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발되는가] 서평

[누가 선발되는가] 오미환기자mhoh@hk.co.kr   제롬 카라벨 지음ㆍ이종삼 옮김   한국의 대학입시 전형에 입학사정관제가 등장한 것은 2009학년도 입시부터다. 수능 위주의 획일적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적성, 잠재력을 종합 평가해서 뽑는다는 취지의 이 제도는 미국에서 들어왔다. 심사의 공정성 등 논란이 있지만, 현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학 모집정원 중 입학사정관 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학년도 1.2%에서 2011학년도 9.6%로 증가한 데 이어 2012학년도 전형에서는 전국 122개 대학이 올해보다 4,300여명 많은 4만1,000여명을 입학사정관제로 뽑아 그 비율이 10.8%에 이를 전망이다.미국 사회학자 제롬 카라벨 버클리 캘리포리나대 교수가 쓴 <누가 선발되는가>(원저 2005년 출간)는 도입 초기인 한국의 입학사정관제가 앞으로 부닥칠 문제와 기본 철학을 검토하는 데 매우 유용할 책이다. 원서는 미국 동부의 명문 아이비 리그 중에도 ‘빅 3’로 꼽히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의 신입생 선발 기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1900년부터 2005년까지 추적한 책이다. 이번 한국어 번역본은 원서에서 1965년 이후를 다룬 3부 ‘사례편’을 번역한 것이고, 그 이전의 역사를 다룬 1, 2부 ‘역사편’도 곧 번역될 예정이다. 저자가 이들 빅3에 초점을 맞춘 것은 거기에서 미국 사회와 정치의 권력 재생산 방식을 보기 때문이다. 1900년부터 2008년까지 109년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이 세 학교 출신의 재임 기간이 47년이나 될 만큼 빅3의 위상은 대단하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사회학자로서 저자의 관심은 이 대단한 대학들의 학생 선발 기준이 지닌 사회적 함의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아이비 리그에 입학하려면 이렇게 준비하라’는 식의 안내는 아예 기대하지 말도록. 그런 내용은 없다. 대신 빅3의 학생 선발 기준이 미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나 흐름과 맞물려 어떻게 변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살펴봄으로써 권력의 분배와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큰 틀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는 1920년대에 시작됐다. 학업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뽑던 명문 대학들이 이 새로운 제도를 발명한 것은 동유럽에 뿌리를 둔 유대계 학생들의 입학이 급증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성적만 보고 뽑았더니 ‘품격’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들어온다고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은 그들이 미국의 주류 특권 계층인 WASP(백인 앵글로색슨계 프로테스탄트)의 아성을 위협하는 데 따른 반발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의 출발점인 1965년은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제가 거대한 변화를 겪기 시작한 때다. 유럽에서 남미까지 전 세계를 휩쓴 1960년대의 정치적ㆍ사회적 격변에 따라 미국에서도 인종 차별, 성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WASP의 안마당’이자 ‘금녀의 성역’이던 빅3 대학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시대적 압력에 결국 흑인 입학을 확대하고, 여학생을 받아들이게 된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 빅3에서 흑인 학생은 1%도 안됐다. 프린스턴대에 여학생 입학이 허용된 건 1969년의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기존 질서 파괴를 우려한 기득권층의 양보에 따른 것이지, 결코 이상적인 대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문호가 확대됐다. ‘WASP 신사들의 요람’이던 빅3의 전통을 지지하는 동문들은 기부금을 줄여서 대학의 재정을 압박하는 등 조직적으로 반발했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었다. 1980년대 이후 소수집단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따른 ‘백인 역차별’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입학사정관제가 미국 대학과 사회에서 차별과 특권의 폐지, 인종 다양성 확대 등에 이바지한 것은 틀림없지만, 계층 다양화 면에서는 아직 많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원서가 나온 2005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사회경제적으로 하위 25% 가정 출신의 학생은 전체의 3%밖에 안 된다. 빅3 대학이 신입생을 뽑을 때 동문 자녀를 우대하는 전통은 지금도 여전해 귀족사회의 세습을 방불케 한다. 최근 상황과 관련해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함에 따라 실력주의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다. 고학력의 돈 많은 부모 덕에 어릴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아 명문대에 들어간 것을 정당한 성취로 여기는 반면, 하층 계급이 교육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기회는 날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입학사정관제가 ‘불평등해질 기회’의 평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은 한국에도 매우 시사적이다. 도입 3년째인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을 살린다는 취지와 달리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이미 높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다는 기대는 사교육 광풍에 멀리 날아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미국의 일로만 여길 수는 없다. (한국일보)   “일류대에 백인 기득권층 ‘WASP’ 합격을 늘려라” 누가 선발되는가?…제롬 카라벨 | 한울     페이스북(www.facebook.com)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는 마크를 상대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소송을 건 윈클보스 형제가 등장한다. 백인 남성, 좋은 집안, 훤칠한 키와 건장한 몸을 가진 윈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대학교 조정부 선수로 활약하는 ‘엄친아’ 캐릭터다. 이들은 미국의 ‘WASP’(백인 앵글로 색슨계 프로테스탄트) 상류층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미국의 이른바 빅3 대학으로 불리는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대학교의 입학전형제도의 변화를 추적한 책 <누가 선발되는가?>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가 윈클보스 형제와 같은 WASP의 이해관계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학교 미국의 ‘일류대학’들은 1920년대부터 입학허가 전담부서를 만들어 입학사정관들이 전체 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기존의 학업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자 성적이 우수한 유대인들이 학교를 점령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WASP들이 ‘품격·인성·지도력’ 같은 ‘전인적인 인격’을 갖춘 신입생을 선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품격이나 인성 같은 ‘전인적 인격’은 객관적 기준이 없고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학교의 재량권이 커지면서 입학과정이 불투명해지고, 따라서 학교 입맛에 맞는 학생을 뽑기 쉬워진다. 빅3 대학의 총장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기부자 자녀들의 입학을 허용하고, 성적은 우수하나 세련되지 못한 이민자의 자녀들을 배제할 재량권을 갖길 원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가 탄생한 배경이다. 예일대학교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도가 항상 백인 상류층의 이해를 대변한 것은 아니다. 옛 소련과의 냉전, 인종 갈등, 여권 향상 등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대학을 성공적으로 경영해야 하는 총장들에게 사회변화에 발맞춰 입학 기준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1920년대에는 ‘전인적 인간’이 입학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었지만 50년대 말에는 또 다른 기준으로 변화한다. 냉전 분위기 속에서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재능과 실력을 강조하는 ‘실력주의’ 담론이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과 내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60년대 정치적·사회적 격변 속에서 대학들은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인다. 인종에 근거한 차별철폐 조치가 추진되고 여성들의 입학을 가로막던 장애물이 사라진다. 결국 저자는 빅3 대학의 신입생 자리 할당은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접근권이 배분되는 현장이며, 더 큰 파이 조각을 차지하려는 내부 이해집단들과 외부 후원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치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하버드·예일·프린스턴의 입학허가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이민제한, 반유대주의, 경제 공황, 냉전, 민권운동, 여성운동, 시장우선주의 풍조 등 20세기 미국의 사회변화를 고찰하는 것과 같다. 원저는 20세기 초부터 경제 대공황 초기에 이르기까지 백인 엘리트를 위한 입학사정관제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고찰한 1부, 1930~60년대의 입학허가제도의 변화를 다룬 2부, 6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3부로 쓰여졌다. 국내에는 3부가 먼저 번역 출간됐다. 백인 상류층의 철옹성과 같았던 빅3 대학이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까지의 과정과 아시아계 지원자들에 대한 차별 주장 등 최근에도 벌어지고 있는 입학제도를 둘러싼 논쟁을 주로 담고 있다. 1·2부는 ‘역사편’으로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최근 수년 전부터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고 있는 국내 교육 현실에도 타산지석이 될 법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종삼 옮김. 4만4000원 명문대 입학기준 통해 본 미국 사회 | 기사입력 2010-12-08 10:04 '누가 선발되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1900년부터 2005년까지 105년간 하버드·예일·프린스턴대 출신 미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무려 44년에 달한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예일대 출신이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은 하버드대 로스쿨과 예일대 로스쿨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 오바마 후보와 부인 미셸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이고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능력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학벌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신간 '누가 선발되는가'(한울 펴냄)는 1900년부터 2005년까지 이른바 미국의 명문대 '빅3'로 꼽히는 하버드·예일·프린스턴대의 입학 기준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추적한 책이다. 이 책은 총 3부 2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번에 출간된 책은 1960년대부터 2005년까지를 다룬 3부 '사례편'이다. 1900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를 살펴본 1부와 2부는 '역사편' 1권으로 묶여 곧 나올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사회학 교수인 저자 제롬 카라벨은 빅3 대학의 입학 기준이 왜 변했는지, 입학 기준이 바뀔 때마다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그것이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학의 가장 중요한 학생 선발 기준은 학업 성적이었다. 빅3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 학생 선발 기준에 변화가 생긴다. 입학사정관제도와 유사한 입학허가제도가 도입된 것. 대학들은 학업성적 외에 추천서, 개인면접, 기부자나 동문 자제, '품격'(character), '인성'(per sonality) 등에 근거해 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품격'처럼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특성을 강조하면서 대학들은 학생 선발과 관련해 폭넓은 재량권을 갖게 됐다. 저자는 입학허가제도가 도입된 것은 밀려오는 유대인 학생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른바 미국 주류 특권 계층인 WASP(백인 앵글로 색슨 신교도)가 그동안 누렸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창안한 입시 제도라는 것이다. 새 입학허가제도가 특히 중시한 것은 '품격'이었다. 저자는 이 '품격'을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부족하지만 상류층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 사이에서는 풍부하다고 여겨지는 자질"이라고 비꼬아 표현한다. 빅3 대학은 이후 여성과 흑인의 입학을 허용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사회 붕괴 가능성 등을 우려한 데 따른 조치일 뿐 자신들의 위치와 특권을 유지하는데 유난히 집착해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앵글로 색슨 출신의 소규모 백인 집단이 지배해온 미국이 유대인, 흑인, 여성 등을 아우르는 국가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이종삼 옮김. 518쪽. 4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