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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유학사상적 배경 - 한국인의 동기론을 중심으로

이강기 2015. 9. 19. 10:28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유학사상적 배경 
             
                        한국인의 동기론을 중심으로
  -  조 긍 호 (서강대)



1. 세계화의 심리적 함의

세계화의 물결이 전 지구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다. 세계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보통 경제?사회?문화 등 제 영역에서의 개방화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방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개방화?세계화는 일견 전통?전통 사상과는 상치되는 개념인 듯하고, 따라서 개방화는 필연적으로 전통의 소멸로 이어질 것 같은 데, 과연 그러한가?

세계화가 초래하는 문화적 효과에 관한 논의는 Holton의 분류에 따르면, 동질화(homogenization)?양극화(polarization)?혼융화(hybridization)의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기서 동질화 명제는 세계화에 따라 세계 경제가 서구, 특히 미국의 경제 체제하에 편입되고, 결과적으로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서구화, 특히 미국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즉, 전 세계의 문화가 서구 문화, 특히 미국 문화로 통합되어 동질화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양극화 명제는 세계화와 더불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세계 지배가 본격화되면서, 비서구, 특히 아시아권이 단결하여, 서구 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이질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혼융화의 명제는 세계화와 더불어 각 문화의 특수성과 이질성이 부각되므로써, 다양성이 인정되고,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문화적 융합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세 입장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지, 즉 세계화로 인해 문화 측면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는지에 대해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곤란하다. 실제로 현재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의 세계 간이음식(fast food) 시장 지배와 같은 동질화의 측면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슬람과 미국의 대립의 격화와 같은 양극화의 측면이 나타나기도 하며, 재즈와 록 등 대중 음악의 변화 등에서 보이듯이 혼융화의 측면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세계화와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개념이 가지는 심리적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이다. 인간과 관련된 현상은 어떤 것이든지 심리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구성된 허구 개념이기가 뻔하기 때문이다.

Tajfel(1982)에 따르면, “내가 누구인가?” 또는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인식, 즉 자기정체성(self-identity)은 두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개인적 정체감(personal identity)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정체감(social identity)이다. 여기서 개인적 정체감은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능력?선호 등에 터해서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다. 예를 들면,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 “나는 수학을 잘 한다”,  “나는 낚시보다 등산을 좋아한다” 등이 개인적 정체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정체감은 스스로가 소속되고 있는 사회 집단에 기초해서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다. 예를 들면, “나는 서강대학교 학생이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등이 사회적 정체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긍정적인 자기 정체감을 가지려 하며, 이를 위해 개인적 정체감과 사회적 정체감을 높이려 노력하게 된다. 이 중에서 개인적 정체감은 스스로의 특성?능력 등 객관적 비교를 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게 되므로, 이를 증진시키기는 대체로 매우 힘들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사회적 정체감을 증진시킴으로써 자기정체감을 고양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기 소속 집단의 긍정적 측면을 자꾸 부각시키고, 부정적 측면은 가능하면 감추려 노력하거나, 또는 사회적 정체감을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집단에 소속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사회적 정체감의 고양은 자기 정체감 증진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특히 개인적 정체감이 별로 긍정적인 것이 아닐 때,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사회적 정체감은 스스로를 소속 집단원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앞에서의 예로 돌아가면, “서강대인”, “서울인", “한국인”으로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이 사회적 정체감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일시는 자기가 소속되지 않은 같은 수준의 다른 집단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 즉, “한국인”으로의 동일시는 한국과 마주하고 있는 같은 수준의 사회 집단인 일본?중국?미국 등 중에서 자기는 일본?중국?미국 등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한국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화를 고찰하면, 이는 “세계인”으로서의 안목을 갖자라거나 “세계인”으로서의 정체감을 갖자라는 구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인”으로의 사회적 정체감을 가질 수 가 있는가? 이는 심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와 대가 되는 같은 수준의 사회 집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화성과 금성에도 생물체가 살아 화성인?금성인이 실재로 존재하고 있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연스레 지구인(세계인)으로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계인으로 동일시한다는 것은 심리적인 허구이고,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는 심리학적으로는 허구 개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이렇게 세계화가 심리적인 허구 개념이라면, 이는 다른 목적을 위해 구성된 정치적인(?) 개념이기 쉽다 이는 마치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맥락 속에서 발화자의 의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달리하는 ‘실재성’이 결여된 수상쩍은 개념”으로,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담론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마찬가지로 서양인들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는 ‘허구적 구성’(imaginary construct)일 따름”(이승환, 1999, p. 320)인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화와 그것이 미칠 영향에 관한 논의는―동질화론이든, 양극화론이든, 아니면 혼융화론이든 간에―이 개념의 발화자가 누구이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한국적 민주주의” 또는 “세계화” 등 어떤 개념이든지 “담론 주체가 청자들에게 미치고자 하는 특정한 의도와 영향력을 담고”(이승환, 1999, p. 328)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개념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제기한 개념이라면, 이 개념의 배후에는 아마도 미국의 세계 제패의 논리가 숨겨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또 혹시 이 개념이 개발독재국의 정치인들이 제기한 개념이라면, 이 개념이 미국의 세력을 배후에 업고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동원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이승환, 1999, p. 327)는 아닌지 천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자라면 아마도 동질화론이나 양극화론이 우세하게 대두될 것 같고, 후자라면 혼융화론을 들고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서 필자는 이 개념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따라서 그 영향에 관한 논의 중 어느 것이 우세한 것으로 드러나게 될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않으려 한다. 이는 심리학도인 필자의 역량을 벗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복잡한 세계화의 시대에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현실과 전통의 이해가 급선무라고 보고, 현대 한국인의 심성과 행동의 집단주의적 특징과 그 유학 사상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러한 정확한 이해는 급격하게 밀어 닥쳐오는 서구 문화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출발선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변화의 방향을 스스로가 설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의 정립이라는 의미도 가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2. 한국인 이해의 배경 문화

사회심리학자들이 문화의 개념을 그들의 이론적 개념틀 속에 포함시켜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Doob, 1980). 이는 한 사회의 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 내용 규정의 애매성과 문화 간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차원 설정의 어려움 및 그에 따르는 방법론적 곤란성(Bond & Hwang, 1986; Fiske et al., 1998; Markus & Kitayama, 1991a, b; Triandis, 1990, 1994a, b, 1995, 1996) 들에 그 까닭이 있었다.이러한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부딪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전형적인 유형으로 다양한 문화들을 분류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 비교 연구의 기본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들에서 문화 간 차이를 조감하는 다양한 체계가 제시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Hofstede(1980, 1983, 1991)의 66개국(53개 문화 집단)에 걸친 광범위한 비교 연구 이후, Triandis(1988, 1989, 1990; Triandis, Leung, Villareal, & Clark, 1985)에 의해 문화 비교 연구의 핵심 차원으로 부각된(Berry et al., 1992) 개인주의-집단주의(individualism-collectivism)의 분류 체계이다. 개인주의-집단주의의 분류 체계는 이 이후 문화 비교 연구의 기본틀이 되어, 1980년대이래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였다.

이 분류 체계에서 개인주의는 북미와 북유럽의 국가들에서 지배적인 문화 유형이고, 집단주의는 아시아와 남미 및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 지배적인 문화 유형이다(Hofstede, 1980, 1983, 1991). 이 두 문화 유형은 그 지역적 분포 양상이 이렇게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사상적 배경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즉, 개인주의 문화는 희랍 철학과 중세 이후의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집단주의, 특히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의 사상적 배경은 유학 사상(Confucianism)에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이승환, 1999; 조긍호, 1998a; 한규석, 2002; Bond & Hwang, 1986; Fiske et al.,  1998; Kagitcibasi, 1997; Kim, 1994, 1995; Kim & Choi, 1993; King & Bond, 1985; Lew, 1977; Nisbett, in press; Nisbett et al., 2001; Tu Wei-Ming, 1985; Triandis, 1995).

이러한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분류 체계에서 한국은 특징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속한다(Hofstede, 1991). 지금까지의 문화 비교 연구들에서는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로서 미국과 캐나다인을 잡고, 집단주의 문화의 대표로서 중국?일본?한국인을 잡아, 이 두 집단의 행동과 심성의 특징을 대조?분석하는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Oyserman, Coon, & Kemmelmeier, 2002). 그러므로 이러한 연구들에서 밝혀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행동과 심성의 특징들을 대조?정리해 보면,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 배경으로서의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는 대조되는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므로(Berry et al., 1992; Festinger, 1954), 대조가 되는 타 문화(개인주의 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세계 문화 속에서 한국 문화가 가지는 특징이 잘 부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집단주의 문화의 사상적 배경은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 특히 유학 사상에 있다. 한국심리학계에서는 그 동안 한국 문화의 사상적 배경으로서의 유학 사상에서 서구심리학과는 다른 동양 및 한국의 독특한 심리학적 이론 체계를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들을 통해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으로 밝혀지는 인간 심성 및 행동에 대해 유학 사상에서는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알아보는 일은 한국인 이해를 위한 개념틀 도출 작업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인간의 행동 동원 체계인 동기(動機)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해 보려 하였다.


1) 집단주의 문화

Hofstede(1980, 1983, 1991)는 1967 년과  1973 년에 다국적 거대 기업인 IBM에 근무하는 66 개국 117,000 명의 종업원에게 작업 목표 및 가치와 관련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연구의 대상은 모두 IBM이라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이었으므로, 근로조건?학력?연령 등은 대체로 비슷하고 단지 국적만 다르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조사에서의 차이는 곧 국가 또는 문화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Hofstede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국가 간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각 문항에 대한 각 국가별 응답자들의 평균치를 기초 자료로 하여 요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처음의 분석에서 그(Hofstede, 1980)는 응답자의 수가 비교적 많은 40 개국의 자료를 기초로 요인 분석을 하여, 권력 거리(power distance: 사회 내의 권력 분포의 불평등의 지표), 개인주의(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고, 개인 간의 구속력이 느슨한 정도의 지표), 남성성(masculinity: 자기주장?물질?경쟁 등의 남성적 가치를 선호하는 정도),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불확실한 상황이나 미지의 상황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는 정도)의 4 가지 요인 구조를 밝혀내었다. Hofstede (1983, 1991)는 이후의 연구에서 먼저의 분석에 포함되지 않았던 10 개국과 3 개 문화 집단을 포괄하여, 이들 53 개 문화권에 대하여 위의 4 차원 상에서의 서열과 요인 점수를 제시하고 있다.

이 4 요인 중 이후의 연구자들, 특히 Triandis(1988, 1989, 1990, 1994a, b, 1995, 1996; Triandis et al., 1985) 등이 문화차를 가장 잘 드러낼 것이라 보고 주목한 요인이 개인주의-집단주의의 요인이었으며(Berry et al., 1992; Bond, 2002; Fiske, 2002; Kitayama, 2002; Miller, 2002), 따라서 문화 비교 연구들은 이 요인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Kagitcibasi, 1994, 1997; Oyserman, Coon, & Kemmelmeier, 2002; Oyserman, Kemmelmeier, & Coon, 2002).

Hofstede(1991/1995, p. 87, 표 3.1)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개인주의 점수가 18점으로 홍콩(25점)?싱가포르(20점)?대만(17점) 등과 함께 매우 집단주의 쪽에 치우쳐 있다. 이 자료에서 개인주의의 극단에 있는 나라들은 미국(91점)?호주(90점)?영국(89점)?캐나다(80점)?네덜란드(80점) 등 북미와 북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이 자료에서 보듯이, 한국의 문화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속하고 있으므로, 한국인의 심성과 행동에는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사회적 분석의 수준에서 집단주의의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이 누구나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권의 성원들보다 더 집단주의적이거나, 한국인이 개인주의적인 특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사회 수준의 분석과 개인 수준의 분석을 혼동하는 생태학적 오류(ecological fallacy. Hofstede, 1980)에 빠지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사회의 문화가 집단주의 또는 개인주의라고 해서, 그 사회의 성원들이 모두 집단주의자 또는 개인주의자는 아닌 것이다(Bond & Smith, 1996; Schwartz, 1992).          

Triandis(1989, 1990, 1994a, 1995, 1996; Bontempo, Lobel, & Triandis, 1990; Singelis, Triandis, Bhawuk, & Gelfand, 1995; Triandis, Bontempo, Villareal, Asai, & Lucca, 1988; Triandis & Gelfand, 1998; Triandis, Leung, Villareal, & Clark, 1985; Triandis, McCusker, & Hui, 1990)는 문화 수준에서의 집단주의-개인주의의 양극 차원이 한 개인에게 공유될 수 있음을 밝히고, 문화 수준에서의 집단주의-개인주의를 개인 수준에서는 집단중심성-개인중심성(allocentrism-idiocentrism)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집단중심성향자는 집단주의의 문화적 특징을 개인주의의 특징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고, 개인중심성향자는 개인주의의 문화적 특징을 집단주의의 특징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Triandis(1994a)에 따르면, 개인중심성향자가 집단중심성향자보다 많은 사회는 개인주의 사회이고, 집단주의 사회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즉, “만일 한 문화 내의 개인들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체로 집단주의적 요소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집된다면, 우리는 그 문화를 집단주의라 부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측정해 낸다면……우리는 ‘이 문화 내의 70%의 사람들은 집단주의자이고, 30%는 개인주의자이다’ 와 같은 식의 진술을 할 수도 있다”(Triandis, 1994a, 인용문 속의 따옴표는 원문 그대로 임)는 것이다.

  한 사회 내의 성원들의 문화성향을 이렇게 다르게 하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연령?교육 수준?거주 지역 및 경제적 풍요 등을 들 수 있다(Triandis, 1990, 1995). 즉, 연령이 낮을 수록(Gudykunst, 1993; Triandis et al., 1988), 고등교육을 받았을 수록(Triandis, 1990, 1995), 도시에 거주할 수록(Kagitcibasi, 1990, 1996; Triandis, 1990, 1995),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록(Hofstede, 1980, 1983, 1991; Triandis, 1990, 1995)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반면에 연령이 높아지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농촌에 거주하거나, 가난할 수록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일 수록 기성 세대에 비해(김의철, 1997; 한규석?신수진, 1997; Han & Ahn, 1990),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 수록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에 비해(나은영?민경환, 1998; 나은영?차재호, 1999; 차재호?정지원, 1993; 한규석?신수진, 1997; Han & Ahn, 1990), 그리고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일 수록 도시인에 비해(장성수?이수원?정진곤, 1990)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도 개인중심성향자와 집단중심성향자가 혼재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전반적으로 집단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Oyserman, Coon과 Kemmelmeier(2002)가 집단주의-개인주의에 관한 50 개 국제 비교 연구를 사후 종합 분석(meta-analysis)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다른 나라들, 특히 미국?캐나다 같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국가들보다 개인주의 수준은 낮고, 집단주의 수준은 높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집단주의-개인주의 문화차 관련 연구들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집단주의 문화의 성원들이 보이는 인지?정서?동기의 특징들을 그대로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에서는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 배경을 집단주의 문화로 보고, 개인주의 문화와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집단주의 문화의 동기적 특징에서 한국인의 행동과 심성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틀을 도출해 보고자 하였다.

  
2) 유학 사상

집단주의, 특히 한국과 같은 유학의 배경이 강한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는 유학의 전통에서 그 사상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이승환, 1999; 조긍호, 1998a; 한규석, 2002; Bond & Hwang, 1986; Fiske et al., 1998; Kagitcibasi, 1997; Kim, 1994, 1995, 1999; Kim & Choi, 1993; King & Bond, 1985; Lew, 1997; Nisbett, in press; Nisbett et al., 2001; Tu Wei-Ming, 1985; Triandis, 1995). 전통 사상은 우리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살아 있는 현실의 일부로서, 이러한 전통과의 교섭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전통 사상은 현대인의 삶과 행동 및 사유 속에 녹아 있게 마련이다. “동양 사상의 전통, 그 가운데서도 유교 전통은 한국인은 물론이요 동아시아인들 모두의 삶의 방식, 인생관과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길희성, 1998, p. 3).

Tu Wei-Ming(1996)은 이렇게 유교권 사람들의 의식 구조 속의 가치관과 행동 또는 사유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을 “마음의 유교적 습성들”(the Confucian habits of the heart)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습성들 안에는 “……유기적 인간 관계, 신용과 신의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서의 사회, 개인적 이익과 공동선의 조화, 책임과 함께 증가하는 도덕 의식, 지도자들이 도덕적 실천을 통해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 문화적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등이 포함되어 있다”(이광세, 1998, p. 66). 이러한 특징들은 대체로 현대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들과 결부되는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의 유교적 습성들”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는 “근면?절약?성실?청렴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교의 전통적 가치관”(이광세, 1998, p. 66)은 현대 동아시아인들의 삶의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 지역 국가들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유교적인 국가라고 생각되고 있다. 홍콩이나 일본보다 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대만이나 중국 자체보다도 더욱 유교적……이다. 19세기에 한국을 찾아 왔던 선교사들이나 여행가들이 한국인들의 생활 거의 모든 부분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엄격한 유교적인 제도와 유교적인 가치관을 보고서 큰 놀라움을 표명했다. 또 현대의 많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도 현재의 한국인이……분명한 유교적인 태도와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데 대해서 역시 확신하고 있다”(고병익, 1996, pp. 280-281).

우리나라에서 유학 사상은 고려(高麗, 918-1392) 중기에 접어드는 11세기 전반 최충(崔?, 984-1068)과 그 문하생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여, 13세기말과 14세기 초엽 안향(安珦, 1243-1306)과 백이정(白?正, 생몰 연대 미상) 등에 의해 주자학(朱子學)이 도입된 다음(윤사순, 1997), 조선조에 와서는 유학 사상, 그 중에서도 신유학(新儒學)의 한 갈래인 성리학(性理學)이 국가 경영의 최고 이념이 되면서, 우리나라 정신사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유학 사상의 중심인 중국 대륙의 주인이 한족(漢族)인 명(明, 1368-1644)에서 만주족(滿州族)인 청(淸, 1616-1912)으로 바뀌자,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즉, “명이 청에 망하자, 조선은 이제 자신이 명을 대신하여 중화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였다. 이른 바 ‘대중화’(大中華)가 사라져 버렸기에 조선의 ‘소중화’(小中華)가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조선 문화의 긍지를 뒷받침해 주었던 것이다”(장석만, 1999, pp. 266-267, 인용문 속의 따옴표는 원문 그대로 임).

그 결과 유교적 삶의 양식은 일반 민중의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고병익, 1996), 따라서 유학 사상은 한국인의 “문화 전통과 의식 구조의 중추”(이광세. 1998, p. 63)가 되어 있다. 고병익(1996)은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어떤 여론 조사의 결과를 인용하면서, 거의 대부분(91.7%)의 한국인은 유교의 행동과 습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최소한 “유교의 ‘주변성원’을 이루고 있다”(p. 295, 인용문 속의 따옴표는 원문 그대로 임)고 결론짓고 있다.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자 총 400명 가운데 자신이 “유교인”이라고 확인하고 있는 사람은 2명(0.5%)에 지나지 않아,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확인하고 있는 사람 106명(26.25%), “천주교인”이라고 확인하고 있는 사람 20명(5%), “불교인”이라고 확인하고 있는 사람 77명(19.25%)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 그러나 이들도 일상 생활의 기본 실천(조상의 제사?경서의 공부?효도), 일반적 관행(부계 가통?동성 동본 혼인 반대?성묘와 시제?3 년상?폐백?어른 공경) 및 집단 행사에의 참여(가족 및 문중 행사?종친회 및 족보 사업?유림 행사?유교의 선전 활동) 등에서는 일정한 정도 이상으로 유교적 행동과 태도 및 습관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조사 결과 확인된 불교인의 100%, 개신교인의 76.6%, 천주교인의 90%, 무종교인(189명, 47.25%)의 96.8% 등 전체 400명 중 367명(91.7%)이 “그 신념이나 행습으로 보아 유교도라고 볼 수”(p. 294)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일상 생활에서의 신념?행동?습관의 근간에 유학 사상의 배경이 깔려 있다는 사실은 이 이외에 가치의 문화 비교 연구의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Bond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연구자들(Chinese Culture Connection, 1987)은 중국인에게 기본적인 가치 문항 40개로 “중국적 가치 조사”(Chinese Value Survey)를 구성하여, 22개국의 대학생에게 실시하고, Hofstede(1980)와 같은 생태학적 요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Hofstede의 4 차원 이외에 국가 간 차이를 드러내는 제 5의 가치 차원이 찾아졌는데, 이는 인내심?지위와 서열 존중?절약?염치?체면 유지?전통 존중?인사 치레 등 유교적 가치를 반영하는 차원이었다. 그들은 이를 유교적 역동성(Confucian dynamism)이라 명명하고, Hofstede의 가치 차원과의 여러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예: Hofstede, 1991; Hofstede & Bond, 1988). 이 척도에서 강한 유교적 역동성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중국(118점)?홍콩(96점)?대만(87점)?일본(80점)?한국(75점) 등 동아시아의 유교권 국가들이고(순서대로 1~5위임), 미국(29점)?영국(25점)?캐나다(23점) 등은 그 반대쪽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Hofstede, 1991/1995, p. 244, 표 7.1). 이 조사에서도 “마음의 유교적 습성들”이 여전히 한국인의 행동과 사유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본고에서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의 사상적 배경이 아직까지 한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마음의 유교적 습성들”에 있다고 보고, 한국인의 집단주의적인 동기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틀 도출의 유학 사상적 기초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3. 문화 유형과 동기의 차이

동기란 어떤 목표를 향한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을 활성화하고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서, 목표지향성과 선택성이 그 가장 커다란 특징이다(Beck, 1983; Franken, 1998; Geen, 1991, 1995a, b; Geen & Shea, 1997; Heckhausen, 1990; McClelland, 1985; Petri, 1996; Pittman, 1998; Pittman & Heller, 1987; Reeve, 1992 등). 인간의 동기는 대부분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된다. 인간은 타인이나 집단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행위와 동기의 맥락이 사회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간의 동기화된 행위는 대부분 사회적 환경 속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 되게 하는 근거인 것이다(Geen, 1995a). 그러므로 동기 과정에서 추구하는 가용적인 목표의 내용과 종류 및 이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의 고안과 선택 등은 사회적?문화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동기는 문화의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조긍호, 1999a; Choi & Nisbett, 2000; D'Andrade & Strauss, 1992; Fiske, Kitayama, Markus, & Nisbett, 1998; Kitayama & Markus, 1994; Kitayama, Markus, Matsumoto, & Norasakkunkit, 1997; Kornadt. Eckensberger, & Emminghaus, 1980; Markus & Kitayama, 1991a, b; Munro, Schumaker, & Carr, 1997; Nisbett & Cohen, 1996; Ross & Nisbett, 1991; Triandis, 1989, 1990 등).
본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와 동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과 유학 사상에서의 동기 이해를 기초로 하여,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개념틀을 마련해 봄으로써,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의 유학 사상적 배경을 탐색해 보고자 하는 시도로서 준비되었다.


1)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분류 체계

앞에서 지적되었듯이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분류 체계는 1980년대 이후 문화 비교 연구를 지배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Hermans & Kempen, 1998; Kagitcibasi, 1994, 1997; Lonner & Adamopoulos, 1997; Oyserman, Coon, & Kemmelmeier, 2002; Oyserman, Kemmelmeier, & Coon, 2002). 이러한 배경에서 1980년대이래 대부분의 문화 비교 연구에서는 여러 사회 행동의 문화 간의 차이를 집단주의-개인주의의 개념으로 설명하여 왔다(Bond, 2002; Kagitcibasi, 1994, 1997; Kim, 1995, 1999; Kim, Triandis, Kagitcibasi, Choi, & Yoon, 1994; Matsumoto, 2000; Oyserman, Coon, & Kemmelmeier, 2002; Oyserman, Kemmelmeier, & Coon, 2002; Triandis, 1994, 1995). 이렇게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분류 체계는 심리 현상과 문화 차원의 연결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개념을 조작화하고, 산만하기 쉬운 문화 연구들을 통합하며, 그 결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론적 틀로 부각되어 왔던 것이다(Greenfield, 1999; Kagitcibasi, 1994, 1997; Kim, 1995; Oyserman, Coon, & Kemmelmeier, 2002; Oyserman, Kemmelmeier, & Coon, 2002).


(1) 집단주의-개인주의 분류의 기준

개인과 집단 중에서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지금까지 역사학?사회학?인류학?심리학 등 제반 분야에서 문화간의 차이를 조감하는 다양한 체계가 제시되어 왔는데, 이들은 모두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분류 체계와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론들 이외에 집단주의-개인주의의 이론틀 내에서도 이 두 문화 유형의 규범적 차이에 관해서 다양한 논의가 제시되어 왔는데, 이들은 대체로 Hofstede(1980, 1983, 1991)와 Triandis(1988, 1989, 1990, 1994a, b, 1995; Triandis, Bontempo, Betancourt, Bond, Leung, Brenas, Georgas, Hui, Marin, Setiadi, Sinha, Verma, Spangenberg, Touzard, & de Montmollin, 1986; Triandis et al., 1985, 1988, 1990; Hui & Triandis, 1986)의 두 문화 유형에 대한 개념 규정에 기초하여 이루어져 왔다(Bond, 1988, 1994; Schwartz, 1990, 1994; Kagitcibasi, 1997; Kim, 1995). 이제 이들의 정의를 차례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주의는 개인 간의 연계성이 느슨한 사회를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직속 가족을 돌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집단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개인이 강하고 단결이 잘된 내집단에 통합되어 있으며, 평생 동안 무조건 내집단이 개인을 계속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를 가리킨다.

집단주의는 본래 스스로를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집합체(가족?공동작업자?부족?국가)의 일 부분으로 보는, 밀접하게 연계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형태로 정의된다; 이들은 주로 이러한 집합체에 의해 부과된 의무와 규범에 의해 동기화되고; 자신의 개인적 목표보다는 이러한 집합체의 목표에 우선권을 부여하려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며; 이러한 집합체의 성원들과의 연계성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개인주의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집합체와는 독립적이라고 여기는, 서로 느슨하게 연계된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형태로 정의된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선호?욕구?권리 및 스스로가 타인과 수립한 계약에 의해 동기화되고; 타인들의 목표보다는 자기의 목표에 우선권을 부여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 득실의 분석을 강조한다.

이러한 정의들은 두 문화 유형의 차이를 드러내는 많은 연구들의 성과에 기초해서 내려진 것들이다. 한 예로, Triandis(1988, 1990)는 개인 수준 및 문화 수준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측정한 여러 연구들을 개관하여, 개인주의는 독립성과 자립성?내집단으로부터의 거리?경쟁?쾌락 추구의 요인들을 포괄하며, 집단주의는 상호의존성?사회성?가족 통합의 요인들을 포괄하는 개념 체계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기초하여 그(Triandis, 1995)는 이 두 문화 유형의 차이는 자기 규정?목표 우선성?사회 행위의 원동력?관계 중시 여부의 네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과 위의 정의들을 종합해 보면, 두 문화 유형의 규범적인 차이가 잘 드러난다. 즉, 집단주의 사회는 내집단 성원들과의 연계성 및 내집단에의 관심과 배려?헌신이 강조되는 사회인 반면, 개인주의 사회는 내집단으로부터의 분리 및 개인의 독립성과 개체성이 강조되는 사회인 것이다(Bond, 1988, 1944; Kagitcibasi, 1990, 1994, 1996, 1997; Kim, 1995; Schwartz, 1994; Triandis, 1988, 1989, 1990, 1994a, b, 1995; Triandis et al., 1985, 1986, 1988, 1990 등).

이렇게 다양하게 제시되어 온 연구 결과들을 그 내용적 유사성에 따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한 사회의 문화를 집단주의 또는 개인주의로 규정하는 기준은 다음 몇 가지로 묶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사회적 교환 관계에서의 교환 자원, 목표 및 교환에 관한 시간 전망 등 교환의 양식의 기준이다(예: Clark & Mills, 1979; Fiske, 1990; Goffman, 1961; Maine, 1963; Mills & Clark, 1982; Tonnies, 1887/1957 등). 비록 이러한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집단주의-개인주의의 이론틀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분류에서 장기적 시간 전망을 가지고, 비등가적인 가치의 자원을, 상대방과의 조화 추구 또는 상대방의 복지에의 관심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하여 교환하는 관계는 집단주의의 특징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단기적 시간 전망에서, 등가적인 경제적 가치의 자원을, 공정 관계 형성 또는 자기 이익 추구라는 관심과 합의된 계약을 기초로 하여 교환하는 관계는 개인주의의 특징을 갖는 것이라 볼 수 있다(Triandis, 1990).

둘째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의존성 정도의 기준이다(예: Hofstede, 1980, 1983, 1991; Hsu, 1971; Schwartz, 1986 등).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을 타인과의 연계 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 파악하고, 사회 생활에서의 타인의 영향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을 자율적?독립적이며, 상황과의 분리를 추구하는 존재로 본다. Hofstede(1983)는 개인주의-집단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당 사회가 옹호하고 있는 상호의존성의 정도로서, 이는 사람들이 “나”(I)의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우리”(we)의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와 관계가 있다고 봄으로써, 이러한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셋째는 개인과 내집단과의 관계의 기준이다(예: Hui & Triandis, 1986; Triandis, 1988, 1989, 1990; Triandis et al., 1985, 1988; Yang, 1981 등).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 목표를 내집단의 목표에 복속시키며, 내집단을 자기의 확장으로 받아들여 강한 내집단 정체감을 갖게 되기 때문에(Triandis et. al., 1985), 내집단의 통합과 조화를 강조하고, 내집단 규범을 보편 타당한 것으로 지각하며, 내집단에 대해 강한 정서적 애착을 갖는다(Triandis, 1989, 1990; Triandis et. al., 1988). 반면에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목표 추구가 집단에 해가 되더라도 집단의 목표에 선행시키며, 자기를 집단과는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집단의 결속에는 관심이 없으며, 정서적으로도 거리감을 갖는다(Triandis, 1989, 1990; Triandis et. al., 1985, 1988).

넷째는 사회 구성의 궁극적 단위의 기준이다(예: Bond & Hwang, 1986; Chung, 1994; Hui & Triandis, 1986; 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b; Miller, 1984; Miller & Bersoff, 1992 등).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고, 이에 의해 규정되며, 따라서 사회는 각자가 이러한 관계에 내포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유지된다고 본다(정양은, 1988; 조긍호, 1993, 1996, 1997a, 1999a, 2000; Bond & Hwang, 1986). 즉,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궁극적 단위를 사람 사이의 관계 또는 이러한 관계의 원형인 가족과 같은 일차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궁극적인 존재론적 단위는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보며, 사회는 이러한 개별적 개체들의 복수적인 집합에 불과하다고 본다(정양은, 1988; Chung, 1994). 이렇게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간의 관계를 사회 제도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의 역할과 상호의존성을 사회 행위의 규범적 단위로 보게 되지만,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상황이나 타인과 분리된 독립적인 개인을 사회 제도의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사회적(asocial)인 개인을 사회 행위의 규범적 단위로 보게 되는 것이다(Miller, 1984; Miller & Bersoff, 1992).

이러한 여러 기준들은 각각 독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에 대한 견해차이라고 보여진다. 왜냐 하면,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를 개인 사이의 관계 또는 집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보느냐의 문제는 앞에서 제시된 집단주의-개인주의 분류의 연원이 되는 문제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이에 따라 개인과 내집단과의 관계, 개인 사이의 상호의존성의 정도 및 개인 사이의 교환의 양상 등에 대한 견해 차이가 결과적으로 빚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집단주의-개인주의 구분의 기본적 출발점은 바로 기본적 사회 단위의 인식차(Hui & Triandis, 1986)라는 전제에서 자기를 집단의 일부로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집단과는 별개의 독특한 단위로서 파악하느냐 하는 점을 기초로 개인과 내집단과의 관계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집단주의-개인주의의 차이를 정리해 낼 수 있다(Triandis et. al., 1988)는 사실에서도 분명해지는 것이다.


(2) 문화 유형과 세계 및 자기 인식의 틀

문화 유형에 따른 사회 구성과 분석의 기본 단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두 사회에서의 세계관 및 세상사에 대한 인식의 틀을 다르게 하고(Fiske et al., 1998; Nisbett, in press; Nisbett et al., 2001), 결과적으로 인간관 및 자기관의 차이를 유발하게 됨으로써(Kagitcibasi, 1997; Markus & Kitayama, 1991a, b; Matsumoto, 2000; Nisbett, in press; Triandis, 1989, 1990, 1995), 결국 인지?정서?동기 등 제반 측면에서의 집단주의-개인주의의 문화차를 가져오게 된다.

Nisbett(in press; Nisbett et al., 2001)은 서구인(개인주의자)과 동아시아인(집단주의자)의 세계와 자기 인식의 차이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생태적 조건과 사회 조직 및 관습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철학적 배경의 차이로부터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는 높은 산으로 막힌 좁은 평지에서 중앙집권화되지 못한 도시국가가 발달되어, 도시간의 이주와 무역이 활발하였으며, 따라서 시장과 정치 집회에서의 대립과 논쟁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고대 중국은 넓고 비옥한 평원에서 중앙집권화되고 위계화된 사회가 형성되어, 한 지역에 몇 세대 동안 정착하여 농경에 종사하였으므로, 이웃과의 협동과 조화의 추구가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나와 나 아닌 것, 인간과 자연, 하나의 사물과 다른 사물을 엄격히 구별하여 범주화하고, 각각의 일관적이고 불변적인 본질(essence)을 추상화하여, 그들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맥락과 분리된 독립적인 대상(object)이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어, 이러한 분리된 대상의 안정적?불변적 속성을 인식하는 데 주력하게 되었으며, 결국 범주화(範疇化, categorization), 논리(論理, logic) 규칙에 따른 갈등 해결 및 분석적 사고(分析的 思考, analytical thinking)의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각 개체로서는 존재 의미가 없고, 모든 것은 상호 연관적인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항상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상호 연관된 역할과 의무 등의 규범을 파악하여, 공동 생활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분리되고 고립된 대상이 아니라 그들이 놓여 있는 전체 장(場, field)이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어,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가소성(可塑性, malleability)을 파악하여 통일성을 이루어 내는 데 주력하게 되었으며, 결국 관계의 유사성과 중도(中道, Middle Way)의 인식,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에 의한 갈등의 해결 및 총체적 사고(總體的 思考, holistic thinking)의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Nisbett(in press; Nisbett et al., 2001)에 의하면, 이러한 배경에서 지속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온 서구인들은 사회는 상호 분리되고 독립적인 개인들을 기본 단위로 하여 구성되는 복수적인 집합에 불과하다고 보아,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의 이해는 결국 그 구성 요소로서의 개인의 이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게 되고, 개인이 이루어낸 안정적이고 불변적인 독특한 내적 속성(성격?능력?기호?태도?욕구?감정?의도 등)이 개인의 행위와 사회 운용의 원천이라는 개인중심적 인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타인과 분리되고 독립적인 자율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독립적인 자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누적적으로 고대 중국 철학의 영향을 받아 온 동아시아인들은 상호 연관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또는 그러한 관계의 원형인 가족과 같은 일차 집단을 기본 단위로 하여 구성되는 사회는 그 자체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아, 개인보다 그들이 놓여 있는 장으로서의 집단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의 경향을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러한 관계 속에서의 각자의 역할과 의무 및 집단 규범이 개인의 행위와 사회 운용의 원천이라는 관계중심적 인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제반 관계의 연쇄망(network) 속에서 타인들과 연계되어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상호의존적인 자기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문화 유형에 따른 이러한 자기관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학자들은 Markus와 Kitayama(1991a, b) 및 Kagitcibasi(1990, 1994, 1996, 1997)이다. Markus와 Kitayama(1991a, b)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독립적 자기관(independent self construal)을 가지게 되고,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상호의존적 자기관(interdependent self construal)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두 사회에서의 인지?정서?동기의 제반 차이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종래의 심리학은 “근본적으로 행동의 원천이 되는 독특한 내적 속성들(예: 성격 특성?능력?동기?가치)로 구성되는 독립적?자기완비적(self-contained)?자율적 실체(entity)로서 개인을 보는 소위 서구식 개인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고 보면서, 이러한 독립적 자기관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일 뿐,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도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자기 인식은 아니라는 관점에서, 자기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은 이 두 문화권의 서로 다른 자기관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Markus와 Kitayama(1991a)에 따르면, “독립적 자기관의 본질적 요소는 자기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이와 유사한 다른 명칭들은 ‘개인주의적?자기중심적?분리적?자율적?개별적?자기완비적’ 등을 포괄한다”(인용문 속의 따옴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임). 그들은 이러한 독립적 자기관의 보유자들은 내적 속성, 자기와 타인을 구분짓는 명확한 경계, 자기 충족과 선택의 자유 및 탈맥락적이고 추상화된 자기관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Kim, 1995). “독립적 자기관과는 달리, 상호의존적 자기의 중요한 측면은 자기의 상호의존적이며, 따라서 더욱 공적인 요소들 속에서 찾아진다……이와 유사한 개념이, 내포된 의미는 약간씩 다르지만, ‘사회중심적?총체적?집단적?타인중심적?조화적?구성 성분적?맥락적?연계적?관계적’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 왔다”(인용문 속의  따옴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임). 그들은 이러한 상호의존적 자기관의 보유자들은 맥락과 상황, 지위와 역할, 내적 제약, 타인중심적 지향 및 사회적 조화와 집단의 복지를 중시하는 참조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Kim, 195). 여기서 Markus와 Kitayama(1991a)를 따라 이 두 자기관의 핵심적인 차이를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독립적 자기와 상호의존적 자기의 핵심적 차이

   대비 측면     독립적 자기관     상호의존적 자기관   정  의사회 맥락으로부터의 분리사회 맥락과의 연계   구  조경계적?단위적?안정적신축적?가변적  주요 특성내적?사적(능력?사고?감정)외적?공적(지위?역할?관계)   과  제독특성소속?조화자기표현합당한 자리 찾기내적 속성 실현적합한 행위에의 참여자기 목표 촉진타인 목표 촉진직접적 의사소통간접적 의사소통  타인의 역할자기평가: 타인은 사회 비교자기규정: 특정 맥락에서의 타인과의          대상으로 중요         관계를 통해 자기 규정 자존심의 근거자기 표현 능력자기 조절 및 억제 능력내적 속성 타당화 능력사회 맥락과의 조화 유지 능력                                         출처: Markus & Kitayama(1991a), p. 230, 표 1.
  
Kagitcibasi(1990. 1996. 1997)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회의 자기관을 각각 분리적 자기(separated self)와 관계적 자기(relational self)라 개념화하여, Markus 및 Kitayama(1991a)와 같은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문화 유형은 내집단 성원들로부터의 분리를 지향하는지(개인주의) 아니면 내집단 성원들과의 결합을 지향하는지(집단주의) 하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고립되고 독립적인 분리적 자기관을 가지는 반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상호의존적이고 조화 추구적인 관계적 자기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제시된 바와 같은 문화 유형에 따른 사고 방식[집단주의 문화권 = 총체적 사고 양식; 개인주의 문화권 = 분석적 사고 양식]과 인간관?자기관[집단주의 문화권 = 관계중심적 인간관?상호의존적(관계적) 자기관; 개인주의 문화권 = 개체중심적 인간관?독립적(분리적) 자기관]의 차이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회 성원들의 삶의 전체 과정에서 영향을 미쳐, 결국 그들의 심성(인지?정서?동기)과 행동의 제반 차이를 낳게 되는 것이다.


(3) 집단주의-개인주의 문화차 개관의 기본틀

이상에서 보듯이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에 대한 인식차는 필연적으로 두 문화에서의 사고 양식과 인간 일반 및 자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즉, 사회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를 사회 관계 및 그러한 관계의 원형인 가족과 같은 일차 집단이라고 보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상황의존적이고 관계중심적인 인간관을 갖게 되어(Dumont, 1970; Miller, 1984; Miller & Bersoff, 1992 등), 결과적으로 상호의존적 자기(Kitayama, Markus, Matsumoto, & Norasakkunkit, 1997; 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b) 또는 공적?집단적 자기(public self?collective self: Triandis, 1989)의 개념이 우세하게 됨으로써, 강한 사회적 정체감(social identity)을 갖게 되지만(Triandis, 1990; Weldon, 1984), 개인적 목표와 선호를 추구하는 자기 본위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사회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라고 보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상황유리적이고 개인중심적인 인간관을 갖게 되어(Miller, 1984; Miller & Bersoff, 1992; Sampson, 1977, 1989 등), 결과적으로 독립적 자기(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b) 또는 사적 자기(private self: Triandis, 1989)의 개념이 우세하게 됨으로써, 강한 개인적 정체감(personal identity)을 갖게 되는 것이다(Triandis, 1990; Weldon, 1984).

이러한 두 가지 인간관은 사회 행위의 원동력과 목표, 자기 표현의 양식(통제 소재) 및 행위의 변이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서로 다른 조망을 낳게 된다. 즉, 관계중심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타인과 연계되어 있는 존재로 보므로,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관계 속에 내포된 역할과 타인에의 관심 및 배려에서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관계 속의 조화의 추구가 사회 행위의 근본적인 목표라는 입장을 갖는다. 반면에, 개인중심적 인간관에서는 독립적인 개인의 내적 속성에서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찾게 되고,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과 독특성의 추구가 사회 행위의 근본적인 목표라는 입장을 갖는다.

그리하여 관계중심적 인간관에서는 개인적인 욕구나 목표의 추구는 사회 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하고 조화를 해치게 되기 쉬우므로, 가능하면 내적 욕구나 목표를 통제하고 자기를 억제하여, 양보하고 협동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중심적 인간관에서는 자기의 내적 욕구나 목표의 추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권리이므로, 이를 위해 외부 환경이나 타인을 나에게 맞도록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 결과, 자기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자기 주장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서 개인간의 경쟁과 공정한 교환을 강조한다.

또한 관계중심적 인간관에서는 사회의 안정은 그 구성 요소로서의 관계의 안정에 근거한다고 보게 되고, 결국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 따른 역할의 변이에 맞추어 스스로의 행위를 적합하게 조정하는 데에서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행위의 상황에 따른 변이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개인중심적 인간관에서는 사회의 안정은 그 구성 요소로서의 개인의 안정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게 되고, 따라서 각 개인은 지속적이고 일관되는 안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 상황과 관계에 따른 변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러한 변이 또는 비일관성은 개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여기서 문화 유형에 따른 이러한 인간 이해의 양식의 차이에서 도출되는 강조점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 표 2와 같다.

   표 2.문화 유형에 따른 인간 이해 양식과 강조점의 차이
차       원집단주의
(관계중심적 인간관)개인주의
(개인중심적 인간관)사회 행위의 원동력과 목표연계성 강조자율성 강조자기 표현의 양식(통제 소재)자기 억제 강조자기 주장 강조행위의 변이가능성가변성 강조안정성 강조

이상에서 보았듯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자기완비적(self-contained)이고, 자율적이며, 독특한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을 사회 구성의 궁극적 단위로 보므로, 여기에서는 이러한 독립적인 자기상의 추구가 문화적인 명제가 된다. 그러나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사회 구성의 궁극적 단위로 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조화를 추구하는 상호의존적인 자기상의 추구가 문화적 명제가 된다. 집단적 구성주의(collective constructionism)의 입장에 따르면, 이러한 문화적 자기관은 곧바로 개인의 심리적 경향으로 변형된다(Gergen & Davis, 1985; Gergen & Gergen, 1988; Kitayama & Markus, 1994, 1996; Kitayama, Markus, & Lieberman, 1995; 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4a, b; Miller, 1997 등).

이러한 입장에 비추어 보면, 전술한 바대로의 문화 유형에 따른 인간 이해 양식의 차이는 그대로 두 문화권에서의 심리적 과정의 차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의 문화 관련 심리학의 연구들에서는 개인의 인지, 정서 및 동기의 제반 심리 과정은 그가 속한 문화의 함수로서 달라지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예: Kitayama & Markus, 1994, 1996; Kitayama, Markus, & Lieberman, 1995; 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b; Miller, 1997; Nisbett, in press; Triandis, 1989, 1990 등). 즉,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두 문화권의 인간관의 차이는 결국 사회 제도와 행위 규범의 근본적인 차이를 빚게 되어(Shweder & Miller, 1985), 문화권에 따른 인지?정서?동기의 제반 활동에서의 차이(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b; Nisbett, in press)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2) 집단주의 문화권의 동기의 특징

이렇게 관계중심적 인간관이 지배적인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는 존재로 보므로,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관계 속에 내포된 역할과 타인에의 관심 및 배려에서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관계 속의 조화와 상호의존성의 추구가 사회행위의 근본적인 목표라는 입장을 갖는다(의존성 강조).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원망이나 목표의 추구는 사회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하고 조화를 해치게 되기 쉬우므로, 가능하면 자기를 억제하여 양보하고 겸양하며 협동할 것을 강조한다(자기억제 강조). 또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안정은 그 구성 요소로서의 관계의 안정에 근거한다고 보게 되고, 결국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 따른 역할의 변이에 맞추어 스스로의 행위를 적합하게 조정하는 데에서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제함으로써, 상황에 따른 행위의 변이 가능성을 인정한다(가변성 강조).

이에 비해, 개체중심적 인간관이 지배적인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독립적인 개인에게서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찾게 되고,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과 독특성의 추구가 사회 행위의 근본적인 목표라는 입장을 갖는다(자율성 강조).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는 자기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자기 주장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서 개인간의 경쟁과 공정한 교환 및 자기고양을 강조한다(자기주장 강조).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안정은 그 구성 요소로서의 개인의 안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게 되고, 따라서 각 개인은 지속적이고 일관되는 안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 상황과 관계에 따른 변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러한 변이 또는 비일관성은 개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안정성 강조).

두 문화 유형에서의 인간관의 차이에 따른 이상과 같은 세 차원의 강조점의 차이로부터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문화에서의 특징적인 대인 평가 특성과 귀인 양상(조긍호, 1993, 1996) 및 정서(조긍호, 1997a)의 차이가 유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왔다. 문화 유형에 따른 이러한 강조점의 차이는 또한 각 문화권에 특유한 동기의 차이를 산출하게 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1) 의존성-자율성 강조 차원
  
사람을 상황의존적인 관계 속의 존재로 파악하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타인에의 관심과 배려 및 조화의 추구가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상황유리적인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개별적인 독특성의 추구가 주의의 초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두 문화 유형에서의 강조점에 따른 이러한 주의의 초점의 차이는 지향하는 목표의 차이를 유발하게 되고, 그 결과 동기의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에의 관심과 배려를 축으로 하는 타인 및 집단지향 동기를 중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범주에는 소속, 존경, 모방, 친밀, 양육?보호, 수혜?의존, 비난 회피, 굴종, 애착, 사회적 용인, 공감 및 이타성의 동기들이 포괄되는데(Geen, 1995a; Hogan, 1983; Markus & Kitayama, 1991a, b 등), Geen(1995a)은 이를??개인을 타인과 밀접하게 이끌고, 개인과 사회 환경 사이의 공동체감을 촉진시키는 행동을 산출하는 동기??라 보고 있다. Bakan(1966)은 이러한 동기들은 인간 실존의 두 가지 근본적인 양식 중의 하나를 반영하는 것이라 보고, 이를 ??각 개인을 구성 부분으로 하는 더 큰 유기체에 개인이 참여하는?? 일체성(communion)의 동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일체성의 동기들은 개인보다 타인이나 집단에의 관심을 우선시키며, 집단에의 소속을 지향하는 동기라는 점에서 집단주의 사회에서 중시하는 동기들인 것이다(Wiggins, 1992).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적 목표를 축으로 하는 개인지향 동기를 중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범주에는 자율, 극복, 지배, 자기과시, 거부, 자기주장 및 독립의 동기들이 포괄되는데(Geen, 1995a; Hogan, 1983; Markus & Kitayama, 1991a, b  등), 이는 “개인을 직접적인 공동체로부터 분리하고, 사회 환경 내의 타인과는 독립적으로 또는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개인적 이득을 확보하려는 행동과 관련된 동기”(Geen, 1995a)들이다. Bakan(1966)에 따르면, 이러한 동기들은 인간 실존의 또 다른 근본적인 존재 양식인 “개인으로서의 유기체의 존재”에 해당하는 주체성(agency)의 동기인데, 이러한 주체성의 동기들은 개인을 타인이나 집단보다 우선시키며,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동기라는 점에서 개인주의 사회에서 중시하는 동기들이다(Wiggins, 1992).

문화 유형에 따른 주의의 초점의 차이는 위에서와 같은 문화 특유 동기의 차이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주의의 초점의 차이는 두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동기일지라도 그 추구 대상이나 목표가 다른 양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탁월성의 표준에 비추어 보람있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성취동기는 범문화적인 보편 동기이기는 하지만, 그 성취 목표나 대상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한규석, 1991, 1995; Bond, 1986; DeVos, 1973; Kubany, Gallimore, & Buell, 1970; Maehr, 1974; Maehr & Nicholls, 1980; Markus & Kitayama, 1991a, b; Yang, 1986 등). 즉,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지향 성취동기의 형태를 띄어, 가족과 같은 중요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의 배경이 되지만,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지향 성취동기의 형태를 띄어, 성취 그 자체를 위한 노력의 배경이 된다. 말하자면, 집단주의 사회에서의 성취의 목적은 “집단”에 집중되지만,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성취의 목적은 “나”에 집중되는 것이다(Maehr, 1974; Maehr & Nicholls, 1980).
또한 스스로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타인을 비교 대상으로 하여 자기를 평가하는 사회비교(Festinger, 1954)는 자기효능감의 추구에서 핵심적인 과정으로(Bandura, 1997), 이러한 사회비교의 동기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다(Sedikides, 1993). 그러나 그 참조 기준이나 비교 대상은 문화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Carr & MacLachlan, 1997; Geen, 1995a).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외집단과의 경쟁이 기본적인 경쟁의 양상이므로(Hsu, 1983; Triandis, 1989) 비교 대상은 주로 외집단 또는 그 성원이 되며(Carr & MacLachlan, 1997), 비교의 기준은 중요한 타인 또는 내집단이 설정하는 규범(Geen, 1995a)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단점 보완을 통한 자기개선이 긍정적 자기인식의 통로가 되므로(조긍호, 1996, 1997a; Diener & Diener, 1995; Diener & Larsen, 1993; Heine & Lehman, 1995; Heine, Lehman, Markus, & Kitayama, in press; Kitayama & Markus, 1994, 1995; 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4a, b), 자기의 단점을 확인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상향적 사회비교가 비교의 주 양식이 될 것이다(Carr & MacLachlan, 1997; Geen, 1995a).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 간 경쟁이 기본적인 경쟁의 양상이므로(Hsu, 1983; Triandis, 1989) 비교 대상은 주로 자기와 유사한 타인이 되며(Carr & MacLachlan, 1997),  비교의 기준은 스스로의 내면화된 가치 체계(Geen, 1995a)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의 독특성 인식을 통한 긍정적 자기상의 추구가 문화적 명제이므로(조긍호, 1996, 1997a; Diener & Diener, 1995; Diener & Larsen, 1993; Heine & Lehman, 1995; Heine et al., in press; Kitayama & Markus, 1994, 1995; 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4a, b), 긍정적 자기평가를 통해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비교를 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하향적 사회비교가 비교의 주 양식이 될 것이다(Carr & MacLachlan, 1997; Geen, 1995a).


(2) 자기 억제-자기표현 강조 차원
  
집단의 통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집단 목표를 개인 목표보다 상위에 두고, 개인적 원망이나 욕구를 드러내지 않을 것을 강조하게 되며, 그 결과 양보와 협동, 겸양 및 자아중심적 정서 표현의 억제를 권장한다. 이에 비해,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목표를 집단 목표보다 우선시키고,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강조하게 되며, 그 결과 적극성과 경쟁, 자기고양 및 솔직한 정서 표현을 권장한다. 문화 유형에 따른 이러한 자기표현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는 사회화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며, 결국 강조되는 동기의 차이를 유발하게 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충동의 억제와 집단지향적인 성취를 강조하므로, 타인에의 민감성, 상황의 필요와 요구에의 적응 및 자기억제와 조절의 노력을 통해 개인적 역량이 체험된다. 따라서 통제란 결국 상호의존성과 연결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개인적 욕구와 목표 및 사적 감정 등 내적 속성을 억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Markus & Kitayama, 1991a, b; Triandis, 1990), 결과적으로 내적 욕구 통제 또는 이차 통제(Rothbaum, Weisz, & Snyder, 1982; Weisz, Rothbaum, & Blackburn, 1984)의 동기가 강하게 된다.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자기주장을 강조하므로, 자기의 내적 욕구, 권리 및 능력의 표출과 사회적 압력에 대한 저항의 노력을 통해 개인적 역량이 체험된다. 따라서 통제란 결국 개별성과 자율성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회 상황이나 외적 제약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Markus & Kitayama, 1991a, b; Triandis, 1990), 결과적으로 외적 환경 통제 또는 일차 통제(Rothbaum et al., 1982; Weisz et al., 1984)의 동기가 우세하게 된다.

자기표현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로부터 연유하는 사회화 과정의 차이는 또한 그대로 두 문화 유형에서의 집단 규범의 내면화 양상의 차이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곧바로 두 문화 유형에서의 동조 행동의 차이와 직결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상호의존성 및 집단의 통합과 조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 억제를 강조하므로, 사회화 과정에서 내집단과 동일시된 자기관을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내집단 규범과 성원에의 동조를 집단 소속과 자기 확장의 수단으로 보아 중시하게 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타인에의 동조는 고도로 높이 평가되는 목표 상태로서, 이는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의 욕구와 원망을 조절하고 타인에게 화답하려는 용의성의 표현”(Markus & Kitayama, 1991a)이지, 사회 압력에 저항해서 자신의 지각?태도?신념 등을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독립성?자립을 강조하므로, 타인에게 스스로의 독특성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회의 사람들은 타인과 구획되고 분리된 개체로서의 자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조를 비독립성이나 비자율성의 표출로 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도 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집단주의자들의 동조량이 개인주의자들에게서 얻어진 동조량보다 크며(Bond, 1988; Markus & Kitayama, 1991a, b, 1994a; Triandis, 1989, 1990; Valentine, 1997 등), 특히 각국의 개인주의 수준과 동조량 간에 강한 부적 상관(Bond & Smith, 1996)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3) 가변성-안정성 강조 차원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 의해 사람이 규정된다고 보므로, 이러한 상황과 관계에 맞추어 스스로의 행위를 적합하게 조정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상황과 관계에 따른 행위의 가변성을 인정하고 강조하게 된다.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스스로가 보유하거나 이룩한 능력?태도?가치관?성격?정서 등 내적 성향에 의해 사람이 규정된다고 보므로, 이러한 내적 성향의 지속성을 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상황과 관계의 변이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안정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게 된다. 문화 유형에 따른 이러한 변이가능성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는 두 문화권에서 중시하는 동기의 차이를 낳게 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상황과 관계의 변이에 맞추어 스스로를 적합하게 조정하는 노력을 중시하며, 특히 스스로 자기의 단점을 확인하여 고쳐나가는 자기개선의 노력을 중시하게 될 것이다. 즉,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의존성이 사회적 명제이므로, 타인에의 배려와 조화를 중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적인 자기상이나 자기에 대한 정적인 감정보다는 자기의 부적인 측면과 부적 감정에 더 민감하고, 또 이의 경험에 대해 수용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자기비판과 이를 통한 자기개선의 방향으로의 문화적 압력이 존재하게 되어, 자기의 부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정교화하게 된다. 그 결과, 집단주의 사회에서의 자기화는 집단의 기대에 비추어 보아 자기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이를 수정하는 자기개선이 주축이 되고, 이러한 자기개선이 자존심의 근거가 될 것이므로, 이 사회의 사람들은 특유한 자기개선의 동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조긍호, 1997a; Diener & Diener, 1995; Diener & Larsen, 1995; Kitayama & Markus, 1994, 1995; Kitayama, Markus, & Kurokawa, 1994; Kitayama, Markus, & Lieberman, 1995; Kitayama  et al., 1997; Markus & Kitayama, 1994a).

이에 비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상황과 관계의 변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안정된 성향을 증진 또는 고양시키는 것을 중시하며, 특히 여러 가지 능력의 증진을 중시한다. 즉,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독립성이 문화적 명제이므로, 개인의 독특성을 강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의 장점과 고유성에 민감하게 되어, 정적인 자기상과 자기에 대한 정적인 감정을 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고양의 방향으로의 문화적 압력이 존재하게 되어, 자기의 부적 측면은 회피하거나 절감하는 대신, 자기의 정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정교화하게 된다. 그 결과,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자기화는 자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안정적이고 일관적인 정적 특성(성격?능력 등)을 확인하고 고양시키는 일이 주축이 되고, 이러한 자기고양이 자존심의 근거가 될 것이므로, 개인주의자들은 강한 자기고양의 동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조긍호, 1997a; Diener & Diener, 1995; Diener & Larsen, 1993; Fiske et al., 1998; Heine & Lehman, 1995; Kitayama & Markus, 1994, 1995; Kitayama et al., 1994, 1995, 1997; Markus & Kitayama, 1994a).

이상과 같은 행위의 가변성에 관한 인식의 문화차에 비추어 보면, 종래까지 보편적인 동기라고 간주되었던 일관성 추구의 동기(Fiske et al., 1998; Pittman, 1998)가 실제로는 문화보편적인 동기가 아니라 문화권에 따라 그 강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조긍호, 1993, 1996; 한규석, 1991a; Fiske et al., 1998; Markus & Kitayama, 1991a, b; Triandis, 1989, 1990).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기의 여러 측면들은 개인의 정체감을 구성하는 핵심이므로, 이들 사이의 일관성은 정적인 정체감 형성의 기초가 될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외적인 행위는 그의 안정된 내적 속성의 발현이라고 보므로, 내적 속성과 행위의 불일치 또는 상황 간 행위의 불일치는 개인의 정체감에 심한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일관성 추구의 동기가 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Fiske et al., 1998).
그러나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상황과 관계에 맞추어 적합하게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행위를 상황과 관계에 내재한 역할, 지위 및 책임에 따른 것이라고 보므로, 개인의 내적 특성과 행위의 불일치는 그렇게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관계의 조화에 가치를 두므로, 개인의 내적 속성이 원만한 사회적 평형의 유지와 갈등할 때 이를 따르는 것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하며, 불성실한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집단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일관성 추구의 동기가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Fiske et al., 1998).


4. 전통 유학 사상과 동기

유학 사상은 고려 중기에 접어드는 11세기 전반 崔?과 그 문하생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여, 13세기 말엽과 14세기 초엽 安珦과 白?正 등에 의해 朱子學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다음(윤사순, 1997), 조선조에 와서는 국가 경영의 최고 이념이 되면서, 우리나라 정신사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유학 사상은 한국인의 “문화 전통과 의식 구조의 중추”(이광세, 1998, p. 63)가 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주로 받아들인 것은 新儒學의 한 갈래인 朱熹 계통의 性理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리학의 뿌리는 秦(B.C. 221-207) 통일 이전 시대의 유학인 先秦儒學에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대 한국인의 동기 이해에 접근하는 개념틀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제시된 문화 비교 연구의 결과와 함께, 우리나라 정신사의 기본틀인 유학 사상에서의 동기 이해의 구조와 논리를 찾아, 이 둘을 접목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기에서는 선진유학과 조선조 성리학에서의 동기 이해의 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論語에 나타난 선진유학 사상에서의 동기 이해
  
선진유학은 공자, 맹자 및 순자 등에 의해 유학의 이론적 기초가 확립된 秦 통일 이전의 유학을 말한다. 이 시대 유학의 경전 중 핵심은 역시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論語이다. 여기에서는 論語을 중심으로 하여 선진유학 사상에서의 동기의 이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論語 속에서 欲이란 낱말이 어떤 내포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보고, 이와 함께 食?色?富?貴?利 등 그 추구 대상이 분명히 욕구 또는 동기적인 함축을 가지는 내용에 대해서도 살펴 볼 것이다.

欲이란 글자는 論語 전체에서 45번 출현하는데, 이 중 13 회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에의 바램을 일반적으로 서술하는 것이지 특정 대상에의 추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어서 욕구나 동기 상태를 함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 추구 대상이 비교적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는 32 회의 용례만을 분석에 사용하였다. 이 이외에 추구 대상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어 욕구 또는 동기에 관한 명백한 진술이라고 볼 수 있는 富?貴?生?利?色?食 등에 관한 각각 8, 4, 4, 6, 4, 5 회의 용례를 분석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분석에 터해서 보면, 論語에서 공자가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거나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인간의 욕구 또는 동기는 상당히 다양한데, 이들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묶을 수 있다.  첫째는 생물학적  생존동기로, 여기에는 食(學而 14; 鄕黨 8; 衛靈公 31, 37; 堯曰 1), 色(學而 7; 子罕 17; 衛靈公 12; 季氏 7), 居(學而 14; 子路 8), 生(顔淵 5, 10; 衛靈公 8)등의 욕구가 포함된다.  둘째는 이기적 동기로, 富(學而 15; 里仁 5; 述而 11, 15; 泰伯 13; 顔淵 5; 季氏 7), 貴(里仁 5; 術而 15; 泰伯 13; 顔淵 5), 利(里仁 12, 16; 子罕 1; 子路 17; 憲問 13), 貧賤 회피(里仁 5; 泰伯 13), 탐욕(公冶長 10; 憲問 2; 季氏 7; 陽貨 15) 등의 욕구들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는 자기제시동기로, 여기에는 言(學而 14; 里仁 24; 顔淵 3; 陽貨 19), 伐(자기 자랑: 憲問 2), 勝人(憲問 2; 季氏 7) 등의 욕구가 포함된다. 넷째는 도덕적 동기로, 仁(述而 29; 堯曰 2), 善(顔淵 19), 역할 수행(衛靈公 9, 37), 타인 배려(公冶長 11; 雍也 28; 顔淵 2; 衛靈公 23), 도덕 실천(子罕 17; 衛靈公 31) 등의 욕구가 이에 포함된다.

이상에서 드러나듯이 論語에서는 현대 심리학에서 제시되고 있는 동기 중 상당히 많은 동기를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論語에서는 도덕적 동기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며, 이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덕적 동기가 사람에게 생득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공자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자는 이러한 도덕적 동기에 의해 나머지 동기들이 제어될 수 있다고 보며, 또 그러한 상태를 이상적인 인간의 상태로 제시함으로써, 이를 인간의 중핵적인 동기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論語에서 제시되는 동기론의 한 가지 특징이다.
이렇게 도덕적 동기가 중핵적인 동기가 되어야 하는 까닭은 다른 동기들, 특히 생존동기와 이기적 동기의 충족은 외적 조건에 달려 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만, 도덕적 동기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진술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富가 구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마부 같은 천한 일이라도 나는 마다 않고 하겠지만, 구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仁을 행하는 일]를  따르겠다.

죽음과 삶[死生]에는 命[외적 조건]이 있고, 富와 貴는 하늘[天: 외적 조건]에 달려 있다.

仁이 멀리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仁을 행하고자 하면,  곧바로 仁이 이르는 것이다.

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있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능히 가까이 자기 몸에서 취해서 남에게 비유할 수 있으면, 仁을 행하는 방도라고 이를 만하다.
  
  위의 첫 두 인용문은 생존동기[死?生]와 이기적 동기[富?貴]가 외적 조건에 달려 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언급하고 있고, 나머지 세 인용문은 도덕적 동기[爲仁]가 내재적으로 통제가능한 동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존동기와 이기적 동기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욕구에 가리워지게 되면, 강직하지 못하게 되거나, 사물의 이치에 어두워 의혹에 사로잡히게 되거나, 무엇이든지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거나, 다른 사람의 원망을 많이 받게 되거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인륜을 크게 어지럽히는 등의 폐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도덕적 동기는 내재적으로 통제가능한 동기이므로, 이를 행하는 데 있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를 추구하면 어디에서나 원망을 받지 않고, 또한 스스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선으로 이끌기 때문에, 이는 사람이 일생동안 견지하고 추구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 동기 이외의 동기들은 내재적인 통제가능성이 없는 동기들이어서, 이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추구할 경우 여러 가지 폐단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들을 절제하고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論語에서 제시되는 동기론의 또 한가지 특징이다. 이러한 외적 조건의 통제를 받는 동기의 절제와 제어에 관한 공자의 논지는 다음과 같은 진술들 속에서 엿볼 수 있다.            
                              

군자는 먹는 데 있어서 배부르기를 구해서는 안되고, 거처하는 데 있어서 편안하기를 구해서는 안된다.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를 도모하다가 仁을 해치는 일은 없지만,  자기 몸을 버려서 仁을 이루는 일은 있다.                            
                                                    
富와 貴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그 道로써 얻은 것이 아니면, 이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어진 사람은 그 말을 참고 조심한다.                                              

군자에게는 경계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젊었을 때에는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여색[色]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기에 이르러서는 혈기가 바야흐로 강하므로 싸움[鬪: 남을 이기려는 욕구]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기에 이르러서는 혈기가 이미 쇠잔했으므로 탐욕[得]을 경계해야 한다.                            
                      
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생물학적 생존동기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고, 세 번째 인용문에서는 이기적 동기의 제어를 논술하고 있으며, 네 번째 인용문에서는 자기제시동기의 제어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마지막 인용문에서는 생존동기[色], 이기적 동기[得], 및 자기제시동기[鬪]의 세 가지는 인생의 청년기, 노년기 및 장년기에 특히 삼가고 제어해야 할 것이라고 보는 흥미있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각 시기의 신체적인 에너지[血氣]의 성쇠에 따라 제어 또는 절제해야 할 동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들은 최종적으로 도덕적 동기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는 것이 論語에서 제시되고 있는 입장이다. 이는??군주를 섬길 때에는 자기 직무를 성실히 하고[도덕적 동기가 기본적이고], 食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생존동기와 이기적 동기는 부차적이다]??(衛靈公 37)라거나??군자는 道[도덕적 동기]를 도모하지 食[생존동기?이기적 동기]을 도모하지 않는다……군자는 道[도덕적 동기의 충족]를 걱정하지 食[생존동기?이기적 동기의 충족]을 걱정하지 않는다??(衛靈公 31)는 진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생존동기[食]의 충족은 도덕적 동기[喪祭]의 충족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이고, 어떤 면에서 생존동기는 도덕적 동기보다 더 강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동기에 의한 여타 동기의 제어는 상당히 어려워진다. 더욱이 이러한 도덕적 동기는 그 자체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이 동기 제어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도덕적 동기를 만족시키는 일이 아주 어렵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자공이 ??저는 다른 사람이 저에게 더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도 역시 다른 사람에게 더해 주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하자, 공자께서??賜야! 이것은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도덕적 동기의 충족이 어렵다는 사실은 이 이외에도 仁의 실현 또는 성인이 되는 일의 어려움을 논술한 雍也 28; 子罕 10; 憲問 2, 13, 26 등 여러 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동기는 내재적으로 통제가능한 동기이기 때문에, 이는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충족되는 것이다(雍也 28; 顔淵 1).  따라서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도덕적 동기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자공이 ??한 마디 말로써 평생토록 행해야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이에 대해 공자께서는??그것은 恕일 것이다. 곧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衛靈公 23).
                        
평생토록 행해야 할 이러한 도덕적 동기의 핵심은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여 禮로 돌아가므로써[克己復禮] 仁을 이루는 일이다. 이렇게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모두 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仁을 체현하는 것이 바로 이상적인 인간으로, 공자는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되면 바라는 것이 모두 사람의 도리에 맞는 것뿐이어서??언제나 마음이 바라는 바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궁극적인 이상적 인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상적 인간의 상태는, 말하자면, 모든 동기가 도덕적 동기에 의해 제어되어, 도덕적 동기의 상태로 승화된 경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論語의 동기론의 또 다른 특징인 것이다.


2) 조선조 성리학에서의 동기의 이해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은 선진유학 사상의 특징을 종합하여,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해 보면 표 3과 같다. 이 표에서 보듯이, 선진유학자들의 동기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은 생물적 동기?감각추구동기?이기적 동기?사회적 동기?도덕적 동기 등 다양한 동기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에서 도덕적 동기만이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동기이기 때문에, 가장 중핵적인 인간의 동기는 도덕적 동기이다. 둘째, 도덕적 동기 이외의 여타 동기의 충족 여부는 외적 조건에 의존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동기의 충족으로 인한 쾌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욕구의 바름을 잃게 하고 不善으로 이끄는 등의 폐단이 있기 때문에, 이는 절제되거나 제어될 필요가 있다. 셋째, 도덕적 동기는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중핵적인 동기일 뿐만 아니라, 욕구위계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동기이기 때문에, 여타의 동기들이 이에 의해 제어되므로써, 하위 동기들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나 동기의 승화가 이루어지는 일이 바람직하며,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다.

        표 3. 선진유학사상에서의 동기론의 특징
    동기의 종류    생존동기(또는 생존?감각추구 동기)      
  이기적 동기
  자기제시동기, 인지적 동기
  사회적 동기
  도덕적 동기
  동기 충족 조건

    도덕적 동기: 자기 스스로의 노력에 의존
  여타 동기: 외적 환경 조건에 의존
  중핵적 동기   도덕적 동기 (大學에서는 인지적 동기-도덕적 동기의 위계를    제시하고, 도덕적 동기를 다시 자기완성 동기-관계완성 동기-사회완성 동기로 위계화하여, 사회완성의 동기를 최상위의 동기로 본점이 특이함)
  욕구의 폐단에서
    벗어나는 길
  생존동기, 이기적 동기 및 사회적 동기의 절제[節欲]
  이상적 인간이
    되는 길     도덕적 동기에 의한 여타 동기들의 제어[道欲]를 통한 동기의    승화
  
  이러한 선진유학자들의 동기론은 性理學者들에 의해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선진유학자들보다 생물적?이기적 동기들의 向惡性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동기에 의한 이의 철저한 통제를 중시하는 엄격한 입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리학자들, 특히 조선조의 성리학자들의 동기론의 핵심은 人心道心說과 욕구와 정서 통제의 방법론으로서의 居敬 사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의 성리학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유학 사상의 중심지인 중국 대륙의 주인이 漢族의 明에서 滿州族의 淸으로 바뀌면서, 중국의 성리학과는 다른 독특한 엄격성을 갖는 성리학의 체계로 전개되었다(윤사순, 1992, 1997; 장석만, 1999). “조선은 이제 자신이 明을 대신하여 중화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장석만, 1999, p. 226)하게 됨으로써, 小中華로서 자신들에게 유학 사상의 발전이 책임지워져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16세기 중엽부터 근 3세기 동안 전개된 四?七論辯과 18세기 초엽에 일어난 人性?物性 同異論辯에 거의 모든 성리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한국 성리학의 한 특색”(윤사순, 1997, p. 314)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쟁을 거쳐 조선조의 성리학에는 독특한 心性說이 구축되었는데, “적어도 心性說의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 학계의 수준이 중국 학계의 수준마져 능가하게 되었던 것이다”(윤사순, 1992, p. 6). 이러한 조선조의 心性說은 退溪 李滉(1501-1570)과 栗谷 李珥(1536-1584)에 의해 꽃피우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 두 사람의 人心道心說과 居敬 사상을 중심으로 조선조 성리학에서의 동기론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人心道心說  

성리학의 人心道心說은 朱熹가 中庸章句序에서 舜이 禹에게 선위하면서 해 주었다는??人心은 오직 위태롭고 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오로지 정밀하고 전일하여 진실로 그 중도[中]를 잡으라??는 書經 大禹謨篇의 말을 인용하고, 이에 해설을 붙이면서 비롯되었다. 栗谷은??이 말은 堯?舜?禹가 서로 전하여 준 마음을 다잡는 법[心法]으로, 만세의 聖學의 연원이어서 지금까지 유학자들의 주석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朱熹의 설이 가장 정밀하고 확실하다??라고 하여, 中庸章句序에 붙인 大禹謨篇의 이 말에 대한 朱熹의 해설을 人心道心說을 설명하는 기초로 삼고 있다. 退溪도 ??인심은 곧 욕구에 눈을 뜬 것이고……도심은 곧 義理에 눈을 뜬 것이다……실로 形氣에서 나오게 되면 모두 인심이 아닐 수 없고, 性命에 근원을 두게 되면 곧 도심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여, 朱熹의 해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中庸章句序에 붙인 朱熹의 人心?道心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로지 정밀하고 전일하여 진실로 그 중도[中]를 잡으라……이를 논해 보면, 마음이 虛靈함과 知覺함은 하나일 뿐이지만, 인심과 도심이 다름이 있음은 인심은 形氣[부여받은 신체적 조건]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고, 도심은 性命[천명에 따른 본성]의 바른 데서 비롯되어, 지각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심은 위태롭고 편안하지 않으며, 도심은 미묘하여 보기 어렵다. 그러나 몸[形]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비록 성인과 같은 上智라 하더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으며, 또한 본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비록 아주 어리석은 下愚라 하더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두 가지가 가슴 속에 섞여 있어서 이를 다스릴 방도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인심은 더욱 위태롭게 되고, 은미한 도심은 더욱 은미하게 되어, 天理의 공변됨이 끝내 사람 욕구[人欲]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정밀함[精]은 두 가지를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전일함[一]은 본심의 바름을 지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를 일삼아 좇아서 잠시라도 그침이 없게 하므로써,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항상 몸의 주인이 되게 하고, 인심은 매번 도심의 명령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인심은 안정되고 은미한 도심은 밝게 드러나서, 움직이고 고요히 머무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넘치거나 모자라는 착오가 없게 될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朱熹는 세 가지 점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退溪와 栗谷을 대표로 하는 조선조의 성리학자들이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다.

첫째는 인심은 사람의 생물적 특징에서 나오는 이기적[私]인 욕구의 근원이고, 도심은 사람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바른[正] 도덕적 동기의 근거로서, 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退溪는 “인심은 욕구에 눈을 뜬 것이고, 도심은 義와 理에 눈을 뜬 것”(退溪全書上 208)이라거나 “인심이란 사람 욕구[人欲]의 근본이고, 人欲이란 인심이 흘러내린 것,” 또는 “인심이란 말은 이미 도심과 상대해서 성립되는 것으로, 자기 몸의 이기적인 측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여, 인심은 생물적?이기적 동기의 근원이고, 도심은 도덕적 동기의 근원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栗谷은 다음과 같이 더욱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람의 情이 발동할 때에는, 道義를 위해서 발동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려 하거나, 임금에게 충성하려 하거나,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측은해 하거나, 옳지 않은 일을 보고 부끄러워 싫어하거나, 종묘를 지날 때에 공손하고 삼가는 것 등이 이런 종류로서, 이를 도심이라 한다. 이에 비해 몸의 쾌락을 위해서 발동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배고프면 먹을 것을 바라고, 힘들면 쉬기를 바라고, 정기가 성하면 여자를 생각하는 것 등이 이런 종류로서, 이를 인심이라 한다.

  이 이외에도 栗谷은??무릇 좋은 소리?색깔?냄새?맛에 대한 욕구를 인심이라 하고, 仁義禮智에의 지향을 도심이라 한다??거나??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 같은 종류는 道心이고, 배고프면 먹기를 바라고 추우면 옷 입기를 바라는 것 같은 종류는 인심이다??라는 등으로 같은 생각을 여러 곳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심은 순전히 天理일 뿐이어서, 이에는 善만 있고 惡은 없지만, 인심에는 천리도 있고 人欲도 있어서, 이에는 善도 있고 惡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도심이 순수한 선[純善]인 까닭은 도심이 곧 人性의 중핵인 四端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악 혼재 상태인 인심[생물적?이기적 동기]보다 순선 상태인 도심[도덕적 동기]이 중핵적인 인간의 동기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입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인심은 생물적?이기적 동기의 근원으로서, 이를 추구하게 되면 여러 가지 폐단에 빠지게 되므로, 이를 억제하고 도덕적 동기의 근원인 도심을 보존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사람이 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욕구의 꾀임을 받게 되기 때문인데, 욕구의 꾀임에 빠졌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면, 천리[도덕적 동기?도덕성의 근거]가 모두 없어져도 돌아올 줄 모르거나?? 그 본심을 잃어서……뜻을 빼앗기는지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인심을 억제하고 도심을 보존해야 하는데, 退溪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대체로 마음을 다잡는 공부[心學]의 방법은 비록 많지만, 그 요점을 종합해서 말하면, 사람의 욕구를 억제하고[?人欲] 천리를 보존하는[存天理] 두 가지에 불과하다. 여기서 욕구를 억제하는 일은 인심의 측면에 속하는 것이고, 천리를 보존하는 일은 도심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退溪의 유명한 ?人欲 存天理의 입장인데, 이는 본래 聖學十圖의 心學圖說에서 제시된 것이다. 栗谷도??평상시에 엄숙하고 삼가함으로 자신을 지켜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만일 그것이 생물적?이기적 욕구[人心]에서 발동되었음을 알게 되면, 힘을 다하여 이를 이기고 다스려서, 이것이 자라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仁義禮智[道心]에서 발동되었음을 알게 되면, 한결같이 이를 간직하고 지켜서, 변하거나 옮겨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여, 같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대체로 인심은 마구 자라나도록 해서는 안되며, 이를 절제하고 단속하는 일을 중히 여겨야 하고, 도심은 마땅히 간직하고 길러내야 하며, 이를 미루어 나가고 넓히는 일을 아름답게 여겨야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셋째, 그러나 인심의 폐단에서 벗어나는 일은 단순히 이를 억제하거나(退溪全書上 208, 849) 절제하는(栗谷全書 453, 758) 일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도심으로 이를 제어함으로써 도심에 의한 주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退溪는??인심이란 도심과 상대해서 성립되는 것으로, 자기 몸의 이기적 측면에 속한 것이어서, 이렇게 인심은 이미 이기적인 한 방향에 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만 도심으로부터 명령을 들어서 도심과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로 이러한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栗谷은 이러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좀 더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어떤 생각이 발동할 때에……이것이 인심임을 알게 되면, 정밀하게 잘 살펴서 반드시 도심을 가지고 이를 제어하므로써, 인심이 항상 도심의 명령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인심도 또한 도심이 될 것이다.

栗谷은 이렇게 인심이 도심에 의해 제어되어 도심과 하나가 되면, ??理와 義[도덕적 동기]가 항상 보존되고, 物欲[생물적?이기적 동기]이 뒤로 물러날 것이니, 이로써 만사를 응대하면, 중도[中]에 맞지 않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이렇게 도심에 의해 인심의 제어가 이루어져서 인심 또한 도심이 될 수 있는 것(栗谷全書 283)은 인심과 도심이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退溪는 이를 ??인심은 욕구에 눈을 뜬 것이고……도심은 義理에 눈을 뜬 것이지만, 이는 두 가지 종류의 마음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栗谷도??마음은 하나이다. 그 바르고 바르지 않은 데 따라 서로 다른 명칭을 붙인 것 뿐이지, 도심도 하나의 마음이고, 인심도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라는 말은 아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인심과 도심은 善惡 혼재이냐 純善이냐(栗谷全書 282)하는 정도에서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어서(정양은, 1970, 1976; 한덕웅, 1994, 1999), 純善인 도심 상태로의 승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栗谷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러므로 인심과 도심은 서로를 겸할 수 없고[不能相兼], 서로 처음과 끝이 되는 것이다[相爲終始]……직접 性命의 바름에서 나온 도심일지라도, 이것을 따라 善으로 완성시키지 못하고 여기에 이기적인 욕구[私意]가 개재되면, 처음에는 도심이었다 하더라도 끝내는 인심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비해 신체적 조건[形氣]에서 나온 인심이라 하더라도, 바른 이치[正理]를 거스르지 않으면, 도심과 어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때 혹시 바른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알아서 제압하므로써 그 욕구를 따르지 않게 되면, 처음에는 인심이었다 하더라도 끝내는 도심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심과 도심이 서로 처음과 끝이 된다는 것은 이 둘의 위계 구조를 말한 것이다. 따라서 도심에 의해 인심을 제어하게 되면,??자기중심적?개인지향적인 인심??이??상호의존적?대인관계 지향적인 도심??(한덕웅, 1994, p. 37)으로 통합되는 동기의 승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 退溪와 栗谷의 주장인 것이다.

(2) 居敬  

이기적 욕구에 물든 인심을 버리고 천리를 간직한 도심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사람의 할 일이라고 보는 이론 체계가 바로 성리학인데(안병주, 1987; 이상은, 1973), 여기서 사람의 욕심을 버리고[?人欲] 천리를 보존하는 [存天理]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敬 상태에 머무르는 居敬이다. 이는??敬 상태를 이루는 심적 조절 방법??(한덕웅, 1994, p. 76)인데, 성리학은 이렇게 ?人欲 存天理의 구체적인 방법[居敬]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런 면에서 선진유학보다 한층 발전한 이론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敬은 마음의 주재로서, 온갖 일의 근본이 되는 것”이어서, “敬은 성인이 되고자 하는 학문[聖學 : 유학 전체를 가리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요체라는 데에 退溪와 栗谷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居敬은 聖學의 또 하나의 방법인 窮理[사물의 이치를 깊이 탐구함]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성학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敬 상태에 머무를 수 있게 되는가? “유학에서 敬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내세워져 문제시된 것은 송대의 程伊川부터”(김성태, 1989, p. 5)인데,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居敬의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가 제시되었다.

어떤 사람이??敬 상태를 이루려면 어떻게 힘을 써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朱熹는??程子는 일찍이??마음을 하나에 집중시켜서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主一無適]고 하였고, 또한??몸가짐을 정돈하여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엄숙하게 지녀야 한다??[整齊嚴肅]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 문하생인 謝氏는 ??항상 똑똑하게 각성상태에 머무르는 일??[常惺惺法]이라 말하였고, 또한 尹氏는??마음을 거두어 들여 다른 생각이 그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其心收斂 不容一物]이 그 요체라고 말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요컨대 敬이란 한 마음의 주재자요, 만사의 근본인 것이다.

이 인용문에는 主一無適?整齊嚴肅?常惺惺法?其心收斂 不容一物의 네 가지가 대표적인 敬 공부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退溪는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 네 가지 敬 공부의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栗谷도 程子와 그 두 제자의 설을 소개한  다음, 어떤 사람이??이 세 분의 敬에 대한 말씀이 다르군요??라고 평한 데 대해, 朱熹가??비유컨대 이 방에는 네 방향으로부터 모두 들어올 수 있지만, 일단 어느 한 방향을 따라서 들어오고 나면, 나머지 세 방향에서 들어오는 곳도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다??고 대답한 말을 인용함으로써, 이 네 가지 敬 공부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있다.

退溪는 이 네 가지 居敬의 방법 중에서도 특히 整齊嚴肅과 主一無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常惺惺法이나 不容一物의 공부는 꼭 무엇을 찾겠다거나 또는 마음을 적절히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쓸데없이 조장하거나 잊어버리는 폐단[忘助之病]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보면서,??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을 위해서는 整齊嚴肅만한 공부가 없다??고 강조하였으며, 같은 글에서??배우는 도는 반드시 오래도록 마음을 전일하게 한 연후에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主一無適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整齊嚴肅은??의관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하나로 해서, 단정하고 엄숙하여, 속이지 않고 함부로 굴지 않는 것??이고, 主一無適은 예를 들면, ??한 그림을 두고 생각할 때는 그 그림에만 마음을 오로지 하여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이 하고, 한 가지 일을 익힐 때에는 그 일만에 오로지 매달려서 다른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듯이 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율곡은 居敬의 또 한가지 방법으로??두려워하는 일??[畏]을 들고 있다. 그는 朱熹의??敬이란 공경하고 조심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듯이 한다는 뜻인데, 항상 두려워하게 되면 감히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못하여, 誠에 나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대체로 敬이란 마음이 숙연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두려워하면 마음이 하나로 주재되어, 마치 종묘에 들어가거나 임금과 아버지를 뵈올 때 같이 잡념이 없게 된다??고 보면서, 程子의 主一無適과 朱子의 畏의??두 가지 설은 서로 겉과 속[表裏]이 되므로, 배우는 사람이 체험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栗谷은 ??이 敬이란 글자의 뜻은 오로지 두려워하는 것에 가장 가깝다??고 보아, 두려워하고 삼가는 일[畏敬]을 居敬의 또 한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居敬의 상태는 앞에서 보았듯이, 窮理의 근본이어서 사물의 이치를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인지적 기능과 이렇게 깨달은 도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여 도덕적 완성을 이루게 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이에 대해 退溪와 栗谷은 각각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敬을 간직하는 것[持敬]은 생각과 배움을 함께 달성하고[兼思學],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는 기거동작이 일관되며[貫動靜], 마음과 행동이 합일되고[合內外], 드러난 것과 숨어있는 것이 일치하게[一顯微] 만드는 도이다.

대개 道의 묘한 것은 헤아릴 수가 없고 정해진 바가 없으나, 오직 敬하면 능히 엉겨 모여서 이 이치가 항상 있게 된다. 마음을 敬하게 하면 능히 엉겨 모여서 덕이 마음에 있게 되고, 용모를 敬하게 가지면 능히 엉겨 모여서 덕이 용모에 있게 되며, 귀?눈?코?입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敬하지 않으면, 마음이 방일하여 온 몸이 해이하게 이지러져서, 비록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다 해도 실제로는 혈기를 가진 살덩어리일 뿐으로, 사물과 전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이렇게 敬이란 덕을 모으는 근본이고, 인간의 본성을 완성하고 실천하는[踐形盡性] 요체인 것이다.

이렇게 退溪와 栗谷은 居敬의 기능을 유학적 수양론의 핵심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한덕웅(1994)은 김성태(1989)가??敬 공부라는 것은 마음의 안정성, 집중성 및 객관적 태도를 주된 요인으로 지니고 있는 주의 과정에 가까운 것??(p. 163)이라고 하여, 居敬을 주의 집중의 인지적 기능에 국한해서 보는 데 반대하고, 이를 心的 自己調節의 전 과정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敬 상태는 주의 분산 없는 주의 집중의 기능과 관련해서 사물 지각이나 판단에서의 주관적 오류를 극복토록 하는 인지적 기능도 지니지만, 인간의 목표 추구 활동을 활성화하고 행동적 표출을 자신의 판단에 일치시키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동기적 기능도 지닌다. 그리고 행동 결과를 목표 설정에서 마련된 기준과 비교함으로써 환류하는 기능도 지닌다. 따라서 敬은 심적 자기조절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다??(한덕웅, 1994, p. 93)居敬의 기능을 이렇게 심적 자기조절이라 보면, 敬이 생물적?이기적 동기[人心]를 제어하고 도덕적 동기[道心]를 발양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된다. 이를 栗谷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敬 상태에서는 안으로 욕구가 싹트지 않고, 밖으로 사물의 유혹이 들어오지 못한다……敬은 사람의 욕구[人欲]를 대적하는 방도로서, 사람이 항상 敬 상태에 있게 되면, 천리가 스스로 밝아지고, 사람의 욕구는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敬에 의해 생물적?이기적 욕구[人欲]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일은 역시 敬을 위주로 하는 일[主敬]과 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明理]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욕구 통제의 기능을 통해 “敬은 온갖 사악함을 다 이기게 되므로,” 居敬은 곧 동기 승화의 직접적인 방도가 된다는 것이 바로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5. 결: 한국인의 동기 이해의 개념틀

본고의 목적은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사상적 배경이 유학의 체계라는 사실을 밝혀내려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적인 동기의 유형에 대해서 살펴 본 다음, 이어서 유학 사상에서 동기를 어떻게 개념화하여 왔는지를 고찰하였다. 이제 결론적으로 이 두 개관의 결과를 종합하여,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개념틀을 시안적으로 강구해 봄으로써,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배경에 유학 사상이 깔려 있음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앞에서 밝혀졌듯이, 집단주의 사회와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지배적인 동기의 종류에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같은 동기라 하더라도 추구 목표나 대상 또는 강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두 문화에서의 주의의 초점의 차이(타인과의 관계-자율적인 자기), 통제의 소재에 대한 태도의 차이(개인 내적 욕구와 충동의 통제-외부 환경의 통제) 및 자기 향상의 방안에 대한 견해의 차이(단점 지양과 자기개선-장점 확충과 자기고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와의 대비에서 부각되는 집단주의 문화권의 지배적이거나 특징적인 동기의 양상은 한국 문화의 사상적 전통이 되어 온 유학 사상에 드러난 동기 이해의 양상과 아주 유사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선진유학 사상과 조선조 성리학의 동기론의 특징은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이들은 도덕적 동기의 중시, 생물적?이기적 동기 억제의 강조, 그리고 동기의 변용과 승화의 지향이다. 이들 세 가지 특징은 각각 주의의 초점이 타인으로 향해 있다는 점, 이기적 동기의 추구는 개인적 덕성이나 사회관계의 조화를 해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철저히 억압된다는 점 및 시간적?공간적인 개인의 가변성을 인정하고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제시된 내용들은 표 4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4. 두 문화유형*과 유학사상에서의 동기 이해

차    원 개인주의      (개체중심적 인간관)집단주의    
(관계중심적 인간관)
유학 사상사회행위의 원동력?목표   자율성 강조
(1) 개인지향동기
(2) 개인지향성취동기?
    개인중심 사회비교
   의존성 강조
(1) 타인지향동기
(2)사회지향 성취동기?
    집단중심 사회비교

도덕적 동기 중시자기표현의 양식   자기주장 강조
(1) 환경통제동기
(2) 약한 동조동기
   자기억제 강조
(1) 욕구통제동기
(2) 강한 동조동기
생물적?이기적 욕구
통제 강조행위의 변이가능성   안정성 강조
(1) 자기고양동기
(2) 강한 일관성동기   가변성 강조
(1) 자기개선동기
(2) 약한 일관성동기
동기의 변용과
승화 지향

* (1)은 문화유형에 따라 지배적인 동기, (2)는 동기의 내용은 같으나 목표대상 또는 강도           에서 차이가 있는 동기임.
  
이 표에서 보면, 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아 집단주의의 성향이 강한 한국인들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일차적인 참조 준거로 하는 개인지향적인 이기적 동기보다는, 관계 속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일차적인 참조 준거로 하는 도덕적 동기를 중시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타인과의 관계와 그 조화가 집단주의자들의 주의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자동적으로 추론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이 바로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제 1의 개념틀이 될 것이다.

표 4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생물적 동기와 이기적 동기를 억제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다. 이는 특히 대인관계의 조화를 깨뜨릴 가능성이 있는 이기적 동기의 경우에 심할 것인데, 飢?渴 등의 생물적 동기에도 이의 탐닉은 크게 억제되고, 기본적인 생존 유지에 필요한 정도로 조절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욕구의 억제와 조절이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제 2의 개념틀이 될 것이다.

또한 이 표에서 보면, 한국인들은 상황 및 시계열에 따른 가변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는 자기개선과 자기확대의 지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관계 속의 조화가 깨지는 것은 자신의 결점이나 무능 때문이라고 귀인한다(Kitayama et al., 1997). 이는 유학 사상에서??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이켜 구하라??[反求諸己]는 가르침으로 강조해 온 태도이다(조긍호, 1990, 1991, 1994, 1995, 1997b, 1998a, b, 1999b). 따라서 자기의 결점을 찾아 이를 자기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개선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反求諸己의 태도는 居敬의 태도와 이어져서, 도덕적인 자기확대로 승화될 것이다. 이러한 자기개선과 자기확대의 지향이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제 3의 개념틀이 될 것이다.

1) 관계에의 관심과 타인지향적 동기의 중시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제 1의 개념틀은 한국의 문화는 유학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집단주의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삶에서의 주의의 초점은 다분히 타인과의 관계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의 한국의 토착심리학에 대한 연구(예: 최상진, 2000)와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예: 나은영, 1995; 나은영?민경환, 1998) 들을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

Choi와 Choi(1994)는 한국인과 캐나다인의??우리??(we)에 대한 의미 구조가 본질적으로 다름을 고찰하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인들에게서??우리??는??나??를 중심으로 파악되어,??우리??속에서??나??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한국인에게서??우리??는??나??를 융화시킨 개념으로,??전체??와??혼일??의 의미를 가짐을 밝혀내었다. 상대가??우리??의 성원이 되었을 때 한국인은 정서적 거리의 단축이라는 느낌의 변화를 보이지만, 캐나다인은 공통 요인의 공유에 대한 인식이라는 사실적 지각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즉, 캐나다인은??공통성 공유 우리??(distributive we-ness) 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한국인은??관계성 우리??(relational we-ness)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우리??라는 집단이 갖는 의미는 캐나다인에게서 보다는 한국인에게서 더 강한 정서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원(1984) 또한 한국 문화권에서??나??와??너??는??우리??라는 情 공간 속에서 더 이상 분리된 존재로 여겨지지 않음을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타인과의 관계 지향은 情 또는 人情의 추구 또는 중시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이헌남, 1992; 장성수?이수원?정진곤, 1990).

한국인들의 이러한 관계 중시 경향은 그들의 언어 생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Koo(1995)는 Brown과 Levinson(1987)이 제시한 공손성 이론(theory of politeness)이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에 국한되어 적용되는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하고, 이의 확대 모형을 제시한 연구에서 공손한 언어 사용 행동의 문화 비교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Brown과 Levinson(1987)은 타인의 체면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을 때, 이를 제거하기 위해 정중한 언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공손성이라 보고 있다. 즉, 공손성은 체면 위협 행위(face threatening action)의 결과로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Koo(1995)는 이러한 공손성을 체면 유지(face saving)라는 도구적 기능을 갖는 의도적 공손성(volitional politeness)이라 보고, 이 이외에도 존대말이 발달해 있는 한국에서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의 사회 지수화(social indexing)라는 규범적 기능을 갖는 분별 공손성(discernment politeness)의 차원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그녀는 또한 미국인들은 체면 손상 위협의 정도라는 내용적 단서에 초점을 맞추어 공손성을 표현하지만, 한국인들은 세력(power)과 친숙도(familiarity) 같은 관계적 단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공손 표현을 달리함을 발견하였다. 비슷한 결과를 Holtgraves와 Yang(1992)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들에서 한국인들은 상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대인 교류의 양상을 달리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인은 대인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할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 유지 또는 증진의 매개체가 바로 타인지향적 동기이고, 따라서 한국인은 이러한 타인에 대한 관심?배려와 책임을 참조 준거로 하는 동기들을 중시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한국인의 사회적 행동의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관계의 이음끈들을 긍정적으로 보강하고 상대에게 이를 확인시키려는 동기와 목적??(최상진, 2000, p. 143)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기가 바로 타인지향적 동기인데, 이러한 맥락에서??상대와의 이음끈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성과 지향성을 가진 한국인의 특징적 사회 행동??들인 의례적인 언행, 체면치레 행동, 우리편 확인시키기 행동, 응석 행동, 자기비하적 겸손 행동 및 눈치(최상진, 2000, p. 143) 등은 모두 이러한 타인지향적 동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2) 이차 통제와 동기의 억제 및 조절

한국의 문화는 이렇게 관계지향적인 경향이 강하였으므로, 대인관계에서의 조화와 질서를 무엇보다도 중시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조화와 질서를 깨뜨릴 위험을 항상 경계하였다. 강한 사적 감정(예: 분노)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생물적?이기적 욕구의 추구는 대인관계에서의 조화와 질서를 깨뜨릴 위험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특히 생물적?이기적 욕구를 절제할 것을 강조해 왔고,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제 2의 개념틀이 된다.
전통적으로 유학 사상에서는 정서와 동기의 내적 통제를 강조하여 왔으며, 특히 성리학에서는 整齊嚴肅의 居敬을 중시함으로써, 사적인 감정[七情]과 욕구의 통제를 수양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栗谷은??의복은 화려하거나 사치해서는 안되고, 추위를 막을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음식은 아름답고 좋은 맛을 탐내면 안되고, 굶주림을 막을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그리고 거처하는 집은 크거나 편안해서는 안되고, 병을 막을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라고 하여, 敬 공부를 통해 생물적?이기적 욕구를 통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욕구 통제의 강조는 유학 사상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의 전통인데, 論語에서 恥[부끄러움]란 글자는 11개 장에서 모두 17회 출현하는데, 그 중에서 4개 장에서 나오는 6 회(35% 정도)가 생물적?이기적 욕구의 무절제한 추구는 부끄러움을 가져오는 일이므로, 이를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아 동기의 억제와 조절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인의 통제 양식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Rothbaum 등(1982)과 Weisz 등(1984)은 통제를 두 가지 상반된 과정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그 하나는 스스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고, 환경을 자아의 요구에 맞추려 하는 1차 통제(primary control)로서, 전통적인 심리학 이론들에서 가정했던 통제의 개념이 이에 해당된다. 또 하나는 자기를 변화시킴으로써 환경적 힘과 조화를 이루려 하는 2차 통제(secondary control)로서, 이는 수동성(passivity)?후퇴(withdrawl)?순종(submissiveness) 등 향내적 행동(inward behavior)의 근거가 되는 통제 시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향내적 행동은 전통적으로는 통제무능력의 지각(perceived uncontrollability) 결과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보았지만, 사실은 더 큰 미래의 실패나 통제불능을 예방하는 또 다른 형태의 통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즉, 1차 통제의 대상이 환경과 외적 통제라면, 2차 통제의 대상은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개인적인 욕구의 억제와 조절을 강조하는 한국인들에게서는 1차 통제보다 2차 통제가 특징적인 통제 유형이 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김수인(1996)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1차 통제의 수준이 높고, 집단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2차 통제 수준이 높음을 밝혀냄으로써 이러한 추론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는데, 최상진(1995)은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2차 통제는 현실초월적 통제?심리방어적 통제?타인지향적 통제의 양식을 띄는 것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여기서 본고의 내용과 관련해서 관심을 끄는 것은 현실초월적 통제인데, 최상진(1995)은 이의 두 가지 양식으로 소극적 현실초월과 적극적 현실초월을 들고 있다. 여기서 소극적 현실초월이 수동적?도피적인 현실초월이라면, 적극적 현실초월은 극기?수신?금욕?청빈 등의 추구로 나타나는 통제 양식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성리학 체계에서 강조해 온 적응 양식인 것이다. 본고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적극적 현실초월은 생물적?이기적 욕구의 억제와 조절을 통해 이루어지는 통제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점에서 한국인의 특징적인 통제 유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자기개선과 자기확대의 지향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의존성이 문화적 명제이므로 타인에의 배려와 조화의 유지를 강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인관계의 조화를 해칠 수 있는 자기의 부적 측면을 찾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기개선이 이루어지면, 다른 사람과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개인적인 이익의 추구보다 앞서게 되어 끝내는??타인을 자신 속에 포괄하는??(Aron & Aron, 1986, p. 19) 자기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동기 이해의 제 3의 개념틀은 이러한 자기개선과 자기확대가 한국인의 삶의 지향처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을 사회관계 속에서의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며, 이러한 관계 속의 역할, 규범 및 사회적 연대가 개인의 특성보다 더 중요한 행위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이 사회에서는 상호연관된 관계적 존재인 개인들이 이러한 관계와 역할의 연쇄망 속에 참여하여, 상호의존성과 조화로운 관계, 그리고 원만한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인간 삶의 이상이라고 본다(Fiske et al., 1998; Miller, 1997; Tu Wei-Ming, 1985).

그러나 이 경우의 상호의존성은 사회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과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신의 개인적 가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상호의존적인 삶이란 자기의 상실이나 자기에 대한 관심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주의?인지?감정?동기가 관계 및 규범에 터해서 조직화되는 것을 의미할 뿐인 것이다(Fiske et al., 1998). 그러므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더 잘 발달되고 분화된 자기관이 요청되는 것이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여러 측면들이 서로 분리되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Triandis, 1989, 1990), 이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이 중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자기의 여러 측면, 예를 들면 스스로가 보는 사적 자기, 일반적인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견해인 공적 자기 및 집단의 성원들이 보는 나에 대한 견해인 집단적 자기(Baumeister, 1986)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상호의존성을 최대화하는 것을 이상적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받아들인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과 조화는 나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타인이나 집단을 나 자신 속에 끌어 들여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타인이나 집단을 자신의 중요한 속성의 하나로서 자신의 정의 안에 포함시키는 자기확대(self-expansion)가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근본동기가 될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한국인의 삶의 배경이 되어 왔던 유학 사상에서도 자기개선과 이를 통한 자기확대를 삶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유학사상에서는 모든 일의 책임을 스스로에게서 찾음으로써[反求諸己] 스스로의 단점을 고쳐나가는 자기개선을 자기발전의 핵심으로 본다. 孟子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데도 그가 나에게 친근해지지 않으면 내 스스로의 仁이 부족하지 않은지 반성해야 하고,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내 지혜가 모자라지 않은지 반성해야 하며, 남에게 禮로써 대했는데도 그가 예로써 답하지 않으면 나의 공경함이 부진함이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행함에 있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에는 모두 자기에게 돌이켜 그 까닭을 찾아보아야 한다[反求諸己]. 자기 몸이 바르고 나서야 천하가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이켜 찾는 것은??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반성하여 보아 성실하다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없는 것이다.??이러한 자기개선은 곧 자기를 확대하여 도덕적 완성을 이루는 근본이 된다. 즉, 공자가 말한 이른 바 주위 사람 및 온 천하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安人과 安百姓은 곧 자기개선을 통해 자기를 닦는 修己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따라서 공자는 이를??자기를 닦음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修己以安人] 및??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천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修己以安百姓]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論語 憲問篇 45). 이렇게 유학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존재 확대 또는 확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조긍호, 1998a, 1999b,; Tu Wei-Ming, 1985), 大學에서 제시되고 있는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八條目의 동기위계설도 이러한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즉, 8 조목 각각에서 상위 조목은 하위 조목의 목표로서, 최상위 목표인 平天下까지 자기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조의 성리학에서도 居敬의 최종 목표는 곧 덕을 모음으로써[聚德] 인간의 본성을 완성하고 실천하는 데[踐形盡性] 있다(栗谷全書 477)고 봄으로써, 자기개선과 이를 통한 자기확대를 삶의 최종 지향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4) 문화 이중성과 동기의 문제

이상에서 제시된 세 가지 개념틀은 한국인의 동기 이해를 위한 앞으로의 연구의 준거틀로서 제안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틀은 현재로서는 시안적인 것으로서, 앞으로의 연구들을 통해 그 개념적?경험적 유용성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러한 개념틀을 실제 연구에 적용할 때는  몇 가지 문제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문화의 이중성의 문제이다. 한국 문화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데, 나은영과 민경환(1998)은 문화이중성을??명시적?공식적  규범과 암묵적?비공식적 행동 원리의 불일치”(p. 75)라 규정하면서, 이러한??문화의 이중 구조가 심화된 이유 중의 하나는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한 큰 세대차”(p. 85)라고 보고 있다. 즉, 고연령 세대일수록 명시적 규범[예: 법과 규칙]과 암묵적 행동 원리[예: 유교적 신념과 선호] 사이에 괴리가 큰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의 근원은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규범적 측면만 근대화되고, 내면에는 아직도 전통적 유교적 잔재가 남아 있는 데에 있을 수 있다.
본고에서 제시되고 있는 개념틀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암묵적 행동 원리에 해당하는 전통 유학 사상에서 그 근거를 상당히 따 온 것이다. 따라서 나은영과 민경환(1998)에 따르면, 본고의 개념틀은 유학적 전통 사상에 입각한 행동 원리를 선호하는 고연령 세대에는 어느 정도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암묵적 원리와 명시적 규범이 모두 개인주의화 하여 그 괴리가 거의 없는 저연령 세대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의 이중 구조가 존재하는 한, 한국인의 동기 이해의 개념틀은 세대별로 세분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동기의 개념틀은 항상 같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특출하게 부각되는 행동과 그 배경이 되는 욕구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세대차는 곧 상황의 차이로 수렴해 볼 수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Fromm(1941)이 이미 설득력있게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자유에 대한 열망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외적 대상이 상존하고 있을 때에는, 이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여, 구속물에 대한 투쟁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유를 획득하고 나면, 이전의 구속물이 인간의 자유를 유보하는 대가로 주고 있었던 소속감과 안전감을 상실하게 되어, 불안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런 사정이 지속되면, 다시 자신들의 자유를 맡아주는 대가로 소속감과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에의 열망이라는 욕구는 상황에 따라 자유를 위한 투쟁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정반대의 행동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라는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비록 동기적 배경이 같을지라도, 이것이 서로 다른 행동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과 유학 사상의 두 축으로부터 도출해 낸 개념틀을 기초로 해서도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보이고 있는 서로 다른 행동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타인에의 관심이라는 개념틀은 가족이기주의[내집단을 가족에 국한하는 상황]와 지역이기주의[내집단을 지역집단으로 잡는 상황]라는 서로 다른 행동의 설명 원리로 동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이론적 탐색을 목표로 하는 연구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므로, 앞으로의 광범위한 연구와 논의를 거쳐 좀 더 심도있게 고찰되고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라는 전 지구적인 변화의 와중에서 이러한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 넓고 심도 깊게 전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결어를 대신하여: 유학 사상과 집단주의

유학 사상은 인간 존재의 사회적?도덕적 특성(인성론)을 전제로 하여, 이러한 존재 특성을 가지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상태(군자론?성인론)를 정립한 다음, 사회적 차원(도덕실천론?예론)과 개인적 차원(수양론)에서 이러한 이상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바를 제시하고자 한 이론 체계라고 정리할 수 있다(조긍호, 1998a, 1999b). 이러한 4 체계 중 유학 사상의 기초는 역시 인성론이다(김충렬, 1982; 馮友蘭, 1948; Needham, 1969/1986). 이러한 유학의 인성론은 도덕적 기초[仁?義?禮?智]가 인간에게 본유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인간 존재의 사회성?도덕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으며, 후속되는 군자론?예론?수양론 등에서 인간 관계의 사회성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인성론의 특징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유학 사상이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근거가 도출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학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존재 확대 또는 확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자들은 인간의 인간된 소이에 관한 입장[人性論]을 통해 존재 확대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존재 확대의 이상적 모형[聖人論]을 제시함으로써 존재 확대를 삶의 목표로 설정한 다음, 존재 확대를 이루기 위한 도구[道德實踐論?禮論]와 그 방법[修養論]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인간의 존재 확대를 부르짖게 되는 근거는 그들의 인간 파악의 기본틀에 놓여 있다. 선진유학 경전 전체를 꿰뚫고 있는 인간 파악의 기본 입장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의 공자, 맹자나 순자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의 공통적인 입장이라고 하겠는데, 그들은 인간을 능동적?주체적(能動的?主體的) 존재, 가능체(可能體)로서의 존재, 그리고 사회적 관계체(社會的 關係體)로서의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개체로서의 존재를 뛰어 넘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짊어지고 실천해야 하는 존재[社會的 關係體]로서, 능동적?주체적으로[能動性?主體性] 존재 확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可能體]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학 사상가들은 인간 존재의 기본 특성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사회성에서 찾고 있다. 즉, 사회적 관계체로 인간의 존재 특성을 규정하는것이 유학 사상에서 도출되는 인간 파악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본유하고 있는 도덕적 기초[仁義禮智]는 바로 이러한 인간 존재의 사회성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유학 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유학 사상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능동성과 주체성, 그리고 가변성과 가능성도 인간의 사회성과 도덕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에게 본유적으로 모든 도덕성의 근거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이를 잃지 말고, 잘 간직하고[存心] 길러서[養性?養心],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능동적?주체적인 삶의 자세라는 것이 유학 사상의 기본 입장인 것이다. 따라서 능동적?주체적?가능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파악의 관점은 사회적 관계체로 인간을 보는 조망에서 연역되어 나오는 입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유학 사상에서 도출되는 인간 파악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은 인간을 사회적?도덕적 존재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기본 특성을 이렇게 인간의 사회성에서 찾는 것은 유학 사상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유학 사상의 핵심인 인(仁)에 대한 공자의 개념 규정에서 잘 드러난다. 다음은 『論語』에서 제시되고 있는 공자 자신의 仁에 대한 대표적인 몇 가지 설명이다.

무릇 仁이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남을 먼저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자기의 사욕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仁을 행하는 일이다.

(仁이란)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일이다.

(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인용문들에서 유학 사상의 핵심 가치인 仁은 자기의 억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사회적 특성에 기초한 덕목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공자 자신이 인간의 사회성을 인간 존재의 핵심 특성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 특성에 대해 공자가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정명론(正名論)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사회 관계 속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사회 질서와 조화 유지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즉,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신하는 신하로서의 역할을 다 하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顔淵 11)이 사회에 질서와 조화를 가져오는 정사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정사를 맡겨 준다면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는 일[正名: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일]부터 하겠다(子路 3)고 공자는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부터 이미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의 관심과 배려를 보유하고 있는 존재로 보고 있으며, 모든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사회 관계 속에 주어진 쌍무적인 역할에서 찾으므로써, 인간 존재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유학 사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 집단주의 문화가 꽃 피게 된 바탕인 것이다.

앞에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문화차 개관의 틀로 사회 행위의 원동력과 목표, 통제 소재(자기 표현의 양식) 및 행위의 변이가능성의 세 차원에서 연계성?자기억제?가변성을 강조하느냐(집단주의) 아니면 자율성?자기 주장?안정성을 강조하느냐(개인주의) 하는 강조점의 차이를 제시하였다(표 2 참조). 이러한 세 차원은 유학 사상에서 도출되는 인간 파악의 세 입장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체로 인간을 보는 입장은 사회 행위의 원동력을 사회 관계 속의 역할로 보고, 모든 사회 행위의 목표를 사회 관계의 질서와 조화의 추구라고 보는 것으로, 사회 행위의 원동력과 목표 차원에서 연계성을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입장과 같다. 또한 능동적?주체적 존재로 인간을 보는 입장은 모든 도덕적 기초가 본유적으로 사람 속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모든 것(사회 행위의 원인과 그 결과)을 자기 내부로 귀환하여 자기 속에 침잠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통제 소재(자기 표현의 양식)의 차원에서 자기 억제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입장과 통한다. 그리고 가능체로서의 존재로 인간을 보는 입장은 관계에 따른 역할의 연쇄망에서 관계가 달라짐에 따라 변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소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행위의 변이가능성 차원에서 상황에 따른 가변성을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표 4 참조).

이렇게 집단주의 문화에서 특징적인 세 차원의 강조점과 유학 사상에서 도출되는 인간 파악의 입장은 서로 상응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유학 사상이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 형성의 배경이 된 근거가 드러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단주의 문화의 동기적 특징의 사상적 배경을 유학 사상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봄으로써, 집단주의적 심성의 유학적 기초에 대해 고찰해 온 본고의 입론이 타당하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출처: 이선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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