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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거리를 좁히자

이강기 2021. 4. 21. 13:43

일본과 거리를 좁히자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대학지성
  •  2021.04.18

[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일본과의 관계를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일관된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일관된 정책은 정부의 소관이라고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일관된 정책은 일관된 생각에서 나온다. 일관된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어야 한다.

 

일관된 생각은 일본과 거리를 멀리하지 말고, 좁히자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과 거리를 좁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몇 가지로 말한다. 아주 기본이 되는 사항만 간략하게 제시해 토론을 시작하는 자료로 삼고자 한다. 관심과 식견이 다양한 분들이 많이 참여해 의견 수렴이 크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먼저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항부터 말한다. 일본의 그림과 책이 부럽다. 일본에는 미술관에 그림이 많고, 도서관에 책이 많다. 우리는 미술관이 너무 적고, 소장품이 거의 없다. 도서관이 부실해 학문에 지장이 있다. 격차를 줄여야 하지만, 많은 시간과 재원이 필요하다. 앞서기는 어렵다. 일본의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우리 것으로 여기고 이용하는 것이 슬기롭다. 미술관은 열려 있어 쉽게 구경할 수 있다. 도서관은 이용에 제약이 있어 필요한 자격을 얻어야 한다.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소득이 늘어난다.

 

일본 신세를 지기만 할 것은 아니다. 일본에 도움이 되는 품목을 갖추어 신세를 갚고, 양쪽이 함께 잘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 하나가 음악이다. 일본은 그림의 나라이고, 한국은 음악의 나라여서 장단점을 서로 보완할 수 있다. 음악을 더 잘해야 한다. 또 하나는 거시적인 이론이다. 일본은 자료에 대한 미시적인 고증에서 대단한 능력을 보이면서, 거시적인 이론은 만들기 어려워한다. 거시적 만들기는 우리의 장기임을 알아차리고 분발해, 일본과 미시와 거시의 합작이 크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음에는 과거사 청산에 관한 더 큰 이야기를 하자. 불행한 시기를 되돌아보면, 대다수의 일본인은 우리와 아주 다르지 않은 피해자였다. 가해자가 사죄를 하지 않는다고, 피해자마저 적대시하는 것은 어리석다. 동지를 적으로 몰아 적을 키우면 패배를 자초한다. 적은 줄이고 동지를 늘여야 승산이 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전략이다.

 

침략 전쟁의 피해자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유대를 돈독하게 하자. 소통의 범위를 넓히고 내용을 충실하게 해서, 가해자를 고립시키고 무력하게 해야 한다. 눈치채지 못하게 포위하고 부드럽게 공략하자. 이것이 가해자가 잘못을 알아차리고 가해를 멈추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도 일본과 거리를 좁혀야 한다.

 

이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쟁에 관해 말하자. 일본이 망해야 우리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혼자 치고 나가면 자만심이 생겨, 선진이 후진인 역전이 바로 일어난다.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을 모두 국산화하려고 하면, 노력을 낭비하고 진척이 더디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두 나라의 유무상통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비결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와 불화하면서 세계 평화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일본과 함께 나아가면서 서로 도와주어, 원수를 사랑하는 화합의 본보기를 보여주면 온 인류가 주목하고 따를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장단점이 반대인 정도가 지구상의 다른 어느 두 나라보다 크다. 엄청난 불운이 대단한 행운이다. 상극의 크기만큼 상생이 대단할 수 있다.

 

일본과 먼저 가까워져야 중국과의 사이가 깊은 층위에서까지 좋아질 수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시기보다 중국을 상대하기 힘든 기간이 훨씬 길다. 일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중국인은 누구나 같아야 한다고 하므로 상대하기 더 힘들다. 중국인의 마음을 일제히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일본과 공동으로 강구할 대책을 말해보자. 월남이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깊은 유대를 가지고 함께 나아가면, 중국이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아시아가 하나가 되면, 세계가 하나일 수 있다.

 

근대는 유럽문명권이 패권을 장악하고 다른 모든 문명권을 불행하고 불안하게 하는 시대이다. 일체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누구나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다음 시대를 이룩하자는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필요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이 거리를 아주 좁히고 적극 협력해 이런 대장정의 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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