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전화 20초 만에 뚝, YS의 참을 수 없는 솔직함
2008. 10. 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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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4일
부친 김홍조옹의 안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선영으로 향하고 있다. 거제=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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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의 빈소가 마련된 지난주 경남 마산은 한국 정치 파워 엘리트들의 총 집결지였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은 만석이었고 꽃집의 국화는 완전히
동이 났다. 한국 특유의 조문 문화에 전직 대통령 부친상이라는 특수 요소가 결합돼 근래 보기 어려운 정치 이벤트가 연출됐다. 그 중심에는 YS가
있다. 상주인 그와 정·관·재계 인사들의 만남은 한국정치의 또 다른 축약본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특유의 독설, 국가원수를 지낸
여유로움, 사람을 끄는 묘한 힘…. 2008년 10월 마산에 머물렀던 한국의 정치시계를 중앙SUNDAY가 생생히 취재했다.
9 년 만에 문상정치 ‘큰 장’
2일 오전 조문객들과 별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YS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걸었다. 인근 호텔에서 잠시 쉬고 있던 큰딸 혜영씨였다. YS는 토론이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안 된 미국 부통령 후보 TV토론 진행 상황을
물었다. 20분 뒤 이번엔 혜영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재미교포인 혜영씨는 세라 페일린과 조 바이든의 공방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YS는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뽑은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의 선택을 여러 차례 칭찬했다.
YS의 여전한 화두는 ‘권력’이었다. 그 관심은 평생의
경쟁자인 DJ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유쾌한 추억, 그러면서도 자신의 힘을 뺐던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불신으로
표출됐다.
이상득 의원:“기자들이 참 대단하다. 상갓집에도 기자실을 만들어놨다.”
YS:“언론이 내가 대통령 되는 데
도움도 많이 줬지만 죽이는 일도 했다. (기자들을 향해) 뭘 그렇게 쓰고 있나. 아이고 마, 쓰는 거 하면 김대중이 아이가. 옛날부터 만나기만
하면 깨알만 하게 수첩에 다 적는다. 참 희한한 사람이다.” 한 참석자가 DJ가 젊은 시절 기자 생활을 잠시 했을 것이라고 하자 YS의
반박이 바로 나온다. “무신 기자를 해. (안 다닌) 건국대나 다녔다고 하고. (그 사람이 얘기하는) 나이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경쟁자는
무신…. 나한테 (DJ는) 항상 졌어. 나 때문에 원내총무는 한 번도 못했잖아.”
오후에 DJ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예,
예” 몇 마디만 하고는 20초를 채 안 넘기고 끊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보고는 “제일 고생한 사람 오네. 저 사람은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한테 철저히 보복 당했다.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문민정부가 끝난 뒤 권 전 안기부장이 북풍사건 등으로 몇 차례 옥고를 치른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DJ보다는 횟수가 적었지만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제되지 않은 용어로 비난을 쏟아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폄하성 발언을 이어가자 차남인 현철씨가 기자를 향해 기사를 톤다운해서 써 달라는 의미의 손동작을
취했다.
별실에서 펼쳐진 나흘간의 YS 문상정치는 유력 정치인들 사이에 형성된 정치적 친소관계도 보여줬다. 그는 몇몇 조문객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상 올 것이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있음에도 노 전 대통령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상도동계 인사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 상도동계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어른을 단 한 번도 단독으로 청와대에 모시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1994년 국무총리를 그만두게 하면서 시작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의 불편한 관계는 7분여의 짧은 대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친박 의원 10여 명을 대동한 박근혜 의원과의 대화는 10분여간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영 어색했다. YS는 지난해 박 의원 대신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YS는 박 의원이 돌아간 뒤 “내가 박 의원 왔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쿠데타니 독재자니 하는 얘기
일부러 안 했다”고 했다. 대선 때 자신과 경쟁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 정몽준 의원에겐 옆에 앉았어도 따로 말을 걸지
않았다.
반면 정치적 길은 달랐지만 비슷한 연배의 김종필(JP) 전 총리와는 잘 통했다. 둘은 일본 정치와 운동 등을 화제로 올리며
20분 이상 대화했다. “요즘에도 자주 만난다”는 게 JP 얘기였다. “DJ는 나한테 항상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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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2일 빈소를 찾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있다(왼쪽). 이명박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1일 조문을
마친 뒤 김 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마산=연합뉴스 |
| 빈소는 현철씨가 지켰다.
별실에서 손님을 맞은 YS는 오후 6시면 인근 사보이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때문에 YS를 만나려는 유력 정치인들이 낮에만 몰리면서 밤이면
상가는 썰렁해졌다. 밤에 호텔로 직접 찾아온 한 현직 도지사의 면담을 거절할 정도로 YS는 무리를 안 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는 “어려운 상대를 이겨 온 국민을 시원하게 해줬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주도했던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자신이 발탁한 정치인·관료들과는 ‘즐거운 추억’을
나눴다.
YS:“홍준표 원내대표는 내가 15대 때 공천 줬다.” 홍준표 의원:“맞습니다. 안상수·맹형규·김문수·정의화·이윤성
의원이 다 그때 같이 됐죠.”
서청원 의원:“각하께서 하신 9선 기록은 앞으로 깨기 힘들 겁니다.” YS:“아이고 마, 25살
먹은 (나를) 국회의원에 뽑아주고…. 거제 사람들이 실수했다(웃음).”
이석채 전 장관:“제가 예산실장 할 때 경부고속철도, 영종도
공항도 다 각하께서 밀어주셔서 가능했죠.”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승수 국무총리와의 자리에서는 YS의 부친 문안전화가 화제에
올랐다. “고르바초프 만나러 소련을 갔었는데 어찌 된 나라인지 아침에 전화 신청을 하면 오후에나 가능해. 우리 아버지와는 아침에 통화하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데…. 그 시간을 못 맞추니 아버지가 오해를 하시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해명이 안 되더라고.”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틈틈이 털어놨다. 97년 대선 막판 YS는 TV토론에 응하라는 DJ의 요구를 받았고 수용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이 무렵 만찬을 함께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부터 “지지율이 8%포인트 앞선다는데 뭣 때문에 응하느냐”는 ‘충고’를 듣고 TV토론을 거절했다. 결국 이 지지율
격차가 그대로 유지됐다는 얘기였다.
“페일린, 매케인의 탁월한 선택”
말투는 투박했지만 ‘음…음…’ 하면서
남의 말을 경청하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YS 특유의 ‘흡입력’이 느껴졌다. 올해 초 팔순 잔치를 치른 나이가 무색하게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핵심을 파악했다. 찾아온 언론사 간부들에게는 그날 아침신문 기사를 언급할 정도로 신문도 꼼꼼히 읽고 있다고
했다. 필생의 업이었던 대통령직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아쉬움도 함께 피력했다. 매년 친분 있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는데 아웅산
수치 여사와 치매에 걸린 대처 전 총리만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에 대해서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명예를 저버리고 재혼해 버렸다”고도 했다.
YS:“내가 대통령 해봤지만 우리가 참 대북 정보가 없어. 김정일 위원장이
이빨 닦는 것까지 안다는 식으로 (정부가) 떠드는 거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야. 그나마 미국 정보가 정확하지.”
타일러 앨런 미국
영사:“저희도 사실 잘 모릅니다.” 박종웅 전 의원:“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80년대 말 정무담당 영사 할 때 우리 상도동하고 참
친하게 지냈어요.”
YS:“94년 남북회담 다 준비해놓고 김일성 주석이 죽은 게 너무 아쉬워. 자기가 만나자고 했으니까 많은 걸
양보했을 텐데 말이지….”
현철씨, 끝까지 빈소 지켜
YS 상가에서 이뤄진 정치인들의 삼삼오오 모임도
좋은 볼거리였다. 3일 오후는 시계추를 2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했다. 버스를 대절해서 온 과거 민추협 인사들로 상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교동 집사’ 박지원 의원과 최경환 비서관은 ‘상도동의 영원한 집사’ 홍인길 전 수석, 박종웅 전 의원과 한 시간 가까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상은 전직 대통령 부모상으로는 9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친상 이후 9년 만에 열린
‘큰 장’이었다. 대통령 부친이
생존해 있는 경우는 우리 정치사에서 김옹이 유일했다. 미국에서도 흔치 않다. 17세 때 낳은 아들이 25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옹은 이례적인
경우다.
이 ‘특별한’ 빈소를 찾은 문상객은 7000명에 달했다. 현직 장관과 국회의원은 물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다녀갔다. 문민정부 시절 고위 관료를 지낸 인사들(이홍구·이수성·고건·한승주 등)도 많이 왔다.
김수한·박관용·김덕룡·신상우씨 등 상도동계 ‘올드 보이’들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은 10㎏ 이상 마르고 늙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형우 전 장관은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는지 부축을 마다하고 스스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상도동계
인사들은 문민정부 시절 잘나갔던 일부 인사의 변심을 비난했다. YS 정권 시절 오랫동안 국무위원을 지낸 한 인사에 대해 홍인길 전 수석은
“각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음에도 팔순 잔치 때나 이번에 일절 모습을 안 보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5대 총선 자금이 안기부
자금이 아니라 YS의 대선 잔금이라는 ‘천기’를 누설해 상도동의 분노를 산 강삼재 전 의원은 1일 밤 늦게 들르는 바람에 YS와 만나지
못했다.
반면 총선 자금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내내 빈소를 지켰다. 밤이 깊어지자 김 전
차장은 기자에게 “내가 1000억원대 선거자금도 만져봤지만 권력이란 게 정말 허무하다. 그걸 잡으려고들 달려드니…”라며 씁쓸해했다. 권력의
명멸과 부침,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몸부림이 담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4박5일이었다.
마산=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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