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북핵(北核)과 경기침체 등 현안을 해결하는 데도 하루하루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침반이 없는 항해는 무의미한 법. 대한민국이 22세기를 내다보고 나가야할 목표와 미래상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지난 6~7월 주간조선에 ‘19세기에서 배우는 21세기 국난해법’ 시리즈를 연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팀이 이번에는
22세기를 내다본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정보세계정치연구회’의 연구와 토론 결과를 담은 이 시리즈는 정치를
시작으로 군사, 경제, 지식, 문화 분야에 걸쳐 총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지식 갖춰야 21세기서 살아남아
세계 역사의 시계는 몇 시인가. 그리고 한반도 역사의 시계는 몇 시인가. 지난 5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청와대에 직접 건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마찬가지로 세계 변화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한반도에서 아무도 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누구도 놀라지 않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역사적 지진이 지구의 지층을 새롭게 바꿔 놓고 있다.
아직도 지난 세기 역사적 지진의 여진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는 새로운 지층 형성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21세기 백년대계를 마련해야 할 오늘, 한반도의 북쪽은 19세기 발상의
강성대국론을 답답하게 외치고 있으며, 한반도의 남쪽은 20세기 발상의 국민소득 2만달러의 동북아 중심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발상의
한반도 백년대계의 첫출발은 새로운 역사적 지진의 진원지를 찾아내고, 지진의 충격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22세기 미래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지진의 진원지는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났다. 바로 정보기술 혁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은 스스로 정보기술 대국임을 자부하고 있다. 실제로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이며, 1인당 인터넷 사용시간도 세계 1위이다. 인터넷 사용자 비율도 아이슬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다. 인터넷 활동의 양적 수준은
한마디로 세계적이다. 그러나 정보기술 혁명이 인간의 생각, 행동, 그리고 제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의 잣대로 재보면 한국은 여전히 새 역사의
변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은 다가오는 백년사의 주인공, 무대, 그리고 연기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국가가 근대 역사의 화려한 주연이었다면, 정보기술 혁명은 그물망(network) 국가라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국가의 밖에 있는 지구 기구, 지구 기업, 지구 테러조직, 국가의 안에 있는 시민사회 조직 등과 같은 주인공들이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달에 힘입어 상대적 자율성을 높여 가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은 세계질서의 무대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군사
무대에서는 핵전쟁 대신에 첨단 정보전쟁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경제 무대에서도 지구 첨단 기업이 되려면 지식 경영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전자 상거래의 빠른 성장과 정보 산업의 선도적 역할이 동시에 눈에 띈다. 외교도 군사, 경제외교 못지않게 지식외교가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정보, 지식력의 기반 없는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외교력은 점점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무대의 화려한 등장이다. 근대 세계질서의
무대에서는 지식은 군사나 경제의 보조 무대에 머물렀어야 했다. 정보기술 혁명은 디지털 정보의 힘으로 지식 무대의 무한 확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식 무대는 근대의 보조 무대에서 21세기의 중심 무대로 성장하여, 다른 모든 무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안보국가,
번영국가일 뿐만 아니라 지식국가라야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보기술 혁명이 21세기 국내외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한반도의 21세기 정치 개혁의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를 따져 보자. 주권재민의 원칙, 즉 궁극적인 정치적 권한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여 국정에 반영하고, 법을 제정하며, 행정부를 감시하는 기구이다. 물리적 제약 때문에 모든
국민들의 의사를 통합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이익들을 타협하고 조정하도록 시켜 왔다. 그러나 정보 기술의 발달은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과 국회의원, 대통령과 행정부 관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동시에 쌍방향, 다자간 정보 교환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커뮤니케이션의 혁명적 변화는 국가간 정보 교환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근대 이래 외교관은 소위 ‘공인된 스파이’로서 외국에 상주 공관을 설치하고 정보의 수집, 전달에 힘써 왔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 외국 정보를 취합하고, 자국 정보를 외국에 전달하는 외교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1세기의 개인은 정치 과정의 정보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자신의 의사를 최고통치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외국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누구나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견을 외국 기관들에 직접 전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전자민주주의와 e-외교는 새로운 세기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정치와 외교는 상상을 넘어서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정치 세력은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각축전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인터넷 정치’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
정치는 근본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현상이고 국내외의 권력자원을 국가가 어떻게
통제하고 배분하는가에 관련된 일이다. 21세기 정보화는 권력 자원의 성격을 상당부분 변화시키고, 국가 정치행위의 경계를 바꾸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았듯이 인터넷 혁명은 정치 정보의 공개와 유통, 국민들간의 상호 의사소통, 정치인과 국민 간의 의사소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정치 정보는 새로운 권력 자원으로 등장했다. 전자민주주의 혹은 디지털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국회의원들이 과연 국민의 의사를
가감없이 대변하고, 행정부는 사안마다 국민의 뜻에 맞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자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명실상부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단순히 국민의 의사를 모으고, 다양한 의사의 타협점을 찾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참여민주주의를 넘어선 ‘숙의(熟議)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국회 밖에서 이미 확정된 국민 이익을 단순히 국회에 가지고
가서 타협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새롭게 국익을 정의하고, 보다 나은 공론을 창출하며, 국회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적 덕성을 일깨우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21세기 국회는 숙의와 토의를 통해 공동이익과 국익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새로운 관점에서 파악하고, 국회를 신뢰하며, 새로운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 역시
자신의 의사를 국회에 대변해 줄 전사(戰士)와 같은 의원들을 선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뽑은 의원들이 국회에서 사익과 국익을 조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며 감시하고 이에 참여하는 한편, 국민들 스스로도 각종 공론의 장에서 토의와 숙의에 익숙해져 가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추가 파병 논의는 우리 숙의민주주의의
낮은 수준을 보여 주는 좋은 예다. 정치인들은 진정한 국익을 위한 대처 방안을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 숙의하는 대신, 국민 여론을 수렴한다는
명분하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보호하기 위한 눈치 살피기에 몰두하고 있다. 정보 기술 혁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고 있는 공론의 장에서는 많은
인스턴트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념적 편향에 따라 임의로 현실 아닌 현실을 재구성한 다음에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해결 방안들을
일방적으로 강변하는 희극을 보여 주고 있다.
숙의민주주의 없는 참여민주주의는 비극이다. 정보기술 혁명이 숙의민주주의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피상적 참여민주주의에만 활용된다면, 국론 분열의 비극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21세기 선진 정치의 목표는
참여민주주의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보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국제정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국가가
국제정치, 혹은 외교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개인이 국가보다 더 많은 외교 지식을 축적하는 일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1인용 사이버 NSC(국가안보회의)’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군사 외교, 경제 외교 대신에 21세기 외교의 전초전은 지식 외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정보 외교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외교는 21세기 디지털 지식 외교의 무서움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베이징 6자 회담에 앉아 있는 각국의 외교 역량을 일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디지털 지식 외교의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보화 시대의 국제기구들과 국제 비정부단체, 혹은 지구 시민단체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새 주인공들은 국가의 권위를 넘어서서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연계되고 있으며, 개별국가의 권위에 도전하고, 국가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물망의 세계정치에서 국가는 하나의 그물코로서 여러 그물코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역할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새로운
국가의 역할에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국제 역량 강화의 또 하나 핵심 과제이다. 정보 혁명은 국가를 넘나드는 일반 시민의 초국가적 활동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에 국경을 넘나들며, 타국의 네티즌들과 의사소통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민족 정체성, 혹은 국민 정체성에 버금가는, 혹은 이를 초월하는
이념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 사는 개인이 대한민국에만 충성 하리라는 미래의 보장은 없다. 이제 닫힌 민족주의, 주변국과의 제로섬 게임의
경쟁, 지역 중심으로 등장하려는 노력은 시대역행적이다. 정보화 시대의 세계정치는 열린 민족주의, 그물망 속에서 그물코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공존의 철학, 지역 혹은 전체 이익과 특수 이익을 결합시키려는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총선 논의’ 지나치게 과거지향적
그물망 지식화 세기를 맞이해서 한반도 백년대계를 위한 정치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 세력들이 이합집산 하는 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혁
논의의 수준은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다. 지역 정치, 권위주의 정치, 냉전정치의 극복이 개혁 내용의 중심이라면, 21세기에 변방의 역사를 탈출해
보겠다는 꿈은 이루어질 가망이 없다. 21세기 역사의 중심에 진입하려면 22세기적 발상의 미래지향적 정치 개혁안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우선 국내정치를 보자. 21세기 표준에 전혀 맞지 않은 이분법적 편
가르기의 악순환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명분 아래 당파적 이익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간에
존재하는 이념 갈등, 의견 대립을 중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국익에 관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용감하고
책임감을 가진, 단순한 대리인이 아닌 독립적 수탁자로서 국민들을 당당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치인이 숙의의 과정을 이끌어 갈 때 정보 기술의
토대 위에 마련된 진정한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원외 활동에 몰두하지 않고, 원내에서 활발한
의정활동과 상임위원회별 전문적 숙의과정을 통해 정파간 의견 차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정책개발과 입법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 투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숙의 정치의 기반 위에서 21세기 그물망 국가는 다양한 정치 사회세력들을 편
가르는 것이 아니라 거미줄같이 엮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편 가르기 국가는 국력 결집의 효율성면에서 그물망 국가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한반도를 보자. 통일논의도 이제까지의 냉전 논리와 탈냉전 논리의
갈등 속에서 해결책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21세기 통일 논의는 22세기 그물망 짜기의 작은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는
주변 4강, 동아시아, 지구,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어떻게 거미줄을 꼼꼼하게 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지구지(知)와 사회지(知)를
제대로 결합한 국가지(知)에 기반을 둔 지식 외교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 위에 안보 외교, 번영 외교, 문화 외교, 환경 외교가 서야
한다.
하영선·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79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Nuclearization of Small States and World Order:The Case of Korea’라는
제하의 논문으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임명된 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북한
핵(核) 문제를 비롯한 동북아 국제정치 연구와 함께 19세기 구한말 외교사 연구에 전력해 왔다. 저서로는 ‘탈근대 지구정치학’ ‘한반도의
핵무기와 세계 질서’ ‘현대국제정치론’ 등이 있다. ysha@plaza.snu.ac.kr
◆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 근대 국제체제와 동아시아 전통 국제체제가 접하게 되는 19세기의 국제 관계사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schun @sookmyung.ac.kr
대기획 - 한반도‘백년대계’
(2) 군사ㆍ안보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비하라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으로 나라가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서로 유리하게 꺼보려고 모두들 정신이 없다. 그러나 21세기 세계질서의 중심 국가들은 전혀 다른 일로
바쁘다. 정보 기술혁명에 따라 국가 활동 무대를 전면적으로 새로 꾸미느라고 분주한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안보 무대에도 정보화의 바람은 강하게 불고 있다. 북한이
19세기식 강성대국론을 주장하고 한국이 20세기식 자주국방론을 철늦게 강조하고 있는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질서의 주도 세력들은 21세기
정보화 세기에 맞는 새로운 병력 구조, 무기 체계, 그리고 전략 마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21세기 군사 분야의 선수, 장비, 경기장,
작전, 경기 규칙이 모두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자중지란으로 정신이 없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충실하게 21세기 안보 무대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미래전 주역은 정보 네트워크
9·11 테러 이후 미 부시 행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하는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면서, 이 전쟁을 21세기의 첫 전쟁인 동시에 새로운 전쟁으로 불렀다. 새로운 전쟁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이 무인항공기 프레데터가 보내는 실시간 동영상을 미국 플로리다 지휘부에서 받아보면서 전투를 지휘한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미래 첨단무기의 시연장이었다.
아프간 전쟁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한 것은 1995년 발칸 전쟁 때 첫선을
보인 무인정찰기 프레데터였다. 1.6㎞ 고도에서 TV와 적외선, 전자, 광학 카메라를 통해 지상의 사람 얼굴을 식별할 만큼 정확한 영상을
전송하는 이 무인항공기 덕분에 미국의 전쟁 지도부는 플로리다에 앉아서 전쟁의 경과를 손바닥처럼 볼 수 있었고 미군 병사들이 추락한 헬기에서
하나씩 끌려나와 적에게 사살당하는 장면까지도 지켜봐야 했다. 아프간 전쟁의 양상은 1991년 걸프전 당시 야전 사령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겨가기
위해 애로를 겪었던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전쟁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드라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동시에 전쟁은 과학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인류의 역사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다시 정보사회로 변함에 따라 전쟁의 모습도
변화해왔다. 농경사회의 제1물결 전쟁에서는 백병전이나 근접전쟁이, 산업사회의 제2물결 전쟁에서는 대량파괴, 대량학살이 주된 전쟁 양상이었다면,
정보사회 제3물결 전쟁의 형태는 걸프전으로부터 시작된 하이테크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도도하게 밀려오기 시작한 지구화와 정보화의 물결은 국가의
안보 영역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화와 정보화는 안보 주체의 다양화와 안보 내용의 복합화를 특징으로 한다. 정보화 시대의 전쟁은
행위 주체의 비대칭성, 수단의 비대칭성, 목적의 비대칭성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안보 위협의 범위도 단순히 군사적 안보를 넘어 다양한 이슈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다원화되고 있다. 특히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는 의미의 안보는 정보와 기술적 자산의 보호까지를 의미하는 폭넓은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10개의 둔한(dumb) 폭탄보다는 1개의 정밀유도무기가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으며, 무기체계의 정확성은 결국 어느 편이 더 많은
정보와 고급기술을 향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21세기의 군사안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첨단화, 기동화, 정밀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미래전은 정보전, 비대칭전, 병행전, 우주전, 정밀타격전, 로봇전 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미래전을 특징화하는 모든
키워드의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정보네트워크가 중추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고 적보다 한발 빠른 전장 공간인식, 전투 단위들을
실시간으로 하나로 엮어주는 통신네트워크, 그리고 장거리 정밀 타격력은 미래전의 핵심 요소들이다.
우리 체질에 맞는 군사개념 정립을
우리는 정보화 시대의 군사 변화에 얼마나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나.
유연하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21세기 군사안보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특징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이에
걸맞은 안보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핵무기의 시대에서 정보무기의 시대로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 무대 위에서 뒤늦게 핵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과, 자주국방의 시대에서 복합안보의 시대로 넘어선 새로운 세기에 구식 자주국방론을 반복하고 있는 한국은 21세기 미래 안보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우리에게 적합한 군사혁신(RMA)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첨단과학기술을 응용하여 새로운 군사체계를 만들면서, 이와 관련된 작전 운용 개념과 조직 편성도 혁신적으로
발전시켜 상호 결합시킴으로써 전쟁의 성격과 수행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군사혁신의 핵심이다. 군사혁신은 21세기 안보환경의 불가피한
추세다. 우리도 우리의 체질에 맞는 군사혁신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21세기 세계 군사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은 막대한 비용과 최첨단 과학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이외 국가들이 미국형 군사혁신 방법을 그대로 따라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형 군사혁신의 기본 방향과 구체적 실천 방안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
둘째, 미국의 21세기 군사혁신의 구체적 표현인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단순히 자주국방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국 군사혁신의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21세기 군사전략 기본개념은 우월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어느 곳의 분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신속 투사 전력 보유, 적의 도발 의도를 단념시키고 격퇴를 확신시킬 수 있는 전(全)
차원의 압도적 군사능력 보유가 특징이다. 그 일환으로 중무장한 해외주둔 지상군의 규모는 감축하는 대신 해·공군력 강화 및 첨단무기 배치 증강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주둔국의 정치·사회적 여건이 지상군의 주둔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주둔국의 반미감정을 무릅쓰고 굳이 지상군을 무리하게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걱정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단순한 자주국방론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자적 정보수집 능력, 지휘자동화 체제 등 정보화
시대 첨단군사력으로의 변모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21세기 한국의 군사안보를 강화하고 미래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군 정보자산 확충
및 정보력 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 기반 위에 구시대의 자주국방론을 넘어선 21세기 안보협력론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셋째, 21세기 한반도 미래 안보를 위한 군사혁신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우리 군 자체의 합리화와 적절한 안보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 군의 운용구조상 인건비가 국방 예산의 대략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재의
노동집약적 구조로는 미래의 안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미래의 안보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정보화·첨단화 추세가
두드러지는 해·공군의 경우에 한 번 낙후되면 전투력 회복에 상당한 시일과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므로 해·공군 전력의 취약 분야 보강이 시급하다.
또한 하나의 무기체계를 전력화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최소한
10~20년 이후를 내다보고 투자해야 적기에 전력 발휘가 가능하다. 우리 군의 노동집약적 구조를 탈피하여 첨단정보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군
내부의 뼈를 깎는 합리화 노력과 더불어 적절한 국방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밖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자주국방 태세를 특별히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자주국방 능력을 확보하겠다고 언명한 목표시한은 10년이다.
그러나 현재의 북핵 위기나 한반도 주변국들의 역학관계만 봐도 21세기 한반도 미래 안보는 단순히 우리의 내적 역량 강화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21세기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보전략의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보화 시대의 지구 역량을
동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21세기 안보관을 하루 빨리 마련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 이·상·현
1960년생.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국제안보와 한·미관계, 전쟁 및 갈등이론, 지역분쟁, 정보화와 군사안보, 미래전 등의 분야를 연구해 왔음.
현재 외교통일안보분과 국정자문위원, 민주평통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음.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대기획 한반도‘백년대계’
(3)
IT
‘IT 시장 블록화’에
대응하라
|
인터넷이 상거래 및 교역의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정보기술
표준과 산업화를 둘러싼 세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정보화 경쟁환경에 맞도록 변환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정보기술의
실험장’한국은 21세기 새로운 문명 표준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있는 것인가?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 속에서 우리 기업과 국민 모두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을 떠나는 국내외 기업들과
30·40대의 해외이민 열풍, 빈부격차의 확대, 청년실업의 증가, 가계 파산의 속출과 신용불량자의 양산, 여기에다 IT강국이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IT의 낮은 비즈니스 침투도, 원천기술의 부재와 경직화된 국제 협력 때문에 한국 경제와 ‘사이버 코리아’의 현주소는 매우 우울하기만 하다.
21세기 한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돌파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세계적으로 전통산업에 속한 많은 기업들은 인터넷시대를 맞이하여 기업활동
전반에 정보기술을 활용하며 새로운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정도로 인식하던 e-비즈니스에 대한
착시현상에서 벗어나 e-변환(e-transformation)을 통해 거래비용 절감 및 판매증대, 나아가 ‘가치 사슬’ 전반을 재구성하는 기업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기업정보화를 의미하는 e-변환이란 생산ㆍ제조ㆍ판매, 나아가 조직ㆍ문화에
이르는 기업의 전반적인 영역에 정보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은 21세기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통기업의 e-변환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전자 상거래를 의무화하는 추세이며, 나아가 거래 기업들에도 전자 상거래 도입을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기업들에도 무시할 수 없는 e-변환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e-변환을 서둘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의
고객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인터넷 공간으로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외의 압력 속에 더 이상 철 지난 성공모델과 투지만으로 우리의
기업, 산업 및 국가 경쟁력을 논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전통기업이 미국 및 일본의 선진기업들과 중국의 후발 기업들에
‘협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유일한 선택은 글로벌 기업이 IT를 기반으로 어떻게 자신들을 변환시켜 가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가를
하루 빨리 배워서 체화하는 것이다. 또한 IT를 비롯한 지식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규모와 기술을 갖춘 기업을 길러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구매자 중심형 전자상거래 확산
정보기술과 e-변환이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권력관계나 시장구조를 확대 재생산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기업간 전자상거래규모를 업종별·형태별로 보면
‘제조업 구매자 중심형’ 전자상거래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폐쇄적 수직 계열화가 정착되었던 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구매자
중심형의 전자상거래가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e-변환이 수직 계열화를 수평적으로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 구도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의 수직적 관계가 전자상거래 도입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상거래의 확산과정에서 정보기술이 동아시아 거래관행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온정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ㆍ계속적 거래를 폐쇄적인 형태로 유지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거래비용의 절감이라는 이점이 작용한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지구적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e-변환을 통해
조직의 자원을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경쟁 요소를 아웃소싱함으로써 기업의 조직과 문화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경쟁적
강제(competitive oppression)’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거래의 개방화, 투명화가
불가피하다.
폐쇄적인 기업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e-변환 추진에서
모기업과 협력업체의 ‘협업적’ IT화 추진이 매우 중요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성과에 대한 확신과 투자여력이 부족한 관계로 자체적인 e-변환을
추진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e-변환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e-변환 지원을 처음부터
개별 기업에 국한시키지 말고 대기업과의 협업적 거래 기반의 구축을 전제로 하면 보다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갑을(甲乙) 관계’로 묶여온 종래의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위계적, 온정주의적 거래관행에서 벗어나 공생의 협업 환경을 갖추기 위한 조직적ㆍ문화적
변화도 중요하다.
IT산업 중심축, 동아시아로 이동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는 경쟁환경에서 한국의 IT전략은 e-변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에 기반을 둔
국제협력 역시 중시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지역 협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세계 IT표준의 지역주의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라
IT시장의 블록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유럽전기통신표준화기구(European Telecommunication Standards
Institute)나 북미의 T1위원회와 같은 지역적 표준화 기구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주의화의 진전은 보다 체계화된 IT
표준화 정책을 통한 지역의 공동 이익 추구와 국제 표준시장에서의 교섭력 강화 등을 위한 지역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주의와
다자주의적 질서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기술 및 수요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다자주의적 체제 속에서 보다 큰 교섭력을
확보하려면 개별적 행동보다는 ‘일정 규모를 갖춘 동질적 소수에 의한’ 집단적 대응이 효과적이다.
한ㆍ중ㆍ일 IT협력은 세계 IT산업을 선도하는 미국과 유럽의 지역주의적
움직임에 대응하는 한편, 최근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세계 IT산업의 중심축이 유럽ㆍ미국에서 동아시아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IT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3국 공동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통화ㆍ경제위기 이후 동아시아의 ‘정서적’결속 무드와 한ㆍ중ㆍ일 IT시장의 보완적
비교우위 구조 등이 협력의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ㆍ중ㆍ일 3국간의 IT협력은 정부간 시범사업 협력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협력의제가 점차 확대ㆍ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차세대 인터넷과 이동통신(표준과 산업의 연계)으로 핵심의제의 중심축이 이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ㆍ중ㆍ일 IT 국장급 전문가회의, IT장관회의의 순차 개최를 통해 한·중·일 IT협력체제의 제도화가 가시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세계 IT 시장의 블록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한ㆍ중ㆍ일 IT
협력 강화를 IT분야 정책목표의 하나로 내걸고 있다. 특히 CDMA 이동통신의 해외(특히 중국) 진출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정부조직이나 각종 지원체계에도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관이 주도하고 민이 협조하는 ‘개발국가형’ 산업정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 배후시장 될 수 있을
것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IT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은 향후 한국이
세계 표준화를 준비해 나가는 배후시장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시장을 겨냥한 IT수출의 극대화 등 단기적인 이익추구는 장기적으로 시장
기반을 잠식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장 휴대폰 몇 개를 더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을 IT에 관한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시장의 표준화를 함께 주도해 나가야 한다. 지나친 단기적 이익추구는 이러한 미래지향적 한·중 공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IT분야는 정부의 역할은 물론, 민간의 활력과 시장메커니즘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책의 흐름, 기술동향 및 시장의 수요가 합류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의 전통기업들이 선진국 기업들과 중국 등 후발국 기업들의 ‘협공’에
침몰되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e-변환을 통해 부가가치 증대 활동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IT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사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IT분야의 글로벌 리더 기업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업체들의 e-변환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정책 차원에서는 20세기형 산업정책과 중상주의적 ‘국제협력’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한ㆍ중ㆍ일 IT협력이 열린 지역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기존의 양국간 협력 관계는 물론, 기존 지역기구나 국제기구와의
복합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국가지(知)의 확립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한국이 21세기 문명표준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정보기술의 각축장을
넘어서서 진정한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돌파구는 전통기업의 e-변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IT기업 육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업적
IT화 추진 그리고 열린 한·중·일 IT협력체제의 강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웅·희
1964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일본 쓰쿠바대 국제정치경제학 석사,
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경제연구부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 주요 논문으로는 ‘아시아국가의 IT혁명’
‘한ㆍ중ㆍ일 IT협력의 정치경제’ 등이 있음.
김웅희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
대기획 한반도‘백년대계’
(4)정보혁명
첨단
지식국가를
만들자
|
우리가 정보혁명시대에 살고 있다는 표현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만큼
진부해졌다. 인터넷의 발명이 불, 문자, 인쇄술에 이어 인간들을 이제까지 익숙하게 체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혁명은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처럼 눈에 띄는 정치적
사건을 수반하지 않고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용한 혁명은 과거의 어느 혁명보다도 혁명적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살아 왔던
공간과 국가의 내용에 과거와는 다른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인류사적 변화의 폭풍을 인터넷 강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내년은 윌리엄 깁슨이 자신의 과학 상상소설인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사이버 공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팀 버너즈에 의해 고안된
월드와이드웹(WWW)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정보화 시대의 상상력의 천재인 깁슨이나 버너즈 자신들도 사이버
공간이나 월드와이드웹의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보혁명의 내일 역시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서 달려가고 있다. 현재 진행 초기 단계인
정보혁명의 암호는 네트워크와 지식이다.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확산은 정보와 지식의 존재 형태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거의 무한대로 제공되는 디지털 정보를 기반으로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비현실적 현실 공간’이 새롭게 탄생했다. 정보혁명은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정보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은하수 공간 속의 수많은 디지털 정보의 별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지식 혁명의 길을 닦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랫동안 폭력이나 금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지식이
폭력이나 금력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로 때로는 이에 버금가는 권력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 우월한 정보력과 첨단 정보무기들을 확보하는 것이 전장의 승리를 위한 기본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소프트웨어,
디지털 콘텐츠, 제약 및 바이오 산업 등의 상품 가치는 물리적 생산 비용이 아닌 아이디어나 연구개발 활동과 같은 지식노동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21세기 힘의 요소로서 군사력과 경제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식력이 눈에 띄게 급부상하고 있다.
21세기형 국가는
‘지식국가형’
지식과 네트워크가 새로운 질서를 짜는 중심축이 되면서 정보혁명이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될 21세기, 더 나아가서 22세기 역사의 주인공은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기변모에 성공하는 개인ㆍ집단ㆍ국가가
될 것임이 명백하다. 21세기 문명표준의 핵심적인 내용인 지식과 네트워크는 아날로그적으로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디지털 존재들이다. 디지털 존재로서의 지식은 단지 수능시험이나 과학올림피아드, 각종 퀴즈 시합 등의 순위로 측정될 수 없다. 다양한
자원을 아웃소싱하고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조정하고 아우르면서 당면한 현실 속에서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제도화된 종합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지식력의 구체적인 결과물인 새로운 상품이나 정치외교적 정책현안에 대한
해결책의 내용과 질의 차이는 어떤 지식들이 투입되고 어떤 제도적 틀 안에서 상호작용 하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네트워크는 국가적 차원에서 가용한
지식 자원의 질을 높이고 제도나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틀이다. 21세기 국가는 국가 안과 밖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짜고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아우르면서 국가 밖의 ‘지구지(知)’와 국가 안의 ‘사회지’를 모으고 조정하며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식력을 활용해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화적 현안들을 풀어가는 ‘지식국가’로 변모되어야 한다.
지식국가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한국은 현재 GDP
규모로 세계 12위, 군사비 지출 규모 세계 10위의 지위에 있다. 총량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은 지식경제력 및 지식군사력과 차이가 있다. 우리의
경제 및 군사력 구조로 볼 때 지식경제 및 지식군사력은 전체 경제 및 군사력보다 높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 국가의 지식 자원의 척도로 흔히
쓰이는 연구개발비, 특허 및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 등의 경우 한국은 연구개발비 지출 규모 세계 8위, 미국특허 등록순위 세계 6위,
국제학술지 과학기술논문(SCI) 게재 순위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어 얼른 보기에 지식 자원량의 측면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러나
지식력의 핵심적인 부분을 가용 지식 자원의 양보다 오히려 다양한 주체들이 가진 지식들을 모아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지식에 기반하여 문제를 풀거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지구지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본다면 현재 한국의 지식력에 선뜻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
어렵다.
익숙한 세계화 구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지구지를 형성하는 중심이
아닌 변방에 위치해 있다. 지식 식민지로서의 오랜 역사에 찌든 우리들은 오늘 부딪치고 있는 독특한 문제들을 스스로가 생산한 보편적인 지식이나
개념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개인, 기업, 대학, 시민단체 등 개별 지식주체들은 세계지식질서 중심에서 형성된 지구지의 단순한 도입이나 소개에
급급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한 채, 특정한 이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피상적 견해들만 양산하고 있다. 지구지는 우리를 한참 앞질러 나아가고 있고 사회지는 당면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식국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촘촘한 ‘지식 네트워크’ 구축
필요
우리의 기술혁신체제가 모방형에서 창조형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위도
핵폐기물저장소 설치 논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논란, 이라크 파병 문제 등과 같은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도 혼란만 심화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무식국가에서 지식국가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기술의 성공적 도입 및 소화를 넘어선 프론티어 기술 개발은
몇몇 과학자나 기업인들 중심의 단기적 투자로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초연구, 고급인력, 산학연 연계 등 기술혁신체제 저변에
대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투자와 개선보다 가시적인 10대 성장동력산업을 선정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핵폐기장 설치 이슈는 우리의 당면 문제 푸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문제의
다양한 해결 방안들이 제기되고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식에 기반하여 합의를 모으는 노력이나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도깨비 방망이 뚝딱식으로 일방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나서 당사자들은 좁은 시야의 제한된 정보에 기반한 이해타산에 따라 찬반으로 갈려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 과정에서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과 적절한 보상이라는 본래의 의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부안군수 폭행, 청소년 등교
거부 등 주변적인 이슈들이 더욱 부각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해결의 방향에서 점점 멀어지게 됐다. 안면도, 굴업도,
경남 양산, 전남 영광 등을 거쳐 위도에 이르는 10여년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높이고 정확한 지식을 축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은 심화되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지식국가인 프랑스, 일본의 경우에는 활발한
반핵운동의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가 오랜 기간에 걸쳐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고, 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보상의 청사진을
제시, 설득함으로써 난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간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지식국가로 성공적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안과 밖으로
촘촘한 지식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지구지와 사회지의 양과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시에 이들을 활용하여 우리의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과 합의를 형성하기에 적합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이다.
우리는 21세기의 기술, 20세기의 제도, 19세기 의식구조라는 서로
어긋나는 부조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정보통신 인프라는 지식국가 수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사회 제 영역에서 제도나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각종 선거에 인터넷이 활용되고 공공기관마다 온라인 집을 짓고 있지만, 우리 정치가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상충되는 요구를 21세기 첨단
정보기술에 기반한 지식력으로 수렴시키는 제도와 의식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인프라뿐 아니라 제도와 의식의 21세기화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
지식국가 건설의 핵심 과제이다.
배·영·자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석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정치학 박사. 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분야를 주로 연구해 왔음.
한반도‘백년대계’
(5)·끝-문화
한국형 ‘문화비빔밥’을 만들라
네트워크의 문화산업전략이 추구하는 목표는 단일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품을 수
있는 복합문화국가라야
한다.
|
정보혁명의 꽃은 단연코 문화 콘텐츠(contents)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리 삶의 토양에 정보와 지식이라는 씨앗을 뿌린다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정보문화 콘텐츠의 꽃을 피운다. 정보혁명이
진전되면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나 콘텐츠가 핵심적 요소로 등장할 것이라는 논의는 바로 이러한 이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렇게 부상하는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노무현 정부가 그 출범 이후 ‘문화산업 강국의 실현’을 12대 핵심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내세우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
▲ 대만의 서점에서 한국 연예인의 사진이 담긴 잡지를 보고 있는
모습 | 지난 식민지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문화라고 하면 으레 방어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였다. 실제로 최근 문화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양식도 다분히 19세기적인
저항 민족주의의 양상을 띠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요란한 시위를 벌이면서도 결국 구조적으로는 밀려오는 압력 앞에서 부지불식간에
무너져 버리곤 했던 것이 바로 우리 문화역량의 현 주소였다.
이에 비해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문화산업 강국론’은 일단 이러한 수세적인
외양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우리 문화의 기개를 펼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문화산업 강국에의 포부는 최근
문화 분야에서 한국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예를 들어 ‘한류(韓流)’의 성공, 한국 영화의 성장,
온라인게임과 사이버 문화공동체의 활성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실리콘밸리+헐리우드=실리우드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문화산업 강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잡화점식으로 제기되었던 기존의 논의를 넘어서 좀더 체계적인 전략을 구사하여야 한다. 특히 문화 콘텐츠를 요체로 하는 정보화시대의 코드를
제대로 읽고, 이에 부합하는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산업전략이 성공하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정보문화의 코드는 무엇이며 한국이 택해야 할
전략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가?
정보화시대를 맞이하는 세계문화산업의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그 핵심에
굳건히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화시대 미국의 문화산업패권을 표현하는 용어로 ‘실리우드(Siliwood)’라는 말이 있다.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와 헐리우드(Hollywood)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영화산업의 종주로
군림해왔던 헐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이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과 제휴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실리우드는 문화산업계의 주도권
변화를 반영한다. IT가 문화산업의 영역에 활발하게 도입되면서 아날로그형 헐리우드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형 실리우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실리우드의 영향력은 전세계적으로 대단한 것이어서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 실리콘밸리에서 개발된 첨단 IT의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은 영화가 없을 지경이다. IT 특수효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토이스토리’ ‘슈렉’ ‘매트릭스’ 등의 영화가 모두 이러한 IT 특수효과를 이용한
사례들이다.
실리우드의 등장은 영화의 제작이나 보급의 양상도 바꾸어 놓고 있다. 특히
실리우드의 등장은 스토리 구상과 영화 제작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았다. 종전에는 특수효과를 만들 수 있을지를 따져보고 영화의 스토리를 구상했다면,
지금은 IT의 도입으로 인해 어떤 효과든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영화감독들의 구상은 날개를 얻었다. 또한 IT의 도입은 극장에서만 즐기던
문화 콘텐츠의 통로를 다양화시키고 있다. 즉 영화가 개봉되면 동시에 TV와 비디오는 물론이고 CD롬 타이틀, 테마파크, 가상현실게임, 뮤지컬,
캐릭터 등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원작을 다양하게 변형시켜서 시장을 공략하는 소위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의 전략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실리우드의 등장은 기술의 우위가 문화의 지배로 전화되는 정보화시대
세계지식구조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실리콘밸리의 지원을 받은 헐리우드는 종래에 행사해온 ‘연성권력(soft power)’의
메커니즘을 정교화시키면서 미국의 문화패권을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행사되는 연성권력에 대한 논의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영화와 방송 및 인터넷 매체를 타고 전파되는 실리우드의
생산물들에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동원되는 자본의 엄청난 규모는 고사하고라도 정보화시대를 맞아 기술ㆍ정보ㆍ지식이 가지는 권력으로서의 함의를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실리우드의 생산물에 담기는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문화(global culture)’라기보다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디즈니, 스타벅스 등으로 흔히 상징되는 미국의
대중문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미디어의 세계화에 힘입어 등장한 소위
‘맥월드(McWorld)’에서 유통되는 지배적인 논리는 미국적인 가치와 문화규범에 맞추어 세계 각 지역의 문화를 재구성하려는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s)’의 확산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문화 분야 글로벌 스탠더드의 실체가 ‘아메리칸
스탠더드(American standards)’라는 데 있다.
미국 주도의 문화 세계화에 대한 반(反) 세계화운동이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대목이다. 유럽영화제의 반(反) 헐리우드적인 수상작 선정의 관행이나 한국에서의 스크린쿼터제 수호운동 등의 사례는 거대한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문화제국주의의 횡포’를 자행하는 실리우드에 대한 저항의 양식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지하드(Jihad)’적인 대응이 그리 쉽게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숨을 돌리기
위한 임시방편의 방패막이 노릇은 할지언정 급속히 부상하는 실리우드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일 수는 없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용이냐 아니면
저항이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발상을 넘어서는 좀 더 정교화된 정보문화의 전략이다.
구시대적 이분법 벗어나야
우선 한국이 추구하는 문화전략은 정보문화의 코드를 제대로 읽는 전략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보문화 코드의 핵심은 다름 아닌 네트워크이다.
사실 실리우드가 성공한 비결도 바로 네트워크에 있다. 일차적으로는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과 헐리우드 영화제작 스튜디오들간의 네트워크에서 출발하여 실리우드가 전세계적으로 수립한 글로벌 하청 네트워크가 바로
그것이다. 더 나아가 실리우드가 지구상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미국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다양한 문화 인자들을 네트워크로 엮어내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토양이 미국의 정책과 제도에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보문화전략도 안과 밖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에서 그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인천 송도지역, 상암동 DMC(Digital Media
City), 부산 센텀시티 등에 고려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집적화단지’에 대한 구상은 적절한 방향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안으로
웅크리는 ‘집적단지(cluster)’가 아닌, 밖으로 열린 네트워크의 ‘노드(node)’를 지향하는 발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네트워크의 문화산업전략이 추구하는 목표는 단일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품을 수 있는 복합문화국가라야 한다. 대외적인 문화의 흐름에 대해서도 개방과 규제의 복합적 발상이 중요함은 물론이고
정부, 기업, 대학 등의 활동에서 소위 ‘문화적 이단아’를 관용하는 풍토의 조성도 필요하다. ‘코리안 스탠더드(Korean
standards)’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기 위해서는 지구문화 대 민족문화, 전통문화 대 현대문화 등과 같은 구시대적 이분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한반도의 복합문화가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리고 지구, 국가, 지방,
사이버공간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맛있게 비벼서 한국형 지구 비빔밥으로 21세기 지구인들을 매혹시킬 수 있을 때 ‘코리안 스탠더드’는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더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 김·상·배
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ㆍ석사.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박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탈 근대세계정치론을 강의 및 연구하고 있음. 주요논문으로는 ‘세계표준경쟁의 정치경제’
‘정보화시대의 한글민족주의’ ‘정보화시대의 외교’등이 있음.
김상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주간조선 2003년
11월
|
특별기고 ‘한반도 백년대계’를
읽고 승부는 소프트웨어의
질이다
|
서울대 하영선 교수팀이 주간조선 10월 23일자(1775호)부터 총 5회에
걸쳐 연재한 ‘한반도 백년대계’ 시리즈를 읽고 유석진 서강대 교수(정치학)가 리뷰를 보내 왔다. 정보혁명 시대에 국가 경영 각 분야의 미래상과
대안을 제시한 이번 시리즈에 대해 유 교수는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며 ‘껍데기만의 정보통신 강국’이 아니라 진정한 정보통신
강국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10월 31일 발표한 세계경쟁력 보고서 2003~2004 현황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력은 세계 102개국 가운데 6위를 기록하였다고 과학기술부가 밝혔다. 기술혁신 지수는 7위, 정보통신 지수는 11위를 각각 차지하였다.
기술부문 세부평가 항목별로 우리나라는 인터넷서비스(ISP)의 질 1위, 인터넷 사용인구 3위, 학교 내 인터넷 접속과 정부의 정보기술산업 정책이
각각 4위로 평가되었다. 기술경쟁력에서 1위는 미국이었으며 핀란드, 대만, 스웨덴, 일본, 한국이 뒤를 이었다. 또한 11월 4일 유엔사무국
경제사회부가 발표한 2003년 전자정부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전자정부 준비지수에서 13위, 온라인 정치참여지수에서 12위에 각각 랭크됐다.
정부 웹사이트 평가지수는 이보다 낮은 18위였다.
2000년 IT수출은 513억달러에 달해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했으며,
무역수지 흑자액의 6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D램(RAM) 반도체, CDMA 단말기, 브라운관(CRT) 및 액정화면(LCD)의
수출액은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
산업화에서는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 나가자며 정보통신 입국을 기치로
내걸고 매진해온 지난 10년을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 정보화이다. 즉 잘 구비된 하드웨어에 무엇을 담아내고 어떤 방식으로 운용을 하여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 민중주의 경계를
잘 구비된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론 정보
검색, 인터넷 쇼핑과 뱅킹(banking), 토론 등 건설적인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음란 사이트의 활성화, 개인 정보의 유출 등 부정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나고 있다.
21세기를 규정할 정보사회는 어떤 과제를 한국에 던지고 있는가? 정보사회는
필연적으로 산업사회와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여야 한다. 우선 작년 월드컵에서의 ‘붉은 악마’ 열풍, 촛불시위, 노사모 등의
새로운 사회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 새로운 매체가 없었으면 불가능하였을 현상이 정보사회를 매개로 하여 가능해진
것이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독립신문 등의 새로운 매체가 기존 언론의 보도와 논평에 대한 독점을 허물고 있다.
이제는 시민 스스로가 기자가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수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화는 기존의 권력에 의해 배제되어온 의제를 제기하고 표출하는 데 의미있게 접합될 수 있다. 이렇게 제기되는 이슈는 거시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이라기보다는 일상과 관련된 미시적인 쟁점이 많을 것이다. 일상의 정치와 관련된 이슈들이 기존의 문지기(gatekeeper)를
우회하여 자유롭게 사이버 공간에서 제기되고 조직화될 수 있는 기술적인 요건이 만족된 것이다.
기존의 정치체제에서 특정한 쟁점을 제기하고 싶어도 의제설정 권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였던 집단은 철저하게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기껏 의존할 수 있는 통로는 언론을 통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이것이 사회적 공론화되기를 기다리는 정도였다. 전태일은 이를 위하여 분신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정보화의 진전으로 인하여 개인이 당한 불이익이나 차별 등을 사이버
공간에 게시하여 전파하고 이를 통하여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최근 진행된 군 내부의 성희롱문제, 소비자권리 찾기 운동
등은 이러한 권력의 독점 해체라는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정보사회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여야 하는 부분은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 속에 나타나고 있는 사이버민중주의(cyberpopulism)의 위험이다. 여과되지 않고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주장이 난무하고,
전문적 지식과 식견을 갖추지 못한 대중은 이러한 사이비 논객들의 주장에 휘둘리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라고 우려하였던 점이 정보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의 해결을 위하여는 심사숙고한 의견에 기초한 토의와 심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정보화라는 하드웨어가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이고, 이의 해결을 위하여는 한 단계 성숙된 정치문화와 토론문화의
정착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개선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정보사회는 국가안보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물론 군사력을 통한
안보의 확보라는 전통적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국가기간 전산망이 확보되면서 새로운 안보위협이 생겨나고 있다. 악의적인 해커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전산망을 해킹하였을 때 발생할 사회적, 국가적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1ㆍ25 인터넷 대란은 이러한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라크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군사기술의
혁신(RMT:Revolutions in Military Technology)과 이에 따른 전쟁 개념의 변화는 탱크와 미사일 수로 판단되던
군사력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군사분야에서의 혁신(RMA:Revolutions in Military Affairs)과 안보분야에서의
혁신(RSA:Revolutions in Security Affairs)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국가안보가 확보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이 또한 소프트웨어에서의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IT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여 볼 때,
과연 현재와 같은 산업정책과 기술정책 그리고 수출정책을 통하여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IT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는 때이다. IT산업이 가지는 전통적인 굴뚝산업과의 차별성을 고려하여 전면적인 국가정책의 재편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차세대 이동통신이나 디지털 TV 방식의 선택에서 보이듯이 세계적 기술표준 혹은 지역적 기술표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동원된 군중 아닌 영리한 군중이 문제해결을
네 번째로 정보사회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네트워크의 기본 속성은
생산된 지식을 공유하면서 상충되는 의견을 조율하여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방사능폐기장, 고속철 노선, 새만금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경험하면서도, 매번의 갈등이 일회성으로 그치고 아무런 교훈과 해결의 원칙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기반한 지식국가 모형의 창출이 시급하다. ‘동원된’ 군중에 의한 물리적 해결이 아니라 ‘영리한’ 군중에 의한 지식국가적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역시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문제인 것이다.
다섯 번째로 확보된 사이버 공간에서 무엇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사이버 공간에 외국의 문화적 콘텐츠만이 판을 치고 돌아다닌다면 외국의 문화에 점령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하여 문화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또한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가질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여 본다면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반도체 등의 하드웨어가 벌어들일 외화보다 문화 콘텐츠가 벌어들일 외화가 더 커질 시점을 빨리 앞당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 소재를 개발하여 세계화시키는 작업이 절실한 것이다. 이 또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문제이다.
정보통신강국을 모토로 21세기를 준비하면서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일정하게
성과를 이루어 왔다면, 이제는 확보된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하여 보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소프트웨어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껍데기만의 정보통신강국이 아니라 진정한 정보통신강국이 되어 21세기의 번영과 평화를 정착하고, 22세기를 대비하기 위하여 반드시
사회의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유석진 서강대 정외과 교수
주간조선 2003년
12월4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