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싶은 詩 모음

첫정 - 정해송

이강기 2015. 8. 31. 11:14

첫정

 

   정해송

 

1

바람 찬 날 이모님이 근황을 물으시곤

응달에 시린 맘을 햇볕 아래 들이신다

어머님 떠나신 뒤로 꿈에선 듯 그 음성이…



2

물안개 피어나는 어린 시절 외갓집엔

어여쁜 우리 이모 첫정이 숨 쉬지요,

달빛에 젖은 입술로 옛시조를 낭송하던



대청마루 달 밝은 밤 이모 따라 부른 노래

그 노래 핏속으로 율律이 되어 흘렀어요

이모는 스님이 되고 수채화로 머문 날들



3

샘물처럼 맑은 성률 내 유년이 아리더라,

이모님 다비하고 돌아오는 길섶에는

보랏빛 도라지꽃이 서편 하늘 담아 피네



▶정해송=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조집 '안테나를 세우고' 등이 있다.



<시작 노트>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마음 둘 데 없으면 이모를 찾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어린 날처럼 반겨주시던 이모님. 그 스님이 열반하셨다. 나의 원형적 감성은 유년 시절 외갓집에서 비롯된다. 선녀처럼 예쁜 이모가 나에게 고시조를 낭송해 주셨고, 나도 따라 불렀다. 훗날 이런 유년 체험이 시조를 자연스럽게 쓰게 한 것 같다. 이모님은 이 절을 조계종에 바치시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훌훌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