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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과 부끄러움의 정치학 - 2007. 06. 10, 경향신문

이강기 2015. 9. 8. 17:01
[시론]盧대통령과 부끄러움의 정치학
입력: 2007년 06월 10일 18:11:38, 경향신문
 
유창선/ 시사평론가〉

“쪽팔린다”고 했다. 본질이 아닌 말꼬리나 잡으려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5년 단임제를 가리켜 “쪽팔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6.10항쟁 20주년을 이틀 앞두고 노 대통령은 그런 말을 했다. 현행 5년 단임제가, 장단점이 함께 있는 제도이지만, 그래도 6월항쟁의 성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말이다.

‘쪽팔린다’를 보통의 성인들이 하는 말로 바꾸면 ’낯 부끄럽다‘ 정도가 될 것이다. ’부끄럽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간은 부끄러움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자신을 키워나간다. 흔히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쓰는 것도,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성찰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태도 속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부끄러움의 덕목같은 것은 아예 잊고 지낸다는 생각이 든다. 선관위의 선거법위반 결정이 있은 바로 다음 날, 노 대통령은 그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거듭되는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실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대통령은, 거꾸로 선관위와 선거법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었다.

요즘의 노 대통령을 지켜보다가 뒤틀려버린 심사때문인지, ‘노명박’ 이야기도 단순한 조크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할지 모르지만, 국민과의 철저한 엇박자이다. 요즘 시중에서는 다시, 모이면 노 대통령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거듭되는 선거법위반이 불러온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건만, 노 대통령은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 이 판에, ‘노명박’만큼만 하라는 이야기가 국민들 귀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원광대에서 있었던 노 대통령 특강의 문제는 단지 ‘표현’의 거칠음을 넘어, ‘발상’ 자체가 거칠다는데 있다. 국법준수를 선서했던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과 다르다해서 선거법을 ‘위선적’이라고 욕보이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 다른 헌법기관들의 결정에 개의치않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있을 수 있던 일이다. 기자실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해버리고 넘겨주겠다고까지 했다. 자신의 판단과 정책만이 옳다는, 그러니 누구도 손대서는 안된다는 독선적 사고를 읽게 된다.

선관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선거법을 준수하라는 요구에 대해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선관위 결정을 무시하는듯한 발언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6월항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를, 노 대통령이 오히려 훼손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노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사에서 말한 ‘기득권세력’ 발호의 상당 부분이 바로 자신에 대한 민심이반의 결과일진데, 정작 노 대통령은 일말의 책임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말로 ‘쪽팔려’할 것은 5년 단임제가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기성찰 결핍증에 걸린 대통령 때문에, 우리가 대신 부끄럽게 되는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