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 몽골족
한민족과 가장 흡사… 남북도 분단
조선족을 제외한 중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몽골족은 우리와 가장 비슷한 민족으로 꼽힌다. 엉덩이에 푸른 몽골반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도
유사하다. 하나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북쪽의 몽골과 남쪽의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로 분단돼 있기 때문이다. 몽골어로 ‘거친 땅’이란 뜻의
고비사막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몽골과 네이멍구는 각각 외몽골과 내몽골로 불린다. 외몽골은 러시아(구 소련), 내몽골은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몽골의 분단상황을 빗대어 “몽골족처럼 흥망성쇠와 부침이 심한 민족은 아마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며 “과거
칭기즈칸이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사람들을 도륙한 업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족들은 몽골족을 ‘어리석을 몽(蒙)’자를 써서
‘멍구(蒙古)’라고 부르기도 한다.- ▲ 몽골족 / 겨울철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몽골족. photo 바이두
중국 내에 581만명, 몽골 국민의 2배
네이멍구자치구엔 한족이 80%
전세계에서 몽골족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몽골이 아닌 중국이다. 중국 국적의 몽골족은 모두 581만명가량으로 몽골 인구(290만명)의 2배가 넘는다. 이들 중국 국적의 몽골족은 대부분 중국 북쪽의 네이멍구 자치구에 살고 있다. 중국 전체 면적의 12%가량을 차지하는 네이멍구는 지난 1947년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 중 가장 먼저 자치구로 선포됐다. 이는 1949년 마오쩌둥이 신중국 건국을 선포하기도 전이다. 일본 만주국의 점령지였던 네이멍구를 탈환하기 위해 마오쩌둥이 몽골족의 협력을 조건으로 자치권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자치구 전체 인구 2345만명 가운데 몽골족은 대략 378만명가량으로 전체의 16%에 불과하다. 반면 한족은 전체 인구의 80%가 넘는 1850만명에 달한다. 자치구는 북으로 몽골·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쪽 경계는 과거 한족들이 북방 오랑캐와의 경계로 삼은 만리장성과 거의 일치한다. 네이멍구가 한족이 아닌 몽골족의 땅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지금은 비록 분단돼 있지만 한때는 몽골족도 잘나간 적이 있었다. 몽골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칭기즈칸은 지금의 북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이란, 서쪽으로 독일과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말을 타고 휩쓸었다. 황인종이 가져오는 재앙이란 뜻의 ‘황화(黃禍)’라는 말도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만들어진 조어다. 하지만 살생을 금지하는 티베트 불교(라마교)가 몽골족 사이에 널리 퍼진 이후 거칠던 유목민들은 온순한 양으로 변했다. 불교도로 변신한 몽골족은 카라코룸(현 몽골 하르호린)에 있던 칸의 궁전을 해체해서 ‘에르데니 주’라는 라마교 사원을 만들었다.
한족과 몽골족
한족, 몽골족 두려워해 칭기즈칸 역사 미화
한족 테크노크라트가 네이멍구 정치권력 장악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도 몽골족이 본격적으로 개발한 도시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베이징을 수도로 정하고 ‘대도(大都)’라고 불렀다.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마르코 폴로가 다녀간 곳도 ‘대도’, 지금의 베이징이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원 세조) 때는 북중국은 물론 남중국까지 중국 전역을 정복했다. 오늘날 베이징 이북의 만리장성이 명나라 때 대거 정비된 것도 몽골족의 또 다른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오늘날 중국 내 5개 소수민족 자치구에 살고 있는 민족 가운데 중국 전역을 정복해본 민족은 몽골족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있던 고려도 약 100여년간 몽골족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있었다.
때문에 아직도 한족들은 몽골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은 역사 미화로 나타난다. 한족들은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도 몽골족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954년에는 네이멍구자치구에 칭기즈칸의 무덤도 만들었다. 한족들은 이를 ‘청지쓰한(成吉思汗·칭기즈칸)릉’이라고 부르고 국가 4성급 문화재로 지정했다. 무덤에는 칭기즈칸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가지와 부장품을 묻어놨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진위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현재도 중국·몽골·일본·러시아 등지의 고고학자들은 칭기즈칸의 무덤을 계속 찾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지난 2004년 제작비 500억원을 투입한 ‘청지쓰한’이란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제작기간만 무려 8년이 걸렸고 10만명의 엑스트라와 1000여필의 말이 동원됐다. 주인공인 칭기즈칸 역은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의 후예로 알려진 몽골족 배우 빠선(巴森·45)이 맡았다. 이 드라마는 지난 2005년 한국에서도 KBS를 통해 ‘아시아 기획특선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다.
몽골족을 대우해주는 것 같지만 한족들은 네이멍구의 정치권력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다. 현재 네이멍구자치구의 1인자는 자치구 공산당 서기 추보(儲波·65)다. 1944년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추보는 톈진(天津)대학교 수리공정과를 졸업한 전형적인 한족 테크노크라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역시 칭화대 수리공정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다. 추보 당 서기는 후난성에서 줄곧 근무하다 2001년 후난성 성장을 끝으로 2001년 8월 네이멍구자치구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06년 자치구 당 서기가 되면서 행정권과 군권을 장악했다.
몽골족 정치인은 네이멍구의 2인자에 불과하다. 네이멍구 자치정부의 주석이자 당 부서기인 바트얼(巴特爾·54)이 자치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진다. 1955년 네이멍구와 가까운 랴오닝성에서 태어난 바트얼은 네이멍구 자치구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서기를 지낸 소수민족 공산 엘리트다. 2008년 3월부터 네이멍구 자치정부 주석직을 맡고 있다.
고비사막이 외몽골과 자치구 간 ‘DMZ’
몽골서 통일 부추길 땐 상당한 파장 예상
한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네이멍구가 분리독립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네이멍구 바로 바깥 쪽에 몽골족 독립 공화국인 몽골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는 조선족이 모여 사는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북한은 중국과 전통적인 혈맹관계를 맺어 왔지만 몽골은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과거부터 몽골은 러시아(구 소련)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어 중국과는 줄곧 불편한 관계였다. 때문에 몽골이 네이멍구자치구의 몽골족을 자극해 분리독립운동을 벌일 경우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베이징과 자동차로 6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네이멍구는 5개 소수민족 자치구 가운데 수도 베이징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치구다. 때문에 네이멍구의 방어는 중국의 7대 군구(軍區) 가운데 베이징 방어를 전담하는 베이징 군구에서 직접 관할하고 있다.
하지만 한 전문가는 “몽골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져 분리독립을 자극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네이멍구 주민들이 중국에서 떨어져 나가 몽골과의 통일을 원할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몽골의 경우 전통적으로 부족, 씨족 단위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민족개념이 약하다. 이는 일반적인 유목민족의 생활 특성이기도 하다. 또 아직까지는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처럼 몽골족의 분리독립을 부추기는 외부세력도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외몽골과 내몽골이 고비사막이라는 거대한 자연장벽으로 단절돼 있다는 점도 몽골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오히려 몽골족은 부족 단위로 전쟁을 일삼다 한족에게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해 왔다. 때문에 일부 한족들은 “과거 신해혁명 이후 잃어버린 외몽골 땅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욕심까지 품고 있다. 대만 정부도 지난 2002년까지 외몽골도 중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해 수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었다. 지금도 중국 인터넷상에는 몽골의 중국 귀속 문제를 두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