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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이제 그만 하시지요

이강기 2015. 9. 8. 16:47
DJ, 이제 그만 하시지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거나 단순한 논평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정치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선동을 하고 있다.

 

▲ 김대중 고문

 

 

원래 현직(現職)을 떠난 사람은 현직에 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이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 유독 대북문제에 집착한다. 그에 대한 언급도 그냥 지나가는 말이거나 단순한 논평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정치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선동을 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측이 내놓은 언론자료에 의하면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1월 27일 방북결과를 갖고 자신을 찾아온 강기갑 민노당 대표 등에게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앞에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가 민주주의의 위기, 둘째가 경제위기와 서민의 고통, 셋째는 남북관계 경색문제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당면의 문제가 “민주주의 위기”이며 “독재를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민노당과 민주당이 굳건하게 손을 잡고 시민단체들과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逆)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본다”고 했다.

우선 지금 이 땅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는 인식에 동의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지금 우리의 정치가 ‘민주연합’을 결성해 투쟁을 할 만큼 독재로 가고 있다고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독재고 역주행이고 투쟁의 대상인가? 지금 우리의 문제는 정치의 부실(不實)에 있지 민주주의 여부에 있지 않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민주의 과잉’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커다란 착오에 빠져있는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돈을 푸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그 돈이 가진 자들의 손으로 가느냐, 밑(서민층)으로 가느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논점이 틀렸느니 옳으니 하는 관점을 떠나 여기서도 그는 ‘가진 자, 안 가진 자의 편가르기’ 인식에 빠져있음을 본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굳이 그렇게 계급적 접근방법을 쓰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그의 ‘남북관계 경색’에 관한 인식이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북관계를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파탄내려고 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한반도 대세는 오바마의 등장으로 (이명박 정부의) 역행에 동조하지 않는, 순항으로 가게 된다.” “(이 정부는) 핵을 포기하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이는 부시 대통령과 똑같은 소리다. 부시도 성공하지 못했다. 군사력으로도 할 여력이 없었고 경제 제재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6자 회담이 진행됐고 이번에 민주당이 집권하게 됐다.” “미국과 관계개선을 받아줄 오바마 정권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는 무슨 수로도 역행하지 못한다.” “우리가 살길은 북측으로 가는 것이다. 지하자원, 관광, 노동력 등에서 북한은 ‘노다지’나 같다. 북의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덕을 본다. 북한에 ‘퍼주기’라고 하는데 ‘퍼오기’가 된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국민이 김대중·노무현 10년의 ‘햇볕정책’에 식상해 ‘비핵개방 3000’을 내건 이명박 정권을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당의 집권이 부시의 대북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것이 그의 논리라면, 좌파정권의 패배와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바로 햇볕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논리도 성립된다. 10년이면 어떤 정책이든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북한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기고만장이다. 그 모든 책임을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에 덮어씌우는 것은 너무 치졸하다.

 그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는 미국관(觀)도 우리를 실망시킨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북한과 미국만 있는 것 같다. 미국만이 북한을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85세 노인의 편집증이 느껴질 정도다. 북한을 도와주면 ‘좋은 미국(대통령)’이고 도와주지 않으면 ‘나쁜 미국(대통령)’이라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에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대북관계에 관한 한 그의 머릿속에는 ‘한국’이라는 존재는 제2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그는 그날 대화에서 금강산 피살사건과 개성공단에 관한 북한 측 협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북한이 과거에는 우리를 냉정하게 대했는데 이제는 남측을 좋게 보고 이웃사촌처럼 대하지 않는가”라고 했다. 관광차 북한에 간 비무장의 가정주부를 사살하는 것이 이웃사촌에 대한 태도인가? 뒤늦게 알게 됐더라도 피살 사실 자체에는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도리가 아닌가? 김 전 대통령 눈에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거나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것 같다. 마치 큰 ‘대북’의 관점에서 그런 것은 있을 수 있는 티끌로 보이는 모양이다. 개성공단도 “북이 서울을 공격하는 축선상에 열었다”며 북한이 우리를 봐줘서 개성공단에 응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삐라’ 문제에 대해) “상호비방 않기로 남북이 약속했다. 그전에 우리가 약속을 안 지킨 것이다. 정부는 (비방을) 안하고 민간은 해도 된다는 것이 합의인가? 사람 우롱하는 얘기와 같다”고 했다. 그는 북한방송이 매일 남쪽의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다 해도 그 정도는 비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남쪽이 하면 비방이고 북한이 하면 비방이 아닌가.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남쪽) 사람을 우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그 말 끝에 강기갑 대표는 “속에서 천불이 날 정도로 답답한 심정이다. 국민의 고통을 봐야 한다는 게 괴로운 심정이다”라고 했다. 천불 나는 것은 친북성향에 비판적인 전 국민의 가슴속이다.

 김 전 대통령은 마침내 “오늘 참으면 내일 이긴다” “느긋하지만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 “뭉쳐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길, 정도를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공해야 한다. 성공한다”라는 슬로건 같은 선동구로 말을 끝냈다. 어쩌면 내가 일선 기자로 출입하고 취재하던 1970년대의 ‘40대 기수 김대중’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전투적 언어들이다.

김 전 대통령의 언급을 전후해 민주당에서는 북한에 ‘삐라’를 뿌려온 민간단체들을 가리켜 ‘매국단체’ ‘매국노’라며 “이 사람들이 뭘 믿고 그러는지 국민들은 의심하고 있다”는 대변인 최재성의 논평이 나왔다. 점입가경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행동이 왜 매국행위가 되는지 잘 모르겠고 더 나아가 누가 진짜 매국행위를 하는지 아리송하다.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매국’이라는 용어에는 분노가 치민다. 민주당이야말로 뭘 믿고 그러는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을 듣고 이번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DJ를 북한으로 보내라”고 독설을 쏟았다. 바야흐로 전직 대통령들의 리바이벌 쇼(?)가 벌어지는가 싶다. 국민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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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2.05 16:02 / 수정 : 2008.12.07 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