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러시아 '역사의 수렁'에 빠지다…80여년前 '겨울전쟁' 평행이론

이강기 2022. 4. 2. 07:10

러시아 '역사의 수렁'에 빠지다…80여년前 '겨울전쟁' 평행이론

 
중앙일보

입력 2022.04.02 05:00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 겨울전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러시아가 고전하면서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다시 주목을 받는 전쟁이 있다. 바로 ‘겨울전쟁(Winter War)’이다. 1939년 11월 30일부터 이듬해인 40년 3월 13일까지 벌어진 핀란드-소련 전쟁을 뜻한다.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 겨울 환경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하얀 위장복을 입었다. 핀란드군은 스키와 사격 실력이 뛰어나 소련군은 '하얀 악마'라며 두려워했다. SA-Kuva

 

 

영토를 떼달라고 소련의 요구에 약소국인 핀란드가 거절하자 일어났고, 핀란드군의 끈질긴 저항에 소련군이 애를 먹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많이 닮았다.

 

전쟁 전 당시 소련의 외무장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말을 안 들으면 목소리를 좀 높이면 될 것이고, 고함을 질러도 안 되면 총을 몇 발 쏘면 돼”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에선 소련군은 핀란드군에게 3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핀란드군의 사상자는 7만이었다.

 

소련군은 전차와 전투기, 야포를 갖춘 45만명을 동원했지만, 핀란드군은 소총으로 간신히 무장한 30만명이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핀란드군은 약삭빠르게 소련군 부대를 조각낸 뒤 각개격파했다. 게다가 핀란드군은 스키와 사격이 능한 전사였다.

 

소련군에서 유능한 장교단은 대숙청으로 사라졌고, 말도 안 되는 상부의 지시만 기계적으로 따르는 지휘관만 남았다. 게다가 압도적인 전력차 때문에 전쟁이 일찍 끝날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보급품은 열흘 치도 준비하지 않았다.

 

핀란드 국민의 저항 의지도 드셌다. 소련군 폭격기가 핀란드 도시에 마구잡이로 폭탄을 쏟아붓는 데 대해 몰로토프 장관은 라디오에서 “우리는 핀란드 인민에게 빵을 공수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핀란드 국민은 소련군의 폭탄을 ‘몰로토프 빵바구니’라고 놀리면서, 소련군 전차에 던지는 화염병을 ‘빵값 대신 주는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이래서 나온 게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국민에게 러시아군 전차에 맞설 수 있는 몰로토프 칵테일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있다.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군의 공격으로 버려진 소련군 T-26 전차. Finna

 

소련군은 나중에 심기일전하며 핀란드군에 소모전을 걸었다. 힘에 부친 핀란드는 휴전조약에 서명했다. 당시 핀란드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달리 외부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토를 내줬지만, 소련에 흡수되거나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핀란드는 대신 중립국의 지위를 선택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소련(나중에 러시아)과 관계를 돈독히 했다. 또 핀란드군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소련을 반대하는 방송ㆍ도서ㆍ영화를 자체 검열하는 등 소련의 눈치를 봤다. 이른바 ‘핀란드화(Finlandization)’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전쟁 시작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적 있다. 그런데 핀란드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자는 여론이 거세다고 한다.

 

핀란드-소련 전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유사성은 ‘역사는 되풀이한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격언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는 문구가 뒤따르곤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중 누가 희극과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