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 비판] 김대통령은 진시황을 존경해?일 출판사 인터뷰서 표트르대제 등과 함께 언급기호학(semiotics)에서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기표라고 하고, 사람이 그 말을 통해 본래 말하고 싶은 의도를 기의(기주)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본래 의도를 그대로 담아 전달해주는 기표는 없다.
김 대통령은 이날 일본의 유력 출판사인 '소학관'카쿠마 이사장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지도자는 국정 방향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져야 하고, 당대의 인기보다는 퇴임 후의 평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 뒤 그런 의미에서 존경하는 지도자는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었다. 김 대통령은 앞서의 세 사람을 꼽은 뒤 그 이유로 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하고 군현제, 도량형 통일, 문자 통일 등 백성을 위한 많은 제도를 실시했고,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철저히 서구화해 근대 러시아의 기초를 닦았으며, 오다 노부나가는 군웅할거시대를 평정하고 백성을 괴롭힌 제도를 철저히 개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학자들은 김 대통령이 이들 세 지도자를 높이 평가한 본래 의도는 그들의 개혁 성과보다는 철권통치라는 그들의 개혁 방법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최근 국정 위기를 초래한 각종 사건들의 배후가 기득권 세력이라고 보고 이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들 세 지도자의 통치 형태를 동경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다. 김유철 교수(연세대·중국사)는 "김 대통령이 진시황제를 역사적인 지도자로 지목한 것을 처음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진시황제는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즉 누군가가 죽어야만 했던 시대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시대가 아닌 만큼 시황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김 대통령이 최근 옷 로비사건이나 언론 장악 문건사건 등으로 인해 코너에 몰려 있고 '대통령 흔들기'에 불만이 많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진시황제가 비판세력을 철권통치로 누른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귀를 좀더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에서 진시황제를 가장 높게 평가한 사람은 모택동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는 '문화혁명' 때 진시황제의 개혁성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시황제 때 잠복했던 보수세력인 유가가 한나라에 와서 다시 발흥하면서 개혁세력인 법가도 보수화한 것처럼 공산세력이 보수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미 이념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택동처럼 진시황제의 개혁성을 강조하는 것이 적절한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모는 유가의 태두인 공자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임표를 공격하는 '비공비림' 차원에서 시황제의 개혁성을 강조했으나 우리는 그같은 변혁기가 아니다"고 부연했다. 표트르 대제에 대한 러시아사 전공 사학자들의 비판도 다르지 않다. 서울 시내 모 대학의 한 러시아사 교수는 "표트르 대제가 여러 분야에서 서구화정책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서구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엘리트들과 민중 간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어 러시아사회가 양분되는 사태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표트르 대제는 개혁적이었으나 그 과정을 독재적으로 추진했다. 더군다나 개혁 그 자체가 표피적이었다. 사고방식이나 사회구조의 개혁을 심도 있게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그렇다고 표트르 대제 한 사람에게 농노제나 전제정치를 개혁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러시아사 전공 교수도 "표트르 대제의 통치기간(1682∼1725) 동안 전쟁 없이 지난 해는 겨우 한 해뿐일 정도로 그가 지향한 것은 영토 확장을 비롯한 부국강병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한 러시아 민중들의 민생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그가 어떻게 근대 러시아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김 대통령의 평가는 일본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동의를 얻었다. 특히 일본 전문가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오다 노부나가는 불교가 현실에 간여하는 것을 막고 상인은 상업에만 종사하게 하는 등 사회 분업체계를 확립하는 등 성과 속을 구별해 일본이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다 노부나가가 타협과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 사람들과 달리 독재형 지도자였다는 점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을 잘 하는데 노부나가는 타협을 안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사람이 드문데 노부나가는 그렇게 했고 그래서 일본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일본 전문가는 "노부나가가 오늘날 한국에서 집권하면 기득권이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마구 때리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DJ도 그런 면에서 노부나가를 역사적 지도자로 꼽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 소장 정치학자도 "김 대통령이 요즘 자신의 개혁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기득권층의 반발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들 세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을 의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들 세 지도자들에 대해 "제가 존경한다기 보다는 역사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산업혁명을 마치고 새로운 정보화시대로 들어가는 데 있어 참고가 된다"고 언급했다. 김 대통령은 "진시황이나 표트르 대제, 오다 노부나가는 현재 우리 사회에 데려와도 톱 리더가 될 수 있는 현대적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에 카쿠마 이사장은 "김 대통령은 정치뿐 아니라 이를 웃도는 인류사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회견은 끝났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김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은 사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보다 훨씬 강했다. 네티즌들은 학자들처럼 김 대통령의 본래 의도한 바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보다는 진시황제 같은 독재자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냐는 비아냥반 우려반의 비판을 주로 퍼부었다. 한 네티즌 (ID: KCUN)은 PC통신 천리안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진시황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왕의 하나로 거론됐다구요? 우리 민족에게 나랏말을 주신 세종대왕님은 대통령님께서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군왕인가요? (대통령)님께서도 개혁을 위해서라면 분서갱유도 마다하지 않으실 건가요? ...그래서 언론대책 문건 같은 것도 나온 모양이군..."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ID가 JOHNBAAK인 네티즌은 "진나라는 시황제의 사망과 함께 바로 멸망한 왕조인데 그런 황제가 어떻게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인 것일까? 지금의 언론 탄압도 시황제의 분서갱유를 본받아서 하는 것이라면 너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LOVEMK)은 "지도자가 사후 평가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은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말인데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칭찬받지 않은 사람이 후세에 칭찬받은 일은 절대로 없다"면서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이 '기득권층의 저항이나 일부 국민의 오해가 있어도 지도자는 소신을 변치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한 네티즌 (CESA97)은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곰곰히 생각해본다. 반대 여론.. 기득권층의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는 DJ의 확고한 비전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며 김 대통령이 갖고 있는 비전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 네티즌은 또 "진시황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분서갱유인데 그가 그렇게 훌륭한 지도자였는지 다시 한번 알아봐야겠다"며 글을 맺었다. (기자 : haedang@chosun.com) | ||
주간조선2000.01.06 /158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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