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
- 박 동 천(전북대학교)
최근 2-30년 사이에 “아시아적 가치”라는 용어는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어 왔다. 최근에 이르러는 그 영역들도 확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의 사용 빈도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단어는 경영학, 문화 연구, 사회학, 정치학, 철학, 등등의 분야들에서 학문적인 연구의 주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동시에, 서구에 연원을 둔
가치관 및 사회조직원리에 의하여 주도되는 것으로 보이는 현대의 지구촌 상황에서 아시아 지역에 위치하는 정치사회들이 대응 전략 및 바람직한
국제질서를 모색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목적으로부터도 심중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적 가치”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는 그 표현을 사용하는 이런 저런 화자들이 나름대로 의미하는 바 가치가 왜 특별히 “아시아적”이며 그가 의미하지
않는 바 가치는 왜 특별히 “아시아적”이 아니거나 아니어야 하는지에 관한 성찰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리하여 개인보다는 공동체, 업적보다는
인화, 분석보다는 종합, 등등을 서구적 가치에 대조되는 아시아적 가치로 치부하는 경향이 이 주제 주변의 담론에서 팽배하지만, 그와 같은 대조가
유치한 수준의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퇴니스, 베버, 파슨즈 등등 근대 서구 학자들이 서양 근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설정하였던 전통/근대의 단순 도식을 역전시켜 적용하는 셈이라는 사실들에 주목하는 시각은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다.
인권과 자유의
확산이라든지 사법적 절차의 확립을 통한 정치통합 등과 같은 가치 및 사회조직원리는 아시아 사회들이 적어도 서양 문명과 접촉한 이래 부단히
추구하여 왔던 이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이 일단은 서양 근대의 성취를 대표하는 항목들인 까닭에 서양에서 도래한
전통/근대의 단순 도식에서 탈피한 아시아적 가치가 정형화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가치들은 전형적으로 서구적 가치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하나의 흐름과 소위 “아시아적 가치”를 추구하는 또 하나의 흐름이 아시아 사회들 내부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 충돌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아시아적 가치”의 내용이 보다 분명하게 정형화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러한 정형화의 근거가 합당하게 확립되어 아시아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안에 내면화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그와 같은 정형화조차 정합적인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시아적
가치”라는 문구의 피상적 매력만이 착취되다 보니, 결국 그 표현은 심층적인 내용이 결여된 채 이런 저런 현실적 이득을 추구하는 데에 동원되는
수사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도 종종 빚어지고 있다. 나아가 그러한 수사가 다시 증폭되어 헌팅턴 류의 “문명 충돌론”과 같은 지극히 비지성적인
선동마저 가능하게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의 사용 방식을
재검토하려 한다. 지리학적 분류로 볼 때 아시아라는 개념 자체는 아랍세계, 인도, 동남아시아 및 동북아시아에다가 시베리아까지를 포함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한 편의 논문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을 넘지 않기 위하여 중화문명권으로 국한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보다 많은
비중을 부여할 것이다.
본 연구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 세 가지를
추려내어 그 각각의 경우에 그 표현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분석하고, 그러한 의미들이 과연 얼마나 “아시아적”이라는 형용사에 부합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서는 첫째, 한국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그 동안 서구와 대비되는 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지도이념 아래 운위되어 온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담론들, 둘째, 박정희, 마하티르, 리콴유, 고이즈미 등, 아시아의
정치인들이 사용해 온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에 담겨있는 진의 및 저의, 셋째, 헌팅턴, 로티 등 서양의 시각에서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우호적이든 경멸적이든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추구한 의미들을 취하여 분석한다.
이러한 기존
용례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후에, 본 연구의 후반부에서는 그렇다면 과연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데에
바탕이 되리라는 기대 아래 그 개념 자체가 애당초 얼마나 정합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개념인지, 나아가 그것이 어떤
정합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포착될 수 있을 것인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먼저 서양 근대의
성취로 간주되는 대표적인 가치들 가운데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전통 안에서 반드시 생소한 관념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한국과 중국의 재조 및 재야
유학자들의 글들을 부각함으로써 강조하고, 다음으로는 단순히 과거 역사로 회귀해야 “아시아의 정체”를 찾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하나의 발생학적
오류에 해당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 개인의 경우나 한 사회의 경우나 그 정체라는 것이 자연보다는 공유되는 언어의
의미라고 하는 환경 안에서 결정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함으로써, “아시아적 가치”의 정체를 탐구하려는 작업과 현대
아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열어나가느냐는 작업 사이에 단선적이 아니라 교호적인 관계가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여,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을 먼저 포착함으로써 미래를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에 일정한 일리가 담겨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아시아인들이 스스로 어떠한 미래를 열어나가느냐에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의 정체가 좌우된다고 말하는 데에도 그에 못지 않은 일리가 담겨있다는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결론을 삼을 것이다.
1. “아시아”, “아시아적”의 경계
고대 희랍 사람들이
어떤 연유에서 어떤 의미로 아시아(Asia)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했는지는 오늘날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아시아라는 단어는 그 희랍 사람들이
주로 아나톨리아 반도 및 그 인근 동쪽을 가리켜 부를 때 사용하던 단어였다. 그랬던 것인데, 그후 유럽 사람들의 시선이 동쪽으로 점점 더 멀리
미치게 되면서 아시아라는 단어는 인도, 중국, 버마, 베트남,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에다가 몽고와 시베리아까지를 두루 일컫게
되었다. 그런데 페르샤, 인도, 중국, 베트남, 시베리아, 한국, 일본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길래 이처럼 하나의 묶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시아라는 단어를 통하여 마치 하나의 단위인 것처럼 한데 묶여 일컬어지는 그 지시대상은 사실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자기들보다 더 동쪽에 위치한다는
공통점밖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단어에 대하여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날카롭게
지적하였듯이, 일군의 사물, 사태, 또는 표상들이 하나의 단어로 묶이어 개념화되는 것은 그것들이 어떤 명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공통된 단어로 일컬어지는 대상들 사이의 관계는 해당 언어 공동체에서 그 단어가 사용되어 온 역사를 통해 맺어진 이럭저럭 얼키설키
모여있는 관계이지 그 어떤 엄밀한 체계적 정합성에 기초한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적 가치”라는 단어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의미의 심중함에 비추어보면 “아시아” 또는 “아시아적”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새삼 돌이켜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 지시대상들 사이에서 어떤 체계적이고 정합적인 공통점을 찾아낼 수는 물론 없겠지만, 적어도 이럭저럭 얼키설키 모여있는 공통점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현재의 논란에 약간의 질서를 더해주리라 기대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라는 단어의 경우 단지
유럽보다 동쪽에 위치한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이럭저럭 또는 얼키설키 모여있기라도 하는 그 어떤 공통점도 그 지시대상들이 보여주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된 까닭은 이 단어 자체의 탄생과 성장이 아시아의 원소로 일컬어지는 주체들 사이에서 어떤 상호관계가 맺어졌는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전적으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그것도 “저 너머 동쪽”이라는 정도로 지극히 피상적인 타자화의 경로를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아시아적 가치라는 주제가 논의되기 이전까지, “동양적(oriental)" 또는 "아시아적(asiatic)"이라는
단어는 고대 희랍인들과 위트포겔의 ”동양적 전제(oriental despotism)“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듯 특정한 형태의 폭력과 야만이
당연시되는 정치형태를 뜻하거나,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asiatic mode of production)“에서 나타나듯이 원시성의 한
형태를 가리키든지, 또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 그려지는 것과 같은 모호한―지극히 의존적이며 나약하기만 한 여인상 위에 축조된―이국적 분위기를
가리켜 왔던 것이다. 유럽인들의 전통적 의식 안에 자리잡은 아시아 상이 한결같이 부정적이거나 모멸적인 것만은 아니겠으나, 유럽적인 것들에 대하여
그들이 조형한 개념들에 견주어 보면 실체성의 근처에도 거의 접근하지 못한 황당하고 막연한 수준임을 누구나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근자에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은 때때로 서구 근대라고 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하나의 反命題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서구 근대의 기획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온갖 모순과 폐해와 상처를 회피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다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개념의 의미에 있어 황당함과 막연함을 본격적으로 떨쳐버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제 다음 두 가지 까닭을 들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이 여전히 황당하고 막연하다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한다.
첫째,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유치한 이분법에서
비롯되었다.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오늘날 “아시아적 가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로써 표현하려는 내용은 대체로 개인보다는 공동체,
업적보다는 인화, 분석보다는 종합, 물리적·기계적 세계관보다는 화학적?상호관계적 세계관 등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구성하는 원소들은 일련의 이분법적 쌍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나아가 그 이분법적 쌍개념들은 유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단순화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분법적 대조란 본시 단순화가 목적이며, 그러한 단순화를 통하여
사물이나 사태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양상이나 성격이 부각되고, 다시 그로부터 여러 가지 의미있는 논의가 파생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분법의 효용은 오직 그 이분법적 대조가 하나의 개념으로써, 다시 말하여 현상들을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개념적 도식으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 이분법의 양쪽 끝이 각각 마치 특정한 대상들의 이름인 양
사용된다면 그때 이분법은 모든 효용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개인-업적-분석- 물리적?기계적 세계관은 서구적 가치고
공동체-인화-종합-화학적?상호관계적 세계관은 아시아적 가치라는 도식이야말로 바로 그런 점에서 실질적 의미를 거의 가지지 못하는 도식을 위한
도식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 도식이 대조하려는 가치의 쌍들은 서구와 아시아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것들이지 한 쪽에 치우쳐서
나타나는 것들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도의 차이에 주목하더라도, 서구가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아시아가 보다 공동체적이라는 명제를 뒷받침할
만한 확증을 나는 전혀 접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주장은 무성한 편이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식의 주장들은 특별한 근거없이 발생한 이미지를
엄밀한 성찰을 거치지 않은 채 반복하는 수준일 따름이다. 서구 근대의 특성이라고 운위되어 온 전형적인 가치들을 두고서, 아시아는 서구와 다를
테니까 그에 대조되는 가치들이 당연히 아시아적이라는 식으로 형성된 이미지가 거듭 반복되어 강화된 셈이 아니라고 단언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 아래 운위되고 있는 원소들이 사실상 19세기이래 서구 사회의 전통/근대 이분법에서 전통에 해당하는
특성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도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를 타자화시키는 시각의 와중에서 무책임하게 출현한 이미지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두 번째 까닭이다.
둘째, 소위 “아시아적 가치”의 기치 아래 거론되는 원소들은 뒤르켐을 필두로 퇴니스나
베버 및 파슨즈 등 서구의 전형적인 근대주의자들이 설정한 바 있는 전통/근대 이분법 중 전통에 해당하는 일련의 원소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파슨즈는 歸屬(ascription)과 業績(merit)를 대조하고 산만함(diffuseness)과
분화(differentiation) 및 특화(specification)를 대조하고 분산(disintegration)과
통합(integration)을 대조함으로써 전통 사회 및 근대 사회의 특성을 요약한 바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전통 사회는 개인 자신의
능력보다는 그가 어떤 지역이나 집안에 속해 있는지가 더 중요시되고, 전통 사회는 책임과 권리와 역할 등의 한계가 명확하지 못한 채 두루뭉수리의
상태이며, 그러다 보니 사회의 각 부분 내에서 공식적 비공식적 권력이 행사되기는 하지만 그 권력들을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통합하는 기능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대조가 서양 사회의 전통과 근대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또는 서양 사회의 전통과
근대를 얼마나 공정하게 서술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는 상당한 정도의 의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즉, 내가 지금 파슨즈 류의 이분법을 인용하는
까닭은 내가 그 이분법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자체로 문제 투성이일 수 있는 이분법이 은연중에 아시아에 관한 논의로 건너와서
파슨즈 등이 폄하하였던 일련의 특성들이 이번에는 “서구 근대의 대안”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잠재적으로 갖춘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로 둔갑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제기하기 위함이다.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그리고 업적보다는 인화를 강조할 때에
그 담론이 보여주는 특성 중의 하나는 그 때 “공동체” 또는 “인화”가 도대체 어떤 수준의 어떤 성격의 공동체이고 인화인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아시아 각 사회의 내부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자기들의 사회가 어떤 종류의 공동체 및 사회적 조화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수많은 실질적 논란과 투쟁이 정치사회적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데, 그와 같은 엄연한 사실을 철저히 도외시한 채 아시아 사회는
“공동체”를 개인보다 그리고 “인화”를 업적보다 우선시한다는 말을 되뇌인다는 것은 곧 그때 운위되는 “공동체”며 “인화”라는 것이 정합적인
내용을 전혀 가지지 못한 이현령비현령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한 가지 반증이 된다. 그런 수준에서 운위되는 공동체며 인화야말로 파슨즈가 지적하고자
하였던 귀속주의와 연고주의 그 자체이며, 산만하고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각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분산된 권력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두고 “공동체”며 “인화”라고 부를 것인지의 문제가 공동체 및 인화의 개념에 입각하여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적 권력에 따라 결정되도록 방기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적 가치”라는 기치를 아시아의 정치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강성 또는 독재의 성향을 띤 정치인들이 재빨리 수용하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는 이 단어는 정작 아시아적 가치
그 자체―이것이 무엇이든지―와는 상관이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외부적 이익을 위하여 혹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착취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2. 개념적 착취의 유형
모든 개념에게 본질적인 내용 또는 심지어 지시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하여 나는 분명히 반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표현에 반드시 고유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가 전제하는 것도 아니며, 그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사용자들에게 반드시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식의 전제나 요구야말로 진리의 거울에 비추면 말하자면 오류이며 가치의 잣대로 재면 불의라고 본다. 개념들 중에는
“산”, “책”, “바위”처럼 매우 명확하게 특정화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들도 있지만, “이”, “저”, “그”처럼 명백히 대상에
대한 지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정작 그 개념 자체의 고유한 지시대상은 없는 것들도 있다. 또 “사랑”, “우정”, “정의”, “아름다움”,
“선” 등등, 정의하려들면 들수록 도리어 미궁에 빠져버릴 뿐만 아니라, 단어-지시-내용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로써 표현되는 의미의
핵심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개념들도 있다.
개념의 의미라는 것이 각 단어들이 고유 영토로 확보하고 있는 어떤 실체적 내용인 것인지
아니면 그 단어들이 사람들의 의하여 사용되는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형성되는 특정하고 개별적인 관계인 것인지는 둘러싸고 언어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여러 세기 동안 입씨름과 머리 씨름을 해왔지만 분명한 정설이 확보되지는 못한 상태의 난제이다. 더구나 그 문제가 이 글의 주제도 아니므로, 그
문제 자체를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하겠다. 다만 개념의 의미를 고유한 실체적 내용으로 보든 다양한 맥락의 용례들로 보든, 적어도 어떤
개념이 하나의 개념으로 성립하려면 용례와 용례를 관통하는 의미의 정합성이 어느 정도는 확보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보편적으로 타당하리라고 본다.
사용될 때마다 그 뜻이 달라진다거나, 또는 사용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단어의 “의미”를 특별하게 탐구할
가치는 없을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라는 문구는 적어도 그 용례의 빈도를 중요도의 지표인 양 간주하여 살펴보면 그 의미를 탐구해볼
가치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경계에 위치하는 듯이 보인다. 다시 말하여, 내가 보기에 그 문구가 거의 정합적이지 못한 형태로 사용되는 용례의
빈도가 보다 높은 편이고, 그나마 약간이라도 정합성을 갖추고 있는 용례들의 빈도는 아주 낮다는 말이다. 이 절에서는 전자에 해당하는 용례들을
살피고, 다음 절에서는 이 문구에 담길 수 있는 정합적 의미의 모습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개념적 착취의 용례들은 정치인에 의한 착취, 서양
지식인에 의한 착취, 동양 지식인에 의한 착취 등 셋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가. 정치인에 의한
착취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은 그 표현을 통하여 실제로 어떤 가치에 관한 감수성이 사람과 사람의 정신 사이로 전해지는
것인지에 상관없이 특정 정치인들에 의하여 특정한 외부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다. 대체로 그러한 정치인들은 서양 사회가 일정한 가치를 하나의
보편적 가치인 양 자신 및 자신의 사회에 강요하려 든다고 스스로 느낄 때에 방어적인 자세로 문화적 특수성을 들먹일 정도로 영리하였고, 또는
자신의 권력 행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때에 그러한 비판을 공격적으로 묵살하기 위하여 아시아적 가치를 들먹일 정도로 무도하였다.
겉으로만 보면 이 두 형태가 달라보일 수 있지만 기실 인식의 종류라는 관점에서 보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 사회의
“압력”에 반드시 순응하지는 않으려는 몸짓은 아무리 짧은 순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현대 아시아 모든 국가의 맥락에서 주체성을 드높이는
민족주의적 기치로 자동적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국내 정치의 맥락에서 언제나 비판의 논리를 절차는 제쳐두고 실질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언제나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두 방향의 착취 방식이 결합하여 효과를 보인 전형적인 사례로는 박정희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미 1961년의 언필칭 “혁명공약”에서부터 자주성의 기치를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그가 의미했던 자주성은
1963년부터 시작하여 1967년에 극에 달한 선거공작과 1969년 폭력과 날치기로 이룩해 낸 개헌으로 그 정체의 편린을 드러내다가 마침내
1972년의 유신을 뒷받침할 논거로 창출해 낸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로 본체를 모두 드러낸다. 정치적인 지향에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박정희를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박정희와 같은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언어에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한국적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납치 및 고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적 경쟁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야말로 무고한 시민에 대한 납치, 고문,
혐의조작, 살해 등이 정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상태가 단지 “한국적”이라는 형용사 하나만 붙으면 민주주의의 집합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정치사상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이며, 논리적으로 언어변별력에 대한 무지이며, 민족적으로 韓國性에―이 한국성이라는 것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는 것이든지―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만행이 문화적 특수성이라는 허울 아래 자행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보다 덜 야만적이자 더 섬세한 형태로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을 착취한 정치인으로는 리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면 관계상 그에 대한
상세하고 본격적인 분석은 차후의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만을 거론하는 데에 그치기로 한다. 그는 Foreign
Affairs 편집장과의 한 인터뷰에서 총기, 학교폭력, 마약 등 미국 사회의 병리현상들을 과도한 개인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진단하면서 아시아의
가족중심 문화가 그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싱가포르의 경우 마약 복용 여부가 의심되는 사람에게 소변 검사를
강제함으로써 마약 문제를 뿌리뽑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백보를 양보하여 싱가포르의 사례를 하나의 성공으로 단언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곧 아시아의 가족중심 문화의 성공으로 연결짓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적 지식”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기지촌 매춘 여성들의 희생을
통하여 “정상적”인 한국인 여성들을 미군의 손아귀에서 보호한다는 논리도 아시아의 가족중심 문화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변검사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서 어긋나지 않게 남용되지 않고 싱가포르의 공권력에 의하여 수행되었다면, 그 비결은 싱가포르
사법질서의 건강함에 있는 것이지 결코 아시아 특유의 가족중심 문화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족중심 문화는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폐해를 낳는 것이 또한 사실일 뿐만 아니라, 애당초 그것이 아시아에 특유한 현상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서구인들이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지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의 “민족대이동”, 그리고 정파를 막론하고 선거공약에 단골로 등장하는 “가족의 가치”(family
values)라는 문구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 「오케이 목장의 결투」에서 악역이 표상하는 바와 같은 사적 폭력 또한 서양 사회의
가족중심 문화로 인하여 비일비재하게 자행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정치적으로 야심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를 가능한 한
거창하게 포장하려는 것은 놀라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포장 행위는 철학적으로―즉, 사이드의 용어로 말하자면 “순수한 지식”에
입각하여―평가하자면 과장이자 오류이지만, 일반적 사회생활의 범위 안에서는 경우에 따라 충분히 용인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까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나로서는 리콴유의 개념 착취 정도라면 사회적으로 용인하여도 큰 해는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논리적 진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여전히 그것은 개념을 외부적 목적을 위하여 착취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그와 같은 사회적 용인으로
인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 서양 지식인에 의한 착취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
제1부 제1-2장 및 제2부 제1-2장 등을 통하여 쵸서(Geoffrey Chaucer, 1340?-1400), 맨더빌(John
Mandeville, 14세기),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드라이덴(John Dryden,
1631-1700),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플로베르(Gustav Flaubert, 1821-1880), 네르발(Gerard de
Nerval, 1808-1855), 스코트(Walter Scott, 1771-1832),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 에르페니우스(Erpenius, 1584-1624), 포스텔(Guillaume Postel, 1510-1581),
몰(Jules Mohl, 1800-1876), 르낭(Ernest Renan, 1823-1892) 등등, 등등, 등등, 수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동양을 타자화하고 거기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유럽의 문화적 자만심을 채워왔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타자화의 골자는 이미 이 글의
제1절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고, 그러한 덧씌움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헌팅턴의 경우를 논하고자
한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저자 스스로 그 「서문」에서 고백하듯이 사회과학서가 아니라 (즉, 학문적 진리주장이 아니라),
냉전 이후 세계 정세의 변화를 해석하고 전망하는 (즉, 정치적 제안을 담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비록 그 제안의 내용이 살벌하고 적대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하지만, 적어도 가치중립이라는 가식 아래 본심을 숨기지는 않은 장점이 있다. 그는 우선 서구 문명의 구성요소로 그리스-로마의
유산, 기독교, 유럽어, 정교분리, 법치, 대의제, 다원주의, 개인주의 등을 나열한다 (pp. 87-91). 그리고 이것이 보편문명일 수는
없다고, 세계에는 다양한 문명―즉,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正敎,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들이 존재한다고 함으로써 다원주의적 안목을
과시한다. 그런 다음 그는 본격적으로 문명 충돌론을 전개한다. 세계는 다양한 문명들로 이루어지는데, 그 문명들은 서로 접촉하면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명들은 각각 내부적으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따라서 핵심과 주변이라는 계층 구조를
가진다. 그리하여 어떤 문명이 어떤 세력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역사가 좌우된다는 투키디데스에서 마르크스를 지나 지금까지 줄기찬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무력중심의 역사관을 제시한다. 즉, 서구 문명이 르네상스 이래 지금까지는 발흥의 기세를 탔지만 이제부터는 다양한 문명들의 도전 및
내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쇠락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런 식의 역사관이 근본적으로 제한된 안목에 기인한 오류이자 과장이라고 보지만,
어쨌든 헌팅턴이 여기까지는 사회과학자로서 나름대로 자신의 발언에 근거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과학적 주장은 끝나고 그의 정치적 주장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정치적인 주장은 한 마디로 서구 문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유럽과 미국의 반목을 다른 문명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결속을 강화하고, 라틴 아메리카 및 동유럽의 서구화를 촉진하여 서구에
편입시키고, 이슬람, 중화, 일본을 견제 및 이간하고, 러시아의 존재를 인정하여 공존하며, 서구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등의 방책을 그는
제안한다. 그런데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진 헌팅턴으로서 서구 문명의 장래를 눈먼 세력의 운행에 맡기지 않고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는 가치를 어디에서
건져올렸을까? 그 답은 서구 문명은 남다른 가치관과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리스트교, 다원주의, 개인주의, 법치주의가
포함된다. 서구는 이런 자산을 활용하여 근대성을 창안하고 전 세계로 팽창하면서 다른 문명들의 부러움을 샀다.”(p.
427).
도대체 헌팅턴의 진심은 어디에 있을까? 서구 문명이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문명이란 원래 다원적이고
상대적이라 거기에 본질적 우열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 말하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서 문명간의 우열을 말하기도
했다가 다른 경우에는 우열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일까? 서구 문명이 수호해야 할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 때 그 가치는 헌팅턴을
비롯한 서구인의 가치일까 아니면 보편적 가치일까? 그것이 보편적 가치라면 왜 다른 문명들은 도전과 항거를 하며 왜 오늘날 서구 문명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일까? 그것이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면 왜 다른 문명은 서구를 부러워했다는 것이며, 왜 오늘날 서구 문명을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헌팅턴이 그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스스로 사전 예방으로 못을 박았듯이 그의 주장은 하나의 정치적 주장이므로 순수한 지식에나 적용될 법한 진리 검증의 절차는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역으로 자신의 주장을 진리 검증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달라는 그의 부탁이야말로 그의 주장이 순수한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자인인지도 모르겠다.
헌팅턴과는 달리 서양의 지식인들 중에는 “아시아적 가치”에서 서양 근대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는 두웨이밍이나 이광세처럼 서양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혈통의 지식인과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 로저 에임스(Roger Ames), 데이비드 홀(David Hall) 등 코카서스 인종 출신들이 공히 포함된다. 내가 보기에
이들의 입장을 약간 거칠게 뭉뚱그리자면 다음 항에서 논할 착취 유형 중 그 첫 번째 것과 매우 흡사하다. 즉, 서양의 현대 사회가 노정하는 여러
문제 중에서 자기가 중요하다고 보는 몇 가지를 선별한 다음 그러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아시아적 가치를 이상화하여
부각하는 담론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들 각자에 대한 개별적 논의를 생략하고 항을 바꾸어 그 담론 형식 전체를 논의하는 것을 용인해주기
바란다.
다. 동양 지식인에 의한 착취
동양의 지식인 사회에서 “아시아적 가치”라는 문구를 착취하는
형태는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서양 대 동양이라고 하는 단순 이분법적 도식을 바탕에 깔고 나서, 서양 사회의 여러 양상
가운데 명백하게 문제시될 만한 요소들만을 선별하여 부각한 다음 그러한 부정적 요소들의 안티테제로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는 형태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사회의 전통에서 발견되는 어떤 특정한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연관이라든지 또는 하나의 규범체계로 이해되는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을
도외시한 채 그저 하나의 가치로 부각하는 형태이다.
첫 번째 형태는 앞서 언급한 리콴유 식 사고방식과 닮은꼴이다. 즉, 마약이
문제다-마약은 서양의 문제다-서양은 개인주의다-동양은 가족주의다-그러므로 가족주의는 서양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순서로 진행하는
사고의 흐름이다. 1980년대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네 용이 경제적으로 성가를 높이는 반면에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침체하자 등장한
유교자본주의라는 발상 역시 그 논리적 형태에 있어서 동일한 순서로 구성된다. 서양의 지나친 경쟁이 기업들로 하여금 단기적인 이익에 몰두하게
만들어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위기를 가져온다 (또는 지나친 경쟁이 개인들로 하여금 조직 전체보다는 이기적인 이익에만 눈길을 맞추게
한다)-서양은 개인주의다-동양은 인화와 연고를 중시한다-그러므로 연고주의가 서양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도식에는
시장주의/국가개입의 쌍도 그대로 대입될 수 있다. 나아가 두웨이밍 류의 지식인이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서양의 분석/동양의 종합,
서양의 기계론적 세계관/동양의 화학적 세계관, 서양의 물질 중시/ 동양의 정신 중시, 등등의 쌍 개념들이 그대로 대입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과 발상에 들어있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 전제로 깔려있는 이분법의 조야함이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개인성과 공동성은 내가 보기에 모든 문화에서 공히 동시에 나타나는 가치의 쌍이다. 게다가 개인성과 공동성은 얼핏 보기와는 달리 반드시
충돌한다기보다는 충돌할 만한 원인이 제공될 때에 충돌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내의 남편으로, 자식의 아버지로, 부모의 자식으로, 직장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지구라는 환경의 한 구성소로서 다양한 임무와 역할을 적어도 정신적으로 붕괴될 지경에 빠지지는 않고 대체로
무난하게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말을 만들기로 하자면 물론 그들 모두가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둥, 현대인은 전 시대의 인류에 비하여 정신적으로
쫓긴다는 둥, 특정한 문법을 만들어내고 그 문법을 정당화하는 절차마저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이 스트레스라는 색안경을 쓰고
현대인의 삶을 조망하는 시각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현대인의 삶이 스트레스로 가득 차게 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실제로 양식있는 심리학자라면,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마냥 일반화하는 순간 그 개념의 모든 효용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을 알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병리적으로 비정상에 속하는 사례들에게만 그 개념을 국한하여 사용하는 것이 개념의 변별력을 유지하는 온당한 한계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공동성, 서구=개인성이라는 단순 이분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개인주의에 해당하는 사례만을
뽑고 동양에서 집단주의에 해당하는 사례만을 뽑아서 방정식을 설정할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 발견되는 개인성과 공동성을 망라하고 동양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 다음 그 두 항목의 상대적 비중을 양의 동서에 따라 비교한 결과에 준거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이분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성되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 내가 이 글에서 타자화라 지칭해 온 과정의 소산으로
태어났다. 다시 말하여 그 이분법에서 한 쪽 축을 이루는 아시아성이란 그 어떤 학문적 엄밀성의 검토도 거치지 못한 커리커쳐의 수준으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이국적이라 간주될 수 있는 잡다한 요소들을 그때그때 화자의 편의에 따라 망라하면서, 나아가 유럽인의 시각에서 자신들의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요소들을 특정적으로 한데 모아 구성되었다. 그런데도 서구 문화 내부에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우호적 입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서양 근대 자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지평이 서양 근대 내부에 존재하였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그러한 심각한 반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 등은 서구적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가치 사이의
논리적 연관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였으며, 실제로 그들의 지적 여정에서 불교나 도교 및 유교와 같은 아시아에서 유래한 정신세계에 대한 천착의
흔적이 없지도 않다. 하지만 이들이 개념적 착취자들과 달랐던 점은 그 이분법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다
하겠다.
이분법에 빠지지 않는 형태의 가치 이해에 관한 논의는 다음 절로 미루고, 이제 동양 지식인에 의한 착취 중 두 번째 형태에
해당하는 몇 가지 사례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이 유형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은 언어적 표피에 대한 의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내용에
대한 천착은 거의 없이 구호의 나열이 이어진다. 예컨대 인류학자 여중철은 21세기 한국문화의 이상으로 “위하여, 더불어, 하나로의 문화”를
부르짖고, 철학자 김형효는 “하나와 순수와 종합”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유학자 안병주는 유교를 민본사상으로 해석한 위에 “민주에로의 전환가능성을
모색”하고자 시도한다. 여중철이나 김형효의 경우가 구호의 나열이라는 점은 비교적 쉽게 눈의 띄겠지만 안병주의 경우를 같은 부류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안병주의 경우를 중심으로 논하기로 한다.
역사의 맥락을 일단 논외로 치고
순전히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자면, 민본에서 민주로 전환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특히 지금 여기서 문제되는 유교의 민본사상이라는 것이
『禮記』 禮運篇의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是謂大同”(p. 68)이라든지, 黃宗羲의 “古者以天下爲主 君爲客... 今也以君爲主
天下爲客”(p. 215)이라는 한탄 및 栗谷의 “今日革一弊 明日又革一弊 要以至誠救民爲務 以積弊盡革爲期”(p. 280) 등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발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은 매우 풍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민본에서 민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리 중후하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존재한 희미한 연결고리 하나만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본과
민주의 연결이 지적인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론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실 사회의 구성원리를 둘러싼 현실 속의 논쟁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양정치사상의 경우 예기나 황종희나 율곡 정도에 해당하는 민본사상은 키케로 또는
심지어 아퀴나스에서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키케로나 아퀴나스를 민주주의의 사상가로 보는 시각도 거의 없고, 그들의 민본사상을 굳이
민주주의로 연결할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거의 없다. 그 까닭은 너무도 당연하게, 키케로나 아퀴나스말고도 릴번도 있고 루소도 있고
바뵈프도 있고 챨스 제임스 폭스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즉 동양에는 릴번도 없고 루소도 없고 바뵈프도 없고 폭스도 없이
다만 “중국의 루소”밖에 없기 때문에 황종희에서라도 민주의 씨앗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보기에 안병주 교수의
생각이 바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바로 그 똑같은 지점에서 바로 똑같은 이유로, 기왕 루소도 없고 바뵈프도 없는데 왜 굳이 “중국의 루소”를
만들어내어야 하느냐는 반문도 가능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기껏해야 “불가능하다는 확증은 없다”는 정도의 소극적 의미의
가능성을 가리킬 따름이다. 반면에 아무리 조잡한 상태라고 할지라도 일단 문제되는 그 관념이 현실 속에서 구현된 상황은 그 자체로 그 관념의
실체성을―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담보하는 적극적 의미를 확보한다. 그러므로 이론적 가능성이 아무리 충분하게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론적 연결고리만이 아니라 그 현실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 추가적인 매개 요인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더라도 실제로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인자가―기상학자들이 촉매라 부르는―반드시 필요한 것과 같다. 시커먼 먹구름
아래 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비가 올 이론적 가능성은 흘러 넘칠 지경”이라는 말을 되뇌이는 것이 공허한 구호의 남발에 해당하듯이, 유교
민본사상을 민주로 전환할 현실적 매개체가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다고 자신이 그 매개 요인을 자신의
언어로 형상화해보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다만 그 전환의 이론적 가능성만을 운위하는 것 역시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을 면할
도리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3. 가치의 특수성과 보편성
비트겐슈타인은 “Lecture
on Ethics"에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모두 망라한 백과사전이 하나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윤리적 가치는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즉 가치는 자연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이 발언에 화답하여 한 마디 하자면, 가치란 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것이라
하겠다.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의 진상을 4,000만 달러의 비용과 6년간의 소모적 정쟁을 비용으로 지불하더라도 밝혀야 한다는 가치는 그와
같은 도덕적 조망점에서만 가치로 인식될 수가 있고, 또 그 도덕적 조망점에 서있는 이 모두에게 동시에 공유된다. 표현을 바꾸면, 그 도덕적
조망점에 서있지 않는 이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은 공유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은 애당초 가치가 아니다. 이와 같이 어떤 가치이든지 일정한 가치에
대한 감수성은 주관적으로 매우 특수한 시선의 연장선상에서만 포착될 수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한 동시에, 그 시선이 공유되자마자 가치도
공유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그런데 이 보편성은 획일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획일성은 가치의 내용상 일치에 해당하는 반면에 지금
내가 논하는 보편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치의 형식적 유사성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설렁탕이 맛있겠다는 판단이 바로
설렁탕을 먹는 행위로 이어지는 상태가 내용상 일치에 해당한다면, 설렁탕이 맛있겠다는 판단과 그 판단과는 별도로 어떤 다른 특별한 이유로 비빔밥을
먹는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가치의 형식적 유사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형식적 유사성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자아를 상대화할 수 있는
권능, 즉 자의식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의식이 있으므로 대자적 인식이 가능하며, 나아가 역지사지 또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가치의 이와 같은 특성들은 전형적으로 가치가 위치하는 영역이 대상이 소속하는 영역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담론들이 대부분 무의미하고 근거없는 이분법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내가 보기에는 바로 가치의 영역과 자연계 사이에 엄존하는
개념적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 데에 있는 것 같다. 즉 가치가 주관적으로 공유된다는 점, 그러면서도 획일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등에 미처 시선이
미치지 못한 채, 가치가 마치 어떤 물리적 대상과 비슷하게 배타적 소유의 목표라는 식으로 파악할 때 아시아적 가치는 반드시 서구적 가치와
대립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 한편 실제에 있어, 아시아라는 집합을 구성하는 외연 모두가 공유하는 원소 또는 서구라는 집합을
구성하는 외연 모두가 공유하는 원소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하물며 아시아를 규정할 공통적 원소가 서구를 규정할
공통적 원소와 실제로 서로를 향한 대립항으로 존재할 논리적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렇게 나타날 가능성 역시 지극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배타적 소유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원초적 혼동 때문에 무의미하고 근거없는 이분법이 무책임하게 유행하게 되어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버나 파슨즈와 같은 근대주의자들이 전근대 사회의 전형적인 폐습으로 간주했던 연고주의, 귀속주의, 비분화된
산만함, 가산적 관료제 등의 요소들만을 하필이면 “아시아적 가치”라는 이름 아래 포섭하게 된 까닭도 부분적으로는 해명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서구적 가치 아닌 것만을 찾아야 한다는 원초적 강박관념이 말하자면 결국 서양 근대가 내다 버린 쓰레기더미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셈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시아적 가치”의 형체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못한 까닭 역시 이제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보다
명확하게 시야에 잡히는 것 같다. 즉, “아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본시 서양의 무책임한 타자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점에만 착안했더라도 서구의 대립항으로 이해된 아시아를 찾아가서는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시아/서구의 배타성을 전제로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 공허한 타자화의 소산인 아시아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아시아적 가치의
구성소를 정합적으로 찾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발생학적 오류일 뿐만 아니라, 그 발생의 전설
자체가 오리무중인 점을 애써 외면하고 안개 속을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채 굳이 찾아헤매는 격이라 하겠다.
반면에 가치라는 것이
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것이며, 따라서 가치의 특수성과 보편성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공존할 수 있는 가치의 두 속성이라는 점을 이해한 위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찾아나간다면 무언가 실질적인 성과를 훨씬 많이 기대해도 좋으리라. 당장 유교의 內忠外恕라는 것이 곧 서양식으로 도덕적
성실성(moral integrity) 및 양심의 자유와 매우 흡사한 가치라고 생각해도 좋으리라고 본다. 다시 말하여, 君子和而不同이야말로
개인의 도덕적 존엄성에 근거한 다원주의의 발상 그 자체와 다를 바가 거의 없는 것이다. 물론 화이부동이라는 가치만 가지고 로크류의 자유주의나
스미스류의 시장주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에는 분명히 위에서 언급한 바 민본과 민주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먼
거리가 존재한다. 비슷하게, 나는 方孝儒나 死六臣의 신조에서 법치(the rule of law)의 이상을 향한 매우 강렬한 지향성을 목격하며,
언로의 개방을 강조하는 유가의 한결같은 주장에서 대의의 이상을 연상하지만, 이는 다만 정치의식의 기본 방향에서 발견되는 형식적 유사성을 의미할
뿐 현실 속에서 구현된 제도적 질서의 일치를 뜻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적 가치의 보편성을 간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형식적
유사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물론 그 형식적 유사성에 구체적인 의미를 보다 두껍게 매개해야 할 필요는
여전히 남는다. 특히 서세동점의 충격 이래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정신사가 거의 예외없이 일종의 단절이라는 상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절 이전의
사유 형식이 단절 이후 물리적·정신적으로 상당한 정도로 서구화되어 버린 현대의 아시아 사회에서 어떻게 변용되고 재현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절박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바, 원효와 퇴계와 율곡의 “하나와 순수를 종합”하자는 김형효의 발언이 그 상태로는
공허한 구호임에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그 구호가 내실을 갖출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은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론적
가능성을 현재 안으로 끌어내는 매개의 과제야말로 현대를 사는 아시아인들, 특히 지식인들이 져야할 “要以至誠救民爲務”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의무는 일차적으로 지식인들의 의무이지만 상아탑 또는 실험실 안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의무는 아닐 것이다. 그
의무는 이론적 가능성 및 개념의 형식적 유사성에 대한 부단한 관심과 천착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의미를 가지는 의무이다. 이론적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내고, 형식적 유사성에 구체적 내용을 부여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 또는 도덕적
가담(commitment)을 요청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가치에 관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미―가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주관성의 지평에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므로―구경꾼과 같은 객관적 자세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여, 자신의 한 발을 뒤로 뺀 채 여기서도 통하고
저기서도 넘어갈 수 있는 객관적으로 무난하기만 한 “정답” 따위를 찾는 태도로는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지점 근처에도 결코 갈 수 없다. 오직 자아
전체를 도덕적으로 투자하여 혼신의 열정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체, 나아가 주변의 이웃들과 그 선택을 함께 하고자 하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화해를 모색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충돌을 무릅쓰는 실존적인 자세를 통해서만 달성될 기미라도 나타날 수 있을 사업이다.
나아가 개인이 아무리 혼신의 열정으로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만으로 자신의 선택이 곧 공공의 선택으로 채택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성격을 가지는
사업이다. 바로 이와 같은 불확실성으로 매개됨으로써만 개인의 선택은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바로 그 이유로 가치란
발견된다기보다는 창조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란 지금까지 논의에서 밝혀진 만큼 우리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논의에서 미진함이 드러난 만큼 앞으로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 이선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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