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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陸進出의 朝鮮民衆, 滿洲國에서 活躍하는 그 現象(1939년 현재)

이강기 2015. 8. 28. 17:27
大陸進出의 朝鮮民衆, 滿洲國에서 活躍하는 그 現象    2012/02/22 00:20
 
잡지명 삼천리 제11권 제1호
호수 제11권 제1호
발행년월일 1939-01-01
기사제목 大陸進出의 朝鮮民衆, 滿洲國에서 活躍하는 그 現象
필자 新京 洪陽明
기사형태 소식

一. 在滿朝鮮人의 現勢

金東煥兄! 형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었인지 잘 아는 나로서 형의 귀중한 지면을 비러 딴 사람에게 딴소리를 하는 것은 확실히 붓을 들때의 豫定은 아니있다. 따라서 이러토록의 나의 심적 과정을 잘 이해하여 주실 형은 내가 아즉도 엇더한 건설적인 글을 쓸 수 있는 狀態에 있지 못한 것을 認定하여 줄 것은 더욱 이곳에 온지 겨우 두달. 최근 수년간 전후 3, 4차 이땅에 발을 드디엇섯으나 언제나 新京 哈爾賓의 두 都會以外에 농촌에는 한발자곡도 못 발버 본 나로서 농업국 만주국의 농업이민 조선인의 생활을 云云하는 것은 확실히 猥濫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요새 유행하는 2, 3週間 急製의 支那通들이 戰線附近에 가서 대포소리 몇 방쯤 듯고 와서는 支那가 어떻다는 등 事變의 前途가 어떻다는 둥 큰 소리를 하는 것과 같은 넌센쓰를 演하는 것이 되지 않을가 저어한다. 그러나 旣往 잡은 붓이니 이제 삼가 이전날 나로서도 아러불 필요있는 일이오 一般으로도 다 아는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재만 조선인의 若干의 현세를 최근의 統計文獻을 통하야 紙上 주마간산격으로 集約一瞥하여 보기로 한다.

A. 在滿朝鮮人의 總數

大體 滿洲에 朝鮮人이 얼마나 사는가 하는 점에 대하야는 朝鮮內에서 呼曰百萬이라고 하여온지 이미 오래다. 그러치만 현재 통계상으로 나타난 것은 在滿 朝鮮人의 移動의<87> 頻繁僻地散在 등의 理由 其他로 인한 조사곤란으로 100만이하의 數字로 추출되어있다. 그러나 이 통계가 實數와 훨신 相異한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는 것이니 이 점으 本年 9월 상순 京城에서 開催되었든
時局對策調査會에서 關東軍片倉參謀가 재만 朝鮮人數를 120만이라고 발표한 사실로써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기록에 낱아난 省別 在滿朝鮮人數를 摘記한면 다음과 같다.
在滿朝鮮人省別調査 (昭和 13년 6월 現在)
間島省 530,145인
奉天省 99,896
通化省 78,730
吉林省 77,791
牧丹江省 66,214
安東省 44,228
濱江省 36,194
三江省 22,525
錦州省 16,822
龍江省 6,121
興安南省 3,881
熱河省 870
黑河省 858
興安西省 805
興安東省 328
興安北省 320
新京特別市 7,032
關東州 3,917
總計 996,677
이와 같이 全 16省과 新京特別市와 關東州에 있는 최근의 朝鮮人 總計는 996,677人으로 산출되어 있는데 間島省이 約 半數를 점하고 있는 것을 보면 間島* 朝鮮의 延長이나 달음없는 朝鮮人 密集地帶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間島省의 全人口의 約 8割은 朝鮮人이다. 이 數字를 편의상 기준으로 하여 생각할 때에도 全滿 總人口 約 3천만에 대하여 朝鮮人은 約 30분의 1을 점유하고 있어 滿洲國의 谷谷에 朝鮮人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할만콤 널니 분포되어 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최근 15년간에 매년 얼마식이나 朝鮮人이 增加되었는가를 표시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年次別人口增加表 (自大正 13년 至昭和 13년)
년차 인구 比전년증가 증가율
大正 13년 말 531,857 3,803 0.01<88>
大正 14년 말 531,973 26 0
昭和 원년 말 542,185 10,212 0.01
昭和 2년 말 558,280 16,095 0.01
昭和 3년 말 577,052 18,772 0.03
昭和 4년 말 597,677 20,625 0.04
昭和 6년 말 607,119 9,442 0.02
昭和 7년 말 630,982 23,863 0.04
昭和 8년 말 672,649 41,677 0.07
昭和 9년 말 673,794 1,145 0
昭和 10년 말 719,988 46,194 0.07
昭和 10년 말 807,505 87,516 0.12
昭和 11년 말 875,908 68,402 0.08
昭和 13 5월 현재 996,677 58,799 0.07
이 표에 의하면 15년간에 약 50만이 증가된 것을 알 수 있고 昭和 6, 7년 滿洲事變前後의 各 3개년간의 朝鮮人 入滿의 증가수를 비교하여 보면 실로 事變後의 入滿朝鮮人數는 事變前에 비하여 실로 5배强의 激增을 示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서 즉 左記와 같은 표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滿洲事變前 3년간
昭和 2년 末 558,280人
同 5년 末 607,119
右 3년간의 증가 48,839
1년 평균증가 16,279

滿洲事變後 3년간
昭和 8년 末 673,794人
同 12년 末 888,181
右 3년간의 증가 214,387
1년 평균 증가 71,462
이와 같은 최근 년의 급속한 증가를 생각하면 總督府當局의 移民政策이 變更없이 진행되는 限 滿鮮拓殖을 통한야 매년의 集團移民 10,000戶(人口數 약 50,000) 이에 加하여 매년 3, 4만人을 不下할 自由移民을 合算하고 現住朝鮮人 及 移來할 朝鮮人의 自然增加率을 年 1分으로 처서 槪算한다며는 10년후에는 2백만 내지 2백 2, 30만의 인구로 증가될 것은 足히 추산할 수 있다. 北支니 中支 하지마는 朝鮮人 海外의 大宗인 滿洲國에 있어서의 朝鮮人 問題의 중요성은 더욱 倍加될 운명에 있는 것이다. 작년 12월 1일 治外法權撤廢爾來 朝鮮人은 滿洲國內에 있어서는 五族協和中의 중요멤버로써 滿洲帝國臣民의 의무를 지는 동시에 移民이라는 관념을 떠난 定着性있는 주민이 되도록 하기 위하야 滿洲國政府 及
協和會가 文化習俗 달은 他族과의 共存共榮에 협력하도록 誘導하는 노력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朝鮮의 五族協和를 標榜하는 複合民族國家 滿洲國에 있어서의 一民族的 단위로써의 문화적 경제적 發展의 限界及方策에 대하여서는 筆者의 私見도 적어 볼 생각이 있으나 이번에는 略하기로 한다. <89>

B. 在滿朝鮮人의 生業

在滿朝鮮人의 생업의 絶對 大部分을 占有한 것은 농업으로 昭和 13년 현재 154,10戶로써 全戶數 192,897의 約 8割에 해당하며 이것을 地方別로 보면 間島 南滿 北滿의 순위이다. 기타는 日傭人 약 10,000戶 상업 約 7,000戶 官公吏 2,300戶 은행회사원 2,000戶 음식점업 1,500戶 敎員 1,300戶 기타직업 約 5,000戶 無職 3,000戶로 되어 있는데 右中 日傭人 約 10,000戶중의 大半은 大槪 農繁期에 농가에 屈傭되어 農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농업에 다음 가는 상업의 約 7,000戶는 間島哈爾賓 新京 安東 奉天 등의 都會에 집중하야 소액자본으로 정미업 기타 소규모의 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그리 보잘 것 없는 狀態이다. 朝鮮人의 滿洲國官公吏가 상당한 다수에 달한 것은 주목할 점이니 이것은 작년 12월 1일 治外法權撤廢에 따라서 朝鮮總督府關係職員 及 民會職員 등 2,127名이 滿洲國 官公吏로 그대로 引繼任命된 것과 또 작년 7월 行政機構改革時에 朝鮮人 中堅官吏 簡任 勅任 薦任 奏任 約 25名 任命 또 이어서 8월에 6名의 中堅官吏가 朝鮮에서 진출된 것 밋 이곳에서 滿洲國中堅官吏養成機關인 大同學院出身 其他 現地任用 등을 합하고 滿洲帝國構成의 精神的 母體의 역할을 하고 있는
協和會의 직원되고 있는 朝鮮人中堅까지를 가산하면 3,000餘名이상의 朝鮮人이 滿洲國行政機構中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에는 薦任(奏任)官이 50여명 簡任(勅任)으로는 崔南善(建國大學敎授) 朴錫胤(外務局調査處長) 秦學文(內務局參事官) 李範益(間島省長) 劉鴻洵(間島省民生廳長)의 5氏가 있고 薦任으로는 尹相弼(拓政司第2指導科長)씨 외 수십인의 科長級의 중요지위에 있는 이들이 있어 氣?을 토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라 할 수 잇다. 新京에만 해도 近 10,000名의 朝鮮人이 사는데 官公吏 會社員 등 蒼白한 인테리가 近 1,000명이나 된다.

C. 朝鮮農民과 그 生産

在滿 朝鮮農民은 말할 것도 없이 米作農民임으로 주요 생산물이 『쌀』일 것은 물론이다. 朝鮮人의 米作에 대한 天?을 讚歎한 이곳의 當局者의 小論에 이러한 구절을 볼 수가 있다.
「朝鮮농민의 水利에 대한 인식은 천재적으로 地의 高低를 보고 水를 엇더케 誘導할가 하는 판단의 정확과 導水의 ?妙는 警歎할만 한 것이다. 彼等 自由移民이 토지를 차저 거러다니다가 水流를 보기만 하면 그곳에 水田을 開拓한다. 처다보지도 안는 山間僻地에 滿人과는 뚝떠러저 2, 3호의<90> 朝鮮農民이 小畓을 직히고 사러가는 광경을 접하는 것은 드믄 일이 아니다.」
실로 朝鮮內地에서 살길을 잃고 男負女載하야 鴨綠江 豆滿을 건너와서 苦心慘擔 滿人地主의 착취하에서 一步一步 畓開發의 大事 등을 遂行한 朝鮮農民同胞들의 한숨과 땀을 상상하면 一個의 위대한 세계의 엘레지라고 할 것이다. 이리하야 滿洲事變前 이미 백만石의 米의 産出이 滿洲平野에서 朝鮮人 손에 의하야 수행된 것이다. 이에 따러서 田作農民인 滿人들도 漸次 畓耕作의 유리한 점을 깨닷게되야 近年에는 滿農들도 이쪽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次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교가 못된다.
朝鮮農民과 滿農의 水田經營比較(昭和 12년調)
水田作付면적 正租수획고 反當수획고
조선농 144,088 2,545,482石 2,211
만농 14,671 302,193 1,90
즉 朝鮮農民에 대하야 滿農은 水田作付面積에 있어 1割 2厘 弱正租收獲高에 있어 1割 1分 4厘에 불과하며 反當收獲高도 斷然 朝鮮農民이 優位를 占하고 있다.
다음 全滿 朝鮮農民의 米作付面積 及 正租收獲高를 표시하여 보면 다음과 갓다.
在滿朝鮮農民과의 水田作付面積 及 正租水獲高
(昭和 13년 5월 調)
성별 수전작부면적 정조수획고
奉天省 27,059 927,787
濱江省 36,001 1,006,077
吉林省 23,993 517,441
間島省 21,237 236,151
安東省 9,232 115,943
三江省 - 266,847
龍江省 2,754 68,070
興安南省 2,549 57,940
錦州省 839 20,195
興安西省 490 10,560
黑河省 231 3,780
興安東省 55 860
熱河省 38 800
計 144,088 3,344,449
이로써 보면 朝鮮農民의 米生産高는 哈爾賓을 중심으로 한 濱江省이 斷然 第1位 다음 奉天省 吉林省의 순서가 된다. 全滿朝鮮人口의 殆半을 점하고 있는 間島의 米生産高가 겨우 4위가 되는 것은 間島省의 朝鮮農民은 대다수가 田作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91>

D. 朝鮮度民에 대한 滿洲國政府의 方策

朝鮮人의 冒險渡江으로부터 開始된 過去 수십년전의 自由移民時代를 지나 統制的으로 移民을 지도하는 計劃移民段階에 처하야 滿洲國政府가 昭和 11년에 勅令에 의한 滿鮮拓殖株式會社를 설립하야 總督府當局과 협력하야 滿洲移民의 보호통제를 하고 있는 것은 周知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計劃移民方針은 朝鮮移民의 분포지역을 間島省 及 舊東邊道의 33縣으로 제한하고 一方 旣住 朝鮮人에 대하여는 表滿洲 各省中의 16縣을 統制 集結地로 지정하였든 것인데 爾來 2개년간의 移民實績으로 보아 地域的 集結 乃至 入植制限을 할 必었 없다는 결론을 엇게 되야 今年 7월 27일 爾來 地域的 制限을 철폐하게 되였다. 朝鮮人에 대한 획기적인 結集改善이라 할 것이다. 또한 朝鮮人의 교육은 작년 12월 1일 治外法權撤廢에 따러 舊滿鐵附屬地內의 보통학교 14校만은 그대로 日本側(大使館敎務部管轄)이 經營하나 其外의 公私立學校는 全部 滿洲國에 移讓되였는데 이 점이 文化交流上 重大問題라 할 것이다. 現在 滿洲國에 移讓된 朝鮮人敎育機關의 數는 다음과 갓다.
初等學校(서당 포함) 492校 생도수 69,209人
中等學校 8校 1,651人
幼穉園 27校 1,136人
特殊學敎 19校 850人

滿洲國의 朝鮮人問題로써 여러 가지 표시하고 논의할 문제있으나 次次 事情을 더 살피면서 써볼가 하고 위선 이만 ?筆한다.(12월 15일 新京에서)<92>
<8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