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神話, 儀禮, 君主權>
나희라(울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 머리말
뚜렷한 국경이 없었던 고대에 동북아의 여러 민족은 다양한 접촉과 이동을 통해 성장해나갔다. 이러한 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관계는 여러 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생활과 관념을 표현한 신화와 의례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고대의 문헌상에 남아 있는 동북아 제민족의 신화와 의례는 대개 왕이나 국가와 관련된 시조신화 내지 건국신화이며, 국가의례나 왕권의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신화와 의례에는 그 사회의 君主觀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신화와 의례, 그리고 거기에 반영된 군주관을 통해 그 관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시조(건국)신화와 의례
많은 고대 동북아 민족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 설명의 방식은 각기 다양하나, 또 공통적인 이야기 구조나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고대 동북아 제족들간의 신앙과 습속에서의 유사성, 한편으로는 집단간의 다양한 접촉과 상호 영향의 결과일 것이다.
고대 동북아 제족들의 시조신화에는 특히 자신들의 기원을 하늘에서 찾는 이야기 방식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고대 동북아 민족들이 보편적이며 지고한 하늘에 대한 신앙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특히 부여와 고구려를 비롯한 여러 고대 동북아 민족들에게서 지상의 여인이 하늘의 빛을 받아 하늘의 아이를 낳는다는 日光感精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시조신화가 발견된다. 일광감정형 신화가 북방계통으로 분류될 특이한 것은 아닐 것이나, 고대 동북아 여러 민족에게 하늘의 전능함을 햇빛으로 받아 지상세계의 풍요를 이룬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하늘의 아들을 낳은 존재는 여성이 된 곰이다. 곰이 자신들의 시조라는 이야기가 동북아 여러 민족들에게 널리 보임은 이미 많이 알려진 바이다. 곰이 여자가 되어 인간세상의 영웅을 잉태할 수 있었던 것은 동굴에서의 일정한 금기를 거쳐 새로운 존재로 재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동굴과 같은 곳에서의 유폐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탄생과 창조를 이룩했다는 이야기 역시 고대 동북아 여러 민족들에게서 보이고 있다.
고대 한국의 건국신화에서 나무는 하늘을 포함한 神聖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데, 이 역시 동북아 신화와 의례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聖樹, 聖林에 대한 신앙과 연결이 된다. 특히 神木은 버드나무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고구려 柳花와의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만주의 시조신화에서 Fodo mama(柳枝娘娘)는 버드나무와 여성, 물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유화와의 친연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부여의 侍婢나 고구려의 유화와 같이 始祖母의 존재가 시조신화에서 중시된다는 점도 몽골의 알란 고아나 만주족의 불고륜 시조신화에서도 찾아지는 점이다.
이러한 고대 동북아 민족의 시조신화에서 볼 수 있는 유사성은 공공의례에도 반영되어 있다. 고대 동북아의 공공의례들이 聖樹를 중심으로 거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동굴을 시조의 기원과 연결하여 그곳을 의례의 장소로 삼았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고구려의 東盟祭는 나라 동쪽의 큰 굴에 모셔두었던 나무로 표현된 신을 國東水上으로 모시고 나와 제사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동굴 속의 신은 유폐되었던 유화이며 결국 동맹제의 과정은 유화의 일광감정과 주몽의 탄생신화를 재현한 것이며 祭天儀禮였다고 할 수 있다. 제천의례를 물가에서 거행하였다는 것은 고구려 외에 선비와 돌궐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고대 동북아 민족 간의 시조신화와 국가적 의례에서의 유사성은 그러한 신화와 의례를 형성케하는 신관념에서도 보인다. 고구려에서 시조를 모시는 제사가 곧 제천의례였음은 시조와 천신이 직접적인 관련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라에서도 시조에 대한 제사가 곧 제천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탁발선비는 선조의 동굴에서 천지제사를 지낼 때 皇祖先妃를 配祭하였다. 이는 중국의 郊祀에서 先帝가 陪祀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고구려의 경우와 같이 시조를 제사하는 것이 곧 祭天이라는 관념을 표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탁발선비의 제사에서 태조가 가장 중요한 대상신이고 天日月山神 등은 倂祀되는 위치였다는 지적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천신과 시조신(자연신, 또는 지고신과 인격신)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종교 관념의 반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경우 殷代의 至高天神은 인격적인 요소를 아울러 가졌으나 周代 이후 두 신격 요소는 분리되기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에 와서는 천신의 인격신적 요소는 소멸되고 보다 추상화되는 천신 관념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적 집중도가 중국에 비해 떨어졌던 주변 민족에서는 이러한 신관념의 분화가 분명하지 않다.
이는 천신의 아들이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하면서 그와 시조모를 제사하는 의례를 祭天이라고 인식한 고구려의 경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지고한 하늘의 권능이 그 자체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격성을 띄고서야 구체적으로 인간 세상에 작용을 한다는 신관념의 반영이다. 신라의 경우도 제천의례가 없었다고 하나 신라인들은 '天子'로 여긴 시조를 제사하면서 그를 통해 천신과 접촉하였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황실의 조상이 곧 천신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 대한 제사는 祭天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앞에서 본 탁발선비의 경우나 元이 郊祀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가능한 한 높이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해될 수 있다. 흉노의 5월 ?城大會에서 先祖와 天地?鬼神을 제사하였다는 중국 측의 설명도 선조에 대한 제사와 천지?귀신의 제사가 그 대상이나 과정에서 분명히 분리되지 않은, 결국 신관념의 분화가 명확하지 않았던 흉노의 제사 형태를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신화와 의례의 한 면에는 지고천신의 권능이 인격성을 띠면서 인간세계에 구체적으로 작용을 한다는 신관념이 숨어있다. 이는 중국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 집중도가 떨어졌던 사회에서 신관념의 분화가 덜 진전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7,8세기 단계의 당과 신라, 일본의 국가제사체계를 비교해보면, 당에 비해 신라나 일본의 국가제사에서 제사 대상신의 구분이 모호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신라나 일본의 경우 무언가를 기원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목적에 맞는 명확한 신을 지정하여 제사를 하기보다는 여러 기능을 가진 신들을 모두 모시거나 주된 신격에게 여러 복합적 성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거행하였고, 이는 신관념의 세분화가 명확하지 않은 종교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동북아 여러 민족의 신화와 의례의 기록은 대개 시조(내지 건국)신화와 국가의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신화와 의례는 군주권의 기원을 설명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왕권신화이며 왕권의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신관념이 그러한 신화와 의례의 구성에 반영되어 그 신화와 의례들이 설명하고 있는 君主觀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본 관념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하 이 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3. 君主觀과 ‘天王’
고대 중국과 주변 민족들은 모두 君主權의 기원을 하늘에서 찾았다. 중국의 ‘天子’, 흉노의 ‘?犁孤塗單于’, 선비 이후의 ‘可汗’ 등 군주의 호칭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여타 민족들의 군주 호칭에 담긴 군주권에 대한 관념은 다른 면이 있었다.
중국의 ‘天子’는 말 그대로 지고한 하늘의 아들이므로 인간 세상에 군림할 자격을 갖는다는 관념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천신 관념에서 인격성이 떨어지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漢代에 이르면 天神 또는 그 分身이라는 주장보다는 賢德에 의해 하늘의 승인을 받은 ‘聖人天子論’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중국의 ‘天子’는 한 인간이 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늘이 그를 ‘佑而子之’한 것으로, 여기에는 출생의 의미보다는 賜爵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천자’는 천의 권위를 매개로 德이 뛰어난 인간에게 신성성을 부회하기 위한 개념일 뿐 문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은 아니다. 때문에 천자는 天의 ‘所生’ 대신에 ‘子之’ 또는 ‘所子’하여 성립된 것으로 표현되었다.
흉노나 선비, 돌궐, 거란, 고구려, 신라 등의 군주권에 대한 관념은 다르다. 흉노의 건국자인 冒頓은 자신을 ‘天所立匈奴大單于’라 하였고 그 뒤를 이은 老上도 중국에 보내는 서한에서 자신을 ‘天地所生日月所置匈奴大單于’라 하였다. 흉노의 선우는 하늘이 ‘所生’하여 ‘所置’한 존재였던 것이다. 돌궐에서도 可汗은 ‘從天生大突厥天下賢聖天子伊利俱盧設莫何始波羅可汗’으로 칭해진 ‘하늘이 만든’ 혹은 ‘하늘에서 생겨난’ 존재였다. 흉노와 돌궐 군주의 호칭인 單于와 可汗에 붙은 이러한 수식은 ‘하늘에 직접 혈통이 닿을 정도로 신성성과 능력을 가진 군주’라는 그들의 君主觀을 말해준다.
이러한 군주관의 표현은 고조선이나 고구려, 신라의 시조신화에 잘 나타나있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은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天子(또는 天孫)로서 나라를 세운 시조왕이었고, 고구려의 주몽 역시 혈통적으로 ‘天帝之子(孫)’인 시조왕으로서 그 때문에 가능한 능력을 보여준 존재이었다. 신라의 시조왕 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난 말 그대로 ‘天子’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군주가 되었다. 즉 이들은 모두 하늘과 혈통이 이어지는 직접적인 관계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 군주를 ‘하늘의 자손’으로 불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위와 같은 신화적 표현에서 당대의 군주에 대한 직접적인 ‘天子’ 觀念의 흔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하늘에 직접 혈통이 닿아서 신성성과 능력을 가진 군주’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샤만으로서의 주술적 능력이었다. 돌궐에서 높이뛰기 시합을 통해 왕위를 계승하였다는 시조신화의 내용, 담요에 올라앉아 繞旋을 하고 목이 졸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자신의 재위 연수를 점친다는 즉위의례의 과정은 돌궐의 군주로 神靈과 접촉하는 능력을 가진 자, 또는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선택되었다는 사실(내지 관념)의 반영이다. 이러한 군주관이 바탕이 되어 돌궐의 가한은 ‘하늘에서 태어난 可汗’으로 수식될 수 있었다. 샤만의 trance 상태를 증명하는 도약 능력의 과시, 즉 샤만 능력의 과시를 거쳐 왕위 계승을 인정받은 고구려 유리왕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겠다.
돌궐의 것과 유사한 즉위의례는 탁발선비, 거란에서도 행해졌다. 이들 즉위의례에는 再生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는 다른 ‘天子’的 君主觀의 일면을 보여준다. 돌궐의 즉위의례는 新可汗을 담요 위에 올려놓고 重臣들이 이를 들고 태양의 운동 방향으로 9번 도는 형식으로 행해졌는데, 그 행위는 天神을 신가한의 육체에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신성한 군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북위 탁발족의 즉위의례에서도 새로운 군주는 담요를 덮어쓰고 하늘에 절함으로써 신성성을 확보하는 재생을 통하여 군주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었다. 특히 거란의 즉위의례 前儀로서 행해진 再生儀에서는 군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신령’을 부여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와 유사한 면을 신라의 시조신화와 그 의례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의 시조왕 혁거세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알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으므로 ‘天子’로 여겨져 왕위에 추대되었다고 하였다. 신라의 시조신화는 시조왕에 대한 제사에서 주기적으로 거행되고 특히 新王의 즉위의례에서 재현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시조신화에서 시조왕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新王의 즉위의례에서 신왕이 아기와 같이 새롭게 탄생한 존재임을 표현했던 사실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야의 시조왕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홍색의 보자기 속에 있던 금합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신화 역시 즉위의례의 口傳相關物로 보인다. 일본의 즉위의례인 大嘗祭에서는 새로 즉위한 천황에게 권위를 부착시키는 의례가 행해졌는데 거기에는 天孫인 니니기노미코토가 降臨할 때 타카미무스히노미코토가 眞床追衾으로 그를 싸서 내려가게 했다는 天孫降臨神話가 배경이 되고 있다. 이들 신화를 통해 천 같은 것을 쓰고 있다가 벗음으로써 신성한 존재로 거듭나는 군주의 즉위의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즉위의례는 이와 달리 종교적인 색채를 대부분 탈각한 채 엄숙하고 정교하게 거행되었다.
중국과 여타 민족의 즉위의례의 차이는 곧 군주관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의 天子는 종교성을 상당히 벗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민족들의 경우는 아직 샤만적 능력을 기대하고 그 신성성을 하늘에서 직접 찾아 권위를 수식하는 ‘天子’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주변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 사회적 집중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신관념의 차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천신에게서 인격성을 탈각시켜버린 결과 중국의 군주인 ‘天子’는 덕을 갖추어 최고의 理法인 天의 命을 받아 통치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천신이 인격을 통해 구현된다는 신관념을 가진 민족에게서 ‘天子’는 천의 의지를 실천하는 매개자로서 하늘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와 교류가 가능한 샤만적 능력이 군주의 자격 중 하나로 요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왕은 세속적 인간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신성한 능력을 갖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즉위의례를 거행해야 했던 것이다.
중국과 북방민족의 신관념과 군주관의 차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 5호16국 일부 군주들이 사용했던 ‘天王’이라는 칭호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 상당수 胡族 君主가 ‘天王’의 칭호를 채택하였다. 이에 대해 천왕은 황제를 칭하기 전 단계의 칭호나 自貶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왜냐하면 天王의 칭호는 봉건적 周代의 ‘天王’ 칭호를 이은 것으로 5호 16국 당시 宗室과 정치적?군사적 分權體制를 이루고 있던 제한적 군주권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이를 또 다른 면에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5호 16국 시대에는 天王을 거쳐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예 만큼이나 황제 칭호를 버리고 다시 천왕으로 돌아간 군주들도 있었다. 왜 이들은 皇帝의 칭호를 버리고 굳이 天王 칭호를 선택했을까? 당시 중국과 달리 북방 胡族은 천신의 지고성이 인격성을 통해 구현되고 군주는 직접 하늘과 접촉하고 거기서부터 신성한 능력을 받아 통치하는 존재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賢德이라는 인간적 자질에 의해 하늘의 승인을 받아 통치한다는 중국적 군주관에 의한 황제의 호칭이 호족 군주들에게 아주 친숙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호족 군주들은 표면적으로는 周代에 이미 사용하였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天과 王을 연결하는 듯한 天王의 칭호를 선택하였던 것은 아닐까.
4. 맺음말
이상에서 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시조신화와 국가의례의 유사성을 특히 신관념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것이 또한 君主觀에도 반영되었음을 정치사회적 집중도에서 차이가 나는 중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았다. 물론 고대 동북아 제민족의 신화와 의례의 관계를 살피는데는 그들간의 복잡하게 얽힌 종족적 관계, 생활문화 기반의 관계, 정치사회적 교류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신화와 의례에서 유사성이 보이더라도 이것이 생활문화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교류에 의한 것인지 등이 우선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령 흉노나 선비와 같은 유목국가와 고구려나 신라와 같은 농경국가의 군주관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관념과 같은 종교사상은 비교적 강고한 신념과 같은 것이어서 쉽게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이 정치사회적으로도 어떤 수준의 단계를 반영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신화와 의례, 군주관에서 보이는 유사성의 원인을 신관념의 측면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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