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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놈은 다 親日派·親美派로 모는 학문의 양심을 판 교수들아

이강기 2015. 9. 8. 18:12
金東吉의 直說/미운 놈은 다 親日派·親美派로 모는 학문의 양심을 판 교수들아!

 

金 東 吉 연세大 명예교수

월간조선

2005년 4월5일에 퍼옴
출세를 위해 曲學阿世하는 선비들

「실락원」의 저자 존 밀튼은 올리버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가 되어 그의 청교도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패망하고 비시 괴뢰정권이 들어섰을 때, 드골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앙드레 말로가 불가결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행동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는 지식인들이 있어 마땅한 것이다.
동양적 지식인의 체질은 그들과 크게 다르다고 하겠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살펴볼 것 없이 한국적 전통을 한번 생각해 보라. 선비란 왜 존재했는가. 글을 읽고 공부해 과거에 급제하는 유일한 목적은 출세하기 위해서였다. 벼슬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조에는 司諫院(사간원)이라는 官衙(관아)가 있어서 임금의 잘못된 처사를 선비들이 諫(간)하였다고 하지만, 그 방법으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上疏文(상소문)을 올리는 길이 하나 남아 있을 뿐이었다.

군사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의 강단에서 쫓겨난 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중에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도 해야 했던 詩人·작가·평론가·변호사·교수들도 있었다.

우리는 다만 남산의 중앙정보부를 바라보며 저 괴물이 언젠가는 쓰러지겠지 하는 소망만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도 빨리 왔지만 민주화의 투사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金泳三(김영삼)씨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서,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역사의 이 격변기를 맞이하게 한 것이다.

非전향 장기수의 대명사로 34년간의 구금생활 끝에 1988년 청주보안감호소에서 출소한 이인모 노인을 北의 요청에 따라 北送(북송)한 사실이 있다. 이는 남북 간에 화해무드를 조성하기는커녕, 대한민국의 이념적 흔들림을 北에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계기로 北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더 요구하고, 南은 더 양보하는 불균형의 남북관계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동안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親北세력의 등장이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이인모 노인의 北送은 남북관계를 조금도 개선하지 못하고 한국의 지식사회는 순식간에 용공분자들이 독점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장경제에 바탕한 자본주의보다는 통제경제에 바탕한 사회주의가 크게 앞선 것이고, 그것이 역사의 미래라는 착각이 특히 젊은 학생 사이를 휩쓸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는 어떤 교수도 강단 위에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를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국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만은 역사가 거꾸로 흘러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유명해진 교수와 지식인들이 상당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40년 가까이 대학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 그 교수들의 이름을 들어 가며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언동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보다 못해, 참다 못해 한마디 하는 내 심정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무의미한 감상주의」에 빠진 지식인이 어떻게 진보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金大中씨의 햇볕정책·포용정책은, 北의 金正日과 남한의 反역사적이며 시대착오에 사로잡힌 한심한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남북 頂上회담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내뱉은 첫마디가 무엇이었는가. 『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믿을 만한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金正日은 우쭐했을 것이고, 일본의 고이즈미나 미국의 올 브라이트는 평양까지 찾아가 金正日의 손을 잡고 흔들었을 것이다.

하루 빨리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인물을 그토록 치켜세운 그의 진정한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그의 그러한 언동이 오늘 北의 金正日로 하여금 『우리는 핵무기를 다 만들었다. 이제 6者회담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게 한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오늘 국제사회의 고아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서 보수냐 진보냐 하고 떠드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北은 사상이나 이념이 문제되지 않고, 다만 金正日 정권과 체제만이 문제되는 상황이어서 사실상 진보니 보수니 하며 논할 여지도 없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어떤 세력인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金正日의 독제체제에 합류하고자 하는 자들이, 그들이 교수이건 언론이건, 어떻게 진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공산화의 우려 속에, 北의 100만 군대의 남침의 우려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마당에 北은 우리의 동족이라느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느니 하며 무의미한 감상주의에 젖어 있는 오늘의 일부 한심한 지식인들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런 자들이 사실은 보수반동인 것이다.


386세대들이 일컫는 보수와 진보의 기준

조국의 정치적 현실을 좌지우지한다는 오늘의 386세대가 마련한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몇 가지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는 자는 진보이고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반동이라는 것, 과거사 진상규명에 적극 찬동하는 자는 진보이고 지금이 그럴 때냐고 반론을 펴는 자들은 모두 보수반동이라는 것이다.

金正日이 원하고 남파된 간첩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反美親北일 것이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남쪽의 대한민국이 북쪽의 인민공화국에 흡수되는 일일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여, 그런 내일을 원하는가. 그런 세상이 되어 한번 살아보고 싶은가.

그대가 교수이건, 신문기자이건, 노동자이건 상관없다. 그래도 큰소리라도 치며 교수 노릇도 하고, 총장 노릇도 하고, 파업도 하고, 시위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金正日의 인민공화국보다는 백배 더 낫다는 생각을 왜 못 하는가.

한 모라는 모 대학 교수가 어느 일간지에 「친일파와 친미파」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고 이런 자도 교수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일제의 패전 이후 친일파가 변신·재기한 비결은 친미·반공이었다. 친미·반공을 앞세운 친일파는 李承晩(이승만) 정권이 수립된 뒤에 「親독재」와 자연스럽게 야합하면서 그 실세를 확고히 뿌리 내렸다. 한국의 모순과 부조리, 특히 폭정과 부패구조의 수수께끼를 푸는 「키워드」가 친일파 문제와 「사대주의적 친미파」 문제에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친일파의 친미파 변신이 초래한 사태의 특성은 우호를 뜻하는 「친미」 개념을 실종시켜 버린 점이다. 그 친미는 외교의 常度(상도)를 일탈한 맹목적·종속적 대미관계이고 이성적 판단을 초월한 감상적인 색맹의 친미다〉


『미운 놈은 다 親日派요, 親美派인가』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는 과연 교수인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 그토록 편견에 차 있고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면 학문적 양심은 실종된 것 아닌가. 자유 대한에 살면서 미국이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 놈은 꼴 보기도 싫다』는 한국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택시운전기사도 있고 공사판의 인부도 있다. 대학교수라고 미국이 싫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親日派가 변신하여 親美派가 되었다는 논리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미운 놈은 다 親日派요, 親美派인가.

이런 글을 서슴지 않고 써서 갈긴 이 교수라는 자는 나이가 몇이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6·25 전쟁 때 이런 자는 어떻게 생명을 보존했을까. 北으로 달려갈 일이지 어찌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보호의 울타리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살아남느냐 또는 소멸하느냐 하는 위기에 직면하여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칼을 빼들고 있는 자들이 자기 손으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착상 아닌가. 과거사 규명은 역사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 아닌가. 군사 정권下에 민주인사들을 불법으로 잡아다 악질적으로 괴롭힌 정보부의 그자들은 다 살아 있는데, 왜 살아 있는 反민주적 악질분자들은 잡아 처단하려 하지 않고 이미 죽어 백골이 진토된 자들을 처단하겠다니 이치에 어긋난 짓 아닌가. 그들의 아들 딸을 괴롭히겠다는 속셈인가. 대한민국 법에는 연좌제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핵무기를 가진 北의 金正日이 남침을 강행하면 당신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올해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국가적 차원의 행사로 치르는데, 모 대학의 총장이 이 나라의 국무총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위원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요새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놈이 받는다」는 말이 있다. 민주화 투사로 피 흘린 사람은 따로 있고 당신들만 재미를 보는가. 어디 두고 보자.●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