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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일대학에서 보내온 탈북 교수의 북한체험기록

이강기 2015. 9. 16. 12:08
[서평] 예일대학에서 보내온 탈북 교수의 북한체험기록


[안병직 | 時代精神 발행인]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 김현식저, 김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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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현식교수(가명)는 1932년에 함경남도에서 출생,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흥남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중 1950년에 인민군에 입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여 의병제대했다. 그는, 戰功으로 평양사범대학에 입학, 1954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38년간 모교의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재직 중에는,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 친정집의 가정교사를 하기도 하고, 김일성이 의무교육기간을 9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할 때 직접 그 예비실험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기 때문에, 북한의 고급정보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그는 빼어난 러시아어 교육의 실력을 인정 받아 1980년대 말부터 국립 러시아사범대학에 교환교수로 파견근무 중 1992년에 북한으로 소환되자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질 것이 예견되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북한에 둔 채 부득이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 후 그는 한국의 각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3년부터는 미국 예일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개인적인 북한체험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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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9개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특별한 체계랄 것은 없고, 임의로 선택된 주제별로 서술되고 있다. 주제들은 탈북 동기, 북한에서의 교편생활, 남북한 사회의 차이, 이산가족, 북한지배층의 실상, 북한사회의 실상, 북한의 교육 및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등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그 자체로서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주제들을 다루기 위하여 자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는 북한사회 구석구석의 실상들이 독자들을 驚愕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는 기본적 인상은, 북한이 너무나도 잔인한 나라이며, 그 때문에 그 속에 사는 인민들은 매일처럼 지옥과 같은 생활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 북한사회 체험기는 자연히 죽음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북한주민을 구해달라는 저자의 절규일 수밖에 없다. 북한주민의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저서에 따라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굶주림이다. 북한청년들의 키가 한국청년들보다 평균 20센티 가량 낮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기아사태의 결과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이 책은 주민의 굶주림이 북조선 건국 이래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김일성은 ‘인민들이 이밥에 고깃국물을 먹으며 비단옷 입고 기왓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주민들의 생활실상은 ‘소금국에 강냉이밥을 먹으며 헌 옷을 입고 수돗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층아파트에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주민들의 최대 소원은 굶주림 탈출이다. 북한주민의 이러한 소원은 직업선택에서 잘 나타난다고 한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첫째 직업은 외교관이나 대외무역업무의 일꾼이고 둘째는 漁夫라고 한다. 대외일꾼을 선호한다는 것은 쉽사리 이해되나 왜 어부인가. 어부는 자기가 잡은 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고 밖으로 탈출할 기회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잔인하다 못해 눈물이 난다.

둘째는 노예적 삶이다. 북한에서 사상적 자유와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들은 절박한 일상생활상의 요구가 아니라서 그 중요성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그러면 居住移轉의 자유 같은 것은 어떠한가.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여행하려면 여권이 있어야 한다. 지방사람이 평양으로 이사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여행하는 것도 금지한다. 평양에서 살던 사람이 그곳에 살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하면 그 순간에 정처 없이 지방으로 내쳐진다. 일반사람들이 해외로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주민은 중세의 농노처럼 토지에 묶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선택의 자유도 없다. 대학은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무상교육이라 하여, 학생들에게는 학교선택의 자유가 없다. 그렇다고 대학에 등급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대학을 어떻게 배정 받느냐에 때라 개인의 운명은 결정되고 만다. 결국 개인의 운명은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연애의 자유도 없다. 대학에서 연애를 하게 되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생이별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

셋째는 잔인성이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국가에 충성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도자동지의 비위에 거슬리면 그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총살 당한다. 두 가지 예만 소개해 본다. 농업위원장으로서 북한농업발전에 혁혁한 공로가 있는 김만금은 농업담당 중앙당비서 서관희와 함께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기아문제에 책임을 지고 총살을 당했다. 김만금은 김일성의 측근으로서 해방직후에 토지개혁을 지도하고 피마자의 잎으로 양잠할 수 있는 농업기술을 개발하여 견직물업 발전과 외화획득에 큰 공로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70년대 초에 김일성의 처 김성애가 여성동맹위원장으로서 전국적으로 누에치기를 장려하여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그는 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자 김성애 편이라 하여 권력으로부터 내쳐졌다. 이러한 괘씸죄 때문에 그는 또 90년대 중반에 剖棺斬屍까지 당한 것이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렸던 우인희는 癡情關係 때문에 남편이 지켜보는 앞에서 총살 당했다. 이 때에는 신무기 사격연습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관람시켰다. 거기에 참석했던 어느 여학생은 그 충격 때문에 구토를 하고 결국 병원신세까지 져야 했다. 아마 이런 일은 북한에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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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한국에서도 그 眞僞를 두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는 북한 관련 사건들의 배경에 관해서도 읽을 수 있다.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배우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납치미수사건은 화가 이응로와 그 부인 박인경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진짜 배후는 박인경의 남동생인 박제일이라는 것이다. 박제일은 북한의 해외공작원으로서 이응노 부부의 비공개 평양미술전람회개최를 알선하는 한편 윤정희 부부의 납치를 지령했다. 북한이 ‘남조선의 자작극’이라고 우겨대는 83년의 아웅상 테러사건은 실제로 저자의 제자인 북한 중앙당 선전선동부 간부도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 제자의 집에 저녁식사초대를 받은 날에 우연히 테러실패의 소식이 그 집에 당도했기 때문에, 그는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남조선의 자작극이라고 우겨대는 87년의 KAL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의 출신배경에 관한 증언도 있다. 김현희는 저자가 근무하던 평양사범대학의 일본어과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남북관계에 얽힌 개별적 사건에 관한 증언이 많다. 증언은 한결 같이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신빙성은 높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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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독후감에 의하면, 이 책은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책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비록 탈북자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대하여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북한의 독자적 발전을 위하여 김정일이 이제라도 그의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로 통치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10년이라는 스스로의 한국생활경험에 비추어 보아 북한동포들이 한국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저자의 자세가 이 책의 서술에 있어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사항을 지적하면서도 그 대안으로서 한국사회의 생활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앞으로 북한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사회의 실상이 객관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북한사회의 실상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時代精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