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때 영국 구하고, 이스라엘 건국 지원 받아냈다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45] 이스라엘의 國父, 초대 대통령 바이츠만
1차 대전 당시 거의 모든 나라가 화약 원료로 칠레산 초석을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은 칠레로부터 초석을 들여오지 못하게 됐다. 영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화약과 포탄을 만들 수 없으니 꼼짝없이 전쟁에 지게 생긴 것이다. 초석 없이 화약을 만드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아세톤이 있으면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아세톤은 쿠바에서 설탕을 만들고 난 사탕수수 찌꺼기를 발효시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원료조차 얻기 어려웠다. 궁여지책으로 영국은 밤나무 등을 밀폐 용기에 넣고 끓이면서 그 증기를 모아 아세톤을 만들었는데 이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아세톤 양이 너무 적었고 나무도 무한정 베어낼 수 없었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때문에 목재 수입도 어려웠다.
이때 영국을 구한 이가 유대인 생화학자 차임 바이츠만이다. 1915년 군수부 장관 로이드 조지로부터 연구 의뢰를 받은 그는 산소 없이도 증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녹말로부터 아세톤과 부탄올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3만t의 아세톤을 생산함으로써 영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이 공로로 로이드 조지는 이듬해 수상 자리에 올랐으며 바이츠만은 일약 영국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러시아서 1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1874년 러시아 서부의 촌락에서 15명 중 셋째로 태어난 차임 바이츠만은 고등학교 졸업 후 독일로 떠나 베를린 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의 지도교수가 1897년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으로 옮겨가자 그를 따라가 유기화학 박사 과정을 계속했다. 바이츠만은 이듬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2차 시오니즘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전에 교육기관부터 설립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바이츠만은 1901년 스물일곱 살에 스위스 제네바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그해에 열린 제5차 시오니즘 회의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고등교육기관을 먼저 설립하자며 특히 이공계 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바이츠만의 아이디어가 나중에 테크니온 공대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1904년에 영국으로 건너와 맨체스터대학 화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후 바이츠만은 110개에 달하는 특허를 취득할 정도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1910년 바이츠만은 설탕을 인조고무의 원료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박테리아를 찾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히 설탕을 아세톤으로 바꾸어주는 박테리아 ‘클로스트리듐 아세토부틸리쿰’을 발견했다. 그는 박테리아 발효를 통해 아세톤, 부탄올, 에탄올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바이츠만 공정’ 기술이 아미노산, 비타민, 항생제 등을 대량생산하는 발효 산업 성장을 가져왔다. 이는 기존 화학적 합성에 의해 생산되었던 물질을 생물학적 방법으로 생산하는 합성 생물학 시대를 열었다. 이후 유전자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생명 현상 자체를 인간의 힘으로 합성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바이츠만이 생명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로이드 조지 총리는 바이츠만에게 적절한 보상으로 보답하려 했다. 그러나 바이츠만은 개인적 보상 대신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상은 바이츠만이 제안한 문제를 외무부 장관 아서 밸푸어와 의논했다. 마침 밸푸어도 라이어널 로스차일드로부터 이 문제를 집요하게 요청받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1917년 ‘밸푸어선언’을 이끌어냈다. 영국 외무장관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영국의 밸푸어 선언이 나오자마자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과 하이파에 각각 대학을 세운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무려 30년 전의 일이다.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에 전쟁의 폐허로 인구도 몇 안 되는 황량한 예루살렘과 하이파에 미래를 내다보고 히브리 대학과 테크니온 공대를 세운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인구는 고작 5만6000명이었다. 유대인들은 대학이 먼저 만들어져야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고 그래야 국가도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히브리 대학과 테크니온 공대를 세움으로써 그들의 국가 건설 의지를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는 세계 각국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가 건설되어야 한다는 시오니즘 운동의 강렬한 불씨가 되었다.
1920년 시온주의기구 의장이 된 바이츠만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전 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돌며 대학 설립 기금을 모금했다. 히브리 대학은 처음에는 연구기관으로 시작해 1923년부터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등이 이곳에서 가르쳤다. 아인슈타인은 최초로 히브리어로 강의했다. 1925년 캠퍼스가 완공되어 화학, 미생물학, 유대민족을 연구하는 3개 연구기관으로 정식 개교했다. 개교식에는 밸푸어 외무장관 등 영국의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다. 그 뒤 히브리 대학은 4곳에 캠퍼스를 두고 아인슈타인을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 8명과 총리 4명을 배출한 명문으로 성장했다. 또한 아인슈타인이 설립을 주도한 테크니온 공대는 1924년에 개교해, 4차례 중동전쟁 기간 무기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창업 국가로 발전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하이테크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바이츠만은 과학이야말로 장래 이스라엘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수단으로 보았다. “나는 과학이 평화와 젊음의 갱신을 모두 이 땅에 가져와서 새로운 영적, 물질적 삶의 샘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과학 연구에 헌신하기 위해 1934년 예루살렘에서 53㎞ 떨어진 르호보트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주로 유기화학 분야를 연구했다. 이후 연구 분야를 넓혀 1954년에는 세계 최초 컴퓨터 중 하나인 ‘WEIZAC’을 제작했으며, 1958년에는 연구소 내에 파인버그 대학원을 설립해 이스라엘 최초로 컴퓨터 과학을 가르쳤다. 컴퓨터와 위성으로 제어되는 무인항공기와 미사일방어체제 아이언돔 개발의 토대가 이때부터 마련됐다. 오늘날 바이츠만 연구소는 화학, 물리, 컴퓨터사이언스, 생물학, 수학 등 5개 기초과학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바이오산업 분야에 강하다.
박테리아 이용한 생명공학의 아버지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건국되었고 바이츠만은 이듬해 의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52년 73세의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답신에서 “내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이 제안을 받고 나는 깊은 감동을 느낌과 동시에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객관적인 문제만을 다루어 왔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적절히 다루고 공적인 직무를 수행해나갈 타고난 재능과 경험이 모두 부족합니다”라며 사양했다. 이스라엘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된 건 초대 대통령 바이츠만이 재임 3년 만에 78세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과학이야말로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바이츠만의 믿음이 오늘날의 과학 강국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유대인 박해가 시온주의로] 유럽서 설 자리 좁아져 “유대인 국가만이 살 길”
1880년대 러시아에는 전 세계 유대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50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1881년 러시아에서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유대인 박해와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후 매년 5만여 명의 유대인이 러시아를 탈출해 프랑스, 독일, 미국 등으로 향했다. 특히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프랑스에는 12만 명의 유대인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했다. 무고한 유대인을 상대로 한 간첩 조작 사건이었다.
당시 헝가리 태생 유대인 헤르츨이 빈 ‘신자유신문’ 파리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때 그는 유대인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 흡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894년의 드레퓌스 사건을 목도한 헤르츨은 1896년 ‘유대인 국가’라는 책을 발간해, 유대인 문제는 오직 유대민족 국가 창건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시온주의의 태동이었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즘 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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