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구 변천사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는 1,800여 년간 중국의 인구는 기본적으로 5천만 전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한왕조 400년 사이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이 지속되었을 때 인구는 5~6천만에 다다랐다. 동한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장기간 군벌의 혼전을 거듭하여 많은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고 인구도 6백만으로 감소하였다. 진(晋)왕조 때 인구는 다시 1천만으로 증가하였으며, 이후 남북조를 거쳐 수 · 당에 이르면서 다시 5천만 이상으로 점차 회복하였다. 당 이후 오대십국 시기에 다시 거듭된 전란으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으나, 송왕조 때에 안정을 되찾음으로써 인구는 7,600만으로 완만하게 증가하였다. 원왕조 때에도 빈번한 전쟁으로 인구는 점차 감소하였다가 명왕조에 이르러 다시 6천만으로 증가하였다. 청왕조는 260여 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였는데, 그 중 강희(康熙: 1662~1722)부터 건륭(乾隆: 1735~1796)에 이르는 약 130여년간 국토가 공고해지고 사회가 안정되어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 건륭 연간의 태평성세)'라 일컬어진다. 당시에 인구증가와 조세감면 조치를 정책적으로 시행하여 인구는 1억에서 2억으로 신속하게 증가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은 줄곧 지속되어 중국의 인구는 부단히 증가하였다. 건륭 29년(1764)부터 도광(道光) 27년(1847)까지 100년도 되기 전에 중국의 인구는 2억 6백만에서 4억 1천3백만으로 약 2배나 증가하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하였는데,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세력의 착취로 인한 생산력의 저하와 군벌의 혼전으로 인구성장 속도는 떨어졌으며, 1937년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여 수천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중국의 인구는 5억 4천1백6십7만 명이었다.
인구의 역사적 변화로부터 중국의 인구성장은 계단식의 2배 증가라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계단은 진대부터 서한까지인데, 1천만여명에서 6천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이후 명말 청초에 이르기까지 1천여년 동안 비록 여러 차례 큰 폭으로 줄어든 적도 있었지만, 중국의 인구는 대체로 6천만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둘째 계단은 청대인데, 200년 사이에 인구는 1억이 안 되는 상태에서 약 4억으로 급증하였다. 셋째 계단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이다. 1949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50년간 인구는 5억 4천만에서 12억 9천만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셋째 계단식 성장기의 중기에 놓여 있으며, 2030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할 것이다. 그때의 중국 인구는 최소한 15억은 되리라 추산한다. 셋째 계단식 성장기는 역사상 어떠한 시기보다도 인구 증가의 속도가 빠르고 수치도 많아질 것이다.
중국의 인구는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에 의하면, 중국 대륙의 한족 인구는 모두 11억 5,940만명으로 총인구의 91.58%이고, 각 소수민족 인구는 1억 643만명으로 총인구의 8.41%를 차지한다. 1990년 7월 1일 시행된 제4차 전국인구조사에 의하면, 중국대륙(총인구 11억 3,051만명)의 한족 인구는 모두 10억 3,919만명으로 총인구의 91.92%, 소수민족 인구는 9,132만명으로 총인구의 8.08%였다. 1990년 제4차 전국인구조사와 비교하면, 한족 인구는 1억 1,692만명 증가하여 11.22% 성장하였고, 소수민족 인구는 1,523만명 증가하여 16.70% 성장하였다. 여기에서 소수민족 인구의 성장 속도가 한족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수민족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64년의 6.7%에서 1990년
8.04%를 거쳐 2000년 8.41%로 상승하였는데, 소수민족 인구의 비율은 지금도 계속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분포는 매우 불균등하여 동부는 인구밀도가 높은 반면 서부는 아주 낮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에 의하면, 중국 동부의 인구밀도는 452.3명/㎢, 중부는 262.2명/㎢, 서부는 51.3명/㎢로, 동부의 인구밀도가 무려 서부의 8.8배에 달한다. 1930년대 유명한 인구지리 학자 호환용(胡煥庸)이 흑룡강성 애혼(?琿)에서 운남성 등충(騰沖)까지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중국 인구분포의 '애혼-등충선'(호환용선)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중국 인구분포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다서소(東多西少)'의 분포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애혼-등충선'은 중국 동북의 흑룡강성 애혼에서 서남의 운남성 등충까지를 하나의 선으로 나눈 지리분계선인데, 호완용은 이 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면적은 좁은데 인구가 많고, 서쪽은 면적은 넓은데 인구가 적다는 중국 인구분포의 '동다서소' 구조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1990년 제4차 전국인구조사에서는 동부지구(11개 성 시)의 인구밀도가 392.0명/㎢, 중부지구(8개 성)는 241.4명/㎢, 서부지구(12개 성 구 시)는 52.5명/㎢이었다. 그리고 2000년 제5차 전국인구조사에서 중국 인구의 동 · 중 · 서부지구 분포 상황은 동부 4억 9천만명, 중부 4억 2천만명, 서부 3억 6천만명이었다. 그런데 동 · 중 · 서부지구의 면적은 동부 108만 6천㎢, 중부 158만 5천㎢, 서부 692만 7천㎢이고, 인구밀도는 동부 452.3명/㎢, 중부 262.2명/㎢, 서부 51.3명/㎢이다. 여기에서 중국의 동 · 중 · 서부지구의 인구분포 상황은 공교롭게도 각 지구의 면적의 크기에 상반되고, 기본적으로는 '동다서소'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인구분포의 '동다서소' 구조가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중국의
자연지리적 상황과 관계가 있고, 둘째로는 사회 경제발전과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특히 1970년대 말부터 개혁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연해지구 경제발전 전략으로 서부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동부지구로 이주하는 현상이 많아졌던
것이다. <2000~2050년 중국 총인구 변동상황 예측표> 단위: 억명
※ 자료근거 : 중국국가가족계획위원회 예측 결과(<중국인구와 가족계획>). "총인구(1)"은 TFR = 1.8로 계산한 것이고, "총인구(2)"는 TFR = 2.0으로 계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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