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동양학 읽기

이강기 2015. 9. 19. 10:31
제     목  동양학 읽기 - 이경숙      2005-11-14 18:07:57
      작 성 자 이선우  (홈페이지)      


                                                               동양학 읽기 - 이경숙



아래글은 중앙일보에 2001년 3월 11일부터 4월 22일 까지 6회에 걸쳐 칼럼으로 연재한 구름 이경숙 씨의 동양학 읽는법 강의다. 진정한 고전 읽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이씨의 글을 접할수록 확실히 기존의 고전 해석법에 문제가 많았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어렵고 아리송하게 느껴졌던 고전이 구름을 만나면 쉽고 그 뜻이 분명해진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건지 기존의 학자들이 너무 경직되고 고정된 틀로만 해석하려 한데서 빚어진 오류인지 모를 일이다.

<운영자>

최근 장안에 화제가 된 『노자를 웃긴 남자』(자인)의 저자 이경숙 씨가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중앙일보에 동양학 읽기에 관한 칼럼을 연재합니다. 도올 김용옥의 도덕경 번역을 매섭고 설득력있게 비판해 관심을 끈 이씨는 이 칼럼을 통해 유교·도교·불교 등 동양 삼교(三敎)를 중심으로 동양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쳐보일 예정입니다. 아울러 "고전은 어렵지 않다"는 지론을 펼쳐온 이씨는 연재과정에서 자신의 공부과정을 포함하여 한문독법에 대한 견해 등 독자들의 궁금증도 밝히겠다고 말했읍니다. 이씨의 견해에 대한 반론은 물론 환영합니다. 다양한 해석이 오고가는 가운데 성숙한 토론문화가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1. 고전 읽기는 어렵지 않다.

내가 동양의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질구나 성현의 말씀이여, 쉽구나 그 가르침이여.'

이런 고전을 읽고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는데 결코 외국 명문대의 유학 경력이나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물론 이 말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도 잘 안다.

중국·인도·한국의 3천년이 넘는 역사 동안 남겨진 정신적 유산이 어찌 방대하지 않으랴 마는 그것을 크게 구분하면 세 개의 철학과 세 개의 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세 개의 철학이란 유불선(儒佛仙)의 삼교(三敎)요, 세 개의 과학이란 주역(周易)을 대표로 하는 역학(易學)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풍수학(風水學)의 삼학(三學)이다. 물론 삼교삼학(三敎三學)이 담고 있는 학문적 깊이는 실로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다. 이중 주역은 서양의 천문학에, 음양오행설은 물리학에, 풍수지리는 지리기상학에 비견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이어서 '삶의 지혜나 생활의 덕목 또는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인문적인 철학으로 논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앞으로 연재할 것은 유불선 삼교의 인문 철학적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철학이 일반인들에게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언외(言外)에 속하는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동양철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인간 언어로는 전달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못박고 나오는 개념들이다. 불교의 깨달음이나 유교의 천명(天命)이나 도교의 선경(仙境)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 삼교(三敎)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보면 불교는 '해탈성불(解脫成佛)'이요, 유교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고, 도교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이런 목표의 지향점에서 볼 때 유교는 현세지향적이고, 불교는 내세지향적이며, 도교는 탈인간지향적 교설이다.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에서도 삼교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불교는 마음(心,佛) 하나를 붙잡고, 도교는 몸(身,仙)에 의지하며, 유교는 이름(命,名)에 매달린다. 따라서 형상없는 마음을 다루는 불교가 가장 어렵고, 몸을 수련하는 도교가 다음이고, 이름을 세우는 유교가 가장 쉬워 보인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궁극적인 경지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넘겨다보기 어려운 높은 산이며 구름에 쌓인 그 꼭대기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삼교(三敎)가 공히 언외(言外)의 것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이 것이다. 동양고전에는 전문적이고 고도로 훈련된 식자나 내부적인 전승자들이 아닌 일반인들 모두가 쉽게 배울 수 있는 메시지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기록된 옛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 말한다. 실제로 옛날에는 이런 고전들을 배우고 익히는데 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서당의 어린 학동들과 나라를 경영하는 원로 대신들이 같은 고전을 읽고 공부했다. 논어는 대학이나 대학원생들을 위한 교재가 아니라 초등학생들부터 대학교수들까지 같이 보는 교재였다는 얘기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이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든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라'하는 구절은 어느 시골의 서당에서나 들을 수 있었으며, 촌부들도 어린 손자들에게 일러주던 말들이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같은 노자의 글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동양의 고전들을 세계 유수의 명문대를 거치고 수십 년간의 피눈물 나는 연구의 노력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아니 그러함에도 보다시피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고 역설하는 도올의 고전강의에 대한 반론으로 쓰게 된 것이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이었다.

컴퓨터 통신 모임방에서 그 글을 연재한 것은 이발사가 숲 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소리를 바람이 전하고 나뭇잎이 대답하듯이 퍼져나간 끝에 책으로까지 출판되었다. 허나 귀가 당나귀 귀면 어떻고, 옷이야 벗었으면 어떠하랴. 도올이 아니면 이 방황의 세기, 탐욕과 환락과 끝없는 이기적 욕망의 전차가 질주하는 이 시대에 누가 온 국민의 눈과 귀를 노자와 공자의 가르침에 쏠리도록 할 수 있었겠는가. 방송국도 놀랐고, 학계도 놀랐고, 민초들도 놀랐다. 도올로 해서 바야흐로 '철학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듯이 보였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에 내가 본 것은 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철학의 귀족화요, 엘리트화였다. 동양의 고전이라는 것이 저렇게 어렵고 난해하고 일반인들은 함부로 접근하기조차 힘든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양에서의 학문이란 '옛 성현의 말씀을 익히고 깨쳐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공부라는 것은 '공자왈 맹자왈'이었고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문자의 숙지였다. 그런 고전이 오늘날에는 명문대를 나오고 수십 년간의 연구 노력을 한 학자나 교수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고급 학문이 되어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독점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글 전용 교육이 시행된 결과로 한자의 해독이 '특별한 능력'이 되어버린 탓에 '모든 사람들의 학문'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수의 것'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한자 교육의 철폐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적 학문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고전들이 명문대학을 거친 교수나 학자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것이 되고, 전문가들이 주석을 달고 해석을 해놓은 한글판이라는 것들이 읽어도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을 때 동양학이 설 땅이 있겠으며 인문학의 꽃이 어디에서 피겠는가.

'고전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아줌마도 옥편 한 권 들고 앉으면 고전의 원문을 읽어나갈 수 있다', '동양철학이 그렇게 난해한 말들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칼럼의 목적이다. 다음 회부터는 대표적인 두 고전 논어와 도덕경을 같이 보면서, 그리고 유사한 부분에서 불교의 논지를 곁들여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물론 고전을 읽는 즐거움도 같이 만끽하였으면 한다.


2. 동양학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쓴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하는 점은 인터넷이나 보내온 메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에서 가장 많았던 것이 쇼크를 받았다는 고백이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런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달랐지만, 내가 그 글을 쓸 때 기대했었던 바의 충격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나의 '음모'가 약간은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뭐냐. 도올 김용옥 씨의 고전강의 내용이 엉터리라는 점에 대한 충격을 받기를 내가 바랬느냐?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무명의 아줌마인 내가 하바드 출신의 대학자보다 더 잘났다는 점에 놀라기를 바랬느냐? 그것도 전혀 아니다. 내가 바랐던 충격은 바로 이것이었다. '콜롬부스의 달걀 쇼크'였다. '고전이라는 것이, 또 고전의 원문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쉬운 것이구나!' 하는 충격을 독자들에게 주고 싶었고 그리고 그 점에서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책을 읽은 독자들 중 그 책에서 다루지 못한 도덕경의 뒷부분을 혼자서 읽어보겠다고 옥편을 들고 원문의 뜻을 나름대로 생각해보려고 덤비게 된 사람들이 많이 생겼음을 나는 안다. 개중에는 자기가 풀이한 도덕경의 번역을 나에게 보내오면서 '맞게 한 것 같으냐'고 물어오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 편지를 받을 때 나는 제일 기뻤다. 직접 해본 번역이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니다. 남이 한글로 번역하고 풀어놓은 '고전의 번역판'이 아니라 한문으로 쓰여진 원문을 들여다보고 그 뜻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동양학의 대중화다. '왜 이해가 안되면서도 기존의 해석서만을 옳은 것이고 최선의 번역 결과라고 믿어버렸을까' 이런 자책과 함께 '아줌마 이경숙이 하는데 내가 왜 못하랴'는 의욕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번역된 결과를 남에게서 듣기만 하는 동양학, 그런데도 이해를 못하는 '죽은 동양학'에서 자기가 직접 원문을 읽고 뜻을 풀어보는 '살아있는 동양학', 이것이야말로 내가 『노자를 웃긴 남자』를 쓴 진정한 의도였다.

나는 누가 도덕경의 첫 구절인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를 처음으로 '도를 도라 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우리말로 번역을 했는지 그 주인공을 알고 싶다. 이런 구절들이 우리말로 저렇게 읽히기 시작한 것이 조선시대부터인지, 고려시대부터인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논어나 도덕경같은 책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어떻게든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었을텐데 어떻게 읽었을까? 과연 그 옛날부터 고전의 번역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내용이었고 그것이 세세토록 내려온 것일까. 아니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다른 뜻으로 읽었는데 그 후에 지금과 같은 것으로 바뀐 것일까. 시중에 나와 있는 사서삼경의 주해서들을 비롯해서 고전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대부분의 책에 실려있는 번역문은 그 출처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그 책을 쓴 저자가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의 번역문을 옮겨 실은 것인지부터가 명확치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주해서라는 책들은 원전의 원문을 실어놓고 그 밑에 번역문을 싣고 그 다음에 해설이라는 것을 달아놓은 형태이다. 그런데 어느 책에도 원문의 내용과 번역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데도 그에 대한 해명을 하거나 원문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번역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 놓은 책은 없다. 그저 '이 원문은 이런 뜻이다'라는 식인데 맨 처음 그런 뜻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는 주장도 없고, 왜 그렇게 번역을 했는지 설명해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고전들의 우리말 번역은 어느 사이엔가 정설이라는 것들이 굳어져서 의심받지 않고 통용되어 온 것이다.

번역의 근거에 대하여 그나마 설명을 하려고 한 것은 사실 도올 김용옥씨가 처음이다. 도올이 쓴 『노자와 21세기』라는 책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철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시도였다. 그러나 그 시도를 통하여 밝혀진 것은 '지금까지의 고전 번역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얼마나 잘못되었던가'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만든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이었다. 이것은 도올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도올로서는 기존의 번역에 문법적 설명과 문헌적 근거를 부여하려 했지만,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증명하려 한 불가능한 시도였다. 도올의 헌신은 마치 중세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쏟은 노력과 마찬가지로 목적의 달성에서는 실패로 끝났지만,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도올의 실패는 동양학의 전환점을 불러온 망외의 소득을 거두었다.

플라스크와 시험관 속에서 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던 것과 같이, 고전들에 대한 기존의 번역이 올바르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했던 도올의 노력도 애당초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도올의 실패는 기존의 번역들이 잘못되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의 재능과 정열을 해석이 아닌 번역에 쏟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번역가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나왔으나 그가 한 강의는 누가 보더라도 '해석가'로서의 해설이었다. 도올의 TV 고전 강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전래된 기존의 번역'과 '도올의 독창적인 해석'이 뒤섞인 모순과 억지논리의 기막힌 장광설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책이었다면 넘어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전국민이 보는 TV였던 것이 도올의 불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나라의 동양학으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도올로 해서 동양학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동양학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3. 고전을 다시 읽자.

한자가 일상어가 아니게 되고, 더욱이 한글 전용 교육을 받아온 사십대 이전의 세대들이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한 오늘날 우리는 위대한 정신적 유산과 학문의 대부분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려 해도, 철학을 배우려고 해도 우리 것에선 한자라는 장벽에 부딪히고 남의 것은 영어라는 절벽에 막혀서 어쩔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한글로만 되어 있는 우리의 것은 아직 생겨나지도 않았는데, 한자로 된 우리 것을 버린 것은 우매한 일이다. 어떤 것을 수백년만 썼어도 그것은 '우리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수천년 써온 문자를 '남의 것'이라 하다니! 그 바람에 우리 학문의 역사는 빈약하기 이를데 없이 돼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문이 시작된 것은 불과 50년 전이다. 그 전에도 학문이 있었고 찬란한 문화가 있었다 말하지 말라. 어디에 있는?? 성균관에 있다고? 해인사에 있다고? 우리가 읽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고대의 문자가 적힌 종이와 목판의 더미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우리는 선조들이 남긴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읽어야 한다. 고전은 원전을 그대로 읽어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참 뜻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이다. 한문 읽기는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모르는 한자는 옥편을 뒤지면 된다. 문제는 독법인데 한자 자체는 모양이 복잡하고 뜻이 다양하지만 서술 방식이나 문법은 조악하다 할 정도로 단순하다. 그런 한문을 읽고 우리말로 뜻을 옮기는데 수천 년에 걸친 학문이 동원되어야 하고 수십 년의 연구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나는 웃을 뿐이다. 공자가 어떤 말을 한 배경이나 말에 숨겨놓은 저의를 밝힌다든지 혹은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전후사정을 고찰하여 해설을 하고자 하면 공자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논어가 나온 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도 필요하고 동시대의 관련 문헌들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해야할 일은 공자나 노자가 한 말을 말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해서 번역 자체를 원문과 다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도덕경 15장에 나오는 '숙능탁이정지서청(孰能濁以靜之徐淸)'이란 문장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이 문장을 문법에 맞게 우리말로 옮기면 '누가 능히 고요함으로써 탁한 것을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느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즉 해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맑은 것은 쉽게 탁하게 할 수 있지만 탁한 것은 쉽게 맑게 하지 못한다'는 말의 반어법적 표현인 것이다. 이 원문은 이런 번역 말고는 어떤 다른 것도 나올 수가 없는 문장이다. 만약에 다른 번역이 나온다면 그건 한문을 읽을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언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도올이나 여타의 번역들은 전혀 엉뚱하다. '누가 능히 자기를 흐리게 만들어 더러움을 가라앉히고 물을 맑게 할 수 있겠는가?'가 도올의 번역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원문에 '자기를 흐리게 만든다'는 내용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더러움을 가라앉힌다'는 말도 안나온다. 있는지 한번 찾아 보라. 그걸 찾는 사람은 내가 삼천배를 하고 평생 스승님으로 모시겠다.

"저 원문에 나오는 탁(濁)이라는 것은 내 생각에 자신을 흐리게 만든다는 뜻인 것 같다" 또는 "고요함으로써(以靜), 천천히 맑게 한다(徐淸)'는 말이니까 '탁한 물을 가라앉혀 깨끗이 한다는 말이 아니겠느냐?"라고 '해설'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번역 자체는 원문 그대로 해주고 나서 그런 해설을 붙여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전 주석서가 원문의 번역이라고 붙여놓은 것인지, 역자의 해석인지 두 가지가 섞인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원문의 번역이라고 보기에는 원문과 너무 다르고, 해석인가 싶으면 그 밑에 해석은 별도로 나온다. 아무리 의역을 하더라도 원문과 동떨어진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원문과 완전히 반대되는 소리를 번역이라고 해놓은 것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도덕경의 경우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

고전이 비록 고대에 한자로 씌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해석이 구구할 수 있고 또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관련된 지식들도 필요하겠지만 번역 자체는 그런 것들이 필요없다. 오히려 그런 지식들이 번역이 아닌 창작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주변 지식은 해석에 써먹을 일이고, 번역은 원문을 똑바로 보고 한문의 독법에 맞추어 정확하게 해야 한다. 정확한 원문 그대로의 번역을 해놓고 해석은 그것을 가지고 할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전 연구가들이 아예 번역의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지식과 선입관을 개입시켜 추측에 의한 창작을 해버린다는 것이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번역은 한 가지 뿐이다. 그 한가지를 똑바로 하면서 시작해야 동양학이 제대로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은 한자가 자기들 문자인데 왜 중국 사람들도 고전의 뜻을 몰랐느냐?' 고 묻는다. 한자로 쓰여진 고전에 관한 한 번역의 문제는 한국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자라는 글자를 한국말로 옮기나 중국말로 옮기나 똑같은 성격의 번역이다. 뜻글자를 소리로 옮긴다는 점에서는 하등 차이가 없다. 명대(明代)에 백화체(白話體)라는 구어체 기록법이 생긴 이래로 한자를 뜻과는 상관없는 발음 기호처럼 쓰는 것은 오늘날의 중국인이나 명나라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백화체 이전의 고전에 관한 한 그것을 구어로 옮기는 번역은 그들이 우리보다 쉬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한자라는 글자에 익숙하기는 하겠지만 말을 소리나는 대로 옮기는 표음문자의 보조를 받는 점에서는 동양 삼국 중 중국이 가장 불리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표음문자인 한글을 가진 우리가 가장 유리하고, 다음이 가나라도 갖고 있는 일본이며, 원래가 표의문자인 한자를 가지고 신라시대 이두식 표기를 하는 중국이 가장 불리한 것이다. 때문에 동양학에 관한 한 삼국 중 우리가 가장 앞서 갈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고전을 번역하는데 일본을 쳐다보고 중국에 기대한다는 것이 될 말인가?

동양 고전의 정확하고 올바른 번역과 이해는 한국에서 나와야 하고, 일본과 중국이 우리에게서 배워가는 것이 정상이고 순리다.


4. 고전의 독해 (1)

고전의 문장들은 글자의 생략과 의미의 압축이 심하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간결한 표현을 좋아해서 구질구질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없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 주는 제약 때문이기도 했다. 또 한가지 고려할 사항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 문장이 이어서 나올 경우 거기에는 논리 전개상의 연관성이 반드시 있다는 점이다. 도덕경은 대부분의 장이 그러하고 논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고전 문체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논어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고, 두 번째 문장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이며, 세 번째 구절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이다. 일반적인 해석은 잘 아는 바와 같이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아니 기쁜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닌가?'이다.


세 문장이 하나의 뜻 설명

이 구절들은 대단히 함축적인 고전체의 표현이고, 동시에 전후의 구절들이 서로 연결되어 세 개의 문장으로서 하나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 모델이다. 논어의 첫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같이 해보는 것으로서 '고전의 독해'를 시작해 보자.

우선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어조사 '이(而)'는 '~하고, ~한다'는 식으로 앞과 뒤를 동격으로 접속해주는 어조사가 아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배우고 때로 익힌다'고 번역하면 올바른 의미를 살릴 수 없다. '이(而)'는 순접과 역접이 모두 가능한 접속사여서 'A而B'라는 문장이 있을 때, 순접인 경우에는 'A에(도) B한다'나 'A에 대하여(도) B한다'이다. 역접인 경우는 반대로 'B에(도) A한다'나 'B에 대하여(도) A한다'가 된다. 우리말로 옮기는 경우 목적격을 만들어주는 어조사 '지(之)'와 같이 'A를 B한다' 또는 'B를 A한다'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말로 옮길 때의 자연스러움을 택한 결과이지 이때의 'A를'이나 'B를'이 문법상 목적어는 아니다.


'而'는 동격 아닌 선후관계

그래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문장은 '배운 것에 대해서 때로 익힌다'가 된다. 자연스럽게 약간 의역을 하면 '배운 것을 때로 익힌다'가 된다. 앞의 '학(學)'이 뒤의 '습(習)'에 선행되는 것이다. 이 순서는 바꿀 수가 없다. '학'과 '습'이 동격이라면 '습이시학(習而時學)'도 말이 되야 하는데 이것은 성립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而)'라는 접속사는 반드시 앞뒤의 말에 선후(先後)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익히는 무엇은 반드시 이미 배운 것에 대해서이다. '배우고 때로 익힌다'와 '배운 것을(에 대해서) 때로 익힌다'가 무어 그리 큰 차이가 있느냐고 말할 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공자의 말뜻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다음 구절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를 보자. 여기서 공자가 말하고 있는 '친구'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유붕(有朋)'은 '이미 있는 친구'이다. 즉 사귄지 오래된 친구다. 또 먼 곳에 사는 친구(遠)이며, 자기 발로 찾아온(自來) 친구다. 즉 멀리 사는 옛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멀리 사는 옛 친구'는 첫 구절의 '이미 배운 것'과 대구를 이루고 '때로 익히는 것'과 '친구가 찾아오는 것'이 쌍을 이룬다. 공자는 '공부를 하고 배웠던 것을 가끔씩 익히는 것'을 '멀리 사는 옛 친구가 찾아오는 것'과 같이 비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배운 것이 없으면 익히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친구가 없으면 멀리서 찾아오는 기쁨도 없을 터이다. 이 두 가지를 나란히 비유해서 한 말인데도 2천년이 넘도록 이 구절들의 연결된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 두 구절의 연결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때 가장 논란이 되어 온 세 번 째 구절의 뜻도 알 수가 있게 된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는 이 구절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읽혀져 왔다. 하지만 여기서의 '인(人)'을 남이라는 뜻의 타인(他人)으로 번역할 근거가 없고, '부지(不知)'를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라고 번역할 어떤 이유도 없다.


열(說). 낙(樂). 온(溫) 연결의미로 해석

'인(人)'은 '사람'이다. '부지(不知)'는 '모르는 것(알지 못함)'이다. '불온(不溫)'은 '화내지 않는다'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사람이 모르는 것에 화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하는 소리다. 여기서 '온(溫)' 은 첫째과 두번째 구절의 '열(說)' 과 '낙(樂)'의 대구이다. 해석을 하면, '공부한 것을 때로 익히는 것이 즐겁지만은 모른다 하여 화를 낼 필요는 없으며, 멀리 사는 친구가 찾아오면 아니 기쁘랴마는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하는 소리다. 공부를 하고 익히는 것은 기쁨이지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배워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설사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되 모르는 것에 화내지 않는 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군자'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말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고 읽어왔다는 말이다. 만약에 이게 공자의 말뜻이라면 '남이 나를 알아주면 기뻐한다'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 그런 것이 공자가 말하는 군자란 소린가? 그게 아니다. '군자는 공부한 것을 때로 익히는 것을 마치 옛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처럼 기뻐해야 하지만(기쁜 일이지만)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해도 그것에 화를 내지 않으니 그것 역시 군자가 학문을 대하는 자세이다'라는 것이 공자 말씀의 본의이다.


옥편에 안 나오는 용례 살펴볼 것

'이(而)'는 우리말의 '~이 ,~는, ~가'나 마찬가지로 한문에서 안 쓰이는 문장이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고 그 만큼 중요한 어조사이기 때문에 앞으로 고전의 문장을 감상할 때마다 그 용례를 들어 살펴나갈 것이다. 지난 기고에서 고전의 번역은 옥편 한 권만 뒤지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而)'라는 어조사에 대해 자전(字典)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고전의 원문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지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사전 지식은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는 말인데,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옥편 한 권만 갖고 고전을 읽는다는게 말이 되느냐?'하고 따지는 독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핵심적인 몇 가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중의 한 가지가 고전을 읽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도 옥편만 뒤져서는 알 수 없는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해서이다.


5. 고전의 독해 (2)

고전을 번역할 때에 가장 주의해야 할 글자가 어조사 '이(而)' 와 '지(之)' 두 가지다. 대부분의 오역이나 악역은 이들의 정확한 용법과 역할을 소홀히 한데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도 '이(而)'라는 어조사는 우리말의 '~이, ~가, ~는'과 같이 한문에서 안 쓰인 문장이 드물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지난번 말했듯 '이(而)'는 A와 B를 이어주는 접속사다. 그래서 이 글자는 대부분 'A而B'라는 구조의 문장을 만든다. 이 때 A가 동사이고 B가 동사인 경우 '이(而)'의 대표적인 용법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A에(대하여) B한다'라는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을 가지고 살펴보자.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즐거워도 지나치게 음탕한 정도로는 하지 말며, 슬퍼도 몸을 상할 정도로 비통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동양전통의 중용사상을 나타내는 구절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번역은 '즐거운 일에 음란하지 말고, 슬픈 일에 상처받지 말라'이다.


역접해봐도 뜻 통해야

'이(而)'로 접속되는 문장의 의미가 올바르게 번역되었는가는 역접을 해봐서 뜻이 통하는가를 보면 된다. 즉 'A而B'라는 문장은 'B한 A'라고 읽으면 거의 뜻이 통하게 되어 있다. '낙이불음(樂而不淫)'은 '불음(不淫)한 낙(樂)'이라는 말이고, '애이불상'은 '불상(不傷) 한 애(哀)'이다. 이렇게 볼 때에 저 문장에 '지나침을 경계하는 절제나 중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음란하지 않을 정도로 즐기라'가 아니라 '음란을 즐기지 말라'는 말이고, '몸을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퍼해라'가 아니라 '슬픈 일에 몸을 상하지 말라'이다. 두번째 용법은 A라는 행위와 B라는 행위의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라는 문장은 허사인 '지(之)'가 들어가 'A而B之'라는 구조이다. 이때는 'A라는 행위를 하고 나서 B를 한다'가 아니라 'A라는 행위를 한 것을 B한다'고 옮겨야 정확한 번역이 된다. 왜냐하면 '지(之)'가 A를 목적격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배운 것을 때로 익힌다'인데 만약에 이 문장이 '지(之)'가 없는 그냥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면 '배우고 나서 익힌다'가 된다.

논어에 나오는 '문인(問人) 왈(曰) 인자선난이후획(仁者先難而後獲) 가위인의(可謂仁矣).'라는 구절로 이 의미를 살펴보자. '인자선난이후획(仁者先難而後獲)'을 보통 번역하여 '어진 자는 어려움을 먼저 겪고 뒤에 얻는다'라고 하는데 역시 '선난(先難)'과 '후획(後獲)'이 '이(而)'로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때문에 '먼저 어려움을 겪고'와 '나중에 얻는다'는 것은 서로 관계없이 독립된 의미가 아니다. 이 문장의 올바른 뜻은 '어진 이는 반드시 노력을 한 것에 대해서만 대가를 얻는다'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밭을 갈아 가을에 곡식을 얻는 것처럼 반드시 인과 관계가 있는 고생과 대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유명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도 마찬가지다. '온(溫)'은 '따뜻할 [온]'이다. 그래서 '온고(溫故)'란 말은 '옛 것을 따뜻이 한다'로 옮길 수 있는데 조금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옛 것을 데워'가 되겠다. 오늘에 살려서 쓰지 않는 옛 것은 차가운 음식이나 마찬가지이다. 식어서 차갑고 굳은 음식도 따뜻이 데우면 새로 맛이 나서 먹을 수가 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것을 따뜻이 데워서 새로운 것을 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옛 것에서 무엇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본 뜻이다. 우리가 지금 고전을 배우고 이런 칼럼을 읽는 것이 다 '온고(溫故)'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여 '열고(熱故)!'를 하면 몽땅 태워먹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용법은 'A而B'라는 구조의 문장에서 A가 명사이고 B가 동사나 형용사인 경우이다. 이때는 'A가 B한다'가 되는데 대개는 'B한 A'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예를 한 가지 보자.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자왈(子曰) 무민지의(務民之義)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가위지의(可謂知矣).' 이 말을 지금까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의미로 읽어 왔다. '경귀신이원지'라는 문장은 저렇게 읽을 수가 없다. 조금 길다 싶은 한문을 쉽고 정확하게 읽는 요령은 우선 동사와 목적어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동사는 경(敬)이고 목적어는 지(之)다. 때문에 이 문장의 기본 골격은 '경지(敬之)'라는 두 글자다. 즉 '그것을 공경하라'이다. 그러면 여기서 목적격 지시대명사인 '지(之)'가 가르키는 목적어절이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 그것이 바로 '귀신이원(鬼神而遠)'이다. '귀신(鬼神)'이 명사고, '원(遠)'이 동사다. 그래서 '귀신이원(鬼神而遠)'은 '귀신은 멀리 있다'이다. 그런데 '지(之)'가 이 문장을 목적어절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멀리 있는 귀신' 이라고 옮기게 되는 것이다. 문장 전체의 뜻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할 도리를 다하고 멀리 있는 귀신은 다만 공경하면 된다'는 의미다.


허사 '之' 역할도 소홀

이 구절에서 '무민(務民)'과 '경귀신(敬鬼神)'이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다. 공자가 강조하는 것은 귀신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 산사람에 대한 도리이다. '멀리 있는 귀신은 공경이나 하고 오로지 가까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할 도리를 다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종래의 번역과 같은 문장이 되려면 경이원지귀신(敬而遠之鬼神)이라야 한다. A而B라는 문장을 띄워읽는 방법은 A가 동사고 B도 동사면 'A而 B'이고, A가 명사고 B가 동사나 형용사인 경우는 'A而B'로서 '이(而)'의 앞과 뒤를 붙여서 읽어야 한다. 'B한 A'라는 하나의 명사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문장은 '敬 鬼神而遠 之'이지 '敬鬼神而 遠之'도 아니고 '敬鬼神 而遠之'도 아닌 것이다.

고전의 해석서들이 띄어 읽기조차 정확치 않는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번역은 물론 공자의 사상도 왜곡되어 버린다. 공자가 중요시했던 것은 산사람이지 결코 죽은 귀신들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무의미한 말장난이 아닌가?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을 하나 더 보자. '인이불인(人而不仁), 여례하(如禮何), 인이불인(人而不仁), 여악하(如樂何)'이다. '인이불인(人而不仁)'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이라고 읽어왔는데 보다 문법적으로 정확한 번역은 '불인한 사람'이다. '불인한 사람에게 예가 무엇이며 불인한 사람에게 악(樂)이 무엇이겠는가?'하는 소리다. '불인'을 '인자하지 않다'고 옮기면 '인(仁)'을 너무 협의로만 해석하는 것이 된다. 이 외에도 '이(而)'라는 어조사의 용법은 몇 가지가 더 있다. 이런 것만 알면 고전의 독해는 어려울 것이 없다.

이경숙 <노자를 웃긴 남자> 저자
'而' 자 용례 비교 - '敬鬼神而遠之'

지금까지 해석 〓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李씨의 해석 〓 멀리 있는 귀신은 다만 공경하면 된다


6. 연재를 끝내며

고전에 대한 나의 해석이 정통 학계의 전문가분들께는 상당히 생경하고 당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어떤 해석들과도 다른 독창적 해석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한편으로는 2천년 이상 그렇다고 배웠고 믿었고 또 가르쳐 온 학설들이 느닷없이 부서지는데 대한 반감도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내가 한학을 사사한 적도 없고 동양학을 전공하거나 어떤 전문적인 과정도 밟지 않은 아마추어라는 것 때문에 어떻게 상대해 주어야 할지 당혹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해는 간다. 동양학에 대해 내놓을 어떤 배경도 학력도 없는 일개 아줌마가 수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밥그릇을 걷어찼으니 오죽이나 황당하고 분개할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내가 만약에 기존의 학계에서 정통 코스를 밟아 동양학을 배웠다면 나 역시 고정관념의 울타리 속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동양 고전을 읽는데 접근 방법상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바로 '고전의 문법'이라는 규칙의 근거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한자도 언어인 이상 하나의 '약속'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약속이 성립되어 간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선시대의 선비, 학자들이 글자를 배울 때 문법책이나 검인정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했던 것이 아니다. 한문의 문법이란 고전에 실린 용례의 보편적 적용에 다름 아니다. 어떤 글자가 어떤 고전의 몇 장에서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법의 유일한 토대다.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고전에 사용된 글자의 의미조차 명확하게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한자는 너무나 부족하고 불완전한 문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글자를 가지고 여러 가지 소리 언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은 우리가 문자를 다시 말로 옮기는데는 하나만이 아닌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의 어떤 말을 들은 사람이 그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이라고 문자로 썼다고 할 때, 실제로 이 글을 쓴 사람이 공자한테 귀로 들은 말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즐기되 음란하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고, '음란하지 않도록 즐겨야 한다'고 했을지도 모르고, '즐기는 것에 음란함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르며, '즐거움이란 음란하지 않은 것이다'였을 수도 있다. 그 중 어떤 내용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저 문장에 쓰인 글자들의 용례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그런 용례는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용례들을 수집하여 분류하고 정리해서 만들어진 것이 한문의 문법이다.

조선시대나 당송(唐宋) 이후에는 이미 고전들이 많아서 그것들에 사용된 용례나 용법들을 하나의 약속으로 받아들여 문법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치자.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그렇게 공부할 수가 있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고전의 주인공들인 공자나 노자는 어떤 약속을 토대로 글을 썼을까? 그들이 한자의 용례와 용법을 배우고 익힐 때 어떤 고전을 가지고 공부했을까? 공자나 노자가 본 책들은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다. 후대 사람들이 다시 쓰고 후대의 작문법으로 개작한 것들이 전할 뿐이다. 그러함에도 그런 책들의 작법은 오늘날과는 대단히 다르다. 글자 자체의 의미조차 오늘날과 다른 경우도 많다. 춘추시대의 학자들은 문법이라는 통일된 약속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한문을 쓸 때의 약속을 처음으로 만들어 갔던 사람들이다. 어떤 규칙과 약속하에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썼기 때문에 규칙이 되고 약속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토록 부족한 그림 문자들을 가지고 사람의 말을 옮겨적는데 그들이 얼마나 고심했겠는가를. 당시에 만들어져서 사용되던 글자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어쨌거나 말의 뜻을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어떻게 쓰더라도 원래의 말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왕필이나 주자도 도덕경이나 논어를 주해할 때 노자나 공자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여 선택하는데 그토록 애를 먹은 것이다. 왕필이든 주자든 도올이든 고전을 처음 쓴 원저자가 아닌 이상 제 아무리 학식과 권위가 하늘 같은 대학자라도 그 주석이라는 것은 고문을 읽은 자신의 느낌이요 소감이지 고전을 쓴 원저자의 본의라고 인정할 수 없다. 한자라는 문자의 구조적인 한계에서 오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한자를 옥편에서 찾아가면서라도 한글로 번역되고 주석을 단 해석본이 아닌 고전의 원문을 한자 그대로 읽어야 하고, 그렇게 원전을 읽는 방법론과 해석법을 일반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왕필이나 도올이나 혹은 서양에서 번역한 도덕경이 아니라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대만의 대학자들이 해석하여 놓은 논어가 아니라 공자의 논어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원전에만 있다. 모든 해석은 각자의 것일 뿐 공자의 생각은 아닌 것이다.

누구나 옥편 한 권 들고 앉으면 고전을 읽어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이다. 한자라는 것이 본래 글자 하나 하나가 고유한 뜻을 가진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각 글자의 의미만을 알고 나열해도 순서나 문법에 관계없이 전체의 의미 파악은 대체로 가능하다. 중요한 어조사 몇 개의 기능과 역할만 알아도 고전의 독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원문을 읽고 자기가 깨치는 것이야말로 동양학의 올바른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양철학의 대중화에 있어서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해석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읽는 방법과 한자에 대한 습득이고 생활화이다. 그런 의도에서 쓴 책이 『노자를 웃긴 남자』이다. 논어의 문법은 논어 속에 있고, 도덕경의 문법은 도덕경 속에 있다. 나는 도덕경을 해석할 때 도덕경 외의 다른 용례나 문헌은 보지 않았다. 그래서 노자의 본의에 더 접근한 번역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낸 후에 많은 분들이 나에 대한 궁금함과 책을 쓴 의도와 동기들을 물어 오셨다. 그런 분들께 부족하나마 답변의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중앙일보와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가지 조언과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다 못한 답변은 책을 통해서 해드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