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유대인을
혐오한다? 미국 시오니즘 단체가 이원복의 만화에 쏟은 과민반응은 동아시아 몰이해에서 온
것…친일 지식인들도 전쟁 선전을 하지 않을 때는 유대인에 대해 너그러운 시선을 보내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최근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 만화에서의 ‘유대인 비하’ 파문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미국 내 유대인 단체들이 이 만화를 맹비난한 것은, 성경의 말대로 남의 눈의 티를 찾느라고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원복 교수는 ‘유대인의 전지전능’에 대한 속설들을 모아놓았을 뿐이지만, “이란이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놓고 이란에 대한 핵 선제 공격을 암시하는 유명 이스라엘 지식인들의 신문 기고를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시오니즘 언론의 아랍인 공격과 이원복 교수의 다소 순진한 유대인 관련 속설의 반복을 굳이 비교하자면 이스라엘군의 탱크와 거기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투석구 정도의 거리일 것이다.
톈진 삼성전자 현지 노동자의 임금은
또 한편으로는 이 교수가 미국을 보는 데서 사회과학적 분석틀을 거부한 채 순전히 ‘민족 간의 충돌’로만 문제의 관건을 설명하려는 태도는 걱정스럽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오로지 미국 내 유대인 단체의 로비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이 냉전 시기에 남한을 지원해온 것은 미국 내 한인 종교단체들의 로비 덕분” 정도 이상의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동북아 대륙의 ‘교두보’로서 남한이 필요하듯이, 그 핵무기로 언제나 석유에의 접근을 막으려는 아랍 국가를 무(無)로 만들 수 있는 이스라엘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남한도 이스라엘도 미국의 전략 차원에서 그 이용가치가 높기에 미국의 종교계와 정계에서 통일교의 활약도, 미국 사회 전반에서 유대인 단체들의 활약도 결정적으로 탄력을 받는 것이 아닌가? 세계 자본주의를 ‘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원복 교수는 핵심을 놓치게 된다. 미국 내 유대인 기업가들의 사업 수법이 더럽다고? 한번 톈진이나 델리에서 삼성전자 공장 현지 노동자들의 임금과 계약기간, 근무조건에 대해서 물어봐주시기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급을 주려고 하는 것, 노동의 안정성을 최소화해 해고에 대한 불안을 만성화하려는 것, 시장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것 등은 사업가의 ‘민족 성분’과 무관한 자본주의의 생리일 뿐이다. 사회과학적 접근이 부족한 듯한 이 교수의 ‘유대인’ 인식에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다 해도, 이를 ‘반유대주의’로 몰아간 미국 내 시오니즘 단체의 과민반응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커다란 몰이해로부터 출발했다. 1900년대부터 ‘유대인의 전지전능’ ‘유대인의 재계 장악’에 대한 유럽이나 미국의 속설들이 동아시아로 수입되긴 했지만 이는 ‘수사(修辭) 복제’의 차원이었지 편견과 극단적 혐오감이 뒤섞인 유럽의 무시무시한 ‘원판 반유대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20~40년대의 일부 극우파들이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불온사상’들을 ‘유대인 음모의 도구’로 보려 할 때도 있었지만 역시 그들의 진정한 혐오의 대상은 그들이 제대로 알 리 없었던 유대인들보다 ‘빨갱이’와 ‘개인주의자’들이었다.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를 모든 시대와 나라에 편재해 있는 ‘세계 보편적 현상’으로 보지만,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실제적 상황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피해망상증적 견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868년 아산만에 상륙한 뒤 남연군의 묘를 도굴해 그의 아들인 대원군을 분노케 하고 천주교 신도에 대한 큰 박해를 촉발시킨 독일 상인 오페르트도, 1896년 8월26일에 차후 러-일 사이 전쟁의 도화선이 될 압록강 벌목 이권을 따낸 러시아 상인 브리네르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러-일 전쟁 때 일본에 큰돈을 빌려줘 일본의 승리를 가능케 만든 뉴욕 은행 ‘쿤, 뢰브 앤드 코’(Kuhn, Loeb & Co.)의 대표 야코브 시프도 유대인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서 이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윤치호와 서재필 등 몇 안 되는 도미 유학파 인사 이외에 또 있었는가? 개화기와 일제 시기의 거의 전체를 아우르는 장문의 <윤치호 일기>에서 유대인 이야기가 꽤 나오지만 대체로 그의 시각은 유대인에게 동정적이었다. 국가를 잃어 방랑하는 유대인들과 국권을 잃어가는 조선인들은, 기독교인 윤치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흡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윤치호 일기>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에게 배제와 폭력을 일삼는 유럽 유대인에 대한 비판까지 담겨 있다(1931년 1월26일). 사회진화론 사상가 윤치호는, 유럽에서 박해를 받았다가 팔레스타인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늘 힘을 위주로 움직이는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려 했다. 과연 그는 이 ‘주인 행세’가 어떤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가를 내다보고나 있었을까?
‘국가를 잃은 설움’과 ‘유대인의 마력’ 사이
식민지 시기에 유대인에 대한 동감과 시오니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겸비하는 태도를, 윤치호만이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미 파시즘으로 기울어가는 1938년 말기의 <동아일보>마저도 한 사설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의 ‘유대인의 배척’을 비판하고 ‘인류문화 발달상의 유대인의 공헌’을 칭송한 일이 있었다. 그 사설은 아울러 이미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의 유대인의 ‘귀국’이 가지는 문제점도 짚었다(1938년 9월4일). 물론 식민모국 일본이 ‘대동아전쟁’ 과정에서 유럽 파시스트 국가와 손잡았을 때 이광수와 같은 어용 지식인들은 전쟁을 찬양하는 글에서 간혹 ‘개인주의’와 같은 ‘유대인의 마력’을 언급하고 ‘유대인의 이기심’과 ‘일본 중심 황인종의 멸사봉공 정신’을 대조시키기도 했다(‘대동아전쟁의 교훈’, <녹기>, 1943년 8월). 불교 신자인 필자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태평양전쟁 때 유대인에게 가장 통렬한 공격을 퍼부었던 이들은 유대인과 경쟁 세력인 기독교를 동일시한 듯한 친일적 경향의 불교 승려였다. 예컨대 해방 이후에 동국대 학장을 했던 범어사 출신의 승려 허영호는 한 논설에서 “물질의 주구(走狗)인 유태인과 결합하여 세계 제패를 꿈꾸는 영국과 미국”을 “아시아 민족들”의 이름으로 저주한 적이 있었다(<신불교>, 제36집, 1942년 5월). 그런데 친일 지식인들도 전쟁 선전을 할 필요가 없어질 때에는 유대인에 대해 꽤 너그러운 시선을 보였다. 이광수는 해방 이후에 쓴 <그의 자서전>에서, 시베리아의 치타시에서 자신에게 1914년에 방을 세놓아 내주었던 유대인 부부의 반유대주의적 학살에 대한 만성적 공포와 러시아인으로부터의 고립을 동정적으로 묘사했다. 과연 이런 태도를 유럽의 살기 어린 반유대주의와 비교라도 할 수 있는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의 초역이 한때 청년 시절의 박정희에게도 애독되고, 또 완역판은 1970~2000년대에 약 8군데의 출판사에서 출판돼 잘 팔렸지만 이는 한국에서 ‘반유대주의적 문서’라기보다는 극우 기득권 세력들이 적극 권하는 ‘자수성가, 초지일관, 멸사봉공의 반공투쟁’의 교과서처럼 읽혔다. 이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는 보수 인사들 중에서 일부가 ‘유대인의 세계 제패, 언론 장악’ 같은 히틀러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같은 약소민족인 유대인의 성공’이 또 한편으로 ‘우리 성공의 청사진’으로 보이기도 했다. 즉, 히틀러와 한국 우파의 차이는 히틀러가 ‘유대인 권력’을 경쟁자로 인식한 반면 한국 우파의 지배적인 경향은 이스라엘의 군사주의나 전국요새화 분위기, 미국 시오니즘 단체의 ‘민족적 대동단결’을 반대로 일종의 ‘모델’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유대인 동정은 ‘동병상련’의 견지였지만 이스라엘 군대를 찬양하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모습을 보면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근대 한국의 지적 전통에서 유럽 반유대주의 정도의 ‘유대인 혐오 콤플렉스’가 없다는 필자의 주장에,
혹시 한국 인터넷에 ‘유대인 권력’ ‘유대인 음모’에 대한 온갖 횡설수설들이 왜 범람하는가를 되묻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현대 일본 반미 극우파들의 반유대주의적 사유를 일부 기독교계가 수용한 것 아닌가 싶다. 일본의 ‘세계 전략’에 방해된다
싶은 미국에 대해 ‘미국을 움직이는 힘인 유대인’을 표적 삼아 쓴소리를 마구 퍼붓는 일본 목사 우노 마사미의 베스트셀러(<유태인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 등)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일부 기독교계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팔려나가 ‘암적 존재로서의 유대인’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인터넷에 ‘유대인 음모’가 범람하는 이유
더 넓은 차원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한국 좌파의 대대적인 위기,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적 비판의 일시적 실종이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윤율이 저하되는 불경기에 ‘전쟁 특수’를 일종의 ‘완충장치’로 삼는 미국 대자본의 ‘전쟁을 통한 위기극복 전략’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 못할 때에, ‘유대인 때문에 전쟁과 테러가 일어난다’는 식의 속설들이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끌게 돼 있다. 즉, ‘유대인’을 들먹이는 음모론적 사고의 유행은 한국 좌파의 대중적인 호소력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대인에 대해 특별한 혐오감을 갖거나 공격을 선동한 적 없는 이원복 교수는 물론 ‘반유대주의자’는
아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 재벌의 잉여가치 수취 방식보다 그 재벌의 ‘민족적 성분’에 먼저 관심을 갖는 ‘미국 비평’의 수준은 언젠가 극복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1. 일본 반유대주의 서적이 국역돼 출판되는 사례: 우노 마사미(宇野正美), <유태인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 이사야, 1989. 2. ‘유대인의 교육’을 ‘성공 비결’로 선전해 유대인들을 ‘성공 모델’로 상정하는 서적이 출판되는 사례:<유태인 부모는 이렇게 가르친다>박미영, 생각하는백성, 1995. 3. 히틀러 서적의 최근 국역 출판 사례:<나의 투쟁>히틀러, 홍신문화사, 2006. 4. 식민지 시대의 유대인 관련 시각의 사례:‘위대한 유태인’김윤경, <청년>, 제8집 제9호, 1928년 12월, 26~28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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