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와 사육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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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숙님께서 올린 김재규와 사육신을 비교하는 글을 읽다가 정말 이들 사이에 연관성 이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김재규는 생전에 사육신에 몹시 관심이 많았 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70년대에, 무슨 국사 XX 위원횐가 하는데서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유응부를 김문기(金文起)로 바꾸고는 노량진 사육신묘소에도 김문기의 가묘를 만 든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일"에 당시의 실력자였던 김재규의 입 김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김재규가 김문기와 동성동본이었기 때문 이라 하였습니다. 묘하게도 당시의 야당 당수였던 김영삼도 김문기와 종씨였습니다. 김문기도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것은 확실한데, 그가 과연 사육신에 들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인지 어떤지는 전문 연구가가 아니어서 모르겠고, 또 지금은 원 상복귀가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 그대로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초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이 계획한대로 세조가 중국사신 환영연에서 성 승(成勝)이나 유응부의 칼에 시해를 당했다면, 그것이 우리 나라 역사이래 최초의 국 가원수 시해사건이 되었을 것이며(물론, 수양대군이 왕을 참칭함으로 그를 베었다고 기록이 되었겠습니다만), 김재규의 행위도 좀 더 다른 측면으로 보게 될 수 있지 않았 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전쟁, 반란, 쿠데타 등으로 비명에 간 역대 임금들이 많긴 하지만, 현장에서 시해를 당한 경우는 박정희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의 짧 은 역사지식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비슷한 경우가 있다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 다. 견훤의 반란으로 죽은 신라 경애왕의 경우도 실제로는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 다). 김재규가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게찌 미쯔히데를 들먹였다고 했는데 실제 어느 순간 그의 마음속에 세조를 죽이려 했던 사육신에 관한 사실(史實)도 떠올리지 않았을 까 싶습니다. 앞서 저의 글에서는 박정희와 김재규를 각각 분리하여 평가해야한다는 주장만 하고 말 았습니다만,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김재규를 안중근에 비유하며 의사니 뭐니 하는 것 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박정희의 공과와는 별개의 문제로 보고 내린 판 단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그의 "의로운 거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광주의 끔직한 비극까지 겪어가며 그 후에도 10여 년 넘게 계속 군사정권 아래서 살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의거"로 인해서 민주화가 앞당겨졌다는 일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하는 것입 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만약 박정희의 유신통치가 몇 년 더 계속됐다면 탱크로 백성 들을 깔아뭉개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가정은 마치 김재규가 10.26 저녁에 국방부로 가지 않고 중정으로 가 쿠데타에 성공, 대통령이 되어 박정희보다 더한 압정을 폈을 것이라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부질없는 얘 기들입니다. 사전에 동조자들이나 하수인들과의 철저한 모의도 없이 즉흥적으로 일을 벌인 그의 무모함도 무모함이지만, 박정희 집권 18년 내내 총애를 받고 고위관직을 두 루 거치며 충성스런 가신역할을 해 온 그가 자기의 "주군"을 죽인 일은 아무리 좋게 평가할래야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의사니 뭐 니 하며 미화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장래 이 나라의 국가원수들은 마치 재정로 마 말기의 근위병황제시대처럼 언제 자기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할지 전전긍긍해야할 시대를 만들어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사육신 문제로 돌아가서, 아시다시피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그것을 평가하는 시대 의 특수성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50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사육신은 만고의 충신이며,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역시 왕조를 빼앗은 이성계와 함께 매우 부정적인 인물들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5.16 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부터 세 조와 이성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는 것이 뚜렷이 느껴졌습니다. 자기들이 부당하 게 정권을 빼앗은 사람들이니까 그러한 역사인식을 갖도록 교육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는 후자 쪽이 더 선호되는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사실 사육신 들의 충성이란 불사이군이라는 그들의 유교적 신념과 단종을 도우라는 세종의 유훈에 대한 것이지 백성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단종같은 허약 하기 짝이 없는 임금보다는 수양대군 같은 유능한 인물이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 는 것이 백성들을 위해선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앞서 저가 사육신 의 일과 김재규의 일 사이에 연관성이 많다고 했습니다만, 사실 김재규와 사육신은 국 가원수를 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그 동기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육신은 죽은 후 235년만에야 겨우 복권이 되긴 했지만, 당시 왕실의 직계 조선인 세조를 감히 공식적으로 폄훼 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이강기 드림 (2000년 5월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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