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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이강기 2015. 8. 30. 12:09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자주대국론, 중립론, 균형자론, 동맹론을 넘는 연성국력-

                       김진현

 

 

너무나 강력한 원초적 민족주의 심성

 

이 땅에서 산다는 것. 4700만이 한반도 남쪽 9,800㎡에서 산다는 것.

대한민국이란 국체(國體) 속에서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1인당 소득 1만 달러가 넘고 외형이긴 하나 민주주의 정치가 만개를 넘어 포만해 있고 1876년 개항(開港) 이후 기간 중에서는 가장 긴 52년간(1953-2005)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곳.

일본과 동남아를 휩쓰는 지진과 쓰나미도 오지 않고 중국이 벌벌 떠는 SARS가 김치 덕으로 피해가고 미국도 공포에 떠는 알카에다와 회교테러리스트도 미치지 않는 곳. 이만하면 우리는 파라다이스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한반도는 낙원인가보다. 북한에서는 사람 사는 곳마다 이런 표어가 지천으로 걸려있다. "이 세상 부럼 없어라. 우리는 행복해요"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기후도 산천도 소득도 정권도 변화하며 사는 것이지만 (적어도21세기 중반 근대(近代)가 끝날 때 까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이 지구상 유일하게 4대 강국과 국경을 접하여 더불어 살고 겨루고 살면서 생존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만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중국(떼놈)이란 이름. 일본(왜놈)이라는 이름만 불러도 2천년 역사에 남겨진  비극의 자국들, 고통의 실화들이 태산같이 많다. 한말(韓末) 러시아의 음흉, 미국의 배신에 가슴을 친 고종(高宗)의 탄식. 그리고 냉전시대의 분단과 희생.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4대국 사람을 지칭할 때 습관적으로 '놈'자를 붙인다. 그만큼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원형, 원초로서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억제하기 어렵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는 하다. 한민족 근대화의 독보적 설계자요 추진자이며 '대한민국 성공'을 주도한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기보다 성취에 실패한 김 구와 장준하를 더 흠모하는 것은 이들의 높은 도덕성과 함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민족주의적 심성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의 민족주의는 자칫 국수(國粹), 폐쇄, 자만,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기 쉽고 자주대국론, 중심론, 4대국에 대한 무조건 저항론(斥和), 지사(志士), 열사 추앙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한국에서 근본적으로 사대외교는 물론 동맹외교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항일독립운동에서 군사대결우선주장이나 북한의 강성대국론, 80년대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식.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 10대 강국론 따위의 나 홀로 외침, 특히 김일성 유일사상 같은 극단의 비(非)이성과 반(反)문명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까지 불꽃이 번지고 있는 것은 이 땅에 내린 민족주의 원초감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한 모두 끊임없이 핵무기에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긴 설명이 필요하나 내 경험에서 증언할 수 있다)

탈냉전 후, 요즘 같은 이념과 사상의 공백기에는 선진민주사회의 지도자들조차 상업주의, 소비주의 같은 향락이 아니면 민족주의 감정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하물며 독선적이고 선동에 능한 정치가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중국, 대만, 일본, 남북한 권력자들의 행태(심지어 데모대 맨 앞줄에서는 현직 국가원수와 장관들도 있다)를 보면 이들의 종착점이 무엇인지 동북아 전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강대국론 무조건 척화(斥和)론 다음으로 높은 유혹을 느끼는 민족주의적 생존전략으로 거론돼온 것이 중립화론, 등거리 다변화론이다. 중화질서(Pax China)가 깨진 19세기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과 일본의 부상에서 중압감을 느낀 반사적 심성중의 하나는 주변국과 등거리 불개입, 중립화, 균형론이다. 그 후에도 동북아 질서의 격변기마다 이런 중립화론적 이상주의가 나타나곤 한다.

이 땅에서 이조의 사대외교는 근대제국주의 앞에서 망국(亡國)으로 끝이 났고 자주군사대국의 실험은 실패가 확실히 증명되고 있는 북한의 경우가 있으니까 실험의 예가 있다. 중립화론, 균형외교론은 실험의 경험이 없는 이상주의로 남아 있다.

근대화, 서세동점 이래 130년간의 한민족 생존전략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외교는 미국과의 동맹외교였다. 북한의 대중공, 대쏘련 동맹외교도 실패했다. 대한민국의 대미 동맹외교만이 성공을 이루어 21세기 한민족 운명개척의 원천적 국력이 되었다. 한미동맹외교는 자유, 개방이라는 문명의 흐름에 맞았고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세력균형과 지정학적 외교원측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미동맹외교도 영원할 수는 없다. 미국이 변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가 변하면 대미동맹외교도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가능한 시나리오도 대중동맹외교, 대일동맹외교, 대러시아동맹외교로의 대체, 전환을 쉽게 허용치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한국 보수주류의 정치적 실패중의 하나는 이 땅에서 민족주의 심성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망각하고 경제성장의 성공과 미국에 의하여 큰 틀이 주어진 6.25 이후의 평화에 도취하여 대한민국 근대화의 성공과 정체성을 한국 민족주의의 긴 맥락에서 규명, 조망, 발전시키려는 정신적 고뇌와 까다로운 노력을 포기해 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힘이 있어야 한다.

군사강국론은 말할 것이 없고 중립화론도 성공하려면 결국 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통일도 평화도 아름다운 테토릭이나 선언이 아니라 통일할 수 있는 힘, 즉 주변 4대국의 동의를 끌어낼 외교력, 4대 강국의 통일반대나 방해를 예방할 능력, 그리고 필요하면 북한을 포함하여 한반도내 통일 반대세력을 물리적으로 억지하거나 이들 세력을 회유, 설득 할만한 힘이 있어야 비로서 가능하다.

고전적 군사강국론은 남북 모두 자명한 한계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경제성장에 성공하여 대국(大國)적 자만심으로 무역10위, GNP 12위,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외치고 있다. 한민족 역사상 있어본 적 없는 성공이요 업적이다.

그러나 20세기 문명은 한반도에만 기회를 준 것은 아니어서 우리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사이 일본은 세계 2위 대국으로 중국은 잠 깬 사자 되어 세게 7위 경제력으로 부상시켰다. 지금으로서는 2010년 이후 전통적 주변국과의 격차는 더 확대될 것이다.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줄일 수 있어도 중국으로부터의 기술추격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인구마저 3배, 30배 많은 나라와 군사력으로 겨룬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이 점에서 우리 조상들의 사대주의외교가 존경할 일은 아니나 그 당시 상황에서 나라를 보존한 사대주의 원리와 지혜를 깊이 음미해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사대주의 현실 외교와 백성들의 민족주의 심성, 저항으로 해서 중국 주변 국가 중 한민족과 베트남 족 만이 독립된 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립화는 이론적 주장으로서는 평화롭고 반듯해 보이나 중립화의 대표적 성공 케이스인 스위스의 실체 - 그 과정, 이를 가능케 한 국민적 의지와 물리력,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정치력, 사회통합력의 실상 - 을 보면 대한민국에서의 중립화 균형자 논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다.

1차 2차 대전에서 스위스가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각각의 적대진영 (프랑스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모두가 스위스의 정밀기계(무기) 정밀화학(탄약)제품이 없으면 안될만큼 압도적으로 우수한 첨단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평화로운 유럽대륙에서 아직도 스위스 국민들은 그 해 수확한 밀은 모두 비축하고 2년 전 수확한 밀을 먹고 전 국민이 민병대원으로 편성되었고 전쟁을 대비하여 2년 내 완전식량자급계획을 갖고 있다. 핵전쟁 대비 6백만 전 국민이 2개월 간 머물 수 있는 반공호는 지금도 보름마다 정비 보수하고 있다.

스위스를 보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가 중립국가로 생존하려면 ① 주변강대국도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대 우위의 핵심, 첨단기술 몇 개는 독점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② 전 국민이 전쟁할 각오와 그런 체제가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일상의 식단(食單), 생산, 비축, 유통의 동원체제로 구체화 되었어야 한다. 언제나 전쟁이 불가피하면 회피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체제가 확인됨으로서 중립이 유지되었고 그런 스위스 의지의 믿음과 매력이 스위스를 세계평화의 중심지로 격상시켰다.

 

종합국력(綜合國力)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오늘에 이르는 언동을 보면 그의 균형자론도 감성적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한민국 국력에 대한 자신이 엿보인다.

한말과는 달리 우리가 비상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타격을 주려 하기만 한다면 주변국은 물론 미국에까지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는 있다. 이것이 황궁(경복궁) 하나 지킬 군사력이 없었던 한 말이나 일제식민지배하의 20세기 중반까지의 한국과 오늘이 다른 점이다. 60만 한국군이 중국이나 일본을 치면 그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심지어 한국은행총재가 보유외환을 다변(多邊)운용 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세계시장에서 미국달러화가 하락하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 결과는 그들보다 우리에게 더 큰 불행, 대한민국의 생명과 존재자체가 위협 받는 불행으로 되돌아 온다. 생존과 평화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 이런 정도의 국력으로 지역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고 주변 당사국들이 균형자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남북분단으로 해서 이런 한계적 타격력마저 미국, 러시아는 물론 중국, 일본에 까지도 쓸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력이란 종합국력이다. 종합국력에는 중국조차도 자연자원, 경제실력, 군사실력, 대외경제활동, 과기수평(科技水平)의 경국력(硬國力)과 사회발전, 정부통제능력, 외교능력, 협동력의 연국력(軟國力)으로 분류 계산하고 있다. 남들은 세계 1위, 2위 국력이라는데 중국 스스로의 계산으로는 지금이나 2020년이나 세계 6위 또는 11위 수준으로 겸손해 하고 있다.

일본은 시민생활향상력(복지국가), 경제가치창조력(시장국가), 국제사회대응력(국제국가)을 합쳐 종합국력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종합국력이라는 개념조차 갖으려 하지 않고 있다. 박정희시대 이래 경제력 (GNP)=국력 이라는 착각 환상 속에 머물러있다.

요사이 반도(半島)로서의 지리, 남을 침공하지 않은(또는 못한) 역사 이미지, 한류(韓流)를 연성국력으로 보려는 견해들이 균형자론 해설자들에게 나오고 있다. 그것은 연성적 성격이라 부를 수 있지만 그런 성격의 존재를 국력화하는 체제의 구축 정비나 동원장치 없이는 국력이 되지 않는다. 국제적십자라는 기구와 그 기구의 구체적 활동으로 남들이 스위스를 평화국가로 인정하고 그 인정으로 전 세계 2천 개의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국제본부를 두는 실체적 결실로 스위스의 연성국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스위스가 평화적 성격을 갖었다고 바로 연성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성국력을 어떻게 키우나

우리는 모든 조건으로 보와 일정수준의 경성국력뿐 아니라 진정 강대한 연성국력을 키워야 한다. 균형자, 중립화, 동맹, 자주, 그 어느 것이 되었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는 균형자, 힘이 없는 중립화, 힘이 없는 자주는 불가능한 것이고 힘이 없는 동맹은 멸시 받거나 배반당하기 마련이다.

 

①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善終)에 로마인구보다 배가 많은 4백만 조문객이 몰리고 이 지구상에서가장 많은 인류가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게 만든 도덕력, 그것은 가장 위대한 로마 법황청의 연성국력(soft power)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취임이 20세기 독일의 모멸을 청산하고 독일의 도덕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간디와 호치민은 그의 존재로서 인도와 베트남의 연성국력을 격상 시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연성력의 창조 가능성은 일본, 중국 정보의 세계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역사적으로 오랜 관계의 나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이 두 나라에 모두 교포를 두고 있는 유일한 민족으로서 중국과 일본에 관한한 세계 최고의 정보력, 지식력을 갖추면 세계에서 넘볼 수 없는 나라, 매력 있는 나라, 꼭 존재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대접 받는다. 중국과 일본에 관한 정보의 수집, 분류, 정리, 가공, 해석, 전파에 있어 원천성, 정확성, 신뢰성을 확보하면 이 자체가 세계적 투사력이 된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세계적 ‘지류’(知流)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물류와 더불어 확실한 중심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외교하러 가는 온 세계의 외교관들이 또는 장사하러 가는 온 세계 기업인들이 중국과 일본에 가기 전에 한국에 있는 중국 일본 연구기관, 전문가, 경험자의 정보, 자문을 받고 중국과 일본을 갔더니 확실히 외교와 장사에 도움이 되었다 할 정도의 정보력이어야 한다. 중동과 아랍정책 수행을 위하여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의 정보를 활용할 수밖에 없듯이 중국 일본에 관한한 한국이 세계최고 (심지어 중국 일본 스스로의 것보다 더 신뢰성이 높은) 정보의 발신지(發信地), 최상의 정보부가가치지역이 되는 것이다(이것이 1995년 세계화 추진위원회의 제1호 안건이었다). 이런 정도라야 4대 강국과 협상력이 생긴다.

 

② 중국은 근대화를 극복하는 문명사적 혁신이 없는 한 결국 정치혼란, 급속한 도시화, 사회 가족구조 해체, 자원 에너지 제약, 환경 악화 등으로 '가난한 경제대국' '인간화 없는 중화제국' '화성으로부터 에너지 공급 받아야 할 지구의 교란자' '지구 환경재앙의 주범'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금 중국의 경제성장에 도취하여 온 세계가 시장으로서의 중국만을 보고 있으나 2010년 이후에는 '중국 문제군'(China Problematiques)으로 인하여 전 인류는 지구촌적 차원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인도문제군이 따라올 것이다. 중국의 근대화에 따르는 물, 에너지, 흙, 공기, 공간의 문제 즉 동북아시아와 지구촌의 생명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중국을 포용하고(engage) 중국문제군 예방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식력,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과 한반도 생명 문제해결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와 중국의 16억 생명 그리고 인도를 합친 '히말라야권 40억'의 생명을 지켜주는 '21세기 적십자' 운동이기도 하다.

중국문제군, 히말라야권 40억 생명의 근대화를 넘는 대안의 모색, 구상, 제도, 정책 시스템화 하는 능력이야말로 세계에서 존경 받는 세계에서 균형자 중심역할을 할 수 있는 연성력이다. 한국의 근대화 경험을 성찰적으로 반추하고 미래 투시력을 동원하면 지리 역사적 연원으로 해서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흔히 중국의 부상을 보고 해양세력이 가고 대륙세력 중국의 시대가 전개되는 대칭(對稱)적 양극적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논의가 있다. 중국의 변화는 대륙화로의 회귀나 대륙세력의 등장이 아니라 중국이 '해양화의 세계화' 궤도에 막차를 타는 것이다. 중국의 입세(入世-중국에서는 2001년 WTO 가입을 入世 라 부른다) 현상이다. 근대화 주류, 중심 바깥에 머물다 이제 늦게나마 근대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중국의 근대화, 해양화 성숙에 이르는 2020-30년경 근대문명의 변질이 본격화 할 것이고 오늘의 세력 균형적 국제질서도 변질될 것이다.
 
③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연성력은 국민이 나라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비상수단으로서 전쟁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집결이다. 링컨이 휴머니스트가 아니어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정상적 시민이라면 그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독재자와 전쟁상인 말고는.

아직도 이 땅에 6.25 전화의 흔적이 역력하던 1962년 선진 후진국을 3개월간 시찰한 적이 있다. 6.25 전쟁 특수(特需)로 일본만이 부흥한 것이 아니었다. 대만, 인도, 파키스탄, 유럽, 미국 등 모두 고속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희생을 당한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땅이 6.25전쟁 없는 분단이 계속되었거나 1945년 이후 분단 없는 통일한국이 지속되었더라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4700만이 누리는 자유, 복지, 개방, 다원화의 활력이 가능했을까. 대륙세력인 중국 북한 러시아 그리고 미얀마와 얼마나 차이가 나 있었을까. 7천만 한민족의 미래개척의 토대요 출발점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오늘의 '힘' 민족의 응집력 구심력으로서의 대한민국의 발전이 가능했을까. 18세기 영조, 정조시대 이래 가장 긴 평화와 한민족의 본격적 창조력과 세계화가 한미동맹의 외교안보적 체제에서 이루어진 것을 어찌 해석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내용은 6.25 전쟁의 결과와 무관한 것인가.

더구나 지금은 6.25때와는 크게 다르다. 해방당시 남북한 합쳐 100명도 안되었던 과학기술 인력이 지금은 남쪽에서만도 20만 명이나 등록되어있다. 국가신용이 아니라 민간신용만으로 도 전쟁복구 비용을 차용할 수 있는 본원적 역량이 생겼다. 6.25때는 제로였던 해외저축 자산까지 있다. 전쟁이 나면 인명과 재산에 큰 손실이 생기지만 대한민국의 복원력은 5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약했다. 대비만 치밀하게 하면6.25를 연상하는 비극은 연상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최후의 비상수단으로서 전쟁할 각오가 없는 평화와 통일은 없다. 그런 각오가 없는 자주, 균형자, 중립화, 동맹은 없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주변 누구로부터도 능멸만 받는다. 우리가 진정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하면 1만 달러 소득에서 반만 소비하고 나머지 5000달러 중 2500달러는 대4강국 외교력 강화에 2500달러는 남북평화통일 역량강화에 쓰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와 국민적 합의의 정치력만 있다면 친미(親美) 친일(親日) 친중(親中) 친 러시아 세력을 의도적으로 키워 대외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결정적 국가이익, 민족이익에서는 안으로 수렴하는 체제의 시도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것이 자주와 중립화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럴만한 정치력을 지금 이 땅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종교적일 만큼 경건하고 전쟁터만큼 절제된 것일 수밖에 없다. 스위스의 경건과 절제가 그러하듯.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전 서울시립대 총장)

 

출처  계간 <World Village>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