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술과 가무를 즐기는 것은 태고적
습성
(2001. 1. 1)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도올, 논어 이야기"의 김용옥 교수가 우스개 소리 비슷하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술과 가무를 좋아하는 것은 기자(箕子)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자 방청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은(殷)나라 말기에 지배계급들이
술과 가무에 찌들어 그것들에 대한 경구들이 갑골문 여기 저기에서 발견될 정도로 나라에 큰 피해를 입혔는데, 그러한 나라의 왕자인 기자가
조선왕으로 분봉되었으니 그 습성이 어찌 조선으로 전이되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은 새겨 볼수록 그를 듯 했다. 기자가 팔조금법을 만들어 조선을
다스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필경 그가 괴나리 봇짐하나 달랑 든 외로운 망명객이 아니라 수많은 수하들과 병사들을 거느리고 왔을 테고 그들이 그대로
조선의 지배계층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이 술과 가무를 즐기는데 백성들이 어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인구대비 술 소비량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영국산 위스키를 미국, 일본에 이어 3번째로 많이 수입(인구대비로
따지면 단연 1위)하는 나라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노래를 하는 것 까진 좋으나 복도에서 뛰고 구르며 춤추는 사람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 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 때 왼 나라에 술판이 벌어지던 때도 있었는데, 선거와 술이 결부되는 것도 필시 세계 기록이 될 것이다.
내가 김용옥교수의 술타령 진단에 느낌이 특별했던 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옛
만주 쪽 길이 열려 한국 기자들이 어렵사리 들어가 현지 르뽀 기사를 보내오곤 했다. 그 때 조선일보에 게재된 연변탐방기에서 현지 중국인이
조선족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는 얘기를 읽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선인들은 만나면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다가
싸우고는 헤어지고 며칠 후 다시 만나면 또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는 또 싸우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정확한 글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게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내가 놀랐던 이유는 이런 비슷한 소리를 분명 어디서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였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무릎을 쳤다. 바로 옛 중국 사서들 가운데서 동이족의 풍습을 묘사한 글들에서였던 것이다. 태고적과 비슷한
장소에 살고 있는 바로 그 종족의 후예들에게 역시 태고적에 평을 했던 그 중국인들의 후예가 지금도 거의 비슷한 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2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역시 피는 못 속이고, 우리들은 영락없는 부여, 고구려, 예, 한의 후예구나 싶어 감탄 또 감탄했다. 그 때
메모해 놓은 중국사서의 그 구절들을 여기에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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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들은 그 곳에
토착한 백성들을 데리고 즐겁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 후한서 동이전 서문
부여
[....
은나라 정월이 되면 (부여에선) 하늘에 제사지낸다. 이 때가 되면 온 나라 안이 모두 모여서 날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 밤낮없이 사람들이 길에 다니면서 노유가 모두 노래하여 종일토록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 -
[섣달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이 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여러 날을 두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노는데 이것을
영고(迎鼓)라고 한다.] - 후한서 동이전 부여편 -
한(韓)
[마한 사람들은 농사짓고 누에치는 법을 알아서
면포를 짰다. 5월이 되어 밭갈이가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 드리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놀면서 여럿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데, 한 사람이 춤추면
수십 명씩 따라서 춤을 춘다...] [이 나라 풍속은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고 비파 뜯는 것을 좋아한다.] - 후한서 동이전 한(韓)
편 -
[5월이 되어 씨를 다 뿌리고 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이 때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고
놀아 밤낮을 쉬지 않는다. 춤을 출 때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서로 뒤를 따르면서 땅을 밟고 높이 뛴다. 이 춤추는 모습은 꼭
택무(鐸舞)와 같다. 10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또 한번 이렇게 논다. - 삼국지 동이전 한 편 -
예(濊)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데, 이 때가 되면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어, 이것을 무천(舞天)이라고 한다.
....] - 후한서 동이전 예(濊) 편 -
고구려
[그 나라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나라 안
모든 촌락에서는 밤만 되면 남녀들이 여럿이 모여서 서로 노래하고 논다. ... 자기 집에 술을 빚어 두고 먹기를 좋아한다...] -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 편 -
[그들의 풍속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온 나라 안 촌락에서는 밤마다 여럿이 모여서 노래하고
논다. ] - 양서 제이전(梁書諸夷傳) 고구려 편
[그들의 풍속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겨서, 나라 안 모든 부락
남녀들이 밤마다 여럿씩 모여서 노래 부르고 논다. 그 사람들은 또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술을 빚어두고 마신다. ..] - 남사
이맥전(南史 夷貊傳) 고구려 편 -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하며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 부모와 남편의 초상에는
3년 동안 복을 입고 형제간에는 석달 동안 입는다. 초종(初終) 때에는 곡하고 울지만 장사 지낼 때에는 춤추고 음악을 잡혀 죽은 사람을
보내다.] - 북사(北史) 고구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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