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記事를 읽는 재미

“나도 쓰겠는데”로 시작된 소설가 인생

이강기 2021. 12. 24. 11:37

 

“나도 쓰겠는데”로 시작된 소설가 인생

 
박지영 기자
부대신문, 2021.5.17
 
두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홍준성 소설가를 인터뷰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사뭇 난감했다. 홍준성 소설가는 2015년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당선작 <열등의 계보>에 이어 올해 5년 만의 신작 <카르마 폴리스>를 출간했다. 대외적으로 그는 소설가이나, 그 직업만이 인터뷰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도서관을 통째로’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다. 다른 사람이 다루지 않는 어려운 철학서들을 서평하고, 때론 사회 현상에 대해서 논평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자신만의 주제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글들도 게시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유튜버이다. 2019년부터 운영한 ‘문맥’(현재 ‘철학학교’)은 어느덧 구독자 8천 명을 넘겼다. 이곳에서도 블로그와 비슷하게 철학적인 논의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 학교 철학과 11학번 학부생이었던 그는 올해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이기도 하다.

호기심은 이 다양한 정체성에서 출발했다. 홍준성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것이 인터뷰의 이유였다. 지난 3일 우리 학교 인근 카페에서 홍준성 소설가를 만나 그가 지나온 세월에 대해 들어 보았다.


지난 4월 신간 <카르마 폴리스>를 출간한 홍준성 소설가. 그는 소설가인 동시에 파워블로거, 유튜버 그리고 우리 학교 철학과 대학원생이기도 하다.


△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을 것만 같다. 그때의 어떤 습관이나 사건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된 지점이 있는가.


저는 평범했어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장난치고, 농구도 하고.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영향을 미친 게 전혀 없는 건 아니고요.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어요. 보통 야간자율학습을 째고 PC방을 자주 갔는데요. 용돈이 그리 많지 않아서 PC방을 못 간 적도 많았죠.

그땐 학교에 좋든 싫든 있어야 했어요. 근데 입시 공부는 너무 하기 싫어서,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어요. 국어 문제보다 책 읽는 게 더 재밌었거든요. 독서가 입시 교육 내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재밌었어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자양분이 됐어요. 그때 문해력을 길렀던 거 같기도 하고, 독서의 방향성을 잡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 ‘도서관을 통째로’라는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즈음에 시작했던 거 같네요. 처음엔 책을 읽기만 했어요. 근데 좀 허전하고, 고독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컴퓨터로는 게임만 좋아했지, 블로그와 같은 커뮤니티를 잘 몰랐어요. 근데 글을 올리고 다른 유저들과 연결되는 게 신기했달까?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글을 작성하면 다른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적고. 저도 다른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상하게 읽었나 자문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게 재밌었어요.

 

쓰기가 읽기를 보완해주기도 했어요. 책을 읽다가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머리가 아프잖아요. 뇌가 고통으로 인식해서 피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해되는 것만 짚고서는 전부 이해한 거라고 속이는 거죠. 인터넷 강의랑 비슷해요. 읽기만 했을 때는 인터넷 강의 풀이를 보는 거죠. 어떻게 푸는지 알 거 같아요. 근데 혼자 문제를 풀면 풀리지 않죠. 분명 다 이해했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쓰는 겁니다. 연습문제를 푸는 것처럼요. 글을 쓰다 보면 논지가 완벽하지 않아서 적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럼 다시 읽는 거죠. 내가 다 이해했다는 읽기의 환상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계속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초반엔 책을 다루는 블로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다. 블로그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봐야 할까.


인문학 블로그라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이전엔 서평 블로그였어요. 남들이 잘 안 쓰는 책을 서평 하는 블로그. 누가 데카르트의 <성찰>이나 스피노자의 <신학 정치론>을 읽고 서평을 쓰겠어요. 이런 책들을 읽고 어려운 개념을 풀어주는 컨셉이었죠.

 

그러다가 2년전 쯤이려나. 책에서 벗어났어요. 요약을 다루는 걸 떠나서 주제가 생긴 거죠. 이를테면 욕망에 대해 적고 싶다면, 욕망에 대해 말한 사람이 많을 거 아니에요? 라캉, 스피노자, 들뢰즈 등등…이제 그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으니까, 제 주제에 맞춰서 글을 쓰게 되는 거죠.

 

 

△ 이토록 많이 읽고 썼으면, 자신만의 독서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옛날엔 있었어요.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본 것도 아니에요. 그때마다 모범답안처럼 읊는 게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요, 없어요. 제가 읽은 책이 1,000권이 넘어요. 정말 많이 읽었어요. 읽을 때 한 문단씩 요약도 해보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 2차 문헌들을 늘어놓아서 읽기도 하고, 개념어 사전도 만들어보고, 발표도 토론도 해봤는데, 결론은 없다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책마다 달라요. 철학서 읽는 방식으로 문학을 읽으면 망해요.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통섭은 할 수 있겠죠. 근데 통섭이 환원은 아니거든요. 이를테면 문학을 읽는 것처럼 철학서를 읽으면 인상비평처럼 되어요. 깊이 잇는 논리 탐구를 안 하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데 왜 배우냐가 되어 버리죠.

 

책을 읽는 나의 문제, 주체의 문제도 있습니다. 내가 늘 같은 상황이 아니거든요. 내가 여유가 있으면 변태처럼 읽을 수 있어요. 근데 제가 명확한 목표, 예를 들면 소설을 쓰려 해요.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다면, 그런 기준에 맞춰 책 속에 걸리는 것들만 읽겠죠.

 

그래서 꾸준히 읽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어떤 책을 읽느냐,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독서 비결은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지침만 있지 명확한 비법은 없어요.

 

 

△ 소설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제가 2014년 가을부터 소설을 적었을 겁니다. 군대 후임이 소설가 지망생이었어요. 그 친구가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였는데, 부대문학상에 소설을 낸다더라고요. 그러고는 자기 소설에 철학적 의미를 넣고 싶다고, 제가 철학과니까 소설을 읽고 철학 관련 평을 해달래요. 해줬죠. 근데 보니까 ‘나도 쓸 수 있겠는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적어봤어요. 근데 처음 적어보잖아요. 완결이 안 나더라고요. 마감 날에 ‘에이 모르겠다’하고 결론이 안 난 소설을 냈어요. 그러고 당선이 됐어요.

 

그 이후로 제가 영화비평부터 여러 가지 글을 썼는데, 다 안 됐어요. 한 후배가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내가 소설에는 재능이 있나 보다,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했어요. 그때 돈도 좀 쪼들렸었는데, 상금 제일 많이 주는 공모전을 찾았어요. 그게 한경 신춘문예였어요. 이건 뭔데 상금을 3,000만 원이나 주냐고 보니까, 장편소설을 받더라고요. 보통 단편 소설을 많이 받아요. 근데 제가 부대문학상 소설도 완결이 안 났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잘 됐다. 긴 거 쓰면 되겠다’라며 쓰기 시작한 거죠. 그 소설이 2015년 당선된 <열등의 계보>예요. 그렇게 소설가가 된 거예요.

 

 

△ 2015년에 <열등의 계보>를 낸 뒤 5년 만에 소설 <카르마 폴리스>를 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집필을 쉰 것 같다.


소설은 계속 적었어요. 근데 왜 출간이 안 됐냐 하면은, 주류 출판 방향과 안 맞았어요. 저는 신춘문예 출신이잖아요. 작가가 되는 길에 신문사의 신춘, 출판사 문예지의 공모전 두 길이 있어요. 뽑힌 후 청탁을 받아야 소설을 쓰고 벌이를 구할 텐데, 청탁이 안 들어와요. 문예지의 입장에선 자기네들이 뽑은 공모전 작가만 쓰기에도 여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신춘은 보통 한 번 더 공모전에 도전해야 해요. 공모전 심사위원을 통과해야 하는 건데, 제가 그게 참 안 됐어요.

 

왜 이렇게 안 될까 하고 문예지들을 살펴봤는데, 담론이 아예 안 맞더라고요. 이를테면 기억이나 회상 위주, 잃어버린 사람의 기억을 되찾거나 역사로부터 배제된 기억들을 주로 다뤄요. 주류 문학이 희생당한 것들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저는 반대였어요. 둘 중 하나를 얻을 때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과감하게 희생해야 한다. 그런 결단하는 주체에 대한 글을 많이 적었어요. 포스트모더니즘보다 모더니즘에 가까웠던 거죠. 그런 식으로 방향이 안 맞다 보니까 심사 통과가 안 됐던 거 같아요.

 

그렇게 통과가 안 됐던 소설 중 하나가 <카르마 폴리스>입니다. 2019년에 제 마음 상태가 ‘난 뭘 해도 안 되구나’였어요. 문학 3년도 망했죠, 유튜브로 성공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철학 밖에 없으니, 시간강사로 돈이나 벌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강사법’이 통과되더라고요. 장래가 아주 어두워진 거죠. 막막한 마음에 폴더에 묵혀둔 소설이나 현금화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아깝기도 했고. 그래서 소설을 고쳐 써서 2020년 1월에 은행나무 출판사에 보냈어요. 출판사의 편집자가 주류 담론과 맞진 않지만 특이한 게 있다며 출판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출판하게 됐어요. 이렇게 오기까지가 5년이 걸렸어요.

 

 

△ 유튜브 채널 '철학 학교'를 개설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거시적으로는 세상이 바뀌었죠. 예전엔 글로 글에 대한 초대를 했는데, 이젠 그 초대를 영상으로 해요. 초대장을 안 받았는데 어떻게 결혼식을 가겠어요. 초대장의 매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다음으로 저는 담론에서 소외된 작가예요. 국어국문학과도 문예창작과 출신도 아녜요. 문예지에 글을 싣지도 않았고, 단편을 적지도 않아요. 여러모로 문단의 모범 코스와는 멀죠. 저 같은 사람은 스스로 스타가 되어야 해요. 스타가 아니더라도 나를 어필해서 내 소설을 읽어줄 독자들을 데리고 있어야 해요. 근데 좋은 시대잖아요? SNS를 통해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거죠. 독자와 소통할 수도 있고. 정리하자면 △트렌드가 바뀌었고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었고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가 결부돼서 지금까지 유튜브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먼저 석사 논문을 적어야 합니다. 대학원에 얻게 되는 의미 있는 것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려면 대학원에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학위를 따야 하죠. 다음으로는 저는 <카르마 폴리스>의 도시, 비뫼시 이야기를 총서로 쓰려고 해요. 여러 주제를 모자이크처럼 구성해내서 하나의 세계관을 완전히 만들어내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선 몸이 고장 나면 안 돼요. 그래서 올해부터 달리기를 해야 합니다. 몸이 가고 있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옛날만큼 미친 듯이 앉아있지 못해요. 굉장히 속물적이지ㅍ만 굉장히 중요해요. 이것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입니다.

 

박지영 기자 beforesunrise@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