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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발되는가] 후기

이강기 2015. 9. 6. 22:34
[누가 선발되는가] 후기    
 

[누가 선발되는가]

역자후기



자식을 소위 일류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의 절절한 마음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매 한가진가 보다. 이 책을 옮기면서 놀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미국의 학부모들(물론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같은 대도시의 중.상류층 부모들 이야기다)도 한국의 중.상류층 학부모들 못지않게 “일류대학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특히 놀랐다.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이 자식의 인생후반기를 크게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부모들의” <신념>도 우리를 쏙 빼 닮았고, “부의 직접적인 상속과 함께 명문대학 학력증명서 획득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변형된 특전의 주요 전달수단이 되는” <사회>도 우리를 많이 닮았다.

 어디 그 뿐인가. 유치원부터 아예 “일류”에 보내기 위해 500 달러에서 4천 달러까지의 비용을 들여가며 개인교사를 채용, 네 살짜리 자녀의 유치원 입학수속, 면접과 적성시험 준비를 맡길 정도의 <열성>과, 훗날 대학진학 때 입학사정관들의 관심을 끌 “갈고리”로 사용될 기예(운동경기, 음악, 미술 등)를 길러주려는 <노력>도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사립 예비학교를 비롯하여 “일류” 초.중고등학교에 보내려 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반 때 1인당 3만 달러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대학진학 컨설턴트(우리의 논술. 면접학원에 해당된다고나 할까)를 찾는 일도 그렇다.

 그러나 닮은 것은 여기까지다. 지원자를 심사하여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대학(이 책이 다룬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 대학의 경우)의 입학허가 기준이나 관행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우선 입학사정관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제 겨우 수 년 전부터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일류대학”들은 1920년대부터 입학허가 전담부서를 만들어 입학사정관들이 전체 지원자들의 합격여부를(동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결정하고 있다.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된 동기도 특이하다. 학업성적을 위주(동문자제들에 대한 특전은 제외하고)로 선발하다보니 과외활동 등 “인격수련”은 등한히 하고 학업에만 전념하는 유대인들이 미국 일류대학들을 “점령”해 버릴(대개 20-30%, 콜롬비아대학의 경우는 40-45%)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껏 일류 대학들을 자기 집 안마당처럼 생각하고 있던 WASP(백인 앵글로 색슨계 프로테스탄트) 중.상류층이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이들 “부적절한” 학생들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전인적인 인격’의 강조였다.

 다시 말해 꾀죄죄하고 괴팍하고 이기적인 “천재”보다는 훤칠하고 관대하고 이타적인 “신사”가 사회에 훨씬 쓸모가 크며, 훌륭한 지도자는 “지능”보다는 “품격, 인성, 지도력 등”을 갖춘 인간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학업성적 우수성이 인생만년의 초라한 성공의 잣대가 된다.>(예일대 졸업생 2,678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라든가, <만약 학업성적이 유일한 기준이라면, 우리는 장차 미국 대통령이 될 몇몇 학생들을 아예 불합격시켜야 할 것>(예일대 하우 입학관리처장의 말), 또는 <헨리 캐봇 롯지, 존 F. 케네디,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학업성적을 기준했다면 과연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었겠는가?>(하버드 벤더 입학관리처장 말)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기엔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학교당국의 폭넓은 재량권과 불투명성 확보다. 학업성적만을 위주로 하게 되면 객관화된 수치에 근거하기 때문에 학교의 재량권과 불투명성이 대폭 줄어든다. 임의로 누굴 배제하고 누굴 포용하려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매우 주관적 판정이 가능한 “품격, 인성...” 같은 걸 잣대로 삼게 되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인 입학관리처장 휘하 입학사정관들의 재량권과 불투명성이 대폭 커지는 것이다. 이 점은 현재 입학사정관제의 확대실시를 계획하는 한국의 대학들에 대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공정성과 평등을 특히 강조하는 한국적인 정치.사회.교육 풍토에서 입학사정관제의 장래가 과연 순탄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에 제시된 통계에 따르면, 기부자와 동문자제, 체육특기자, 소수민족 우대자로 특혜를 받아 빅 스리(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약 40%인데 비해 순수하게 학업성적으로 입학하는 재원들의 비율은 10%-15%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비율이 항상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총장이나 입학관리처장의 성향, 동문들의 압력, 시대변화 등에 따라 때로는 실력주의 쪽으로, 또 때로는 “품격, 인성 등”의 주관적인 잣대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어지곤 했다. 예컨대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여 미국에 안보위기감이 고조되었을 때는 “재능상실”에 대한 우려가 커져 실력주의를 옹호하는 교수단 쪽의 주장에 무게가 크게 실렸고, 학교의 재정이 궁핍해져 동문들의 기부금 증액이 절실해질 땐 그들의 자제들을 더 많이 합격시키기 위해 “품격, 인성”쪽을 더 강조하는 입학사정관들의 입지가 강화되었으며, 1960년대 민권운동과 인종폭동으로 체제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엔 흑인 등 소수민족의 입학을 갑자기 늘렸다.

 저자는 미국 하층계급들의 동원(mobilization)과 투쟁성 결여를 아쉬워한다. 이를테면 사회.경제.문화적 배분에서 최상위 25%에 드는 계층 출신 학생들은 최하위 25% 계층 출신 학생들보다 일류대학에 25배 더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며, 최하위 25% 출신들의 일류대학 신입생 구성비는 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수민족 그룹들은 1960년대의 투쟁으로 일류대학에 대략 10% 정도의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하층계급들은 그런 과정이 없어 이런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미국 입학정책의 내용 및 그 결과와 변화의 추이를, 그리고 그 주역들을 시대별로(1900년부터 2004년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깨알 같은 활자로 711쪽이나 되는 방대한 책(번역원고로 6,700여 매)이어서 우선 1차로 1960년대부터 2004년까지를 다룬 제3부를 옮긴 것이 바로 이『누가 선발되는가』이다. 1900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를 다룬 1부와 2부도 이미 번역이 끝났으며 곧 발간될 예정이다.

 앞서 미국대학(빅 스리)의 입학허가 기준이나 관행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한 것은 현재까지의 추이를 두고 한 말이다. 수시모집(선발방법 면에서)확대, 입학사정관제 확대, 기부자 자녀 배려 움직임, 소외계층 배려 움직임, 체육특기자 특혜 등 미국의 대학입학 허가 제도를 이미 닮았거나 닮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입학제도의 저간의 변화를 감안할 때 어쩌면 이 책은 한국의 대학과 학부모들이 지금 겪고 고민하고 있는, 그리고 미구에 겪고 고민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인용문을 담은 문장들이 유난히 많은데다 미국대학의 벼라 별 직급, 직위, 단체, 또는 행사 명칭들이 하도 많아 우리말로 옮기는 데 꽤 애를 먹었다. 특히 명칭들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상용사례들을 부지런히 참고하였으나 생경한 것도 있을 것이다. 최종원고를 넘기긴 했지만 여러 가지로 미흡하다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의 발간에 관여한 한울 기획실, 편집부 여러분들과 박행웅 선생님, 특히 2,600여 매나 되는 원고의 교정과 윤문으로 노심초사한 조일순님에게 감사드린다.

                                     20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