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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이 ‘情婦’로 몬 김노디… 사실은 이승만 수양딸이었다

이강기 2022. 9. 6. 07:29

‘백년전쟁’이 ‘情婦’로 몬 김노디… 사실은 이승만 수양딸이었다

독립운동가 김노디 입양문서 입수
“내 여식을 리박사 수양녀로 주어”
1913년 부친 김윤종이 직접 작성
‘백년전쟁’ 영상선 불륜처럼 묘사

조선일보, 2022.09.06 
 
 
 
 
 
김노디 유족 소장 김노디 아버지 김윤종은 1913년 6월15일자로 작성한 이 문서에서 '나의 13세 여식(女息)된 또라를 리박사 승만씨에게 수양녀로 주어 나와 나의 부인인 김윤덕이 그 부모된 권한과임을 영구히 넘겨맡기며 이를 위하여 자에 성문으로 증명함'이라고 썼다.'김윤종'으로 새긴 인장을 찍었고 증인까지 세웠다. 또라는 김 지사의 어릴 적 이름이다.
김노디 유족 소장 김노디 지사가 보관하던 이승만 부부 결혼사진. 이승만은 1934년10월 뉴욕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했으나 결혼 사진은 그동안 알려진 적 없다. 이덕희 하와이한인이민연구소장이 김 지사 딸 위니프레드 리 남바씨가 간직한 이 사진을 본지에 공개했다. 이덕희 소장은 "이승만은 당시 결혼식 촬영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희귀한 사진을 김노디 지사가 소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승만과 김노디가 '부녀'같은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대통령 선거 직전 공개된 동영상 ‘백년전쟁’은 독립운동가 김노디(1898~1972) 지사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의 정부(情婦)처럼 묘사해 물의를 빚었다(독립운동가를 ‘이승만 情婦’처럼 몬 ‘백년전쟁’ 영상...건국훈장 추서에도 침묵, 본지 2021년10월28일자)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 소장 임헌영)가 만든 이 영상은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로 비난하면서 250만 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김노디의 부모는 딸을 이승만의 ‘양녀’(養女)로 보낼 만큼 이승만을 신뢰했으며 이승만과 김노디는 실제로 부녀(父女) 같은 사이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노디 아버지 김윤종은 1913년 6월 15일 자로 작성한 이 문서에서 ‘나의 13세 된 여식(女息) 또라를 리박사 승만씨에게 수양녀로 주어 나와 나의 부인인 김윤덕이 그 부모된 권한과임을 영구히 넘겨 맡기며 이를 위하여 자에 성문으로 증명함’이라고 썼다. 김노디 지사가 간직했던 이 문서는 딸 위니프레드 리 남바(94)씨가 보관하던 것으로 이덕희(81)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이 본지에 제공했다. 또라는 김 여사의 어릴 적 이름으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도 나온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을 '플레이보이'라고 비난하면서 당시 20대였던 김노디 지사와 불륜관계인 것처럼 묘사했다. 이승만 뒷편에 서양 여성들과 함께 김노디 지사 얼굴이 보이게 편집했다.
 

이승만은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1910년 10월 귀국해 서울 YMCA 학감(學監)으로 일했다. 그러다 ‘105인 사건’으로 일제(日帝) 체포명단에 오르자 다시 도미(渡美), 1913년2월 하와이에 정착했다. 이승만은 그해 3월 3일~6일 하와이 펄 시티 공원에서 한인 목회자와 평신도 대표 100여 명이 참석한 훈련 집회를 이끌었다.이 집회는 당시까지 열린 하와이 한인 감리교회 지도자 모임 중 가장 규모가 컸고, 이승만을 하와이 한인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1905년 5월 하와이에 이민 온 김윤종은 평신도 지도자로 이 집회에 참석했다. 김윤종은 1907년9월 임정수 전도사와 함께 와히아와 교회(현 올리브연합감리교회)를 시작했다. 김윤종은 당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 노디를 남겨두고 가는 게 걸렸다. 이승만을 신뢰한 김윤종은 노디를 그에게 맡기기 위해 계약서(입양문서)를 작성했다. 이덕희 소장은 “법적으로 하와이 정부에 입양 수속을 끝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김윤종은 1914년 9월 호놀룰루 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여권을 발급받았고 딸 노디가 오하이오주 우스터 고교에 유학 가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귀국했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22일 하와이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김노디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문대통령 왼쪽은 김노디 지사 딸인 위니프레드 리 남바씨/뉴시스
 

김노디는 이승만의 주선으로 우스터 고교에 진학, 1922년 오벌린대를 졸업했다.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회의에 참석해 독립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미주 교포신문인 ‘신한민보’가 “비감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을 옷깃에 적시었다더라”(1919년 5월 6일 자)라고 보도할 만큼 감동적 연설이었다. 김노디는 1920년 5월 23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국친우회’ 대회에서도 첫 연사로 나섰다. 1919년 5월 서재필·이승만이 주도해 필라델피아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결성된 친한단체다. 신한민보는 ‘김노디 여사의 애국적 활동’(1920년 6월 4일) 기사에서 그해 5월 30일에도 오하이오주에서 한국 독립을 위한 연설이 예정돼 있다고 소개했다.김 지사는 1922년부터 이승만이 세운 한인기독학원 교사와 교장을 지내면서 후진 교육에 앞장섰고, 1926년부터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 활약했다. 정부는 2021년 9월 이런 공로를 인정,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9월22일 하와이에서 열린 김노디 지사 훈장 추서식에 참석해 딸 위니프레드 리 남바씨에게 훈장을 건넸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에서 직접 훈장을 준 것은 처음일 만큼 이례적이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노디가 '부적절한 관계'로 미국 경찰에 체포돼 '머그샷'을 찍은 것처럼 화면을 합성해 내보냈다.

 

◇체포된 적 없는데 머그샷 합성한 ‘백년전쟁’

 

‘백년전쟁’은 1920년 6월 이승만과 김노디가 ‘부도덕한 성관계를 목적으로 주 경계선을 넘는 것을 금지하는 맨(Mann) 법 위반으로 체포⋅기소됐다’고 소개했다. 미국 경찰에 체포될 때 찍은 것 같은 사진(일명 ‘머그 샷’)도 여러 차례 내보냈다. ‘이승만은 부도덕한 플레이보이’라며 잡지 ‘플레이보이’ 표지를 배경으로 김노디 여사 얼굴까지 등장시켰다.

 

‘백년전쟁’이 문제 삼은 것은 이승만과 김노디가 1920년 6월 16일 시카고~샌프란시스코 간 기차를 함께 탄 여행이다. 이승만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대통령으로 부임하기 위해 중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김노디는 필라델피아 회의에 참석한 뒤 오하이오주 오벌린대로 돌아갔다가 하와이의 어머니를 만나러 돌아가던 길이었다.

 

호놀룰루 이민국 조사관은 그해 8월 27일 김노디를 면담 조사하고, ‘혐의 없음’으로 보고했다. 김노디가 오벌린대에 복귀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갈 수 있는 도항증도 발급해줬다. 이승만과 김노디는 경찰에 체포되거나 기소된 적도 없다.

이덕희 소장 제공 하와이 오아후 공동묘지에 묻힌 김노디 지사 묘비.
 

”이승만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

 

김노디는 호놀룰루 이민국 조사에서 이승만에 대해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항상 그분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늘 그분을 그런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답했다. 김노디가 우스터 고교와 오벌린 대학에 진학할 때, 한인중앙학원 교장이던 이승만이 추천서와 장학금 지원을 요청하는 소개 편지를 썼다. 이승만은 한인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도왔는데, 김노디도 그중 하나였다. ‘입양문서’는 김노디가 왜 하와이 이민국 조사에서 이승만을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겼는지를 뒷받침하는 1차 기록이다.

 

이덕희 소장은 위니프레드 리 남바씨가 간직한 김 지사 유품 중 이승만·프란체스카 부부 결혼 사진도 공개했다. 이승만 부부는 1934년10월 뉴욕에서 결혼했으나, 결혼 사진은 그동안 알려진 적 없다. 이덕희 소장은 “결혼식 자체가 목사 입회하에 혼인 신고를 치르는 정도였고, 결혼식 촬영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 사진을 김노디 지사가 소장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승만과 김노디가 ‘부녀’같은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백년전쟁’이 김 지사를 이승만의 정부(情婦)처럼 묘사한 것은 근거 없는 왜곡이라는 얘기다.

 

김노디 지사는 광복 후인 1953년 귀국해 외자구매처장(조달청 전신)을 지냈다. 김노디 입양문서와 이승만 결혼사진은 7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다큐멘터리 시사회에서도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