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이해를
위한 역사교육을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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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중 책방엘 들를
기회가 있으면 나는 어린이 책들이 있는 곳을 돌아본다. 그 중에서도 역사에 관계된 책들이 어떤 것이 나오는가를 유심히 살펴 본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히는가는 그 나라의 국민적 수준과 성향, 그리고 미래를 가늠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 어느 책방에서는 마침 어린이용 러시아 역사책이 눈에 띄어 얼른 펴 보았다. 어린이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삽화나 장정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그 당시 공산주의 붕괴 직후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러시아라는 나라를 어쩌면 그리도 긍정적 시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어린 독자들을 유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전제 체제나 스탈린 독재 체제의 부정적 측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해서는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생기도록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처럼 따뜻한 눈으로 남들의 역사적 체험을 기술하는
태도는 비단 러시아에만 베푸는 특혜는 아니었다. 프랑스와의 관계가 그리 우호적이었다고 볼 수 없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나
미국에 관해서도 장점들을 찾아내는 접근방식은 마찬가지였다.
비단 프랑스만이 이런 긍정적 눈으로 남의 역사를 보도록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쟁기념관에 가면 2차 세계대전 때 수없이 많은 연합군의 비행기를 격추시켜 명성을 떨치다가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에
의해 격추당한 로젠 남작의 비행기와 그의 장례식 사진을 볼 수 있다. 비록 적장이었지만 군인으로서의 그의 사명감과 업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적진에서도 명예로운 군인의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던 것이다. 그런 전시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젊은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일까.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독일을 더 사랑하라는 것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훌륭한 일을 해내는 인간은 적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러한 사례는 우리 안중근 의사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가 비록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범이지만
일본인들도 그를 함부로 다루지는 못했다. 지금은 안 의사를 오히려 존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역사 청산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고 통일과 평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에게 체계적인 반미 교육을 하고
있다. 역사해석에서 부정적 태도가 특히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 역사 뒤집기에서이다. 일제시대든 해방 후든 무엇인가를 이룩해서 이름을 낸
사람들은 거의 모두를 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약자나 반항자의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만을 영웅으로 부상시키려 한다. 우수한 지휘자나 연주자가
없어도 민족이라는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는가. 역사적 진실이 오늘의 정치 권력이라는 잣대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역사 뒤집기 현상은 크게 볼 때 몽매하게 추진되었던 반공 정책의 후유증이며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와 싸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왜 공산주의가 생겨났던 것이며 왜 그것을 배격해야 하는가를 이해시키는 일에는 실패했고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억울하게 수난 당한 사람들의 인간적 권리를 등한시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제 역설적으로 통일의 명분을 내세워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켰던
김일성과 북한의 사이비 공산주의 세습권력 체제를 마치 도덕적 정통성을 지닌 민족대표 세력인 듯 미화하며 침략에 대항하여 국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사력을 다했던 우리 지도자들이나 우방세력들을 민족의 적으로 규정하는 교활한 선동선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나 북한에 관해서도, 남의 나라에 관해서도 삶의 복잡하고 다양한 전개과정을 있는 그대로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역사교육 전통을 세워왔던들 지금과 같은 혼란과 진통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비방이 아니라 이해와
화해를 위한 역사 가르치기를 서둘러야 한다.
명지대 석좌교수 전 주러시아 대사(국제신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