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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우주론

이강기 2015. 9. 25. 14:45
현대우주론
 
 

 

* 안창림(스탠포드대학 물리학박사, 이화여대 교수)
* 시대정신 [2000 03-04월호] 제9호

 

 

 

 

 

1. 빅뱅이론


20세기 들어오면서 물리학의 눈부신 발전과 실험장비의 발전은 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신학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올 수 있게 하였다. 1929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인 허블이 발견한 "우주가 거의 광속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정상상태우주론과 빅뱅(대폭발)우주론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우주론이 제안된다. 러시아계 미국물리학자인 Gamow박사에 의해 제안된 빅뱅이론은 우주가 150억년 전에 불덩어리와 같은 특이점에서 대폭발로 시작한 후 현재까지 광속으로 커지고 있다는 이론으로써 1965년 벨연구소에서 펜지아스와 윌슨의 관측에 의해 경쟁이론을 누르고 정통이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우주배경복사라는 것으로 대폭발에 의해 우주의 부피가 커지면서 처음 뜨거웠던 우주의 온도는 감소하게 되는데 빅뱅이론의 계산에 의하면 현재 우주는 약 절대온도 3도 (영하 270도)정도의 온도가 된다. 모든 물체는 온도에 따라 특정한 주파수의 전자기파들을 방출하고 흡수하게 되므로 우주도 그 온도에 걸맞은 전자기파들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우주배경복사라고 하며 이것이 실제로 발견된 것이다. 이외에도 우주 내에 존재하는 중수소와 헬륨 등의 구성비율도 빅뱅이론으로 계산할 수 있었고 역시 관측사실과 잘 맞음이 확인됨으로써 빅뱅이론은 정설로 굳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주의 기원이라는 다분히 신화적인 사실이 이론적 골격, 과학적 예언 및 실험적 입증을 갖춘 어엿한 과학이론의 구조를 갖춤으로써 '우주론'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빅뱅우주론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대폭발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대폭발이 있었다면 그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물론 대폭발에 의해 시간도 공간과 함께 시작되기 때문에 빅뱅이전에는 시간의 개념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빅뱅이전을 언급하는 것은 언어적 모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빅뱅이전에 시공간 자체가 없었다면 빅뱅이론이라는 물리법칙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와 이를 지배하는 법칙 중 우선하는 것이 무엇일까?

둘째는 공간이 평평하다는 문제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 공간은 곡률반경이 10^{-33}cm밖에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휘어져 있어야 하지만 실제의 우주는 매우 평평하다. 또한 이론적 우주의 크기도 관측사실과 매우 다르다. 현재 관측된 크기는 10^{88}개의 소립자를 포함할 정도로 큰 반면, 이론은 불과 몇 개의 소립자들 밖에 포함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결과를 준다. 이는 분명히 빅뱅우주론에 무언가 잘못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로 빅뱅이론은 매우 무거운 자기단극자들이 우주에 양성자들만큼이나 많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예언한다. 이렇게 되면 우주의 평균밀도가 현재 관찰되는 것에 비해 10^{15}배 만큼이나 높아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넷째 문제는 팽창의 타이밍에 관한 것으로 빅뱅이론은 우주의 모든 부분들이 동시에 팽창을 시작하였다고 설명하지만 우주의 모든 부분들이 약속한 듯 동시에 팽창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섯째는 우주안의 물질의 분포에 관한 것이다. 우주전체의 크기에서 보면 물질들은 우주에 놀랄 정도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100억광년 정도의 크기에서 보면 밀도의 편차는 100만분의 1보다 작다. 우주의 밀도가 이렇게 고른 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과학자들은 대신 우주란 원래 균일한 것이라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작은 크기에서 보면 별, 은하 등 물질들이 몰려 편중되어 있는 사실에서 이 믿음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크게 보면 우주는 균일하고 작게 보면 은하계 등이 편재함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빅뱅이론이 가정하는 시공간의 특이점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빅뱅이론은 우주배경복사가 관찰됨으로써 현대우주론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만 정작 이 이론의 목표인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본격적인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많은 발전을 이룩한 소립자물리학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2. 대통일이론


1). 소립자 물리학


소립자 물리학은 가장 미세한 크기의 입자들에 관한 법칙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어떻게 가장 미시적인 이론이 가장 거시적인 대상인 우주를 연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빅뱅이론에 따라 우주가 무한히 작은 크기에서 현재의 크기로 계속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무한히 작은 미시적 현상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과거 30년 동안 소립자 물리학에 대한 실험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공동핵연구소, 페르미가속기센타, 스탠포드가속기연구소등은 현재 10^{-18}미터정도의 극미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해 현재까지 밝혀진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힘은 네 가지이다. 힘이란 입자들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고 기본적인 힘이란 소립자들간의 힘을 의미한다. 모든 물질은 소립자로 이루어져있으므로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호작용들은 이들 기본적인 힘들로 환원된다.

이 네 가지 힘들 중 거시적으로 존재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중력과 전자기력이다. 중력은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고전적으로만 기술되는 반면 전자기력은 양자론적으로도 매우 정확한 수준까지 입증된 양자전기역학이란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게이지대칭성이라는 대칭성을 갖는데 이는 일차원의 복소수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에 존재하는 대칭성이다. 일차원이기 때문에 회전은 불가능하지만 '측정가능한' 양이 파동함수가 아니라 파동함수의 절대값이란 점 때문에 파동함수에 절대값이 1인 임의의 복소수를 곱할 수 있는 대칭성을 가지게 된다. 이를 확장하여 만약 곱해지는 임의의 복소수를 각 시공간의 위치마다 다르게 해도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는 경우를 게이지 대칭성이라고 한다. 게이지란 '局所的(local)'이란 의미로서 시공간의 매 위치마다 제 각각 임의의 변화를 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대칭성에 의해 자연의 법칙이 규정된다. 보통 빛이라고 불리는 전자기장은 양자화되어 '포톤(photon)'이라는 질량이 없는 게이지입자가 되고 이 입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한다. 여기서 '매개'라는 뜻은 힘을 전달하는 '場'이 양자화되어 생성된 입자이기 때문에 두 입자사이를 '왕래'하며 힘을 전달한다는 의미이다. 포톤은 질량이 없기 때문에 광속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중력의 양자화는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뒤에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거시세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미시의 원자나 그보다 더 작은 물체에만 나타나는 힘들을 논의하기로 한다. 이 영역에서 존재하는 기본적인 힘들이 나머지 두 개인 강력과 약력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알려진 소립자들(가장 기본적인 입자들이란 의미에서)을 설명하여야 한다. 소립자들은 크게 페르미온과 보존으로 나뉘는데 보존은 포톤과 같이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입자들에 말하고 페르미온은 물질을 이루는 구성입자들이다.(페르미온과 보존의 정의는 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페르미온은 다시 쿼크와 렙톤으로 나누어진다. 모든 원자의 중심에 있는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쿼크는 이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는 입자들이다. 현재까지 6가지의 종류(질량이 가벼운 순서로 up-down, strange-charm, bottom-top)가 입증되었다.(여기서 '-'로 짝을 지은 이유는 뒤의 약력의 대칭성으로 이렇게 두 개씩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성자는 2개의 up쿼크와 1개의 down쿼크로 이루어진 입자이다. 렙톤으로는 원자를 이루는 전자 'e'와 질량이 없고 모든 물질들과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뉴트리노가 짝을 이루어 존재하는데, 이외에도 전자와 성질이 거의 같지만 질량만 더 무거운 뮤온(muon)과 타우(tau)렙톤 그리고 각각에 대응하는 뉴트리노 등이 더 존재하여 모두 6가지의 종류가 자연에 존재한다.

이들 중 우주의 대부분의 물질을 이루는 up-down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의 네 입자들을 묶어서 첫 번째 '패밀리'라고 부른다.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패밀리인 strange-charm, 뮤온-(뮤온)뉴트리노와 bottom-top, 타우렙톤-(타우)뉴트리노 등은 가속기에서 인위적으로 생성되거나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들이 스스로 충돌하여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매우 짧은 시간 밖에는 존재하지 못한다. 이들 패밀리들은 질량이 수천 배씩 더 무겁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물리적 성질이 동일한 복사판들이다. 따라서 당분간 우리는 첫 번째 패밀리에만 국한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왜 자연에 세 가지의 패밀리가 존재하는지, 왜 다른 패밀리들은 훨씬 무거운 질량을 갖는지 등 일견 철학적으로 보이는 질문들은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벽한 답을 얻지 못한 상태이다.


강력은 쿼크에만 작용하여 이들이 양성자안에만 존재하도록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또한 대칭성에서 시작한다. 쿼크들은 (혹은 쿼크들에 해당하는 양자장들은) 3차원의 복소수로 이루어진 내부공간에 존재한다. 따라서 3차원의 회전대칭성을 가지게 된다. 이를 수학에서는 SU(3)라고 표현한다. 위의 6개 쿼크들이 또 각각 3가지의 다른 쿼크들로 존재한다. 이를 red, blue, green등으로 불러서 총 18개의 쿼크가 존재하는 셈이 된다. 이들을 color양자수라고 부르고 쿼크가 정말로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매우 작은 공간으로 가면 파장이 가시광선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색깔이란 의미가 없어진다) 편의상 쿼크가 3가지 색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일단 쿼크의 종류가 같으면 색깔에 상관없이 질량이 같다. 예를 들어 'red-up쿼크'와 'blue-up쿼크'는 질량이 같다. 따라서 세 가지 색깔들 사이에 대칭성이 존재하여 다른 색깔을 가진 쿼크들을 같은 입자로 동일視할 수 있다. 더구나 게이지 대칭성이 존재하여 시공간의 각 위치마다 각 쿼크들의 색깔을 제멋대로 고쳐불러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여기서도 8개의 '글루온'이라는 게이지입자들이 존재하여 이 강력을 매개하게 된다. 게이지보존은 마치 정보를 전달하는 입자로서 각각의 시공간에서의 위치마다 달라지는 쿼크들의 색깔에 대한 정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글루온에 의한 강력은 재규격화군에 의해 쿼크와의 상호작용의 크기를 변화시킬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인다. 다른 경우와 달리 강력은 배율을 높임에 따라 점점 약하게 되고 반대로 배율을 낮출수록(점점 긴 거리로 갈수록) 힘이 강하게 된다. 따라서 두 쿼크사이의 거리가 길어질수록 힘은 매우 커져서 도저히 쿼크만 따로 떼어낼 수 없게 되고 거리가 짧아지면 힘이 매우 약해져서 마치 서로 아무 힘도 미치지 않는 듯이 행동하게 된다.(이를 전문적 용어로 '점근적 자유'라고 한다.)

실제로 어떤 실험을 통해서도 쿼크를 직접 입증하지는 못한다. 다른 입자들로부터 쿼크하나만 따로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대신 양성자 내에서 쿼크라고 볼 수 있는 입자들의 증거들을 포착하여 쿼크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존재의 입증에 관해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 고전적인 경우나 거시계에서는 어떤 물체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물체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 이는 사람의 5감을 통해 인식되거나 오차의 위험이 없는 기계를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미시세계에서도 일반적으로는 이 요구조건을 만족한다. 보통 거대가속기에서 새로운 입자의 발견은 측정기내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궤적을 통하여 이 입자의 성질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존재를 직접 확인하는 방법은 쿼크에 있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치 보자기 안에 존재하는 어떤 물건을 밖에서 만져보아 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에 해당한다. 만약 이 만져보는 절차가 체계적이고 다른 가능성을 모두 배제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양자적이고 극미의 세계에서는 존재의 입증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약력은 매우 약한 힘이다. 너무 약해서 어떤 입자들을 붙어 있게 만들기보다는 떨어져 나가는 현상에서 자주 발견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자핵으로부터 베타선과 같은 방사선의 방출이다. 이렇게 약한 이유를 밝힌 것이 표준모형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서 이는 2차원의 복소수 내부공간에서 정의되는 SU(2) 게이지대칭성으로 설명된다. 이는 전자와 (전자)뉴트리노 쌍(또한 뮤온-(뮤온)뉴트리노, 타우렙톤-(타우)뉴트리노 쌍)을 동일視하는 대칭성으로서 이로 인해 3개의 게이지보존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강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한다. 전자는 질량이 있지만 뉴트리노는 질량이 없는 입자이기 때문에 이 두 입자를 동일視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게이지보존은 원래 질량이 없어야 하는데 약력의 게이지보존은 질량을 갖아야 한다. 질량이 있다는 말은 짧은 거리에서만 힘을 미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힘이 매우 미약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은 '대칭성의 깨짐'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해결된다. '대칭성의 깨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뒤에 자세하게 논의하기로 한다. 대칭성이 깨지기 전에는 전자-뉴트리노는 같은 입자이고 약력의 세 게이지입자들은 포톤과 같이 질량이 없는 입자로서 한 부류에 속하는 게이지입자들이었다. 표준모형은 이들 약력과 전자기력이 높은 에너지(혹은 짧은 거리)에서는 같은 힘이었다가 에너지가 어떤 값보다 작아지면서 (혹은 입자들 사이의 거리가 길어지면서) 대칭성의 깨지고 이에 의해 전자와 뉴트리노, 그리고 약력의 세 보존들과 포톤은 다른 입자로 갈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우주에서는 이 두 힘이 다른 것으로 나뉜 후이지만 초기의 우주에는 이 두 힘은 같은 힘이다. 이런 점에서 표준모형은 약력과 전자기력을 통일시킨 최초의 '통일이론'이다.


2) 대통일이론


'대통일이론'이란 표준모형을 이루는 중력을 제외한 세 가지 힘들 및 각각에 해당하는 대칭성들을 전부 통일한 이론이란 뜻으로, 이 단 한 개의 이론으로 우주의 기원에서 소립자의 다양한 현상까지 전부 설명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첫 번째 질문은 '왜 꼭 통일되어야 하는가'이다. 왜 모든 힘들이 같은 법칙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는가? 전자기력과 강력, 혹은 중력이 개개로 존재한다고 해서 우주의 기본적 법칙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주가 어느 순간 빅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과학적 증거는 이제 명확하기 때문에 빅뱅의 시점에서 우주를 지배하던 법칙을 논하는 것에 이의를 달기는 힘들다. 만약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할 때부터 표준모형의 여러 가지의 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면 이 힘들이 작용되는 대상, 즉 소립자들도 다양한 질량들을 가지고 존재했어야 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빅뱅시작의 시공간적 구조에서 이런 질량의 차이들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이런 특별한 '다양성'은 그 존재를 설명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이유는 또 다른 궁극의 이론을 필요로 하는 순환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마치 신학자들이 '神'의 존재를 증명할 때 사용되는 논리처럼 빅뱅시점의 우주는 단 한 개의 이론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설득력을 갖는다.


만약 단 한가지의 대칭성에 의해 결정되는 이론에 의해 우주의 기원과 그 후의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다음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 대칭성을 결정하는 방법과 대칭성의 깨지는 양상일 것이다. 어떤 대칭성에 의해 세 힘이 통일되었고 어떻게 깨졌기 때문에 현재 우주가 이런 모습으로 경험되는지, 또 실험에 의해 확인된 표준모형을 끌어안으면서도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힘들을 통일시켜야 한다. 양자론적 효과에 의해 세 힘들은 약 10^{-31}m의 미세한 거리에서는 그 크기가 같아짐이 알려지게 되었다.(에너지로는 약 10^{15}GeV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세 힘들은 이보다 작은 크기에서는 모두 같은 힘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주가 이 정도의 크기가 되는 것은 빅뱅 후 약 10^{-39}초 후이다. 이 시간 이전에는 마치 전자기력과 약력이 통일되듯이 새로운 게이지대칭성에 의해 포톤과 8개의 글루온, 그리고 3개의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 등을 포함하는 게이지입자들에 의해 매개되는 단 한 가지 상호작용만이 존재한다. 이 통일된 상태에서 특정한 형태로 대칭성의 깨지게 되어 비로소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강력으로 갈린다. 위의 12개의 게이지입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게이지보존들(이를 '렙토-쿼크'라고 부른다)은 대칭성이 깨지는 시점 이후에는 매우 큰 질량을 가지게 되어 크기가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에 대칭성이 깨지는 거리에서는 거의 힘을 미치지 못한다.

힘들 뿐 아니라 이 힘들이 작용되는 대상인 소립자들도 통일된다. 통일된다는 의미는 다른 입자들이 이 시간이전에는 '같은' 입자였다는 뜻이다. 표준모형에서 대칭성의 깨짐에 의해 같은 입자였던 전자-뉴트리노가 다른 입자로 갈리는 것처럼 대통일이론에서는 대칭성이 깨지기 전에는 쿼크와 렙톤 모두 같은 입자였다. 이들은 질량도 다르고 물리적 성질도 달라지는 것은 대칭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대통일이론은 표준모형에서 가능하지 않은 현상들이 존재해야 함을 예언하고 있다.

첫 번째로 쿼크와 렙톤이 같은 입자라는 대칭성에 의해 이들은 서로 자유롭게 변화될 수 있다.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가 전자로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양성자는 붕괴하여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양성자는 원자핵을 이루고 원자핵은 원자를 구성하므로 모든 물질은 양성자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 양성자가 스스로 없어진다면 물질이 갑자기 없어진다는 뜻이 된다. 이전까지의 물리이론에서는 물질이 에너지로 바뀌거나 다른 물질로 변환될 수는 있지만 존재하던 물질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양성자의 붕괴가 가능하다면 이는 물리이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대통일이론이 옳다면 양성자는 붕괴되어야 한다. 단 양성자를 붕괴시키는데 작용하는 힘을 매개하는 렙토-쿼크 게이지입자들은 대칭성이 깨진 현재에 있어 매우 무거운 질량을 가져서 힘이 매우 미약하다. 즉 양성자 하나를 붕괴시키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략적인 계산에 의하면 양성자의 수명은 10^{}년, 우주의 나이인 10^{10}년에 비해도 어마어마하게 큰 시간이다. 따라서 양성자가 실제로 없어지는 것을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지구위에서 실험할 수 있는데 이는 위의 양성자의 수명은 평균 수명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평균수명이 70세라고 하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갓 태어난 아기를 70년간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사람은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고 적게 살 수도 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70명을 임의로 선택하여 이들 중 평균적으로 한 명이 일년 내에 죽는 것 확인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의로 선택한다는 조건을 충실히 만족시키는 것이지만 일단 이것이 가능하면 굳이 70년을 기다릴 필요없이 1년 혹은 더 짧은 시간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양성자에 적용하면 양성자가 들어있는 원자를 무수히 많이 갖다 놓고 이 중에서 몇 개의 양성자가 1년 내에 없어지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지하에 큰 방을 만들어 물을 가득 채우고 양성자의 붕괴를 기다리는 실험을 세계 도처에서 진행하고 있다. 물분자 하나에 10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어서 많은 양의 물은 충분한 양성자를 모아놓은 것과 같다. 지하에서 실험하는 이유는 우주선을 차단하여 순수하게 양성자의 붕괴에 의한 신호를 골라내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양성자의 붕괴도 관측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이는 대통일이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거나 렙토-쿼크에 의한 힘이 훨씬 더 미약해서 양성자의 수명이 훨씬 더 늘어나거나, 혹은 양성자의 붕괴가 전혀 불가능한 이론의 가능성등 새로운 방향의 시도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된다.


두 번째 중요한 예언은 磁機單極子(magnetic monopole)의 존재이다. 자기단극자는 쉽게 말해 자석의 N극과 S극중 하나를 가진 입자를 말한다. 자석을 쪼개든 전자석을 만들든 구조적으로 N극과 S극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공존해야 하므로 대통일이론 이전까지는 이런 입자의 가능성은 단순히 수학적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SU(5)나 이보다 더 큰 게이지 대칭성을 갖는 대통일이론에서는 기존의 입자와는 성격이 매우 다른 새로운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3. 대팽창우주론(Inflation Theory)


초기 우주에서 빅뱅이론을 대통일이론으로 보완한 현대우주론이 대팽창우주론이다. 대통일이론이 힉스양자장의 요동에 의해 대칭성이 깨지면서 어마어마한 잠열이 생겨나게 된다. 이 잠열은 우주의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는데 이 잠열은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여 커지므로 우주가 팽창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잠열이 생겨나고 우주는 더 팽창한다. 이런 연쇄작용을 통하여 약 10^{-35}초 동안 우주는 10^{35}배나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우주가 이런 급격한 팽창을 하기 때문에 빅뱅시의 모든 정보는 이 과정에서 잃어버리고 이 시기 이후의 우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또한 대팽창이론은 빅뱅이론이 가지는 여러 단점들을 거의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우주가 탄생한 직후 매우 높은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 무수한 자기단극자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어야 하지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신뢰할 만한 결실도 없다. 그러나 우주가 급격히 팽창하였기 때문에 우주 내에서 우리가 이론적으로 접근가능한 영역에는 단 한 개의 자기단극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서 접근가능한 우주란 우리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없고 우주 또한 속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도 관측가능한 영역은 전체 우주의 크기 중에서 매우 제한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말한다. 우주가 이렇게 많은 영역으로 나뉘게 된 것은 우주가 항상 빛의 속도로 팽창한 것이 아니라 대팽창 기간동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가 평평한 사실도 설명이 가능하다. 빅뱅이 만들어낸 많은 불규칙한 자국들은 마치 풍선을 매우 크게 늘리면 그 위에 새겨진 글씨들이 희미해져 없어지듯 대팽창에 의해 희석되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팽창이론으로 대변되는 현대우주론은 초기의 빅뱅이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뱅시점에서의 대폭발 자체와 시공간의 특이점에 대한 의문은 전혀 새로운 소립자물리학의 발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4. 양자중력이론


1) 양자화된 시공간


우주가 한 점에 모여 있다가 대폭발을 했고 이로부터 시간과 공간이 탄생하였다는 시나리오는 이 한 점의 물리적 특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는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이 문제는 매우 심오한 이론물리학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현대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상호모순없이 접목하는 양자중력이론을 찾는 문제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현재 은하계, 별 그리고 우주전체 등 매우 크고 무거운 물체들을 설명하는데 아주 정확하게 잘 맞는 이론이다. 반면 양자론은 원자와 같은 아주 작은 미시계에 적용되는 이론이다. 따라서 이 두 이론들이 서로 상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록 일반상대성이론이 양자적 요동을 고려하지 않는 '고전이론'이기는 하지만 거시계에서의 양자효과는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화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을 연구할 때 이 두 이론들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

빅뱅에 의해 우주가 시작된 후 극히 초기(이를 '플랑크시간'이라고 한다.)까지는 우주는 양자효과가 매우 클 정도로 작은 크기인 동시에 에너지(즉, 질량)가 매우 높아 중력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빅뱅에 의한 우주의 시작은 필연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동시에 적용되었던 시기가 존재했다는 뜻이 된다. 이와 별개로 최근 우주관측에 의해 입증되고 있는 블랙홀도 이 두 이론이 동시에 적용되는 대상이다. 매우 큰 질량으로 인해 시공간이 기형적으로 휘어 있는 상태인 블랙홀은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역시 양자론적 효과가 중요해진다.

문제는 이 두 이론을 동시에 적용하려다 보면 모순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즉 양자장론을 적용하려다 보면 일반상대성이론이 문제가 있고 일반상대론을 적용하면 양자장론이 문제가 생긴다. 이는 두 이론들이 보는 힘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자장론에서는 힘은 게이지보존이라는 매개입자에 의해 전달된다. 양자효과는 진공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모든 양자적 요동, 즉 가상입자들이 모든 가능한 조합으로 생성되었다 소멸되는 과정을 고려함으로써 도입된다. 반면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힘은 시공간의 변형으로 나타난다. 중력에 의해 시공간의 곡률이 변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골자이다. 고전이론이기 때문에 이 시공간의 변형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의해 결정론적으로 정해진다. 여기에 양자효과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 두 관점을 조화시켜야 하므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시공간의 변형으로 나타나는 힘의 매개방식에 양자적 요동을 첨가하는 것이다. 즉, 시공간의 변형이 모든 가능한 양자적 요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위에서 블랙홀은 매우 기형적 형태로 시공간이 휜 것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는 고전적으로 어떤 정해진 형태를 띤 것이다. 여기에 비해 양자적 요동에 의한 시공간의 변형은 시공간이라는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변형을 전부 포함하여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음대로 늘리거나 접을 수 있는 유연한 고무판을 가상하자. 이 2차원 시공간의 변형은 아주 다양하다. 블랙홀에 해당하는 것인 어느 한 곳이 길게 늘어난 것일 수도 있고 이 부분이 떨어져서 고무판과 조그만 공이 생겨날 수도 있으며 이런 공들이 무수히 많을 수도 있다. 길게 늘인 부분을 몇 번 접어서 다시 고무판에 붙일 수도 있다. 이런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전부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개개의 변형된 시공간마다 양자장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앞에서 양자장론을 다룰 때 소립자는 질량이 매우 작기 때문에 시공간은 물질이 없을 때에 해당하는 완전히 평평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평평한 시공간에서 발전된 양자장론을 휜 시공간에서 기술하려고 하면 소립자들의 양자적 요동이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평평한 시공간에서는 양자적 요동에 의해 생기는 무한대를 재규격화란 과정을 통해 잘 소화할 수 있었지만 변형된 시공간에서는 새로운 무한대가 생겨난다. 어떤 무한대를 치유했다고 하더라도 약간만 다르게 변형된 시공간에서는 또 다른 무한대가 생겨나고, 시공간이 변형될 수 있는 방법은 무한대이므로 결국 무한대 종류의 무한대가 발생한다. 재규격화를 통해 치유할 수 있는 무한대는 그 종류가 유한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국 무한대를 없앨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번 발생한 무한대는 암세포처럼 전혀 다른 물리량을 계산할 때도 불쑥불쑥 나타나서 계산된 물리량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모든 물리값이 전부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양자론적 힘의 관점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고쳐보려고 해보자. 양자장론에서 힘은 게이지보존이라는 매개입자에 의해 전달되고 양자효과는 이들 매개입자와 물질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진공으로부터 생겨나는 소립자들의 생성과 소멸을 고려하면 된다. 만약 그래비톤(graviton)이라는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을 게이지 대칭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그래비톤이 게이지보존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게이지보존은 스핀이 1인 반면 중력의 매개입자로서 그래비톤은 스핀이 2라는 사실이다. 이런 스핀을 가지는 양자장론을 만들기는 매우 힘들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양자장론은 역시 재규격화가 가능하지 않고 기타 다른 문제점을 가진다. 역시 양자장론과 시공간의 요동이 조화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2) 초끈이론


빅뱅에 기초한 현대우주론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플랑크시간 이전까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현대소립자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력을 포함한 네 가지 힘을 통일하는 '초통일이론'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이 두 목표는 같은 문제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즉, 중력을 양자화하는 문제이다. 현재까지 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이론이 초끈이론이다.

초끈이론에서는 모든 물질을 이루는 기본단위가 '끈'이라고 생각한다. 이 끈의 크기는 플랑크 길이 정도로 극히 작기 때문에 여태껏 우리는 소립자가 점입자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 현재의 것보다 10^{15}배 정도 더 강력한 가속기가 존재하여 점입자를 확대해서 볼 수 있다면 점이 아니라 끈의 구조가 보인다. 마치 책상에 놓인 고무밴드를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맨눈으로 볼 경우는 한 점으로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 끈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끈 자체가 움직이는 것 뿐 아니라 스스로 많은 형태의 진동을 할 수 있다. 마치 기타줄이 다양한 음높이를 내는 여러 가지 진동모드를 만들어내듯이 끈 하나에도 무한히 많은 진동모드들이 가능하다. 초끈이론에서는 어떤 진동모드에 의해 진동하는 끈을 특정한 소립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따라서 단 한 개의 끈에서 무한히 많은 소립자들이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전자와 쿼크는 다른 입자들이 아니라 같은 끈의 다른 진동모드에 불과하다. 소립자의 표준모형이 갖는 단점 중 하나인 다양한 소립자의 존재가 초끈이론에서는 단 한 개의 초끈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진동모드는 다른 에너지를 갖는데 에너지는 곧 질량이므로 개개 진동모드에 해당하는 소립자의 질량이 된다.

초끈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통일시킬 때 생기는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다. 양자적 요동에 의해 발생하는 특이한 시공간의 요동은 매우 작은 크기에서 문제가 된다. 시공간의 크기가 0이 되면서 물리계산에 무한대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소립자들은 매우 작은 크기에서 더 이상 점입자가 아니라 끈이기 때문에 무한대가 생기는 0의 길이에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두 점입자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결국 만나면 0이 되지만 두 끈은 결코 만날 수 없다.(완벽하게 오버랩되는 두 끈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끈들은 양자적 요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겹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양자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조화는 점입자라는 가정을 포기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렇다면 맨 처음 끈은 어디에 존재하였을까? 어떤 대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이라는 운동장안에 위치해야 하지 않을까? 끈이 아무 모순 없이 양자론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만족해야 하는 조건들 중 하나가 끈이 존재하는 시공간의 차원은 10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물리이론에서 시공간의 차원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반하여 초끈이론에서는 내부논리의 합리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란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초끈이 10차원에서 존재한다면 그 중 우리에게 친밀한 4차원의 시공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디에 존재할까? 그 해답은 10차원의 원시시공간 중 4차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매우 작은 크기의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종이는 이차원이지만 이를 아주 작게 만다고 가정하면 마치 직선으로 보이는 일차원의 물체가 될 것이다. 이처럼 10차원의 시공간 중 6차원이 매우 작은 크기로 말려있어서 현재까지 어떤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도 그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우주의 모습이 되기 위해 축소된 6차원의 구조는 매우 복잡한 형태의 공간이다. 2차원만 하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위상구조가 가능하다. 공모양, 도넛츠모양, 이중도넛츠모양 등등. 따라서 6차원이면 이는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고 그 모양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초끈이론에서는 이 공간이 칼라비-야우(Calabi-Yau)공간이라는 형태를 띠어야 함을 입증할 수 있었고, 6차원의 칼라비-야우공간에서는 오직 세 '패밀리'의 소립자들만 존재함을 입증할 수 있어서 현재까지 발견된 소립자가 존재해야 함을 수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또한 초끈이론은 이 게이지대칭성에 대해서도 기존의 이론들과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끈이 양자론과 모순되지 않기 위해 만족할 조건 중에는 초끈이 가질 수 있는 게이지 대칭성도 포함된다. 이에 의하면 초끈은 두 가지의 게이지 대칭성을 가질 수 있다. 전문용어로 SO(32)와 E_8 X E_8으로 명명되는 이들은 매우 큰 대칭성이다. 위에서 설명한 SU(5) 대통일이론은 이 큰 대칭성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여기에 앞에서 설명한 대칭성의 깨짐에 의해 표준모형에 이르게 된다.


5. 결론: 최근 이론에 입각한 우주관


빅뱅이론과 이를 보완하는 대팽창이론을 바탕으로 한 현대 우주론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과학이론으로써도 수평선문제나 등방성의 문제 및 자기단극자의 문제를 대통일이론의 범위내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빅뱅이론의 정당성이 입증된 우주배경복사도 엄밀히 말하면 우주의 나이가 수십만년 정도 되었을 때를 증명한 것이지 빅뱅시점에서 빅뱅이론이 옳음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는 빛(즉 전자파)은 전자와 쿼크 등이 뒤섞인 플라즈마상태의 우주안에서 끊임없이 흡수되었다가 방출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독립된 빛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빅뱅후 약 3분 후 쿼크들이 모여 원자핵이 만들고 다시 수십만년 후 전자가 원자핵과 더불어 중성의 원자들을 만들면서 빛은 자유롭게 되어 그때의 빛이 현재의 우주배경복사로 남았기 때문이다. 빅뱅이론의 성공은 결국 빅뱅 후 3분간 이후를 설명할 뿐이고 이는 현재 가속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작은 크기 정도에 해당한다. 결국 이 시점 이전의 빅뱅이론 (대팽창이론에 의해 수정된 것을 포함하여)은 마치 대통일이론이 아직 실험적 뒷받침이 없듯이 관측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큰 주제인 빅뱅시점에서 빅뱅이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여기서 물리학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대팽창이론을 받아들이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이론적 일관성이다. 중력과 양자이론이 구분될 수 없는 시점이므로 어쩔 수 없이 초끈이론에 의해 지배되는 시점이므로 빅뱅시점의 우주의 모습도 초끈이론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적 사실이 없기 때문에(실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관점은 하나의 시나리오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최첨단의 물리학이 가장 최근까지 이뤄놓은 업적이란 점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빅뱅 시점에서 우리는 매우 뜨겁고 높은 에너지로 인하여 우주가 한 점의 특이점에서 팽창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는 '한 점'이 의미를 가지는 점입자적 양자장론의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만약 가장 기본적인 물체가 플랑크 길이의 초끈이고 매우 높은 에너지에 의해 무수히 초끈들이 만들어졌다면 더 이상 한 점에 존재하는 특이점은 의미를 잃는다. 왜냐하면 그 한 점에 초끈들이 모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뱅시점의 원시공간은 무수히 많은 초끈들이 뭉쳐있는 플랑크길이 정도의 '유한한 크기를 같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원시공간은 고전적 공간이 아니고 양자론적 확률로 정의되므로 시공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초끈들에 의해 이들 '양자공간'은 비로소 고전적 공간으로 응축된다. 이들 중 6차원은 현재까지 매우 작은 크기로 남아 있지만 초끈이 이들 숨은 공간에 걸쳐있는 형태에 의해 현재 알려진 소립자들이 탄생한다. 그후 대통일이론의 대칭성이 깨지고 우주는 대팽창을 거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후 우주는 광속의 크기로 팽창을 계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