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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곰·호랑이가 달리 보이는 이유

이강기 2021. 4. 8. 08:32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단군신화의 곰·호랑이가 달리 보이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1.04.08 01:58 |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단가(短歌)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 민요에 자주 등장하는 후렴이다. 특히 민요 속 주인공이 현실의 부조리에 직면한 상황에서 쓰이는 노랫말이다. 단가 ‘죽장망혜(竹杖芒鞋)’는 중국의 은자(隱者)인 ‘죽림칠현’ ‘강태공’ 외에도 한국 효녀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특히 순응적인 ‘아니 놀진 못하리라’가 아닌 ‘이 산중에 들어온 심봉사도… 때를 기다리라’는 훈계조로 노래가 끝난다.
 

코로나19 견뎌내는 모습
쑥·마늘로 버틴 곰 소환
거짓의 봄이 아니길 기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우리 심정도 앞을 못 본 채 그저 때를 기다리는 심봉사와 같은 게 아닐까. 작고한 미국 록 뮤지션 톰 페이도 그의 노래 가사에서 ‘가장 힘든 건 기다림’이라고 했다. 1년이 넘도록 우리는 단가의 가르침인 ‘아니 놀진 못하리라’를 실천하지 못했다. 대신 각자의 집과 줌(Zoom)으로 피난해 논어 태백편의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을 새기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죽장망혜’의 죽림칠현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진나라 시대 부패한 권세와 봉건 왕조를 피해 은거했다. 당시 권력을 잡으려다 처형된 혜강은 음악의 대부였다. 나무로 만든 오현금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 혜강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오현금의 재료가 될 나무는 그의 가치를 알아봐 줄 한 사람을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미국 알래스카의 세계 최대 온대우림인 통가스 국립 삼림의 시트카 가문비나무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등 각종 명품 악기의 재료로 쓰인다. 이 나무 역시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코로나 난민인 우리의 모습처럼 수많은 흑곰이 그 나무 아래에서 겨울잠을 자며 깨어날 그 순간을 고대했으리라.
 

 

알래스카의 봄은 한국보다 더디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알래스카의 봄도 점점 더 빨리 오고 흑곰들도 겨울잠에서 더 빨리 깨어나고 있다. 낮 길이가 길어지고 새들이 예쁜 목소리로 지저귀는데 흑곰인들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나려고 몸을 들썩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흑곰들이 동면 상태에서 좀 더 오래 버티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지난해 흑곰들이 겨울잠에 유난히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심장 박동을 1분당 12회로 줄이고 몸속 지방을 태워 에너지를 만들어 겨울을 나는 남동부 알래스카의 곰들은 배 속 직장에 ‘마개’가 생성돼 가을에 섭취한 음식이 소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훌륭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동면 기간 내내 천천히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동면에서 깨어난 곰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이 ‘막힌 길’을 뚫는 것인데, 너무 빨리 눈을 뜰 경우가 문제다. 이 ‘변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앉은 부채’라는 풀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 이 식물이 땅 위로 올라오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앉은 부채’ 외에도 곰이 먹을거리는 없을 것이다. 동굴 속에 있는 것이 힘들다고 먹이도 없는 바깥으로 나오는 게 곰들에게 해방일까. 장이 막힌 가운데 굶주리는 고통은 기다림의 불편함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그 곰이긴 하지만, 우연히 그 곁을 지나치는 인간 등산객이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 계관 작가 고(故) 셰리 심슨이 쓴 것처럼, 알래스카에선 “장소와 동물은 너무도 끈끈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서 서로를 증폭시키고, 서로의 은유로 변화하며,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신화로 녹아든다.” 여기에서의 은유는 우리에게 격리 생활을 끝낼 적기를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 고통을 받는 것은 우리 개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한국의 단군 신화 속 곰이 마늘과 쑥으로 동굴에서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면 한국이라는 곳 자체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코로나 종식까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단군 신화 속 호랑이와 곰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백신이 점차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때를 기다리는 우리는 산림 동굴 속에서 나반존자 독성(獨聖·부처님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 자연 변화를 보고 스스로 도리를 깨친 성자)에게 기도를 올리며 우리가 기다리는 봄이 거짓의 봄이 아니길 기도한다.
 
중국의 은자인양 산속에서 때를 기다린 심봉사는 그의 딸이 주인공인 판소리 이야기에 따르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심청이의 선한 행동과 사랑을 통해 심봉사는 모든 감각을 되찾게 된다.
 
알래스카에 계신 부모님을 안아 드리고 한국의 관객들과 직접 만나 연주회를 열고 싶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그저 ‘죽장망혜’를 부르며 우리 모두의 삶을 가로막고 있었던 ‘마개’를 함께 제거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으련다. 인내심을 가지고 말이다. 그 마개를 떼어 내는 날,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걱정 없이 연분홍 봄날을 즐기며 ‘아니 놀진 못하리라’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출처: 중앙일보]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단군신화의 곰·호랑이가 달리 보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