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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희생자와 남로당 무장폭동도 구별 못하나

이강기 2021. 4. 5. 09:10

오피니언

[사설] 文은 4·3 희생자와 남로당 무장폭동도 구별 못하나

 

조선일보

입력 2021.04.05 03:24 | 수정 2021.04.05 03:24

 

 

 

 

[제주=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 4·3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1.04.03. scchoo@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주에서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에 취임 이후 세 번째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은 두 번 참석한 경우도 없었다. 이번엔 국방장관과 경찰청장을 대동했는데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 무장 폭동이 도화선이 돼 수많은 제주도민이 억울하게 희생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을 수십년간 폭도 가족으로 몰리고 연좌제로 고통받았다. 4·3 사건을 매년 추념하는 이유는 남로당과 한 묶음으로 취급돼 희생당한 대다수 제주도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 권력은 폭동, 반란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했다. 작년 추념사에서는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제주 4·3 희생자들이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외치면서 공권력에 맞섰다는 취지다.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제주 4·3 사건 진상보고서’는 4·3 사건을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남로당과 무관한 일반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분단 반대, 통일 정부 수립은 당시 남로당이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를 무산시키려 내걸었던 정치 구호다. 대통령은 마치 제주도민 전체가 남로당에 동조해 정부 수립을 가로막다가 군경의 탄압을 받은 것처럼 말한 것이다.

 

제주 4·3이 분단 반대, 통일 국가 수립 운동이라는 성격 규정은 남로당 시각이다. 북한이 6·25전쟁을 조국 통일 전쟁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으려 했던 남로당 폭동을 ‘통일 정부 수립 운동'으로 미화하면서, 제주 도민 전체가 남로당과 뜻을 같이했던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이것이 국가 권력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오랜 세월 고통받았던 제주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