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대통령 정책특보는 요즘 술자리에 가서도 거의 술잔을 비우지 못한다. 얼마전
사우나에서 다친 오른발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를 약간 저는 모습이 평소 날렵한 몸짓의 박특보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당당한 자세로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그의 거처는 아직 초라하다. 경제수석실에서 사용하는 회의실을 개조해 임시 집무실을 만들었고,
수행비서 역할을 맡는 보좌관 1명, 전화를 받는 여직원 1명이 그가 거느린 부하의 전부다. 그나마 여직원은 자리가 없어 복도에 책상을 놓고
업무를 본다.
그러나 박특보가 입성한 청와대 비서실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평소 ‘복지부동’(伏之不動)을 싫어하는 박특보의
존재를 의식해서다. 1월29일 수석비서관 대부분이 교체된 탓도 있지만 임기말 느슨해진 청와대 비서실 분위기가 다시 팽팽해진 것은 단연 ‘실세’
박지원의 컴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 전조는 개각이 있기 약 보름 전인 1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야인’에 불과했던 박지원 특보는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술자리를 가졌다. 출입기자단은 ‘재야의 실세’ 박지원의 호출에
전원이 참석했다. ‘실세 정보통’ 박지원이 주재하는 술자리에 빠진다는 것은 출입기자로서 리스크가 너무 큰 모험일 수 있다. 이상주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술자리에도 늘 결원이 생겼던 것과 비교하면 그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일화이다.
대한민국 ‘재야인사’ 중 청와대
출입기자 전원을 술자리에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파워맨 박지원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박지원 특보는 김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당장 두가지 일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가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첫째, 대통령께서 민주당을 통해 현실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되고 둘째,
개각을 통해 인사탕평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당시 청와대가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를 1월13일에서 2월4일 이후로 미루자 일간지
정치면은 개각의 시기와 폭에 대해 다양한 추측기사를 쏟아냈다. 업무보고 연기가 개각과는 무관하다는 공보수석실의 해명이 있었지만 각 언론사는
시기적으로는 1월 말과 2월말, 규모로는 소폭, 대폭으로 갈려 보도에 혼선을 빚고 있었다. 박특보가 강한 톤으로 동석한 공보수석실 K비서관에게
말했다.
“업무보고가 연기되면 기자들은 당연히 개각과 관련지을 수밖에 없지 않나? 이런 일이 생기면 공보수석실은 대통령의 뜻이 뭔지
파악해서 한다, 안한다 선을 그어 줘야지. 기자들 시말서를 쓰게 만들면 어떻게 하나? 공보수석실! 앞으로 잘 하라고.”
이같은
말을 전해들은 당시 오홍근 공보수석은 내심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인사탕평책’이라는 표현으로 대규모 개각을 예고한 박특보는 공보수석실에
대한 질타를 통해 공보수석의 경질을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를 물색하고 있다는 설이 퍼지기 시작했고, 박특보는
‘야인생활’중에도 청와대 관저를 드나들며 ‘개각을 조율했다’는 강한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박지원 정책특보는 청와대 비서실을 사실상 장악하? 데
성공했다.
전윤철 비서실장의 몫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정책기획수석실과 복지노동수석실, 임동원 특보의 영향권 아래 있는
외교안보수석실 등을 제외한 나머지 수석실에 대한 박특보의 장악력은 결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조순용 정무수석, 박선숙 공보수석은 거의 확실한
박지원 맨으로 분류된다. 김학재 민정수석, 조영달 교문수석 역시 박특보의 영향권 아래 있다. 이 4인의 수석은 취임초 박특보의 임시 사무실에
업무 협의차 출입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평소 박특보와 가까운 타 수석실의 K비서관이 민정수석실의 민정비서관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2월14일 현재) 조영달 교문수석은 월드컵 개최건을 박특보와 긴밀히 협조하도록 조율돼 있는 상태다. 결국 박특보는
정치·사회·문화·공보 등 청와대 핵심 4개 수석실을 장악해 사실상 비서실장에 준하는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보실에 1급 보직인
국제행사지원비서관을 두고 두명의 행정관까지 보임할 예정인 것도 전례가 없는 파격이다.
김대통령과 새 청와대 수석들.김대통령은 임기 말을 관리할 정국의 조율사로 박지원 특보를 선택했다. |
박특보의 파워와 ‘흡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대목은 박선숙 공보수석과 김한정
제1부속실장의 존재다.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접하는 두 사람은 모두 박특보와 가장 가까운 청와대 인사로 분류된다. 대통령을 늘 독대하는 두
사람을 지근거리의 인물로 메울 수 있게 된 것이 과연 단순한 행운일까.
박특보와 박공보수석은 야당 시절 대변인과 부대변인으로 이미 호흡을
맞춰 왔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박특보의 공보수석 시절 그 ‘공고함’이 완성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야당 시절 박선숙 부대변인은 김근태 부총재의
재야 라인에 가까웠지 당시 박지원 대변인의 ‘라인맨’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김한정 부속실장도 비슷한 경우다.
김실장의 DJ 캠프 합류는 유종근 전북지사의 도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입성후 박특보가 김실장에게 꾸준히 공을 들였고 이제는
명실공히 박지원맨으로 분류해도 별 무리가 없다. ‘능력 있고, 가능성이 엿보이는’ 인물을 키워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역량 역시 박특보의 오늘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박특보에게 이런 막강한 권한을 주어가며 청와대로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박특보
특유의 정보력, 대통령을 모시는 노련한 테크닉, 언변과 친화력만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더구나 박특보의 기용은
야당의 공격, 여론의 집중포화, 심지어 집권세력 내부의 반발까지 감수해야 하는 카드였다. 김대통령과 박특보의 관계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결국 김대통령은 박특보를 기용함으로써 퇴임 이후 관리체제로 ‘확실히’ 들어섰다”고 단언했다. 박특보의 기용은 정권 재창출이나 정계 개편,
남북대화 같은 ‘무거운 주제의 실행’이 아니라 ‘대통령직의 무리 없는 마무리, 평화로운 퇴임’을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책기획수석 당시 박특보는 술자리에서 늘 “정권재창출을 위하여!”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곤 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정권재창출’이라는 구호를 더 이상 외치지 않는다. 사소한 변화지만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한 변화다. 사석에서 박특보는 남북정상회담이나 IMF
극복 같은 김대통령의 ‘거대한 공적’을 들먹이지 않는다. 최근에 청취된 그의 사석 발언의 내용은 이렇다.
“작아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김대통령의 3가지 공적이 있다. 사직동팀 폐지, 검사 청와대 파견근무제 폐지, 청와대 출입기자 낙점제 폐지가 그것이다. 매우 중요한
탈(脫)권위주의로의 진전으로, 김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의 소산이다.”
박지원 특보는 김대통령의 퇴임후 관리를 위한 사전 포석을 이미 시작했다. |
“박지원과 함께 끝까지 간다”는 공동운명체론
정작 박특보는
사직동팀 해체나 검사 청와대 파견 폐지에 소극적이었다. 사직동팀은 대통령 친인척과 관련된 범죄 적발이 주요 직능 중 하나였고, 사전에 친인척에게
통보·경고함으로써 범죄예방 기능을 했다. 최근 박특보는 2000년 사직동팀 해체에 대해 이같은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박특보 입장에서는
자신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았던 한빛은행 사건으로 사직동팀이 해체된 데 대해 더 큰 아쉬움과 송구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검사
청와대 파견제 폐지 과정에서도 청와대 내에서는 상당한 이견이 노출됐다. 공보수석실도 한때 ‘일부’는 잔류한다고 발표했다가 일절 폐지로 방향을
틀었다. 민정수석실이 중심이 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박특보가 강한 제동을 걸었다는 설도 있다. 결국 박특보는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
김대통령이며 그 결단은 매우 중대한 공적이라는 말로 사태를 정리했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공적 과시보다 ‘임기 말의 조용한 관리, 평화로운 퇴임
이후’를 겨냥하는 대통령 홍보의 흐름 변화다.
최근 박특보가 “정치 뚝, 경제 온리(Only)”라는 표현을 쓰고 “월드컵 성공에
진력하겠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김대통령의 퇴임후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요즘 그는 대놓고 “나는 정치인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실제로 그의 수첩을 보면 언론계 인사와의 만남 스케줄로 가득 차 있다. 사장단, 편집국장, 정치부장들과의 만남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언론과의 관계정상화 역시 퇴임 후를 생각하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통과의례다.
그래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지원은
청와대만 생각하지 당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가 당의 명운이 걸려 있는 정권 재창출 문제보다 청와대 차원의 ‘야당관리’,
정권 재창출 여부에 영향받지 않는 퇴임후 정지작업에 몰두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김대통령과 박특보의 ‘운명공동체론’은 지난해 11월
김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와 박지원 특보의 정책기획수석 사퇴를 계기로 김대통령의 뇌리에 각인됐다. 당시 김대통령은 박특보에게 “권노갑이
(퇴진을) 싫다고 하니 자네와 내가 물러나세”라고 말했고, 박특보는 촌음의 망설임도 없이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순간부터 김대통령의
마음 속에는 권노갑이라는 이름이 지워지고 “박지원과 함께 끝까지 간다”는 결심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최근 박특보는 사석에서 한
무속인을 찾아가 점을 본 얘기를 이렇게 털어놨다.
“개각 훨씬 전에 그 사람한테 가서 점을 봤는데 지난 한해는 좋지 않은 운세였다고
해요. 그런데 올해는 아주 좋다는 거예요. 글쎄 내가 장관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도 운세가 괜찮다나요? 진짜 그 사람 용하기는
용해요. 대폭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더라고….”
‘정권이 바뀌어도 운세가 괜찮다’는 말은 박특보가 가장 듣고 싶어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박특보가 김대통령의 퇴임 후를 챙기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챙기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요트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면 김대통령과 박특보의 이해관계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청와대 차원의 야당 관리라는 측면에서 최근 정치권에서는 흥미있는 정황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사퇴할 때 이회창 총재가 이를 사전에 알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정보통 의원이 사전에 그 사실을 간파하고 이총재에게 보고했으나 이미
이총재는 사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그 정황의 요지다. 요컨대 김대통령의 야당으로의 ‘포트폴리오 분산 정책’이 이미 가동하고 있다면
대통령의 심중을 가장 잘 꿰뚫고 있는 박특보야말로 포트폴리오 분산 정책의 최적임자일 것이다.
박특보의 위상과 파워
여권내 인사 중에는 박지원 특보를 최고의
비서실장감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도 박특보는 비서실장 후보 중 하나로 ‘심각하게’ 거론됐다는 설이 구체적인 정황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 전윤철 비서실장의 재경부 장관 기용을 전제로 박지원 특보, 그리고 경제관료 출신의 L씨가 복수후보로 올랐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초반 개혁을 주도했던 이 인사의 실장 기용은 개혁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높이 평가돼 본인에게도 의사타진이 시도됐다는 후문이다.
L씨는 박특보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그같은 제안을 고사했다고 한다. 박특보의 위상과 파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삽화가 아닐 수 없다.
박특보는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밀사로 회담을 성사시킨 것을 일생의 가장 큰
영예로 고백하곤 했다. “나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했다”는 것이 한 측근이 전하는 박특보의 당당한 발언이다. 북측의 정상회담 의지를 처음
전해온 인물도 박특보와 막역한 한 재미동포여서 박특보의 자긍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올 8월의 경의선 개통-아시안게임에 북한 참가-김정일의
연내 방북 카드는 아직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현 정부의 꿈이요, 의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이라는 복잡한 변수가 돌출했지만 그럴수록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열망과 유혹은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김대통령이 대북 밀사를 다시 한번 활용한다면 박특보는 여전히 0순위
후보로 꼽힐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많다. 박특보 스스로 대북 핫라인을 아직 유지하고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의 박특보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
상당하다. 박특보가 김대통령의 흉중 그 자체라는 점도 북측은 잘 알고 있다. 대북 밀사의 첫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무거운 입’을 갖췄고
재미교포 사회의 풍부한 인맥도 밀사 역할을 담보할 풍부한 자산이다.
역대 정권 대북 밀사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들에 상응하는 현 정권 내의
인물은 박특보가 거의 유일하다.
박정희 시대의 이후락, 전두환 시절의 장세동, 노태우 시절의 박철언과 같은 역할을 해줄 인물은
단연 박특보다. 이제는 대북 접촉의 노하우도 있고 지난번처럼 국정원의 철저한 보좌를 받는다면 박특보의 밀사 기용과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문제는 북측이 정권 말기의 김대중 정부를 진지한 대화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느냐다.
설혹 일정 수준의 합의에 도달했다
해도 지속 가능한 남북간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측이 대화를 주저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박특보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진전을 도모하는 밀사로 활용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박특보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이 그만큼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박특보를 밀사로 활용한다면 ‘위기관리용’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