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의 朝鮮士禍에 대한 硏究

E.W. 와그너의 "조선 사화에 대한 연구" - 옮긴이의 변명

이강기 2015. 9. 1. 23:17

E.W. 와그너의 "조선 사화에 대한 연구" - 옮긴이의 변명

 

처음에는 태산이라도 떠 짊어지고 갈 듯한 기백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막상 읽어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며 맥이 탁 풀렸다. 겨우 3, 40명에게 '읽히기' 위해 지금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단 말인가 싶기도 했다. 전에 본란(에머지의 "자유와 지식")에서 일본 책 몇 권의 경우에서도 '독자'가 줄어들어 중간에서 그만 둔 적이 있지만, 이것도 중간에서 그만 둬 버릴까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그런데 "꼭 끝까지 마쳐주세요."하던 어떤 네티즌의 부탁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마도 앞서 일본책의 경우처럼 2, 3회 하다가 그만 둬 버릴 것 같아 미리 못을 박아 두는가 싶었다.

 

또 하나 나를 끝까지 버티게 만든 것은 "지금 이 정도라도 해놔야겠다."'사명감'에서였다. 좀 주제 넓은 생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이걸 우리말로 옮겨놓지 않으면 아마도 이 논문은 영영 한글로 옮겨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사에선 경제성 때문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고 몇몇 사학 전문가들은 원서로 참고만 하려 들것이고,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 논문을 새삼스레 어느 전문잡지에 원고료 받아가며 번역 게재할 학자들도 잡지사도 없을 테니까.

 

문득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생각이 났다. 1968년에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한국 지식인들로서는 꼭 읽어보아야 할 이 유명한 저서가 한국에선 겨우 20002월에야, 그것도 문화적 사명감에 투철한 어느 출판사와 역자들의 노력에 의해 비로소 한글번역판이 나올 수 있었다. 일본에선 이미 1973년에 일본어 번역판이 나왔었다. 물론 군사정권시절에 '금서'가 된 탓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한국의 문화수준이 일본에 비해 30년 뒤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영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매끄럽지 못한 표현에 오역이라도 있지 않은가 싶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인쇄가 될 것이라면 적어도 대 여섯 번은 다듬어야 할 일이지만, 솔직히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어서 다음에 또 고치면 된다 싶은 생각 때문에 초역을 한번만 씩 훑어보고는 그냥 올려버렸다. 네티즌들의 혜량을 바란다. 원작자의 주해(註解), 처음에는 원문의 '원주 번호' 밑에 일일이 번역해 넣을 까도 싶었지만, 워낙 분량이 많아 오히려 원문 흐름의 맥을 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차후로 미루었는데, 새삼 원주만 번역해 올리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냥 안 하기로 했다. 그 당시의 여러 에피소드와 배경 설명들이 나오기 때문에 꼭 읽어보아야 할 것들도 있지만, 지금은 그냥 이 정도로 끝내야겠다.

 

끝으로 이 원고를 "한국 역사연구회" 홈페이지의 "공개자료실"에도 올렸음을 밝혀둔다.

 

200312(에머지)

 

이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