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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2007.11.08 문화일보

이강기 2015. 9. 8. 17:00

지난 10년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김태기(단국대 교수.경제학)

 

2007-11-08  문화일보

 

 

 

역사의 한 기간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리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의 이면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들의 생활고와 이렇게 만든 정부에 대한 불만과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이 깔려 있다. 여기에다 미국과 일본 등 우방들과의 마찰 등으로 한국이 고립되고 있다는 불안감과 지난 10년 사이에 중국이 급속하게 경제군사대국으로 등장하는 데 따른 위기감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최근 10년 동안 주도권을 잡았던 세력들은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경제성장, 고용 및 실업, 결혼 및 출산 등의 통계지표는 단순한 상실감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잃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졌고 빈곤계층이 증가했으며 파탄난 가정이 많아졌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의 더 큰 문제는 미래의 사회 발전과 통합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꾼 것인지 모른다. 가치관은 사람들의 상황에 대한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며 쉽게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난 10년과 그 전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정체성을 흔들 정도로 가치관의 대변화가 있었다. 남녀평등 확대 등 바람직한 변화가 적지 않았지만, 국가는 물론 개인의 발전에도 저해되는 걱정스러운 움직임도 많았다. 예를 들면,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기보다는 일하지 않고 부모한테 기대어 사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의 자립심 저하만 우려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이익보다는 목전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현세 지향적인 가치관과 자신의 이익 때문에 가족이나 국가 등 공동체의 이익을 경시하는 개체주의적인 가치관은 사회 갈등을 키웠다.

개인의 가치관은 환경의 산물이다.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가치관의 대변화는 정치·정책철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러한 현상은 노무현 정권 아래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10년 정권을 승계하겠다는 여권의 정동영 후보는 가치 논쟁을 이번 대선의 핵심 전략으로 삼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의 정치·정책철학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집권세력은 정부의 시혜적인 기능을 강화했다. 세금을 적게 거두고 규제를 줄여 사람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기보다는 세금을 더 거두고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자원 배분에 관한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강화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는 현상유지정책에 주력하다보니 자립심이 약해졌다. 또한, 교육 기회의 다양성보다는 형평성을 중시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교육 기회의 형평성만 강조하다보니 학생들의 창의성이 퇴보했다.

지난 10년 동안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보면 집권세력은 북한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폐쇄적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지극히 온정주의적이지만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자세를 보였고, 중국 등 외부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집권세력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도 눈을 감았고,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는 데도 지원만 강조했다. 이것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과 선진국으로 하루빨리 도약하려는 진취적 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집권세력은 사회 구성원들을 적과 동지로 편 가른 것은 물론 많은 국민이 공유하고 있던 기존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등 이분법적인 구분은 한국민 특유의 강한 응집력을 떨어뜨렸다. 또, 집권세력의 독단적인 역사 수정 작업 역시 통합보다는 분열적인 태도를 자극했으며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후퇴시켰다.

지금이라도 ‘잃어버린 10년’이 역사 발전의 낭비가 아니라 투자가 될 수 있도록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일에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