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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서재정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이강기 2015. 9. 6. 22:36
[화제의 책] 서재정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한미동맹을 민주화하는 방법


 

2009년 08월 02일 (일) 09:00   프레시안


 

[화제의 책] 서재정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프레시안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불가사의 하나. 한국에는 '반미우파'(反美右派)가 없다. <조선일보>가 근접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임계치를 넘고 있지는 않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상에 앞서 "한국과 같은 원자력 대국이 평화적 핵 이용권에 제약을 받는 것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주권에 관련된 문제"(2009년 6월 30일 사설)임을 지적하기도 하고, 미국이 북한과 타협하려 하면 심지어 부시 행정부에게도 "애당초 '악의 축' 소리나 하지 말 것이지, 한때는 '북한 민주화'의 선봉에라도 선 듯이 팡파를 울리더니 이제 퇴임을 얼마 안 남기고 김정일에게 웃음을 보내는 따위의 행위"(2008년 10월 21일 김대중 칼럼)를 한다고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오래된 제도인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려 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우파의 몫이다. 주권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는 그 몫을 거부한다. 민족주의는 좌파의 이념으로 수용되고, 우파는 그 수용을 인정하는 형국이다. 이 독특한 이념적 균열의 한 축은, 성장 대 분배라는 또 다른 좌우 균열축과 교직하면서 한국사회의 이념적 균열구조를 생산해 왔다.

우파적 사상인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공유하면서도, 친미우파와 친북좌파의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대립구도가 재생산되는 한, 반미우파와 반북좌파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분단과, 분단의 파생물이면서 분단을 구조화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인 한미동맹은 이 이념적 균열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서재정 지음, 한울 펴냄> ⓒ프레시안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는 서재정의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군사동맹과 군사력, 이해관계 그리고 정체성>(원제: Power, Interest, and Identity in Military Alliances)은 한미동맹을 매개로 이 독특한 이념적 균열구조가 생산되는 기제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한미동맹의 예외성-동맹국의 군대가 상시 주둔하고 있다, 외국군이 주권국가에 주둔하고 있다,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상황이 한미관계에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한미군을 감축하려 하면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을 강조하지만, 원제에서 볼 수 있듯이 서재정은 군사동맹의 비교의 시각에서 한미동맹을 해부하려 한다.

비교는 보편을 지향한다. 보편의 발견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사례인 한미동맹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는 미국의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편의에 따른 동거"로 규정되어 있는 동맹이, 한반도적 맥락에서는 "연애결혼"이 되어버린 이유를 찾는 여정의 기록이다.

<한미동맹>은 냉전체제의 해체가 본격화되는 1990년대에 한미동맹이 강화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한미동맹>의 핵심 질문이다.

"1990년대 초에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을 종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등급을 격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내내 한국의 안보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는데도 한미 양국은 1990년대 말경 1990년대 초의 정책을 뒤집고 동맹을 강화했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므로 그에 상응해서 동맹이 지속되고 있다는 통상적 설명은, 위협 수준의 변화와 동맹의 강화라는 현실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이 질문은 두 전선을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위협 때문에 한미동맹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우파의 정당화 담론과의 전투다. <한미동맹>은 위협의 원천인 북한의 군사력을 한미연합군 군사력과의 군비경쟁이라는 전략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다른 하나는, 안보위협이 동맹을 형성하게 한다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국제제도의 지속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경쟁에 주목하는 국제정치학의 자유주의, 동맹의 지속을 정체성과 규범의 공유에서 찾으려는 국제정치학의 구성주의에 맞서는 이론적 고투다. 1990년대 한미동맹의 강화는, 안보위협이 감소되는 조건에서, 침묵의 합의와 반대의 부재에 기초해, 단일한 정체성과 규범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던 한국과 미국의 정치사회세력의 선택이었다고 <한미동맹>은 주장한다.

한미동맹 변화 '드라이브'와 그 반전

1990년대로 돌아가 보자. 냉전적 세력균형의 추가 미국 쪽으로 기울던 시점인 1989년 7월 미국 의회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요청하는 넌-워너 수정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90년 4월 미국은 주한미군의 규모의 3단계 축소계획이 담긴 동아시아전략구상을 채택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소멸된다면 주한미군의 감축에 동의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1991년 10월 미국과 한국은 한국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핵무기 철수에 합의했다. 1991년 12월 남북은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1992년에는 1976년 이후 처음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었고, 주한미군의 1단계 감축을 위한 조처가 진행되기도 했다. 같은 해 미국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에 관한 평가를 기초로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결정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한미는 한미동맹의 유연화의 길을 갈 수 있었다. <한미동맹>에서는 지적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도 1988년 2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유엔군 사령부의 해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지적하는 것처럼, 반전이 시작되었다. 1991년 11월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북한의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안보위협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주한미군의 감축계획을 철회했다. 1992년 10월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의 재개가 논의되었다.

<한미동맹>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임동원은 그의 책 <피스메이커>에서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가 담긴 공동선언 초안을 제시한 것은 한국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지 않으면 한국이 변상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의 촘촘한 재구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의 집권여당은 반북(反北)과 그에 기초한 한미동맹의 강화가 대통령 선거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처럼 보인다. <한미동맹>의 지적처럼, 1995년 미국 국방부는 새로운 안보전략 보고서의 발간을 통해 주한미군의 수를 동결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한미동맹 축소 정책의 사망이 공식화되었다.

<한미동맹>은 이 반전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한다. 출발점은 현실주의적 설명의 핵심 변수인 군사력 균형이다. 질문은 "1990년대에 한국은 단독으로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방어할 수 있었을까?"

실전 이외에는 남북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지만 <한미동맹>은 북한은 최대치로 평가하고 남한은 최악의 평가를 가정하고 수행한 정태적, 동태적 분석에서 한국에 주둔 중이거나 위기시 투입될 미군 군사력을 포함하지 않고도 북한이 시도하리라 예상되는 전격전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즉,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1990년대 한미동맹의 강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파가 친북좌파로 규정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조차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의 군사력을 억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즉, 한미동맹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미동맹>이 강조했던 북한의 군사력과 한미연합 군사력의 상호작용을 생각한다면, 한미동맹의 강화는 남북의 정치군사적 협력을 가로막는 방해물일 수밖에 없다.

한국판 군산복합체의 존재와 '기억의 정치'

힘의 분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왜 강화되었는가. <한미동맹>의 질문이다. <한미동맹>은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세계전략이 '개입과 전쟁'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한국의 국내정치를 언급하기보다는, 한미동맹의 파생물인 자산특수성(asset specificities)과 동맹정체성이 한미동맹의 지속에서 독립변수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제도경제학의 개념인 자산특수성은 동맹관계에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떠맡는 영구적인 투자를 의미한다. 동맹은 무기체계의 통합, 협의의 메커니즘, 군사기획과 지휘구조, 공유하는 하부구조, 합동군사훈련, 군사기지의 공유 등과 같은 장비특수성, 과정특수성, 인력자산특수성, 장소특수성 등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맹체제 하에서는 한국이 자주국방을 추진할지라도 이 자산특수성들이 한국의 무기체계가 미국의 무기체계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즉, 이 특수성들은 동맹의 유지비용을 낮추고 동맹의 종결이나 변경에 드는 비용을 높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동맹의 유지와 종결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을 만들어냄으로써 동맹유지를 선호하게끔 한다는 것이 <한미동맹>의 주장이다.

한국판 군산복합체와 같은 소수의 집단이 어떻게 비용을 사회에 전가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또 다른 개념이 동맹정체성이다. 동맹은, 적-위협에 기초한 담론의 생산 및 유통, 합동군사훈련과 같은 사회적 행위, 적성국무역법이나 국가보안법과 같은 제도적 정치를 통해, 소수의 이해를 다수의 이해처럼 사고하게끔 하는, 그리고 동맹의 유지에 유리한 사실만을 사실로 인정하게 하는 기억의 정치를 만들어내는, 정체성을 생산하고 그 정체성은 동맹의 지속에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저자인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프레시안
<한미동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산특수성과 동맹정체성의 존재 그 자체로 동맹의 지속을 설명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치환하는 기능주의적 설명방식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자산특수성과 동맹정체성이 한미 양국의 정책입안에 영향을 준 메커니즘을 규명하려 한다.

국제정치의 사회적 토대를 찾는 이 작업은, 서평자의 해석으로는 한미동맹의 '정치'를 보게 한다. 이 '정치'에 대한 이해는,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희망하는 정치사회세력이 무엇을 '어떻게'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자산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은 북한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성을 명분으로 한미동맹을 정당화해 왔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이익의 시각에서 계산한다. 한미동맹의 종결은 한국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할 것이고, 전시에 필요한 부품의 공급을 어렵게 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부인하면 북은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이고, 이를 인정하면 북은 핵무장을 추진하는 '위협국가'"가 되는 담론의 정치가 한미동맹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변수임을 실증한다.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했던 클린턴정부와 김대중 정부도 이 담론에 포획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남한의 대미정책과 대북정책의 한계를 떠올리게 된다.

민족주의적 호소만으로 되겠는가

<한미동맹>의 결론은 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는 동맹의 비교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분석틀의 제시다. 필자의 정리이지만 <한미동맹>은 책의 원제에서 드러나듯 보편적 동맹이론을 만들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서평자가 무리하게 단순화한다면 <표 1>과 같은 모형으로 현실에 존재했고, 존재하는 동맹들을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다.

<표1>

우리는 다른 동맹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했는가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지금-여기서 한미동맹의 미래와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미동맹의 강화를 원하는 세력이나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원하는 세력 모두 이 <표 1>에서 나름의 교훈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의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의 미래와 관련해 우리에게 주는 함의다. <한미동맹>은 역사적, 이론적 분석을 통해 한국이 북한의 정체성을 '적으'로 간주할 때 한미동맹은 조화의 접점을 찾았고, 반면 한국이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으로 기울어질 때, 한미동맹은 미국의 정책구조와 충돌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의거한다면, 한미동맹의 미래에서 "한국이 민족정체성과 동맹정체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이 균형은 한미동맹의 지지자와 도전자들이 "'진지전'에 동원하는 물질적 능력과 담론적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한미동맹>은 말한다. 그리고 이 담론쟁투에서, 동맹의 지지자들은 주한미군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고 있는 데 반해, 도전자들은 민족주의적 호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방어선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서평자의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동맹정체성 대 민족정체성이라는 결론의 대립구도에 의문이 있다. 이 결론은 힘의 균형 또는 힘의 우위를 선택지로 사고하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결론과 다를 바 없다. 힘의 정치가 담론의 정치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결론은 우리에게 미국이냐 북한이냐, 라는 이분법적 선택만을 강제한다. 권력, 이익, 담론을 모두 고려하는 이론적 절충주의의 실용성을 인정하지만, 결국은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옥시덴탈리즘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미동맹>은 이론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주류 내부에서 주류를 지양하려는 고투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 이익, 관념 등과 같은 변수의 수준에서만 국제정치이론의 전환이 논의될 때, 국제정치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실종될 수 있다.

둘째, 한미동맹의 지속이 소수자의 이익을 공공이익으로 전화하는 담론의 정치의 산물이라고 할 때,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위한 대안담론의 생산, 유통, 소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맹정체성 대 민족정체성의 이분법은, 적-위협에 기초한 안보담론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듯하다. 북미공방이 20여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북미 모두 적-위협이라는 안보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주석에서만 언급하고 있는 "군축의 경제적 효과" 또는 군축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는 국제정치의 진보를 위한 한국발 대안담론의 핵심 구성요소일 수 있다. 담론의 생산양식과 담론의 헤게모니를 실현할 수 있는 임계치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치열한 천착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 후기: 지금도 번역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말씀이고, 가끔 번역을 하는 필자가 자기모순을 느끼며 하는 말이지만, 번역은 '미친 짓'이다. 번역은 불가능성의 예술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문법을 이해하려는 노력인 번역 없이는 소통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번역이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따라서 누군가는 번역을 해야 한다. 우리는 번역가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한 번역가의 지적처럼(이종인, <번역은 글쓰기다>), 번역에는 어구와 문장에 집중하는 미시적 방법과 글쓰기에 집중하는 거시적 방법이 있다. <한미동맹>에서는 전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mbed와 같은 단어를 번역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유명사에서 발생하는 실수, 개념어의 비일관성, 형식의 불완전 등은 <한미동맹>의 철학적 기초를 원용해서 발언한다면, 담론의 현실효과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요즘 이 책]신성불가침 한·미동맹과 미국 패권사

 

ㆍ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전쟁의 집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서재정 지음, 이종삼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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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북한체제가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전략적 합헌성을 획득했고, 우리 사회에 신성불가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방북이 준 충격파가 크다. 도리어 보수 진영에서 한·미동맹의 본질을 묻는다.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한울아카데미 펴냄)의 저자 서재정 교수(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의 문제의식을 빌리면 결국 ‘한국은 민족정체성과 동맹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인가. 특별하게도 ‘한·미동맹은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군사동맹 중 한·미동맹만큼 50년 이상 지속된 장기적인 동맹은 없다. 동맹국의 군대가 대규모, 그것도 상시로 주둔하고 있다는 점 또한 예외적이다.

패전국이 아닌 국가에 외국군 수만 명이 50년 넘게 주둔 중이다. 현재까지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작전지휘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 또한 예외적이다.

어느 학자는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라고 했다. 더욱 경이로운 예외적인 사실은 이상과 같은 모든 예외적 현실이 한·미 관계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더더욱 경이로운 예외적 사실은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려 해도 한국 정부가 반대한다는 점이다.” 서 교수에게 있어 ‘한·미동맹의 이러한 예외적 예외성’은 혼란스럽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믿는다. 물론 예외성에 대한 모범답안이 있다.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불가피하고, 주한미군은 필수적이며, 작전지휘권도 유사시에 대비한 조치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통설이요, 상식이다. 누군가 이런 통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치자. 법적으로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빨갱이이다. 반미주의자다. 친북좌파다. 철저한 이분법이다. 반미·친북 좌파이거나 친미·반북 우파 중 하나여야 한다. 민족 우선이거나 동맹 우선이어야 한다. 서 교수의 결론도 이 범주를 크게 뛰어넘지는 않는다. ‘민족정체성이 동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될지가 한·미동맹의 장래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는 쪽이다. 평가할 능력은 못 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때마침 재밌는 책이 나왔다. 미국 전쟁사, 핵무기사, 펜타곤 60년사를 다룬 <전쟁의 집>(동녘 펴냄)이다. 참고 문헌까지 포함해 무려 854쪽이나 되는 논픽션 대작이다. 저자 제임스 캐럴은 가톨릭 사제 출신의 전업 작가다. 아버지는 펜타곤 산하 국방정보부(DIA) 국장 출신이다. 펜타곤에서 미끄럼틀을 타던 개인적 경험이 미국 패권사를 쓰게 만들었다. 저자는 우연성에 주목했다. 9·11이라는 날짜다.

1941년 9월11일은 펜타곤의 착공일이었고, 이로부터 60년이 지난 2001년 9월11일은 펜타곤이 외부의 적에게 공격 받은 날이었다. ‘NSC-68’이라는 기밀문서가 있었다. ‘NSC-68’은 세계가 상호적대적인 두 개의 신념 및 정치체제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았고,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대체하려는 뻔뻔스러운 야망을 품은 것으로 보았다. 미국의 전후 정치 이념의 이원론은 여기에서 뚜렷이 드러났고 완성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다. 이 문서가 사실상 폐기될 쯤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때 딘 에치슨 국무장관은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고 말했다. 1950년 미국의 방위비는 177억달러였다. 한국전쟁은 국방에 대한 미 의회와 국민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방위비는 1953년에 500억달러를 넘어섰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서 계속 주둔할 수 있었다.” 미국은 지정학의 통설로 복귀했다. 이로써 북한체제가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전략적 합헌성을 획득했고, 우리 사회에 신성불가침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전략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시대의 명백한 요구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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