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 인문학과 비교문학의 보고(寶庫)
- 박경일
시작하는 말
철학자 출신의 모더니스트 시인-비평가 T.S.
엘리엇이 하버드 대학에서 이수한 교과목 목록은 그의 광범한 인문학 및 비교학 분야 관심을 보여준다. 그 과목들은 영문학, 독문학, 불문학,
라틴문학, 희랍문학, 비교문학 네 과목, 인도언어학(Indic Philology) 다섯 과목, 역사, 정부론, 미술, 윤리학, 실험심리학 및
철학과 대학원 과목들이다. 엘리엇의 철학도 시절의 문학적, 종교적, 지적 관심들은 엘리엇의 시와 비평에 다같이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최근
연구들은 지적하고 있다. 비교문학과 문헌학적 언어학(philology)에 대한 엘리엇의 깊은 관심은 그의 일찍부터의 인문학적, 비교(문)학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엘리엇이 1913-1914년에 참석했던 하버드 대학원 철학과의 조시아 로이스 세미나(철학20c.
학문 방법의 다양 유형들의 비교연구)는 엘리엇의 인문학과 지식 일반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독단(dogma)를 거부하는 지적인
개방성(catholicity)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이스 세미나는 “수학으로부터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으로부터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것은 광범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진정한 학문의 어음교환소”, 미국 실용주의 철학과
기호학의 창시자인 C.S. 퍼스에 의해 주창되고 로이스에 의해 계승된,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학문의 공동체, 해석의 공동체였다.
매 세션마다 퍼스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 로이스 세미나를 통해 엘리엇은 퍼스적 로이스적인 학문의 어음교환소와
학문공동체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철학적, 문학적, 그리고 문예지 편집자의 생애는 모두 이같은 흔적들을 보여준다. 예컨대
엘리엇의 일생 동안의 두드러진 지적 특징은 일체를 포용하는(all-embracing) 제설통합주의, 절충주의이며, 그의 장편시 『황무지』는 설흔
다섯의 작가, 작품, 문헌 등을 인용, 인유, 언급, 패러디하는 하나의 문학적 짜깁기이다. 이밖에도 엘리엇은 1922-1939년에 계간 문예지
『크라이테리언』에 언어, 문학, 역사, 인류학, 문명, 종교, 신학, 철학, 심리학, 과학, 정치(학), 사회학, 춤 분야의 서적 61권에 대한
21편의 서평을 썼으며, 이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당시의 중요한 일상사 전반에 걸친 논평을 기고하기도 했다. 엘리엇의 폭넓은 인문학 관심을
보여주는 이같은 글들은 엘리엇 연구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광범한 비교연구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엘리엇은 인문학과 (학제간) 비교연구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1. 조시아 로이스: “세계는...해석의 공동체”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엔절러스 캠퍼스의 로이스 홀 입구 위에는 “세계는 발전적으로 실현된 하나의 해석의 공동체이다”(The World Is a
Progressively Realized Community of Interpretation.)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Costello xvii).
이 구절은 일체 현상들이 공동체적 대화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발전-지속할 수 있다는 로이스의 우주론(또는 우주적 사회학)을 집약하고 있으며, 이같은
생각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가 사모하는 학문적 선배인 퍼스의 과학자 공동체 사상의 실천적 강령화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세계는 인간적,
비인간적인 삶의 수많은 실마리들이 상호짜기(interweaving)를 하는 하나의 과정, 상생의 대화주의, 공존의 생태학의 구현인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철학자들의 대부(代父)” 로이스(KE 10)는 그의 세미나들에서 정규적인 대학원생들 외에, 화학, 생리학,
심리학, 병리학, 태아학, 통계학, 수학, 고고학, 경제학, 그리고 영문학과 미술 등의 분야로부터 광범하게 다른 훈련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초빙하여 서로 대화하게 하고 이를 중재하고, 서로 간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이들 모두를 이해하는” 그가 이들을 서로에게
해석하여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로이스는 질문을 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대화의 유지자였다. 그 세미나는 당시 세계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학자들의 공동체였던 것 같다(Costello xi).
로이스 세미나에서는 어떠한 주제에 의해서도 한계가 제한되지 않았으며,
로이스의 다재다능하고 변덕스런 정신은 수학으로부터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으로부터 윤리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로이스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설사 그같은 통일체의 정확한 형태가 결정(結晶)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기술들(arts)은 하나의 공동의 유대를 갖는다는 신념이었다(Costello 1-2).
로이스 세미나는
“과학의 진정한 교류장”(a veritable clearinghouse of science)이었다. 로이스는 공동적인 과학적 관심사들을 논의하기
위한 해석의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는 그같은 공동체가 새로운 통찰을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실험실 이라고 확신했었다. 그것은 자연
자체의 통계적 작용들에서 발견되는 “집적의 비옥성”(fecundity of aggregation)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회적 집적의 새로운
과정들”(new processes of social aggregation)의 실험이었다. 로이스는 일종의 과정 철학자였다(Costello
xi-xii).
1907-08년부터 1911-12년까지 간헐적으로 로이스 세미나에 참석했던, 제이컵 로웬버그는 『하버드 동창회보』
1949년 1월 29일자에 다음과 같이 썼다: “로이스가 에머슨 홀(C 실)의 테이블 머리에 앉아, 앞에다가 커다란 노우트를 펼쳐놓고, 거기다가
방문자의 담화, 그리고 질문들에 대한 그의 답변들을 세심하게 기록하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평적인 정신들을 지켜본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생각들의 자유로운 교환에 참여한다는 것은 전율하는 체험이었다. 그 교환은 정말 “풍성하고 생산적인”(flourishing) 것이었다. 왜냐하면
로이스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값진 자료들을 받아 해석하고 종합하였으며, 학자들은 그들 대로 철학의 중요성과 관련성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몇은 해마다 그 세미나에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 의심받지 않는 지식의 세계들에까지 침투된 조망들이 그들의 독단을
눅혀주고 그들의 이해를 심화시켰다”(qtd. in Costello 3).
베단타의 학파들에 대한 연구를 한 바 있는 로이스는
이같은 연구로부터 신비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이 서로가 서로를 요구하는 변증법적 반려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했으며, 이같은 통찰로부터 동서의
만남을 위한 다수의 시사들이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Costello xxiii). 로이스는 정신의 캐톨릭성의 소유자였다. 우리 학문은 학문적
독단을 눅혀주는 로이스의 열린 정신을 시급하게, 즉각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신의 캐톨릭성은 학문의 국제적 경쟁력을 제고하는
촉진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2. T.S. 엘리엇: 세계는 “공동의 요소들과 노력들의 결과”
모든 예술가(artist)들은 무의식적인 공동의 유대를 가지며, 호머 이래의 유럽 문학은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 하나의
동시적 질서를 이룬다(SE 23, SW 50)고 말할 때, 1913-14년 동안 로이스 세미나를 수강했던 엘리엇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기술들(arts)이 하나의 공동의 유대를 가지며, 인간의 지식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는 로이스의 철학을 계승/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스가 퍼스의 과학자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실천자였다면, 철학자 출신의 모더니스트 시인-비평가 엘리엇의 일생은 로이스의 학문공동체 사상의
또다른 실천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이 엘리엇을 인문학과 비교(문)학의 보고(寶庫)로 만드는 점이다. 엘리엇은 일찍이 하버드 철학과 시절 이미
세계가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데, 엘리엇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로카다투(lokadhatu)는 우리의
공동의 요소들(dhatus)과 노력들(efforts)의 결과”이다(Perl and Tuck 159). 다음의 엘리엇 관련 언급들은 엘리엇의
광범한 인문학적, 비교(문)학적 배경을 보여주며, 광범한 학제간의 협동적 연구 또는 학문공동체적인 연구의 가능성/필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엘리엇은 1910년 하버드에서 영문학 학사,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이후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1년 동안 당시 전 세계의
지성인들을 매료중이던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강의를 수강한 뒤, 1911-14년 하버드 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1916년 신헤겔주의적 절대주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영국의 현대 관념론 철학자 F.H. 브래들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 로이스로부터 “전문가의 작품”(KE 10)으로
격찬받았다.
엘리엇은 하버드 영문과 시절 영문학을 위시하여 희랍문학, 라틴문학, 독일문학, 프랑스문학 강의를 수강하였으며, 이
밖에도 비교문학 과목을 4과목이나 수강하였다. 그는 또 철학과 대학원 시절 인도철학, 불교, 인도 언어학(philology), 그리고 원시불교
경전들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던 산스크리트어 및 팔리어 등 교과과정의 1/3을 동양학 연구에 할애하였으며, 특히 인도 언어학 강의를 5과목이나
수강하였다(Jain 252-6). (이같은 배경은 엘리엇의 이른 시절부터의 비교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생각되며, 엘리엇 연구에 있어서
비교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시켜주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엘리엇은 또 이 기간 중 하버드를 방문한 캠브리지 대학의 신실재론자 버트런드
러셀로부터 강의를 들었으며, 일본인 방문 불교학자 마사하루 아네사끼(姉崎正浩)로부터 동양불교 및 제2의 불타로 일컬어지는 나가르주나(龍樹)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또 로이스는 1년 코스였던 그의 과학적 방법론 세미나에서 매 세션마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과 기호학의 창시자인 퍼스에 관한
언급을 했으며, 이 세미나에서는 화잇헤드와 러셀의 공저 『수학의 원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J.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 법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논의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충 이런 것이 엘리엇의 지적 성장기의 배경이다.
이밖에 엘리엇이 1922년
『황무지』를 쓸 당시 거의 불교도가 될 뻔했다고 실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Spender 20), 1927년 영국
성공회(Anglo-catholicism)에 입교했다는 사실은 엘리엇 연구를 위해 특기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또한 엘리엇이 자신은 한번도 그의
타고난 종교였다 할 유니테리어니즘에 몸담은 바 없다고 말한 바 있다는 점 역시 유의되어야 할 사항일 것이다. 그 동안 엘리엇에 대한 수많은
기독교적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지만, 엘리엇이 귀의했던 성공회와 로마-캐톨릭, 프로테스탄트, 유니태리어니즘은 그 교의들에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엘리엇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들)은 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성공회와 엘리엇의
캐톨릭성(catholicity)에 대한 연구는 기독교적 읽기보다 불교적 중도적 읽기에 더 가까운 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일찌기 크리스티언
스미트는 불타,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를 “황금의 중간의 철학자들”(philo- sophers of the golden mean)이라고
지칭한 바 있는데(Smidt 232), 엘리엇, 성공회, 불교, 엘리엇의 “완벽한 비평가”(SW 1-17)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그리고
엘리엇의 위대한 시인 단테에게서 나타나는 “중도”(the middle way, via media)의 문제들은 매우 흥미있는 비교연구거리들이다.
캐톨릭교와 불교 간의 대화가 다른 어떤 두 종교보다도 원만/원활하다는 지적도 여기서 상기될 필요가 있다.
20세기 영미문학 연구의
일반적인 상황은 대체로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 초까지도 문학을 언어의 구조물로 전제, 언어 외적인(extrinsic) 연구가 금기되다시피
하고, 문학 연구로부터 철학,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요소들을 배제하는 뉴크리티시즘의 강령이 유지되었다 할 수 있다. 특히 엘리엇 연구의
경우, 원숙한 시인일수록 체험을 하는 개인과 시를 쓰는 개인은 그만큼 완전하게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엘리엇 자신의 선언은 그의 문학 생애를
특징지우는 소위 몰개성주의 시학으로 회자되고, 때문에 그의 철학적 체험과 그의 시는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랜 동안 대세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그의 문학 생애를 집약하는 시 『황무지』가 “개인적인 투덜거림”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어 그의 언급들은
문맥에 따라 보다 신중하게 읽혀질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철학 연구가 ”바로 그”(Smidt 17)였던 엘리엇의 지적
배경을 배제한 엘리엇 읽기는 철학이 “숨은 시학”(covert ars poetica)(Moody 7, 73)이었던 엘리엇 문학을 충분히 읽어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 예컨대, 승려 출신의 시인, 의사 출신의 소설가, 보험판매자 출신의 극작가, 철학자 출신의 비평가가 그들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과거 체험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철학자 출신의 시인-비평가
엘리엇의 문학에서 그의 철학적 흔적들을 찾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엘리엇의 비평이론은 그의 철학의 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뉴크리티시즘적 엘리엇 찬양, 포스트모던적 엘리엇 때리기는 다같이 엘리엇의 철학적 배경을 배제하고 엘리엇의 문학을 읽음으로써, 제한되고
모순되는 해석들과 비평들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졸저 『니르바나의 시학: “회전하는 세계의 정지점” 탐구』 참조).
예컨대,
앵글로-캐돌릭인 엘리엇의 시들에서 기독교의 흔적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황무지』를 쓰기 직전 한때 거의 불교도가 될 뻔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엘리엇의 시들에서 불교의 흔적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엘리엇의 시들과 산문들에는 구체적인 불교 및 힌두교에
관한 언급들과 인용들, 인유들이 다수 발견되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사유 태도 자체에 불교적/힌두적/동양적 상응(相應)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불교, 힌두교, 기타의 동양사상들이 엘리엇에게 어떠어떠한 영향을 미쳤다는 영향사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이질적인 다양한
사상/지식들로 복잡한 소용돌이/상호텍스트를 이루고 있는 엘리엇(의 철학과 문학)에게서 불교적, 힌두적, 또는 그 밖의 동양적 흔적도 발견된다는
지적일 뿐이다. 엘리엇의 『네 4중주』는 영어로 씌여진 불교적 공(空)에 관한 가장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며, 엘리엇은 불교도가 됨이 없이 가장
불교적인 되었다는 C.M. 컨즈의 지적은 마땅히 유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컨즈에 의하면(Brooker 1991: 128-135), 엘리엇은
불교쪽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사람이다. 엘리엇이 “인도 철학의 오묘함이 대부분의 가장 위대한 유럽 철학자들을 학동(學童)들처럼
보이게 만든다”(ASG 40)고 말한 바 있으며, “가장 전성기의 중국 문명은 유럽을 조악하게 보이게 만드는 우아함과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ASG 40)고 쓰기도 했다는 점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작금의 국내외의 문학 논의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현상들
중의 하나는 문학 비평/이론이 문학의 논의에 문화 전반에 관한 논의를 끌어들여 문학과 문화 논의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점이다.
이때 문화는 물론 철학과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대중매체 등 광범한 분야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같은 현상의 당연한 귀결의 하나는
문학의 쓰기/읽기와 연구가 이제 역으로 문화에 대한 고려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겠다. 오늘의 시대가 현상학, 구조주의,
해석학/기호학, 해체론, 포스트구조주의, 여성주의, 정신분석학, 대화주의, 신역사주의, 신실용주의 등 새로운 비평 이론과 문화 현상들이 홍수처럼
범람, 앞 시대와 큰 (때로 급진적인 인식론적) 단절을 보이는 문화/문학 환경 속에서 더 이상 전통적인 문학 읽기와 연구 방법론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인문학이 본래적으로 안고 있는 자기해체적 모순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과학(science)의 상태를 지향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단한 변화와 유전의 현상 앞에 이 과학화에의 지향성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겠다. 인문학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
인간다움에 관한 탐구이고, 문학의 존재 이유 역시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간의 삶, 인간다움의 조건과 환경은 부단히 변화하며,
문학은 이 변전하는 삶의 양태들을 낱낱이 포용해야 한다. 오늘의 급변하는 문화/문학 환경은 이를 읽어내는 새로운 독법, 새로운 인식적 지도를
필요로 한다.
폐일언하고, 엘리엇 연구(그의 문학과 철학은 엄격히 구별될 수 없는 하나의 상호텍스트, 하나의 그물망을 구성하고
있다)는 그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엘리엇이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직접 공부를 배웠거나 간접으로 접했던
철학자들에 관한 연구와 이해는 엘리엇 연구를 위해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엘리엇 연구는 베르그송, 브래들리,
러셀, 로이스, 퍼스, 제임스, 아네사끼, 힌두이즘, 불교, 그리고 물론 기독교 등에 대한 이해와 비교연구를 필요로 하고 또한 그같은 연구가
가능하다. 또 모더니즘의 챔피언인 엘리엇 연구에는 모더니즘/뉴크리티시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 그리고 현대비평에서
주요한 관심사가 되어 있는 소쉬르, 퍼스, 또 두 사람을 절충하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김성도 196)의 기호학과 실용주의 철학과의 비교연구 역시
광범한 비교학자들의 관심을 초대하고 있는 분야들이다. 그리고 이같은 연구들은 해당 분야들 간의 학제적 협동을 요구한다.
엘리엇
연구는, 설흔 다섯의 작가, 작품 등을 인용, 인유, 패러디한 『황무지』(Wynne-Davies 1007)를 제쳐놓더라도, 무진장한 비교연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매우 새로운 사실이다. 조나던 컬러에 의하면, 소쉬르는 그의 구조주의 언어이론의 형성과정에서 미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로부터 통찰을 얻었으며(Culler 106-7), 휘트니가 언어학을 제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Saussure 76)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 엘리엇의 하버드 철학과 시절의 교과목 인도 언어학(Indic Philology 1a.
Elementary Sanskrit)에 휘트니의 『문법』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엘리엇이 휘트니의 『문법』 연구로부터 어떤 언학적인 견해를
갖게되었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거리이겠다. 엘리엇은 그 자신 뛰어난 기호/해석학자였던 로이스를 통해 퍼스의 기호학에도 충분히 친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이스의 주저(主著) 『기독교의 문제』(The Problem of Christianity, 1913)는 기실 공동체적 사회에의 이상과
기호/해석에 관한 논의이다. 엘리엇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퍼스의 상징(symbol)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엘리엇, 휘트니, 로이스, 퍼스,
소쉬르 간의 관계는 개척자적인 비교연구의 발길을 기다리는, 전혀 미답의 새로운 미개척 분야이다. 엘리엇, 휘트니, 로이스, 퍼스, 소쉬르 간의
비교연구는 뒤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소쉬르의 언어이론을 차용하고 있는 데리다를 위시하여 광범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언어이론과 엘리엇(의 문학론,
기호/해석론, 및 철학사상) 간의 비교연구를 초대하는 단초도 된다.
지금까지 거의 거론되어본 적이 없다시피 한 엘리엇과
과학자/수학자 출신의 철학자 A.N. 화잇헤드 간의 관계와 관련된 흥미 있는 몇가지 사실들이 있다. 화잇헤드는 그의 주저 『과학과 근대세계』의
한 장(章)을 통째로 할애하여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을 다루고 있으며, 엘리엇은 ?시와 선전?에서 이를 비판한 바 있다. 또 엘리엇이 1927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17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에 관한 시리즈 문학강연(“클라크 강연들”)을 했을 때 화잇헤드가 그 첫회 강연에 참석했다고
로널드 슈하드는 증언하고 있다(Schuchard 11).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 시점이 화잇헤드가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로 자리를 옮겨 가 있던
시기인데 어떻게/왜 그가 이 자리에 참석하였느냐 하는 점이다(화잇헤드 전문가인 오영환 교수께서도 한 사석에서 이 점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또 한가지 그동안 엘리엇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오래 동안 간과돼온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공교롭게도(어쩌면 필연적으로),
엘리엇이 그의 『기독교와 문화』 제3장(章)에서 화잇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의 한 구절을 서구(epigraph)로 인용한 후 일체의 자연현상은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화잇헤드적인 관계론을 연상시키는 관계론적 “문화의 생태학”(ecology of culture)을 제안하고 있다(CC
123)는 점이다. 일체 현상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화잇헤드의 관계론적 과정철학 또는 유기체 철학은 생태주의적 사고의 선구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따라서 시종일관한 관계론적/유기체적 사유틀을 보여주는 엘리엇과 화잇헤드는 관계론적/유기체적 사유에 있어 비교연구가 가능하며, 이같은
관계론적 비교연구는 생태-여성주의와의 비교연구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엇의 관계론적 “문화의 생태학” 역시 생태주의적 엘리엇(의
문학/철학) 읽기를 초대하는 새로운 연구과제이다.
1964년 엘리엇의 브래들리 철학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이 근 반세기만에 출판되자
누구보다 먼저 이를 읽고 이를 엘리엇 문학 연구에 도입한 최초의 비평가 힐리스 밀러에 의하면(167-8, 170-2), 엘리엇의 시종일관한
모델은 관계론이다. 화잇헤드 학자 리몬 맥헨리는 『화잇헤드와 브래들리』에서, 화잇헤드가 브래들리의 관념론적인 내적 관계론과 러셀의 실재론적인
외적 관계론을 종합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McHenry 80). 여기서 화잇헤드가 윌리엄 제임스의 다원주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음 역시
흥미로운 일이다. 엘리엇은 하버드 철학과 학생회장 시절 발표한 한 논문에서 제임스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면서도 그의 급진적 경험주의를
긍정하는 듯한 2중적인 견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일원주의자로 (과장되어) 알려지고 있는 엘리엇의 다원주의적 국면은
브래들리적인 일원주의적 관계론보다 화잇헤드와 제임스의 다원주의적 관계론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물론, 엘리엇의 절충주의적, 제설통합주의적,
중도적 태도가 그렇듯이, 엘리엇에게는 일원적 국면과 다원적 특성이 공존한다.) 마지막으로 브래들리, 화잇헤드, 엘리엇에게 있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적 특질은 캐톨릭적인 열림과 너그러움이다. 예컨대 이같은 점들은 엘리엇과 화잇헤드/제임즈, 그리고 브래들리, 러셀 간의 시급한
비교연구를 기다리고 있다(졸고 ?T.S. 엘리엇의 철학적 계보학? 75-80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밀러 자신도 그렇고, 그
이후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엘리엇의 관계론적 모델의 의미/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와
문학이론은 해체철학적, 불교적, 유교적, 노장(老莊)적인 상호의존적/관계론적 사유태도와 연결시킬 수 있는 실마리이다. 어줍짢은 영문학자의
소견이지만, 이들 간에는 매우 중요한 비교연구의 실마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관계론적인 사유의 문제는 헤라클리투스, 노자, 불타,
용수, 브래들리, 화잇헤드, 비트겐슈타인, 니체, 데리다, 바르트, 라캉을 엘리엇과 비교연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졸고
?해체철학의 선구들: 노자로부터 엘리엇, 데리다까지? 참조).
이밖에 러셀, 브래들리, 화잇헤드 등과의 지적 문맥을 공유했던
엘리엇과 비트겐슈타인 간의 관계는 전혀 새로운 앞으로의 관심거리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나타나는 관계론적인 사유는 일단 엘리엇의 시종일관한
관계론적 모델과의 비교연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불교와 엘리엇, 불교와 비트겐슈타인 간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엘리엇과 비트겐슈타인은 불교라는 공통인자를 통해 비교연구해볼 만한 기본적인 환경이 갗추어진 셈이다. 더욱이 엘리엇과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불교적 연구들은 주로 나가르주나(龍樹)를 비교연구의 대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듯 싶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은 나가르주나를 통해 비교연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T.R.V. 무르티는 『불교의 중심철학』에서 엘리엇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연구 대상인 브래들리를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中觀思想) 문맥에서 다루고 있으며, 표도르 체르바츠키는 그의 『불교의 열반 개념』에서 브래들리를 “순수한 마디아미카”(Mad-
hyamika: 중관주의자)라고 규정하고 있음도 함께 지적될 필요가 있다(졸고 ?T.S. 엘리엇과 불교? 54-55 참조). 이밖에도,
비트겐슈타인은 정통적인 철학에 무지하고 그것을 거부한 반면, 오직 니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엘리엇은 그 니체를
“폭도”(mob)로 매도한 바 있지만, 두 사람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적 사유 태도가 플라톤 이래의 실체론적 존재론을 급진적으로 해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근원적인 유사성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니체, 비트겐슈타인, 엘리엇의 비교연구 역시 앞으로의 과제이다.
3.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의 의의/중요성
철학적 엘리엇 연구의 큰 두 갈래는 관계론적 접근과
실용주의적/기호학적(실용주의는 곧 의미론이다) 접근이다. 그리고 이 접근은 총체적 엘리엇 이해라는 보다 큰 틀에서 함께 만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주의 관념론 철학자 브래들리에 관한 철학박사학위 논문을 썼던 엘리엇의 결론은 브래들리의 우주가 신앙의 행위에 의해 파편들을 짜맟춘
것에 지나지 않으며(KE 202, 200), 형이상학은 로켓처럼 하늘로 솟았다가 막대기처럼 땅으로 떨어진다(KE 168)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체의 절대주의 형이상학에 대한 거부였으며, 이같은 배경이 그의 철학적 문학적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의 원천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같은
결론을 도출시킨 것이 바로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이고 그 귀결은 절대주의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관계론적 사유에
의하면 일체의 현상은 여러 요소들 간의 잠정적 구축(construct)일 뿐이며, 이같은 구축된 존재(entity)들은 필연적으로
탈구축/해체(deconstruct)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불변의 자아, 정체성, 본질, 주체, 객체, 진리, 의미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급진적인 해체적 사유이다. 관계론적 사유의 세계에 불변하는 절대(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다. 오직 각종 이념틀들에 의한 해석들과
실제(practice)적 필요성들에 의해 지배되는 상대적인 실용주의적 가치만이 있을 뿐이다. 윌리엄 제임즈에 의하면, 진리는 현금 가치(cash
value)일 뿐이다. 이같은 점은 니체, 그리고 니체의 영향을 받은 푸코 철학의 어떤 면과 매우 유사한 대목인 듯 싶다. 엘리엇에 의하면,
일체의 담론들은 갖가지 욕망과 이념과 해석으로 얼룩져 있다. 이 경우 현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보기는 불가능하다.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와 실용주의적 태도는 절대주의 관념론자인 브래들리의 “진리의 정도 이론”, “사실들의 상호의존의 이론”, 및 “내적 관계의 이론”,
그보다 앞서 하버드 철학과 시절 로이스를 통해 접했던 퍼스의 일체 현상이 서로 연속되어 있다는 연속주의(synechism)와 실용주의(기호학)
사상, 그리고 일체 현상의 상호의존적 원리와 일체의 현상의 공성을 가르치는 불교의 연기설의 교의 등과의 유사성 및 차이성이 비교연구 될 수
있다. 특히 엘리엇의 형이상학 비판은 일체의 궁극적인 것에 대한 물음에 침묵을 지킨 불타의 형이상학 거부 및 실용주의 국면과 비교될 수 있다.
엘리엇의 관계론은 이 밖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임즈 맥팔레인은 ?모더니즘의 정신?에서
”개인과 전체 간의 변화하는 관계“, “사물들의 총체적 관련성에 대한 의식”, “관계들의 세계”가 시인들의 주요한 관심사였다고
지적했다(Bradbury & McFarlane 83). 입체파 화가 조르쥬 브라크는 “나는 사물을 믿지 않는다. 단지 사물의 관계만을
믿는다”(qtd in Culler 202)고 말한 바 있다. 조나던 컬러에 의하면(Culler 202), 이것이 “진정한 모더니스트의
신념”이었다. 관계의 우위성이 제1의 신조로 들어선 것이다. 이는 실체론적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적/파편적 존재론으로의 급진적 전환, 세계를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그 후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가장 명쾌한 답변을 시도한 이론가 장-프랑소아 료타르가 어떤 자아도 하나의 섬이
아니며, 각각의 자아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유동적인 하나의 관계들의 짜임 속에 존재한다(Lyotard 15)고 말할 때 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관계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확히 예견해주었다. 무엇보다도 관계론은 구축과 탈구축/해체의 이론과 직결되어 있다. 레나드
롤로는 ?데리다에 있어서 근원적 쟁점으로서의 관계?에서 관계의 문제를 “데리다에 있어서의 근원적 쟁점”으로 제기하면서,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에 대한 데리다의 소개서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서설』이 『기하학의 기원』의 관계의 개념에 바쳐졌으며, 이 관계의 문제가 데리다의 모든
후설 해석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롤로에 의하면, 데리다의 핵심 개념인 디페랑스(差延) 역시 관계의 문제이다(Lawlor 15).
해체철학에 있어 “관계”의 문제가 핵심적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같은 문맥으로부터이다.
관계론은 이 밖에도 다양한 포스트모던
이론들, 모든 존재의 평등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생태-여성주의, 바흐친적 대화주의, 지구/촌(glocalization) 시대의
상호의존적 사회-정치학 등의 상생의 패러다임들, 그리고 양자이론, 카오스이론, 각종 시스템이론에 있어서도 키워드가 되고 있다. 이 모두가
엘리엇(의 관계론)과의 비교연구를 초대하는 항목들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테리 이글턴, 로버트 콘 데이비스와 로널드 슐라이퍼 등에 의해서
빈번히 거론되는 엘리엇의 문화론 역시 관계론적인 상생의 문화생태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문화적 다원주의 현상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주요한 비교연구거리이다.
4. 엘리엇과 비트겐슈타인: 의미의 전일주의
엘리엇
연구와 관련 근 30여년 동안 간과되었던 중요한 사항이 있다. 리처드 쿤스는 이미 70년대에 『문학과 철학: 경험의 구조들』에서 엘리엇 연구를
화잇헤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프레게, 그리고 니체와 접목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 바 있으나 그 동안 전혀 엘리엇 학자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였다. 쿤스에 의하면(Kuhns 217-8),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출현은 ... 그 시대의 다른 출판물들과 많은 특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 그것은 러셀, 화잇헤드, 프레게의 논리적 사상을 답하고 가다듬고, 교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 그것은
훨씬 더 폭넓은 반려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논고』가 출판되던 즈음에 다른 저작들이 ...
출판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러셀과 화잇헤드의 『수학의 원리』, T.S. 엘리엇의 『황무지』, 그리고 니체의
경구적인(aphoristic) 글들이다. 『논고』는 『원리』라 할 수도 있고 『황무지』라 할 수도 있다, 전자의 논리적 힘을 소유하고 후자의
시적 비전을 소유하기도 한.”
또 쿤스가 지적한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 스타일은 즉각 엘리엇의 글쓰기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쿤스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 방식이 명제들을 적은 조각들을 짜맟추는 제텔적(Zettelistic) 글쓰기 방식이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텔(Zettel)은 독일어로 종이 조각(scrap of paper)을 의미하는 단어이다(Kuhns 219). 여기서 우리는 따로 따로 일을
하고 다음에 이것들을 종합하는 엘리엇의 시쓰기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수의 작가, 작품, 문헌 등을 짜맟춘 『황무지』는 그같은 제텔적
글쓰기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총체적 인식이 불가능하고 오직 단편적/파편적 인식만이 가능했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공통적 글쓰기 특징이었는지
모른다.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의 문장/단락(들의 모임)에 번호를 붙이는 파편적인 글쓰기를 생각해보라. (이것은 나가르주나의 글쓰기 특징과도
유사하다.) 그같은 글쓰기들이 유기적 통일성, 유기적 총체를 성취했는가 또는 이미 그 자체로서 해체된 허접스레기들의 더미인가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부서진 이미지들의 무더기”, “이 파편들을 나는 나의 폐허 위로 끌어올렸다”고 쓰고 있다.
엘리엇을 비트겐슈타인과 접맥시켜볼 수 있는 또다른 중요한 단초가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론적인 “의미의
전일주의(meaning-holism)”라 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있어서의 상호성(reciprocity)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진정으로 문맥적인 의미의 이론”을 공식화한다. 이같은 공식화에 의하면(Kuhns 232), 언어적 단위들의 의미는 논리적 공간 속의 다른 모든
단위들에 의존하며, 논리적 공간 속에서 모든 위치/장소(location)들은 동등하게 효능이 있다, 즉 궁극적으로 모든 명제들은 다른 모든
명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의 단위만을 위해서는 어떠한 의미도 부과되지 않고 결정되지 않는다. 의미는 하나의 명제가 논리적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장소에 의해서, 그것이 다른 명제들과 맺는 관계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사물들은 오직 나의 의지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의(significance)'를 획득한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이 간단한 것으로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진술은 언어(적
단위들)의 본래적인 의미/본질/정체성을 거부하고 그것들의 존재(의 의의/의미)가 오로지 외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혁명적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칸트적 물-자체(thing-in-itself)에 대한 거부, 플라톤 이래 서구에서 두 밀레니엄 동안 군림해오던 실체론적 존재론에
대한 근원적 불신의 선언이기도 하다(Kuhns 25). 비트겐슈타인의 구절을 앞서 인용된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들과 비교해보라. 엘리엇은
?전통과 개인 재능?에서 “어떤 시인, 어떤 예술가도 혼자서는 그의 완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의 중요성, 그의 평가는 죽은 시인들과
예술가들과의 그의 관계에 대한 평가이다. 우리는 그를 혼자 평가할 수 없다. 우리는 그를 대조와 비교을 위해서 죽은 이들 사이에 놓아야
한다“(SW 49)고 쓴 바 있다. 그리고 칸트적 물-자체의 해체의 문제는 비트겐슈타인, 엘리엇, 니체가 모두 함께 만나는 합류지점이다.
에드가와 세드그윅에 의하면, 전일주의는 한 마디로 문맥적인 진리/의미/해석의 이론이다. W.V. 콰인 등의 철학자들,
슐라이어마허로부터 하이데거, 가다머에 이르는 광범한 해석학의 전통 내의 많은 문화적, 문학적 이론가들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이 전일주의적 견해에
의하면, 개별적 진술/발언의 문맥보다 더 넓은 문맥에서를 제외하고는 의미들을 부과하거나 신념들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같은 해석적
“지평”을 얼마나 넓게 잡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의견들이 다양하고 분분하다. 대부분 영-미의 (“분석적”) 진영의 철학자들은 실용주의적
전망을 채택하여, 한계의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은 반면, “대륙”의 사상가들은 하이데거를 따라서 바로 이 문제를 중심적 관심사로 하는
심층-해석 접근방법을 신봉하고 있다. 여기서 문학의 애매모호성의 문제를 제기했던 윌리엄 엠슨이 그의 스승 I.A. 리처즈가 발전시킨 전일주의
이론을 거부했다는 사실 역시 특별히 명기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Edgar & Sedgwick 168-180의 "holism"
항목 참조). 이같은 상황은 엘리엇을 뉴크리티시즘의 두 주요한 이론가였던 리처즈와 엠슨, 그리고 콰인, 하이데거, 가다머 등의 의미/해석의
이론가들과 비교연구(해야)할 필요성/타당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맨주 자인의 지적처럼(Jain 148-151), 엘리엇은 하이데거, 가다머,
퍼스, 데리다, 니체 등과 의미/해석의 입장에 있어서 매우 민감한 유사성과 차이성을 보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엘리엇의 풍요로운 비교문학적
전망들이 아닐까 한다.
4. 엘리엇과 니체: 해석학적, 관계론적/해체철학적 사유
엘리엇은 일찌기
니체가 문학과 철학을 혼동했다고 비난하고, 그를 폭도에 비유한 바 있지만,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론적인 전복적 인식론에 있어 매우 유사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종래 누구도 진지하게, 심도있게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지만, M.A.R. 하비브가 1999년 출간한 저서에서 이 문제가
다소 다루어져 이같은 방향의 연구 가능성을 시사해주었다. 이 점에서 하비브의 연구는 가장 최근에 엘리엇 연구에 있어 거두어진 획기적인 새 성과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비브에 의하면(146), 엘리엇은 학위논문을 완성하기 전에 니체를 읽었으며, 니체와 함께 칸트의
현상(phenomena)과 실체(noumena) 구별을 기껏 해야 실제적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했다. 칸트 자신은 유클리드적 공간의 타당성을
공리적(axiomatic)인 것으로 간주한 데 반해,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에서 칸트의 범주들이 ‘유클리드적 공간이 조건적 ”진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위한 삶의 조건들이라는 의미에서만 ”진리들“이다’고 (실용적인 견해를) 진술했으며, 『선악을 넘어서』에서는 칸트의 “숨은
신” 또는 “물 자체”를 진리의 관념을 안정화시키는 수단이라고 조롱했다.
하비브는 엘리엇과 니체 간에는 이 밖에도 최소한 3가지의
유사성들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146-7). 첫째, 엘리엇이 실재의 기준을 궁극적으로 사회적 실제로 간주하는 것과 똑같이, 니체도 ‘현상은
하나의 배열되고 단순화된 세계이며, 이 세계에서는 우리의 실제적 본능들이 작용해왔다’고 긍정한다. 둘째, 엘리엇은 이 실제적 실재를 관계들의
체계로 간주한다. 니체 역시 현상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관계들의 세계이다...그것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하나하나의 모든 관점으로부터 다르다’고
주장한다. 세번째 가장 현저한 유사성은 실재가 다양한 시점들의 동일한 지시들(identical references of various
points of view--KE 141)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는 데 있다. 니체에 의하면, “현상”의 세계는 우리가 실재(적)이라고 느끼는
개조된(adapted) 세계이다. “실재”는 동일한, 친숙한, 관계지어진 사물들이 그것들의 논리화된 성격으로(in their logicized
character) 계속 반복발생하는 데 놓여 있다. 하비브는 이같은 니체의 견해가 엘리엇의 박사학위 논문의 몇몇 구절들과 거의 정확하게 같은
것으로 읽혀진다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하비브는 칸트에 대한 엘리엇의 견해들이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 로이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고, 두 사람은 니체의 견해들과도 명백한 평행들을 과시한다고 말한다. 하비브에 의하면, 예컨대, 엘리엇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지식을
사회적 공동체적 구축물로 간주했던 것과 똑같이 로이스도 『기독교의 문제』에서 그가 “보편적 공동체”라고 부른 것에 의해서 지식의 중재된 성격을
주장했으며, 니체 역시 쇼펜하워와 베르그송처럼 실재를 하나의 실용적, 사회적, 이념적 구축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철학이 무사심한 지적
활동을 구현한다는 주장들을 회의하는 이질적 전통(heterological tradition)에 속한다(Habib 146-8).
그러나 하비브는 “신과 마몬(Mammon: 富의 神)은 세계에 대한 해석들이며,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엘리엇의 박사학위 논문
구절을 “거의 니체적인 논평”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엘리엇과 니체의 해석에 관한 견해의 중요한 유사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해석에
대한 니체의 입장은 한 마디로 “사실들은 없고 오직 해석들뿐”(Colapietro 19)이며, 완벽한 해석이란 없다(White 13)는 것이다.
그는 『권력에의 의지』(WP §599) 등에서 “앞서의 해석들의 허위성에 대한 통찰”에 관해 논하고 있는데, 이같은 통찰은 예컨대 우리가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의 조망은 단지 하나의 조망일뿐, 의무적(obligatory)인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허위인 것은 그 조망 자체가 아니고, 그 조망이 하나의 조망(일뿐)이라는 것의 부인/부정이다(White
47). 니체에 의하면, “지식”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 한 세계는 알 수 있다(knowable). 그러나 그것은 달리 해석될 수
있고, 그 뒤에 아무런 의미(Sinn)를 갖고 있지 않고, 무수한 의미들--관점주의(perspectivism)--을 가지고 있다. 사실들은
해석되기까지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들은 항시 다중적인 해석에 열려 있기 때문에, 어떤 “사실”도 그 혼자서는 고유한, “정확한”
해석을 내포하지 않는다(White 48). 때문에 니체적인 관점주의는 해석들을 피하고 사실들에만 의존함으로써 인식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객관주의 또는 실증주의라는 형이상학적 극단들도, 사실들은 없고 오직 해석들만 있다는 상대주의 또는 관념주의라는 포스트형이상학적 대안들도 모두
회피한다(White 11). 이런 점은 니체의 불교적 중도에 접근하는 면으로 생각되며, 니체의 계보학을 계승하는 것으로 자처하는 푸코에게서도
보이는 태도이다(니체와 푸코의 중도적 입장에 관해서는 졸고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 및 ?불교, 니체, 포스트모더니즘? 참조).
니체의 계보학적인 해석학은 토대적 기원(foundational origin)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 사물의 기원의 원인과 그
궁극적 유용성, 그 사실적 차용(factual employment)과 하나의 목적들의 체계 내에서의 자리메김들은 천지차이이다. 유용한 어떤 것이
어떻게 하여 어떤 안정성을 획득한 뒤에도 (또는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새로운 견해들을 위해 되풀이 하여 재해석되며 새로운 용도를 위해 변형되고
재배치된다. 정복/터득한다는 것(mastering)은 하나의 재해석, 재배열이며, 이에 따라 앞서의 의미와 목적은 필연적으로 흐려지거나 심지어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고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쓰고 있다(White 41에 인용).
엘리엇의 니체적인 해석관은 그가 그의 여러
철학 글들에서 서술(description), 설명(explanation),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용어들을 구별할 때 나타난다.
그는 처음에는 설명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현실을 왜곡하지만, 서술은 그러나 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뒤에 그는 이같은 생각을
바꾸어 서술 역시 사실/현실을 왜곡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서술된 것들은 “사실(fact)”들이 된다. 엘리엇에 의하면, 인식은 그
자체로서 왜곡이다. 인식은 곧 해석이고, 해석은 주관적이고 주관은 이미 주체의 이념과 욕망에 의해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에게는 사실은
없다. 때문에 그는 설명과 해석 행위를 불신한다. 해석은 허위화이다. 그럼에도 모든 존재는 이 해석에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인도의
오의서 우파니샤드에서 천지창조주 프라자파티의 한마디 “다(Da)!”를 신, 인간, 악귀가 각기 “자제하라(Damyata)”,
“주라(Datta)”, “공감하라(Dayadhvam)”로 달리 해석한 것이 그 한 예이며(CPP 74, 80), 로고스(Logos)는 공통이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해/지혜를 가진 듯이 행동한다(qtd. in CPP 171)는 헤라클리투스의 지적은 또 다른 예이다.
엘리엇에
의하면, 비평의 임무는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하는 것(elucidate),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실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elucidate”를 “설명하다”고 번역하면 엘리엇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가 되고만다.) 엘리엇의 문학 인생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할 “비개성주의”는 이같은 해석(의 방종)을 해석의 공동체(community of interpretion) 즉 전통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의 소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전통은 “하나의 의미부여체계”(a meaning-giving system--Levenson
187)), 일종의 외적 질서(external order)이다. 엘리엇은 인간의 해석의 욕망과 다원적 해석의 자유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니체와 견해를 같이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요일 날 공원의 자유연사들처럼 모두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난장판을 통제할 질서의 필요성을 더 중시(SE 23-4)한 것이 니체와의 차이이다. 엘리엇이 윌리엄 블레이크를 “시적인 천재”로 칭송하면서도
멋대로 놀아나는 괴벽장이라 비판(SE 317-22)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한다.
또 한가지, 하비브가 엘리엇과 니체의
비교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더욱 근원적이고 중요한 사항은 두 사람의 관계적 사유가 칸트적 물-자체를 해체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그들의
철학사상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비브는 이 문제의 변죽만 울리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 채 이 문제에 관한 논의를 아쉽게 끝내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엘리엇과 니체에게 있어서의 관계적 사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점에 있어서는 엘리엇의 박사학위
논문 및 기타 철학 에세이들의 총체적인 구도를 꿰뚫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도 언급되었 듯이, 힐리스 밀러에 의하면, 엘리엇의
의식의 변함 없는 모델은 관계에 대한 의식이며, 알렉산더 네하마스가 강조하듯이 일체의 현상들이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은 니체 사상의
핵심이며(Nehamas 77), 두 사람의 바로 이같은 인식이 칸트적 물-자체의 개념을 수용할 수 없게 만드는 근원적인 배경을 이룬다는 점을
하비브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칸트적인 물-자체의 해체는 실체론적 존재론의 가장 급진적 전복이며, 데리다적 해체철학을 비롯한
광범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핵심적 관심사이다. 물-자체의 해체는 불교적 표현을 빌면 자성(自性)의 파사(破邪)이다. 그리고 자성의 파사는 불교의
중심교의인 연기설의 핵심이다. 따라서 엘리엇과 니체의 위와 같은 국면은 두 사람을 데리다적, 불교적 해체/파사와 접맥시켜주는 핵심적인
실마리이기도 하며, 특히 엘리엇 연구를 전반적인 포스트모던 이론들과 비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엘리엇과 니체, 그리고 나아가서 불교 및
해체론과의 개별적 또는 총합적 연구는 다음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다.
데리다의 해체철학과 푸코의 고고학/계보학 및 광범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니체와 엘리엇의 인식론적 유사성은 반동적 모더니즘의 챔피언 엘리엇을 여러 포스트-/모던적, 포스트-/구조주의적
이론들과 비교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며, 무엇보다도 데리다 등 유럽의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유일하게 높이 평가하는 퍼스(의
실용주의/기호학), 그리고 데리다의 해체철학의 언어학적 선구인 소쉬르를 엘리엇 연구에 끌어들일 수 있는 여건도 아울러 마련해준다.
이 모든 상황들은 엘리엇을 포스트모던적 기호/해석 이론들의 문맥 속에서 조명하는 것이 결코 황당한 장난이 아님을 뒷받침한다.
김성도 교수의 소쉬르, 퍼스, 에코 읽기는 이같은 조명의 가능성/타당성에 대한 뒷받침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졸고 ?T.S. 엘리엇의 비개성주의와
포스트모던 이론들? 131-136 참조). 이 점에서 윌리엄 브루스 맥그리거가 1981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 ?T.S. 엘리엇: 현존을 위한
메타포?에서 엘리엇을 브래들리 철학과 데리다의 해체철학, 그리고 퍼스, 로이스, 소쉬르의 언어이론의 문맥에서 조명했던 선구적인 통찰이 그 후
20여년 동안 엘리엇 학자들 및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는 것은 “흄-파운드-엘리엇-모더니스트 신화”의 장벽이 여전히
높고 두텁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싶다.
엘리엇은 오로지 순응주의적인 모더니스트로, 뉴크리티시즘의 이론적 창시자로 우상화되기에는
너무나 그같은 지위들의 전복을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을 자신의 내부에 지니고 있다. 엘리엇의 관계론적 사유, 반(反)절대주의, 실용주의,
제설통합주의, 절충주의, 불교적인 중도주의(?)는 엘리엇의 안정된 지위를 불안정화시키는 원인들이다. 엘리엇은 에즈라 파운드와 휴 케너의 표현처럼
“늙은 들쥐”, “보이지 않는 시인“이다. 천(千)의 얼굴을 가진 엘리엇은 그 자신이 해체된 존재, X표하여 지워진(crossed-out),
따라서 지움 아래(sous rature) 놓여진 존재이다. 데리다적 디페랑스(differance), 니체적-하이데거적 지움아래두기의 개념이
엘리엇에게보다 더 잘 적용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부서진 이미지들의 무더기”,
“이 파편들을 나는 내 폐허 위로 끌어올렸다.” 이제 “나는 최소한 내 땅들이나마 질서를 잡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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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S. Eliot -the Clearinghouse of Humanities and
Comparative Studies-
Kyung-Il Park
List of courses taken by
Eliot while at Harvard shows his wide-ranging interests in humanities and
comparative studies: English, German, French, Latin, and Greek Litera- tures,
four courses of Comparative Literature, five courses of Indic Philology,
History, Government, Fine Arts, Ethics, Experimental Psychology, and other
graduate courses of Philosophy Department. Eliot's Harvard years reveal, as
Manju Jain suggests, "the gene- sis of his major literary, religious and
intellectual preoccupations in his early work as a student of philosophy" and
"its influence on his poetic and critical practice", though he abandoned
philosopher's career for poetry.
Josiah Royce's Seminar, 1913-1914,
Eliot attended seems to have formed Eliot's catholicity of interests in human
sciences and knowledges in general. Royce's Seminary in Logic (Philosophy 20c.
Subject for the year: a comparative study of various types of scientific method)
"commanded a scale of subject matter ranging from mathematics to epistemology
and from biology to ethics". It was "a veritable clearinghouse of science", as
Richard Hocking recalls, in which "[m]en of widely different training and
techinique" --chemist, physiologist, psychologist, pathologist,
embryologist/histologist, statistician, ma- th matician, archaeologist,
economist/industrialist, and experts on English literature and fine arts--"who
could not understand one another, were here interpreted to one another by Royce,
who understood them all". It was a community of scholars, a community of
interpretation, initiated by C.S. Peirce, the founding father of American
Pragmatism and Semiotics and succeeded by Royce, to be found no where in the
world at the time.
Eliot seems to retain some traces of this
Peircean/Roycean clearinghouse of humanities in his philosophical,
poetic/critical, and other (jounalistic) career. As is commonly noted, one
striking feature of Eliot's intellectual developments is his syncretic and
eclectic--thus relativist--attitude which absorbs and synthesizes all things
into an organic whole. The Waste Land well attests this when in this long poem
of 433 lines Eliot cites, alludes to, parodies and/or adapts 35 writers, works,
and other literatures, making a literary collage out of them. It should also be
noted in Eliot's intellectual activities that from 1922 to 1939 Eliot worked as
editor for a quarterly literary magazine, The Criterion, and wrote twenty-one
review articles on sixty-one books of various subjects: language, literature,
history, anthropology, civilization, religion, theology, philosophy, psychology,
science, politics, sociology, dance, etc., and that during that period he
commented on various everyday public affairs. These articles, reflecting Eliot's
wide-ranging concerns in general humanities, might shed new lights on Eliot
studies, opening the way for an ex- tensive comparative studies.
In one
of his seminal critical essays Eliot wrote: "No poet, no artist of any art has
his complete meaning alone. His significance, his appreciation is the
appreciation of his relation to the dead poets and artists. You cannot value him
alone; you must set him, for contrast and comparison, among the dead." Eliot
declared this to be "a principle of aesthetic, not merely historical,
criticism". This principle of impersonality also coincides with his another
poetic/critical theory of unified sensibility: To a sensitive poet, Eliot said,
a thought is an experience and it modifies his sensibility. A poet's mind, "when
perfectly equipped for its work", constantly amalgamates disparate experience.
In the mind of a poet numerous experiences "are always forming new wholes".
Eliot's poetics might be summed up as one of relation/contrast/comparison, which
has been commonly called impersonal theory of poetry.
All these features
make Eliot the sources and resources of humanities and compa- rative studies
which ambitious challenging scholars cannot turn their back to. Eliot stu- dies
indeed point to the possibilities/necessities of wide-ranging inter-disciplinary
coope- rative and/or comparative work between different humanities that might
have been incorporated into his literary works.
(출처: 이선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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