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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교육의 수수께끼

이강기 2015. 9. 16. 12:11

[서평]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수수께끼


정경희, 『한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 비봉출판사, 2013.

[권희영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대한민국은 분단된 국가이다. 1945년 해방 후 건국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김일성 집단이 유엔의 결의에 의한 남북총선거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정권을 세운 탓이다. 그 이후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에 의한 전쟁과 도발 등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은 전쟁과 가난을 딛고 세계의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악의 정권이 되어 빈곤과 독재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2002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왔다. 북한이 옹호되고 대한민국을 ‘잔혹’의 역사로 묘사하는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나왔다. 정경희 박사가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열쇠이다.

 

민중사학의 기원

 

정경희 박사는 대한민국 역사교육의 이 같은 수수께끼가 2002년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출간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이중 가장 대표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친북반미 서술로 일관하면서 국가의 정통성마저 부정”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이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 전쟁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 박사는 이처럼 편향된 역사교육의 “역사적 연원”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연원에 바로 소위 ‘민중사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 민중사학의 모태 역할을 한 것이 ‘민족주의적 국사교육’이라는 점을 또한 지적하고 있다.

이제 우선 정 박사의 논지를 소개하여 보기로 하자. 정 박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우근, 이기백, 이우성, 김용섭 4인은 “중・고등학교 국사교육 개선을 위한 기본방향”이라는 제목의 정책연구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 이미 민중사학의 싹은 자라고 있었다. “민족주체성”의 강조, 역사를 “내재적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려는 시각, “민중의 활동과 참여를 부각시킨다”는 목표가 뚜렷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박사는 여기에서 제시된 민족주의가 “훗날 민중사학이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민중적 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1972년 10월 유신을 전후하여 박정희 정부는 국사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강조되고 유신체제의 당위성이 강조되었다. 정 박사가 보기에, 이때에 주목할 만한 것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조장”된 것이다. 이리하여 1974년 처음으로 출간된 국정교과서에서는 “민족주의의 대의명분은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절대 선(善)이 되고 민족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약으로 생각될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져 사용되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재야사학자들에 의하여 촉발된 상고사 논쟁이 있었지만, 그 자체가 교과서 내용에 유의할만한 변경을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민족사관 교육은 지속되었으며, 동시에 근・현대사 교육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에 학원가는 소요의 양상을 보였다. 전두환 정권은 학원 소요의 한 원인이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관계있다고 보고 현대사 교육을 재정립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86년 문교부는 교과서 개편작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87년 6월 5일에 <국가교육 내용 전개의 준거안>을 발표하였다. 이 <준거안>을 작성한 연구실무팀 중에 근・현대사 담당은 조동걸이었다. 그런데 이 <준거안>에서는 일제시기를 북한 용어인 ‘일제 강점기’로 표현하였으며 “북한의 역사 변천에 대하여 민족사적 차원에서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조동걸 그 자신이 민중사학자였던 것이다.

 

민중사학의 창궐

 

1970-80년대는 한국사학계에서 민중사학이 창궐하던 시기였다. 강만길은 ‘분단사학론’을 내세우고 “통일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역사학”을 내세웠다. 이만열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하는 민족사를 제창하였다. 조동걸과 정창렬은 운동 주체로서의 민중을 강조하였다. 정 박사는 이들의 사학을 “민중적 민족주의 사학”으로 규정한다.

정 박사는 민중사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는 민중사학을 “한국 마르크스주의 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 접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고 본다. 그 자양분을 공급한 사람들은 강만길, 리영희, 백낙청 등이고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다. 1980년대 이래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의 서점가에 창궐한다. 이와 함께 북한 역사학 역시 대한민국 서점가에 유입되어 유포되었다.

이렇게 창궐한 민중사학은 학자들의 연구단체 결성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역사연구회는 “민중의 의지와 세계관에 들어맞는 역사학”의 추구를 선언하였다. 구로역사연구소도 설립되어 역사학자들이 “현실 변혁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창하였다. 이 시기 미국의 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6・25전쟁을 수정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역사 왜곡을 하였지만, 이를 대한민국의 민중사학자들은 적극 수용하였다.

 

민중사학의 교과서 공략

 

1980년대 말부터 사회변혁을 목표로 삼는 민중사학 주장자들은 국정 교과서를 공격하면서 민중사학 교과서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들은 교과서 국정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를 박준성은 “‘해방’의 미래를 심는 일”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국정 교과서 대신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를 써야하는데, 그 이유는 고등학생이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기간부대가 될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남지대는 설명하였다. 이리하여 이들은 1990년부터 스스로 대중용 교과서를 집필 배포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서 민중사학은 드디어 역사교육 현장을 직접 공략하게 되었다. 김영삼 정권은 1994년 3월 제6차 교육과정에 의한 <국사교육 내용 전개의 준거안>을 발표하였는데, 이 시안 집필자 중 현대사 관계 전공자 서중석은 그때까지의 현대사를 완전히 전복하는 시안을 마련하였다. 해방 후 소련 사주에 의한 공산주의자들의 찬탁 운동을 삭제하고, 6・25 남침을 삭제하고, 김일성 독재체제 대신 ‘수령유일체제’로 북한 체제를 오히려 합리화시켰다. 하지만 ‘준거안 파동’까지 몰고 온 서중석의 시안은 부분 수정을 거쳐 상당부분 그대로 적용되었다.

1997년 고시되고 2000년 작성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국사 과목 이외에 심화선택 과목으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되었다. 제7차 준거안에서는 민중사학적 주장이 대폭 반영되었다. 이 준거안 작성의 근・현대사 전공자는 방기중과 박찬승이었다. 제7차 교육과정의 준거안에 입각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에는 검정제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노골적인 좌편향 교과서의 출현이었다. 검정을 통과한 6종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급기야 교과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편향성이 심한 금성출판사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김한종, 홍순권, 김태웅 등에 의하여 집필된 이 교과서는 민중사학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이 교과서는 “좌파, 친북 성향”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전국 고교에서 50%가 넘는 채택률을 기록하였다. 민중사학의 교과서 공략과 독주를 우려한 지식인들은 이에 2005년 교과서 포럼을 만들고 이어 2008년에는 대안교과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나아가서 2008년 교과부는 문제가 제기된 금성 교과서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는 부분 등에 수정명령을 내렸지만 집필진은 반발하여 수정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기도 하였다. 결국 2011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수정명령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같은 파동을 겪고서 2009년 교육과정에 따라 2010년 검정을 통과한 6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2011년부터 교과서로 사용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교과서들에서도 좌편향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예컨대 6.25 전쟁에 관련된 부분에서 “남한이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 피해자라는 사실을 희석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같은 민중사학 주장자들의 집합소로,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 이들 세력과 연계되어 있는 단체로서 전교조와 전국역사교사모임(전역모)를 적시하였다. 정 박사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중사학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향까지 보이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극단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맹목적 민족주의’의 사슬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이 집필한 최근의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친북 성향의 ‘맹목적 민족주의’에 단단히 속박돼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에 대한 맹신의 사슬을 끊을 때만이 비로소 우리의 역사교육은 ‘역사의 정치화’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겨진 과제

 

정경희 박사의 저술을 통하여 우리는 민중사학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창궐하고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교과서를 장악하게 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교육과정 변천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 흐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밝혀낸 것 역시 정보로서도 훌륭하다.

이 책에서는 또한 민중사학이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민족주의와 긴밀하게 결부되었다는 것 역시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21세기라는 시대에 낙후된 천박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진실에 우선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청소년들을 계급투쟁의 자원으로 삼겠다는 뻔뻔스러움, 현실을 타개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아무 것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 한심한 태도, 통일과 정의를 앞세우지만 뒤로는 국민적 통일을 방해하고 인권탄압에 눈과 귀를 막는 이중적 인성 등등. 이러한 것들이 결국 민중사학자들, 그리고 그에 추종하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필자가 단 한 가지 저자의 논지에 의문을 제기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들 민중사학자들이 과연 민족주의자들인가 하는 점이다. 민족주의(nationalism)라면 국민과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무엇보다 앞세운다. 하지만 민중사학자들은 민중을 내세워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를 파괴하는 자들이 아닌가? 민족주의는 이들에게는 북한과 연계된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가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파괴적 목적을 무조건 정당하다고 믿고 다른 모든 것을 전술적으로 도구화한 이들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박헌영의 후예들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민중사학의 굴레를 벗어던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