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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이상주의 실험 -「헌정」12월호, 2007-12-17

이강기 2015. 9. 8. 16:58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이상주의 실험

 

김태우(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대한민국헌정회 발행 「헌정」12월호, 2007-12-17

 

 
 
  보혁대결 구도와 지역대결 구도를 절묘하게 접목시키면서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좌파적 이상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는 그 토양 위에서 좌파적 이상주의 정책들을 실험했다. 금년 대선은 10년에 걸친 좌파적 실험의 지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좌파적 이상주의는 복지강화, 세금폭탄, 교육평준화 시도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발현되었고, 대북정책에서는 안보보다는 ‘민족화합’을 중시하는 ‘햇볕정책’과 그 계승정책인 ‘평화번영정책’으로 나타났다.
 
 대외정책에 있어 좌파적 이상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득세를 가져와 ‘자주,’ ‘반미,’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의 주장이 분출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 연장선에서 전시작전권 분리, 연합사 해체 등을 통해 한미동맹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러한 정책실험에 대해 경계와 우려를 가지고 대치되는 시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우파적 현실주의였다. 이제 한국사회는 이 두 개의 시각이 대치하는 숙명적 대결장이 되고 있다.
 
  사실 이 두 개의 시각은 어느 하나가 완전히 맞고 다른 하나가 완전히 틀린 흑백론적 관계에 있지 않다. 대북정책에 있어 ‘민족화합 중시’와 ‘안보 중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대개의 정책들도 조화와 균형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어느 한쪽이 집권하면 늘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남남갈등은 언제나 격렬한 갈등을 유발한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도 다양한 공과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재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눌린자들’의 요구가 분출되었고, NGO들이 권위의 상징들을 맹타하여 국민의 눈높이로 끌어내렸다.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어 투명성이 한결 높아졌으며, 서울의 위세에 눌려 살았던 지방주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노무현 정부의 이상주의적 실험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주의, 정치 투명성, 부패척결, 국토의 균형발전 등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진전을 이루었거나 필요성을 공감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스스로도 ‘서민의 정부’로서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남과 북의 철도가 열리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시대가 열리지 않았느냐”라는 반문과 함께 ‘전쟁위험을 감소시킨 성공적인 정책실험’으로 자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 국민이 심리적 위안을 얻는 동안 대한민국은 많은 실질적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오심이 확산되는 동안 국민의 개인소득 수준은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고, 한국의 경제위상도 러시아, 브라질 등의 추월을 하락하여 12위에서 14위로 낮아졌으며, 한미동맹의 약화로 한국의 외교적 자산도 감소했다.
 
 전쟁위협을 덜 느낀다고는 하지만 핵무기를 만드는 북한에게 돈을 보태준 측면이 없지 않으며,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국안보는 북핵의 인질로 전락했다. 안보위협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안보의식이 희석된 것이다. 빨치산 출신들이 유공자로 둔갑되는 동안 토벌에 참가했던 군경 가족들은 통분했고, 서해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정부 지도자의 발언은 NLL을 지키다가 전사한 장병들의 가족들에게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한국사회는 지난 10년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대간, 지역간, 빈부간, 고저학력간 분열상을 확대재생산해왔으며, 지금은 북핵 문제, 역사관, 대북정책, 동맹, 국보법 개폐문제, 정부의 규모, 한미 FTA와 대외개방, 교육평준화, 이라크 파병,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 등 부상하는 중요 이슈마다 격론을 수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가정체성도 희석되었다. 북한주민을 우군화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대북지원이 북한정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하는데도 멀쩡한 사람들이 “대북지원이 평화통일을 앞당긴다”라는 궤변을 태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상당부분 인정한 “6·15 선언을 고수한다”는 2007 남북정상선언을 ‘평화통일을 앞당길 민족적 쾌거’로 치켜세우기도 하며, 엄연히 다른 체제를 가진 남과 북이 각각의 군대를 거느리고 대치하고 있음에도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함부로 거론되고 있다.
 
 주권을 지키는 문제마저 찬반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마당에 ‘역사와 후세에 대한 반역’이라는 합의된 꾸중을 기대하기는 무리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적지 않은 남한 사람들이 “북핵이 남한도 지켜줄 것”으로 화답하고 있다. 숱한 희생을 치루면서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적·시장경제적 국가정체성은 이제 풍전등화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정책사이클과 정치사이클
 
  한국사회의 분열과 국가정체성의 희석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좌파적 이상주의에 기생해온 정치세력에 있다. 그들 역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엘리트 계층으로서 기계적인 평등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짧은 정치사이클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에 ‘발등의 불’을 끄는데 급급했다.
 
  과다한 복지정책이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부를 누린다”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침식하고 기계적인 교육평등이 국가경쟁력을 훼손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므로 후일 좌파적 정책들이 초래할 왜곡과 부작용을 걱정하기에 앞서 편가르기를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일이 더 다급했다.
 
  부자와 고학력자에 대한 증오는 빈자와 저학력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고, 서울에 대한 역차별은 일부 지방민들의 환호를 끌어냈으며, 강남에 퍼부은 세금폭탄은 강북 주민들에게 통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자주,’ ‘국가자존심’ 등의 구호는 젊은이들의 폐부를 파고들었고, 이들에 의해 동맹과 국제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반민족,’ ‘사대주의’ 등으로 매도되었다.
 
  좌파적 이상주의 정치세력은 이런 방식을 통해 소수를 적으로 내몰면서 다수를 우군화하는데 성공했으며,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의 승리를 일정부분 설명하고 있다. 2002년 미군차량에 의한 두 여중생의 죽음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반미 촛불시위는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위대한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특정 정책이 당장의 사탕발림을 가져오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에 손실을 끼치는 것이라면 정치적 불이익을 무릅쓰더라도 이를 채택하지 않는다. 당장의 선거에 이기기 위해 후일 더 큰 손해를 초래할 정책을 고집하지는 않는 법이다.
 
 선진국일수록 정치인의 정치적 성공은 ‘국가와 국민을 잘살게 만들기 위한 봉사의 기회’로 인식되지만, 후진국에서는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출세’로 간주되는 법이다. 그래서 후진국일수록 정치인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정책사이클보다는 정치사이클에 따라 일희일비한다. 이런 기준으로 한국정치를 평가한다면 ‘4류 정치,’ ‘5류 정치’라는 소리를 들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보수세력도 자성하는 계기 삼아야
 
  분열과 국가정체성 위기를 가져온 좌파적 실험에 대한 보다 원천적인 책임은 과거 ‘보수우파’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에게 있다. 좌파적 이상주의자들의 집권도 합법적인 선거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곧 국민이 선택한 결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거 오랫동안 정치와 정책을 지배했던 보수세력들은 왜 국민이 그런 선택을 했는가, 왜 편가르기에 동참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는 뼈아픈 자기성찰에 돌입해야 한다.
 
  한국의 부자들은 자신들이 빈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는지 반추해봐야 한다. 유수의 재벌들이 능력과 무관하게 자식들에게 총수 자리를 승계시키는 한국,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보다는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한국, 돈과 권력을 가진 부모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 그리고 돈만 있으면 명예도 자리도 살 수 있는 졸부행각이 도처에서 표출되는 한국에서 빈자들이 부자들을 존경할 수 있을까.
 
  학력과 학벌을 둘러싼 갈등에도 원인이 있다. 어느 사회나 고학력자들이 상층부를 채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한국은 저학력자들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다. 저학력자들이 느껴온 소외감과 모멸감은 자식에 대한 높은 향학열로 표출되곤 한다. 또한 한국사회는 유별나게 동문·동창을 따진다. 정부, 기업, 군 등의 인사에서도 능력보다 학맥이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행태가 더 많은 숫자의 다른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이 노무현 후보에게 다수의 표를 몰아준 것에 대해서도 뿌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한국의 모든 일류 기업, 일류 직장, 일류 주거지, 일류 아파트, 일류 학교, 일류 문화시설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집값과 지방의 집값은 비교할 수도 없다. 이런 나라에서 지방사람이 서울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낌은 당연하며, 이런 정서는 지난번 대선에서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약속 한마디에 충청권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정지역이 특정한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가운데 지역전체가 특정한 이념적 색깔을 가지게 된 어처구니 없는 현상도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호남의 몰표현상 그 자체는 비정상적인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거 영남이 수 십년간 득세하는 동안 받아온 차별의식이 축척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 보수 기득권층은 도덕적 귀감이 되기보다는 오만한 모습으로 특권향유에 몰두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번의 대선에서의 한나라당의 패배는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만,’ ‘부패,’ ‘독선’ 등의 이미지가 국민으로 하여금 서울법대를 나와 대법원 판사를 지낸 이회창 후보를 외면하고 고졸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택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능력보다는 ‘금맥’과 ‘인맥’이 중시되는 한나라당의 공천과정이 순수한 일꾼들을 좌절시키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국민의 심판 기다려야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이상주의 실험은 국민을 가진 것, 사는 곳, 배운 정도, 나이, 출신지역 등에 따라 심하게 찢어 놓았다. 그 결과 안보정책에서 부동산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요한 정책과 이슈를 놓고 좌파적 이상주의와 우파적 현실주의가 대결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상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정치적 입지를 얻기 위해 국민을 편가르기의 대상물로 전락시킨 정치세력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만을 탓하기보다 왜 국민이 그들이 부추기는 편가르기에 동참했는지, 왜 기계적 평등주의, 평등 분배주의, 하향 평준화 교육, 세금폭탄 등 좌파적 정책에 영합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들의 정책이 아무리 나쁘고 영합주의적·선전적 요인이 많다고 해도 유권자 국민이 그들의 편에 선다면 그들의 또 다시 권력을 차지할 것이다. 유권자가 선택한 정부는 합법적인 정부이며, 국민은 그 정부를 따라야 한다.
 
 진정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반대편에 있는 세력이 먼저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한 연후에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반성을 거부하는 과거 보수세력은 오늘날 좌파적 이상주의를 질타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파적 현실주의자의 대열에 낄 자격이 없다.
 
  노무현 정부 5년은 좌파적 실험이 국가에 유해하다는 점을 확신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우파의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것이 노무현 정부가 수행한 최상의 역할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 5년은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기간으로서 충분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입력날짜 : 2007-12-17 (19:59), 
출처 : 대한민국헌정회 발행 「헌정」12월호, pp. 6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