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物

냉전 종식 영웅이었나, 소련 붕괴시킨 무력한 지도자였나 [고르바초프 1931~2022.8.30]

이강기 2022. 12. 26. 16:38

냉전 종식 영웅이었나, 소련 붕괴시킨 무력한 지도자였나 [고르바초프 1931~2022.8.30]

중앙일보

입력 2022.09.01 00:01

업데이트 2022.12.07 14:45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소련(1922~91)에선 민주주의·자유·인권을, 국제사회에선 평화와 화합을 각각 추구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91세.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로 갈랐던 ‘철의 장막’을 걷어내 ‘냉전(1947~91)’을 종식했으며, 핵전쟁의 위협을 줄였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고르바초프재단을 통해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며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스크바에선 드물게 푸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반전과 평화를 외쳤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제네바 회담.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89년 2월 소련군 철군 완료).

 

그런 고르바초프는 자신이 이룬 평화체제가 무너지고 핵전쟁 위협이 난무하는 신냉전의 격랑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테르팍스·타스통신 등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그가 이날 저녁 중앙임상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당뇨·심장·신장 질환을 앓은 것으로 보도됐다.

 

85년 54세로 역대 최연소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하면서 공산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인권을 추구하고 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 소련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러면서 그해 스위스 제네바, 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각각 만나 냉전 완화를 논의하고 핵군축의 시동을 걸었다.

FILE PHOTO: A demonstrator pounds away the Berlin Wall as East Berlin border guards look on from above the Brandenburg Gate in this November 11, 1989 file photo. In Berlin in 1987, former U.S. President Ronald Reagan challenged Soviet leader Mikhail Gorbachev to ″tear down this wall,″ but later developed a warm relationship with the reformer. REUTERS/David Brauchli JDP/File Photo

 

고르바초프의 의지와 결단은 87년 미 워싱턴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핵군축’으로 평가받는 ‘미·소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체결로 이어졌다. 이 조약은 짧은 시간 안에 유럽 도시를 타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핵미사일(미국 846기, 소련 1846기)의 폐기로 이어졌다. 이듬해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을 체결해 79년 이후 계속됐던 전쟁을 종결하고 이듬해 2월까지 소련군을 철군시켰다.

 

역사적인 동서 화해 드라마는 88년 9월 서울에서 봉오리를 맺었다. 고르비는 미수교국인 한국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에 소련 선수단을 보내는 결단으로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동서 진영이 모두 함께하는 평화와 화합의 제전이 열릴 수 있게 했다.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과 몰타 회담.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당시엔 과거 소련과 달리 무력 개입을 자제해 90년 독일 통일과 동유럽 국가들의 자체적 체제 전환의 물꼬를 터줬다. 탈냉전·주권존중·군축·평화의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89년 12월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과 몰타에서 만나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발표해 사실상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2022 그들이 떠났다   최신기사

                                                                 노태우 대통령과 제주도 회담

 

고르바초프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하고 평화를 진작한 공로로 9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91년 7월에는 조지 HW 부시 미 대통령과 모스크바에서 만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에도 서명했다.


                                        소련 내 러시아에서 보리스 옐친 직선제 대통령 당선

 

한국과의 인연도 만만치 않다. 90년 3월 소련 대통령에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그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을 처음 만났으며, 이는 그해 10월 역사적인 한·소 수교로 이어졌다. 그해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이듬해 4월 고르바초프가 제주를 각각 방문해 양국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부인 라이사 고르바초바.

 

 

하지만 고르바초프 집권기 소련은 앞선 핵을 비롯한 군비 경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공산체제의 모순이 축적돼 이미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결국 91년 8월 반개혁파의 쿠데타 미수 이후 소련이 무너지고 체제 전환의 혼란기가 닥쳤다. 일부에선 고르바초프의 정치적인 책임론을 제기한다. 2000년 집권해 혼란기를 진정시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고르바초프는 장례 절차를 거쳐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박소영·김홍범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