렇지 뭐, 엽전이 하는 일이 그렇지 뭐…할때 그 말을 한사람은 자기자신을 엽전에서 소외시킨 예외 인간이 된다.

뚱이란 말도 그렇다. 중국사람이 한국인을 부를 때 뚱이(동이(東夷))라고 한다. 처음엔 순수한 호칭이었는데 중세에 뚱이란 말은 좀도둑이란 뜻으로 변질되었고 마치 조센진하고 조센진이 조센진을 얕잡아 부르듯이 뚱이도 뚱이라고 뚱이를 얕잡아 부르는 습성이 조선왕조 중엽부터 있어온 것이다.

고려취(高麗臭)란 외래어도 그렇다. 한국사람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뜻한 이 중국말을 굳이 들여와서「고린내」라는우리말을 만들어 애용한데는 앞서 열거한 실례와 일맥상통한 한국인의 「어떤 의식구조의 소산」으도 봐진다.

청(清)나라에 가는 사신(使臣)따라 연행(燕行)했던 박지원(朴趾源)이 풀이한 바로는 사신(使臣) 따라간 숱한 조선의 하노(下奴)나 교(轎)꾼들이 연행(燕行)길에 좀도둑질이 심했기로 조선사람을 뜻한 뚱이가 좀도둑이됐으며 또 그들의 불결한 몸에서 나는 악취가 심했기로 고려취(高麗臭)란 말이 생겨났다 한다.

이 두 말은 민족비하(卑下)의 씻어 없애고 싶은 치욕적 표현인데 씻어 없애기는 커녕 애지중지 소중히 수용해서 우리말로 삼은 데에는 한국인임올 혐오하고 기피하는 한국인의 공통된 의식구조의 소산으로 아니볼수가 없다.

바나나의 껍질과 속

바나나 껍질은 노랗지만 속살은 하얗다. 미국을 비롯, 백인(白人) 사회에 맹목적으로 적응하려는 한국인을 현지에서 바나나라고 속칭한것을 보았다. 백인(白人) 주인에게 맹종한다는 뜻에서「황색(黄色) 엉클 톰」이라고도 얕잡아 붙렸다. 교포 2세는 거의가 바나나가 돼 있음은 비단 미국뿐 만이 아닐것이다.

한말(韓末)에 밀양서 머슴살이하다가 미국에 이민, 치부를 한 노교포는 찾아간 나에게 물었다. 『지금도 밀양 낙동강변의 너른 뻘밭이 그대로 남아있는가』고—. 그 강변에 고된 등짐을 내려반치고 쉴때마다 저 뻘밭을 논으로 만들 수만 있으면 머슴살이 면하고 장가도 들수있을 것이라는 소시적의 꿈을되뇌는것이었다.

이제 고국에 돌아가 농사는 못지을 망정 그 뻘밭만은 농토화함으로써 절실했던 소시적의 꿈을이루고 싶다고…그러할수 있는 절차를 알아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곁에서듣고 있던 그의 바나나 2세는 눈을 부라리며 소년처럼 흥분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를 위아래로 흘겨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미쳤다고—.발작만 하면 낙동강 뻘밭만 찾는다면서 그 말을 곧이 듣지말라는 것이었다.

명절이면 고국생각이 나 한복을 맞추어 입으면 아들 딸들이 남부끄럽다고 문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가두어 둔다고 했다. 오랜만에 교포노인끼리 만나 한국말을 하면 아들 딸들은 이웃이 듣는다고 창문을 닫아버린다고 한숨 쉬었다.

「그리더니 끝내는 미친놈으로 몰아세운다」고 푸념하는 이 노교포의 얼굴에서 너무나 구박받고 초라해져 있는 한국적인 요소를 엿볼 수가 있었다. 속희고 겉노란 바나나는 비단 교포 2세 뿐만 아니라 해방후 세대 전체에 해당된다 해도 지나치다는 법은 없을 것이다.

문화인류(文化人類)학자 마가레트 미드여사는 아버지(전통(傳統))로 부터 문화를 이어받는 수직(垂直)문화시대, 이웃(외래(外來))으로부터 문화를 이어받는 수평(水平)문화시대, 다시 전통(傳統)에 외래(外來)를 조화시키는 역수직(逆垂直)문화시대로 구분하고 수직(垂直)에서 수평(水平)으로 옮아갈 때 문화(文化)가 발전하고 수평(水平)에서 역수직(逆垂直)으로 읆아갈 때 문화(文化)가 결실한다고 한다.

개화기와 더불어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평(水平)시대는 1백년을 지속하고도 기승을 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시기에 있어 이웃의 외래(外來) 문화는 우등문화요, 아버지의 전통(傳統)문화는 열등문화가 된다. 열등 문화권에서 앞다투어 우등문화권으로 탈바꿈하려 든다. 곧 속살이 하얀 바나나가 보다 빨리 되고싶고 바나나가 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요인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이 과정에서「한국인은…」「조센진」「엽전」등의 예외 인간화하는 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복(韓服)의 미(美)는 곡선(曲線)인데…

두 과부집이라는 한복마춤집을 알고있다. 환갑에 가까운 어머니 과부와 갓 30인 딸과부가 한복을 기워 생계를 유지하는데 딸 솜씨가 촘촘하다고들 말을 하면서 실은 딸이 맡는 것을 한결같이 기피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딸은 어머니만큼 읏섶이나 깃, 버선코등 곡선을 잘 못뺀다는 것이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그 곡선에 있고보면 그 결함은 치명적일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곡선을 빼는 비결이 있는것도 아니었다.그 차이는 다만 어머니가 재래의 한척(韓尺)을 써서 감을 마르고 딸은 미터척(尺)을 써 감을 마른다는 단순한 그 차이뿐인 것이다. 학교교육을 받아 미터감각에 찌든 딸은 한척(韓尺)의 길이를 미터법으로 환산, 그 이를테면 28㎝(㎝)3㎜(㎜) 반이 나오면 ㎜(㎜)이하를 사사오입해서 마른데 읏섶의 라인이나 읏동정의 조화가 이그러진다는것이다. 사사오입를 않고 세밀하게 마르면 그 라인을 따로 놓고 볼때 대차가 없으나 입혀놓고 보면 어딘가 한복고유의 실루엣이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비단 한복에 국한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실체(Reality)와 서구의 이론(Model)사이에 플러스 알파 또는 마이너스 알파만큼이 남거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겠다. 미터척(尺)이 한복(韓服)의 고유미를 낼수 없음은 이 극븍할 수 없는 알파 때문이며 이놈의 알파는 내동냉이쳐도 오똑이처럼 일어서고 어금니로 짓씹어도 검처럼 닳지않는 끈질긴 존재의 생명력을 지니고있는것이다. 그것은 노란 피부색을 지을수 없는민큼, 민족의 역시와 운명만큼 질기고 긴것이다.

장자(莊子)의 제자가 하루는 와서 물었다. 길가에서 이상한 새끼 토막을 주워 이놈을 잘라 보려해도 잘라지지않고 발로 짓이겨도 닳지도 않고 태우려 해도 블이 붙지않으니 이놈의 것을 어떻게해야 좋겠읍니까고. 장자(莊子)는「그것을네가 가지면 된다」고 대꾸한것이다.

1백년의 수평문화(水平文化)시대 내내 길가에 버려진 새끼 토막같은「알파」는 우리가 가져야한다.

겉노랗고 속이 흰 바나나시대로 부터 겉노랗고 속도 노란 모과(목조(木爪))시대로—.알파를 열등시했던 수평문화(水平文化)시대에서 알파에다 조화시키는 역수직 문화(逆垂直文化)시대로 옮겨가는 계기로서 역사적 이 시점(時點)은 지나치게 중요하다는법은 없을것이다.

이규태(李圭泰)<본사논설(本社論說)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