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추억 | ||
(2000.3.27) | ||
H&B님께, 1974년 8월 15일이었습니다. 휴일이라 어디로 바람이나 쐬러 나갈까 하다가 손바닥 머리바지를 하고 옆으로 누어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중계하고 있는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지요. 갑자기 TV에서 탁탁 소리가 나고 경호실장인가 누군가 가 뭔가를 빼들고 튀어나오는 것 같더니 화면이 일그러지고 꺼져버렸어요. 직감적으로 대통령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후닥닥 일어나서 침을 삼키고 있는데, 곧 화면이 다시 살아나고 박대통령의 얼굴이 비치더군요. 아! - . 그 순간 어떤 기대가 와그르르 무 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지요. 그 무렵엔 그렇게도 박정희를 미워했습니다. 증오에 가까웠습니다. 딱 이 우리 집안 사람들 중 누군가가 직접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소가 들 어도 비웃을 내용의 긴급조치 제 몇 호, 몇 호를 잇달아 발표해 대면서 사람들을 마구잡 이로 닥달하고 무슨 "인혁(人革)"자 들어가는 단체의 사람들이라며 하룻밤 사이에 7명인 가 8명인가를 처형해버리던 시절이었지요. 도무지 사람 같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 후 전통, 노통 시절을 거쳐 소위 문민정부 시절에 와서야 박정희의 가치가 점점 큰 무게로 다 가오더군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여러 곡절이 있었습니다. 어떤 수출회사 세일즈맨으로 샘풀 을 짊어지고 중동.아프리카와 중남미를 내 집 드나들듯이 했습니다. 중동의 석유부국들을 제외하곤 주로 못사는 나라들만 찾아다녔는데, 용케도 이집트, 그리스, 페루, 이라크, 이태 리(아프리카 경유지로서 이용) 같은 일찍이 문명을 일으킨 나라들을 자주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만 해도 그런 나라들엔 한국 사람들 보기가 좀처럼 힘들었습니다. 정 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아직 원시상태를 못 면하고 있을 때 그들은 우리 들의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풍요롭게 살았더군요.(학교에서 배우긴 해도 전혀 실감을 못했 지요). 바빌론의 간이박물관에서 6천년 전의 목거리를 보았는데 그 세공솜씨가 지금 것 보 다 조금도 못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집트 박물관에서 시저와 안토니우스시대의 유물들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우리가 까마득하게 생각하고 있는 로마시대가 거기서는 마치 현대 것 처럼 보이더라구요. 나는 그때부터 전공인 영문학은 접어두고 문명사를 중심으로 주로 역사책만 읽기 시작했습 니다. 우리 나라에 대한 역사책으로 말하면 우리 나라 학자들이 "정통적으로" 서술한 것만으 로는 무언지 균형감각을 가지는데 부족한 것 같아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쓴 것들을 많이 찾아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레고리 헨드슨(Gregory Handerson)이라는 사람이 쓴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이름으로 한국어로도 번역이 됐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 역사와 정치를 보는 눈이 새로워지더군요. 나는 간혹, 만약 어떤 숭고한 이상을 가진 지도자 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면 적어도 100년에 한번씩은 '얼차려'가 필요하다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얼차려가 역사를 수십년 때로는 수 백년 앞당길 수도 있지 않나 싶거던요. 조선 500년은 순수한 문민정치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나라꼴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늙고 병든 사향소처럼 사자와 하이에나가 그냥 달려들어 뜯어먹어도 저항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흥청망청 하고 있지만 몇 백년 후에 우리 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초근목피의 생활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인구 에 비해 산물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나라에서 말입니다. 오늘은 이만해야겠군요. 옛날 어렵던 시절 생각하면, 그리고 그 시절에 살다가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언젠가 다시 얘기할 날이 있겠지요.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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