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에게 바친
문인들의 찬사
이영미
<샘이 깊은
물>, 1996년 3월호, 112-117쪽
지난해 말부터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 이른바 "과거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의
큰 물결은 온 국민을 실로 격세지감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군사 반란 수괴", 국가의 정치적 기본 조직을 파괴하여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 악당 두목, 이른바 "내란 수괴", 내란 목적으로 양민들을 마구 학살한 "살인마". 이것이 모두 두 전직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임을 이제 온 국민이 공감하고 있지 않나?
그러나 그 두 "학살의 수괴"들, 특히 광주 금남로를 어진 백성들의 피로 물들이고
그해에 바로 대통령에 오른 전 두환 씨의 등장은 참으로 솔로몬의 옷보다 더 화려했다.그 옷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화려하게 수놓은 이들은 "언어
예술사들", 그중에서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인간의 영혼을 노래한다는 "순수 문학인"들이었다.
예술원 원장 조 병화 씨가
시로 한 찬양
"국민시인"이라 칭송받았던 조 병화 씨는 팔십년 팔월 이십팔일치 [경향신문]에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라는 제목으로 전 두환 씨의 대통령 취임을 이렇게 찬양했다.
"새시대, 새역사의 통치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새
대통령/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이 새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 청렴결백한 통치자/ 참신과감한 통치자/ 이념투철한 통치가/ 정의부동한
통치자/ 애국애족, 사랑의 통치자// ···실로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거/ 그 이끄는 힘이 만드는 거/ 아, 이 새로운 영도/ 이 출발/
신념이여, 부동불굴하여라/ 영광이여, 길이 있어라/ 축복이여, 무궁하여라." 그 축시의 첫째, 둘째 연과 마지막 연이다.
그해 구월
칠일치 [일요신문]에도 그 이가 전 두환 씨의 대통령 취임을 찬양한 시가 또 한편 전 두환 씨의 취임식 기념 사진과 함께 한면에 빼곡히 채워져
있다. [국운이여! 막강하여라]고 이름붙인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월 일일, 온 국민의 열렬한 환영과, 막대한 기대, 소망
속에서/ 제십일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신 새 대통령// 지난 팔월 이십팔일 저녁/ 오래 같이 지내시던 반상회 회원들과/ 담화,
담소하시는 걸 보며/ 그 소탈하심에, 그 가식없음에/ 우리들 주변/ 거대하신 서민을 느끼며/ 하나 하나 앞으로 맡으실/ 나라 살림/ 심중의
이야기 하심을 듣고 있었습니다/ 더욱 '뭐 마실 거 없습니까?'/ 하시며, 평등한 서민 감정을 보이실 땐/ 굵은 한 인간을
느꼈습니다."
"뭐, 마실 거 없습니까?"란 그 한마디에 굵은 한 인간을 느꼈다던 그는 오늘날 그 축시의 주인공이 마침내 반란의
수괴였음이 입증되어 창살 아래 갇힌 현실을 두고는 무엇을 느낄까?
그 시절에 대학 강단에 서 있던 그이는 십몇년이 흘러 명예 교수가
되기까지 유신 체제의 청산을 요구하는 온 국민의 민주화 갈망을 꺾고 군홧발로 집권한 군부 독재에 어느 운동권 인사의 말을 빌자면 "예술가의
영혼을 판"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위대함을 강단에 서서 숱하게 역설해 왔을 터이다. 게다가 그이는 문인 협회 이사장을 거쳐, "애국
애족, 사랑의 통치자"라고 칭송했던 자의 죄목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에는, 곧 지난해 십이월 십구일에는 예술원 원장 자리에
올랐다.
전 두환의 미소에 바친 아첨
전 두환 씨의 취임에 축시를 바친 문인은 조 병화 씨뿐만이 아니다.
칠십년대 초에 이미 문인 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던 시인 김 요섭 씨 또한 [서울신문] 팔십년 팔월 이십칠일치에 [참사람 새사람]이란
이름 아래 "참사람은 땅의 새뜻/ 하늘에 올린다/ 새사람은 하늘의 참뜻/ 땅에 알린다···"로 시작되는 축시를 실었다.
그런가 하면
미당 서 정주 씨가 팔십년에 어느 방송에 나와 전 두환 씨의 웃음을 두고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던가 하며 칭송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윽고 그이는 전 두환 씨의 임기가 얼마 안 남은 팔십칠년 일월 십팔일에 [전 두환 대통령 각하 제오십육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라는 이름의 시를 써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를 숱하게 외고 다녔을 무수한 이들의
입술마저 부끄럽게 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 받으소서// 새 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탁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천구백팔십육년을 흑자기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무대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리서는/ 팔육 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팔팔 서울 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늘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천구백팔십육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천만 동포의
기대를 얻으셨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이 기나 긴 시의 전부를 굳이
이 지면에 또 한번 남기는 까닭은 서 정주 씨의 [국화 옆에서]를 외고 감상하며 그 시를 쓴 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면 이 시마저 읽고 생각을
마무리하라고 하고 싶은 데에 있다.기왕에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 "미소"를 두고 또 한번 요절 복통케 할 글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굳이 문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팔십년대 초에 [중앙일보] 논설주간이었던 최 종률 씨는 그 시절에 서슬퍼런 "사회 정화
위원회"의 충실한 기관지인 [정화]란 잡지의 팔십일년 삼월호에 [새시대와 국민 화합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그
이는 전 두환 씨의 미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요즘 전 두환 대통령의 얼굴에서 많은 미소를 읽을 수 있다. 필경 그의
성난 얼굴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할 정도로 그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그 각박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국민이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미소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벽의 쓰레기 하치장에서도, 어느 어촌에서도, 암흑의 탄광 터미널
속에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국제 정치 무대의 한가운데인 워싱턴에서도 그는 미소 짓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워싱턴의 프레스 클럽에서
그의 유머는 세계의 언론인들을 웃겨 주었다."
그런가 하면 그이는 그 글에서 "흔히 아랫 입술을 쑥 내밀고, 성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치인일수록 이 세상은 자기가 아니면 누구도 구제할 수 없다고 믿는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들에게 끝내 최후의 웃음은 주지
않는다"고도 했다."아랫 입술을 쑥 내밀고 있는" 정치인이 누구일까?
저승에서도 부끄러워해야 할 송 지영
씨
온 국민이 절치부심하고 절치액완할 내란 수괴를 두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양하기를 마다지 않았던 문인들의 낯부끄런
행동은 몇몇의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신군부의 막이 올랐던 팔십년 시월 이십일에 국립 중앙 극장 대극장에서는 "전 두환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문화의 날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그 행사의 주최는 그때에 예술원 회장이었던 박 종화 씨,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예총) 회장인 이 봉래 씨,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 원장인 송 지영 씨를 비롯한 한국 보수 우익 문예조직의
대부들이었다.
그날 이른바 "새시대 문화 예술인의 결의를 모은 문화 예술인 결의문"이 채택되었는데 그 제일장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우리 문화 예술인들은 '문화 창달'을 새 헌법의 기조와 국정의 지표로 삼은 정부의 결단을 전폭 지지하면서, 우리들의 창조적 활동으로
천구백팔십년대의 새 시대를 우리 민족사에 문예 중흥의 연대로 기록하려는 역사적인 과업에 동참할 것을 결의한다."
이러한 결의문을
채택한 "한국 문인 협회(문협)"나 예총 같은 우익 문예조직은 이미 오일륙 군사 정권 때부터 정치 권력에 철저히 유착되고 종속되기 시작한
단체들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팔십년에 문예 진흥원 원장인 송 지영 씨는 [조선일보] 팔십년 팔월 십삼일치 "시론"에 "정도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엊그제 국보위상위장 전 두환 장군이 솔직하게 담백하게 자세하게 밝혀 준 그 길이 곧 바른 길이다. … 우리 국가의 앞날리
그 길로만 차질 없이 뻗어간다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어김없이 우리 모두 기대하는 그대로 이뤄질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썼다. 이 글에서
그이는 "입은 가로라도 말은 바로 하라"는 속담이 있음까지 상기시키면서 "혹자는 아직도 구구한 억측에 사로잡혀 눈앞의 대로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모양들이다. 다시금 솔직히 한마디 털어놔야겠다. 부패와 방종과 무질서가 판을 치던 엊그제의 일들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들 눈앞에
팽배한 물결로 넘쳐나고 있는 정화조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밀어내는 그 엄청난 힘의 작용을 한두달전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아닌가.
… 우리 모두 마음을 가다듬고 의식의 밑바닥을 새롭게 청소하여 우리들 앞에 환히 보이는 그 길로 호흡을 함께 하여 멈추거나 머뭇거림 없이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그 길만이 번영을 가져오는 실이요, 그 길만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로서 자손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길이다…"고까지 했다.
이미 고인이 된 그이는 "나라의 흥망에는 필부도 책임이 있다는 예로부터의 말이 있으니, 국가에
대한 책임은 온 국민이 함께 저야 할 것이나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그 책임이 한결 더 무거운 것이기에, 한 시대를 말할 때 항상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자취가 커다란 줄기로 남게 된다"([정화] 팔십일년 칠월호 [지식인의 특권은 자만 아닌 책임이다]. 송 지영)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이는 저승에서나마 이제라도 자기의 그런 발자취를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김
동리, 박 화목, 성 기조, 이 병주
팔십년에 문협 이사장이었던 평론가 조 연현 씨 또한 부끄럽기는 송 지영 씨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오일칠 비상 조치"라는 것이 오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역사 최대의 반역 조처였음을 눈앞에 보고도 그이는 문화 예술 진흥원에서
발간한 월간 [문예 진흥]에 그 조처를 미화하는 글을 서슴없이 써댔다.
"팔십년대를 민주적인 정치 발전의 시대로 생각했던 것은
좋았으나 그 민주적 현상이 국가와 사회를 위험한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일대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시정하려는 새로운 노력이 오일칠의
비상조치로 나타났고 그 비상조치 이후에 나타난 각종의 사회적 상황과 변혁이 팔십년대를 새 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새로운 의욕의 구체적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이는 또 [동아일보] 팔십년 구월 육일치에 [문화의 창달]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전대통령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전기한 시책 방향은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문화적 혁명을 시도해 보려는 보다 고차원적인 정치적 이념과 결부되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면서 학살 수괴의 대통령 취임사를 적극으로 옹호했다.그러나 군부 독재를 향한 그이의 이러한 태도를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 광섭,
김 영랑, 서 정주, 박 종화, 정 비석 씨를 비롯해서 이른바 순수 문학의 첨병이라 할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러했듯이 그이 또한 이미 오래
전부터 반공 문학의 효장으로 활약해 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들이 쓴 시나 글들이 국어 교과서에 위대한 작품으로 실려 몇십년 전부터
오늘날까지도 숱한 청소년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감상되고 있는 것이 격세지감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다.
죽기 전까지 순수
문학의 전사이자 원로 소설가로 추앙받았던 김 동리 씨도, 한국 아동문학회 회장이었던 박 화목 씨도, 비평 문학회 회장이면서 예총 사무총장을
지냈던 성 기조 씨도, 원로 작가 구 상 씨도, [지리산]으로 유명한 이 병주 씨도 모두 국민들이 받아 온 고통을 어루만지기보다는 오히려
군홧발을 찬양하기를 마다지 않던 문인들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대표하는 문단의 원로들이기도 하다.
"안도와 함께 눈시울을
적신" 사람은?
전 두환 씨를 두고 박 화목 씨는 "과단성 있는 정책 수행과 안보의 의지에 힘을 기울여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지도자"라고 하면서 "특히 폭력배 등을 제거해서 거리와 사회 질서를 바로잡은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서울 신문] 팔십년 구월
삼십일치)고 했다. 같은 지면에 성 기조 씨는 "무엇보다 서민 생활에 관심을 갖는 지도력에 감복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서민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가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사회 정화 운동 등으로 사회가 한결 질서 정연해졌고 비로소 부조리 없는 정직한
사회가 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구 상 씨는 신군부의 쿠데타 기구인 국가 보위 비상 대책 회의가 시작한 이른바
"사회 정화 운동"이 온 국민을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할 만큼 옥죄고 있을 때에 그 사회 정화 작업을 찬양하고 나섰다. 월간 [정화] 팔십일년
삼월호에 그이가 쓴 [신령한 정화]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 나는 오늘날 우리의 사회 정화 작업이/ 실재의
안팎에서 일고 있음을 보고/ 안도와 함께 눈시울을 적신다."
팔십칠년에 전 두환 씨가 "사일삼 호헌"을 선언한 것을 두고 그 때에 문협은
"야당의 분당, 데모 등 개헌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원래의 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을 뽑는 방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지지 성명을
냈다. 그때 문협의 이사장으로 있던 이가 김 동리 씨이다.
이 병주 씨는 한술 더 떴다. 팔십칠년 사월 십육일자 [경향신문] 시론에
사일삼 호헌 선언을 두고 [대통령 중대 결단의 의미]라는 제목 아래에서 이런 글을 썼다.
"… 이어 이나라 헌정사에 관한 회고가
있었는데 차분한 설득력을 지닌 내용이어서 나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뉘라서 이 결단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
임기를 앞으로 십개월 남겨둔 대통령이 '본인이 물려받은 우리 정치사의 유산이 너무나 무겁고 불행했던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누가 정권을 담당하든
그 후임자와 국민 여러분이 더욱 순탄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좋은 전통과 튼튼한 자산을 물려 주고 싶은 것이 본인의 꾸밈없는 소망'이라고 할 때
구구한 억측으로 사태를 그릇 인식한다면 그것은 당자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그이의 눈에는 "호헌 철폐"를
외치며 "육십 항쟁"에 동참했던 무수한 시민과 학생들이 모두 국민으로서 도리를 저버린 폭도로 보였을까? 결국 호헌을 철폐하고 "육이구 선언"으로
두손 들고 만 대통령을 두고는 무엇을 느꼈을까?
강 유일에게는 "동방의 별"이었던 사람
보수 우익 문예
조직의 대표들만, 치부를 감추어 줄 만한 먹이를 찾는 군부의 눈초리에 위기감을 느꼈을 법도 한 문단의 원로들만 군홧발 아래에서 그런 행실을 한
것은 아니다.굳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글을 썼다고만은 보기 어려운 그 때 이삽심대의 젊은 신진, 또는 중진 문인들 중에서도
내란, 학살의 수괴를 찬양했던 자들이 없지 않다. 그들 중에서 확실한 물증을 남겼던 자들은 거개 여자 문인들이었고 그중에서 더러는 온갖 거짓
미학을 동원하여 차마 인용하기조차 낯부끄러운 찬양문을 거침없이 써댔던 자도 있다.
[경향신문] 팔십년 팔월 이십삼일치 한면은 읽는
이의 얼굴마저 화끈거리게 한다. 칠십오년에 여원 신인 문학상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젊은 나이에 꽤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하여 인기를 모으기도 했던
강 유일 씨가 장식은 그 지면의 글은 서글픈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구절만을 인용해 보자.
"… 연병장 동쪽은
순식간에 예포의 푸른 연기로 휩싸였다. 안개 같은 푸른 연기. 그것이 바로 삼십년간 오직 애국에 대한 신념으로 자신의 천직을 지켜온 한 소중한
장군을 떠나보내는 후진들의 눈물이었다. … 국가 위기는 참으로 동굴처럼 깊어 결국 역사적 불행으로 기록될 광주 사태를 낳았다. 무서운
난산이랄까? 믿을 수 없을 만큼 국가의 미래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전 위원장은 그 두려운 절망의 늪으로부터 국민들을 구해냈다. 국가
유지의 최후 보루인 군부의 철통같은 단합과 계엄 업무 수행에 결정적 역할을 감당해 낸 것이다. 삼십년 동안 남다른 노력과 통찰로 이루어진
전위원장의 탁월한 지도력이 결국 난세를 맞아 여지없이 발휘된 것이다. 전역식의 시작부터 산정에선 계속해서 수십마리의 까치가 울고 있었다.
아카시아 숲속으로 드러난 까치의 흰 깃은 너무도 순결해서 그 새가 분명 길조라는 오랜 신화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 전위원장의 전역식이
끝난 연병장을 돌아 나오며 나는 살아 역사하는 우리의 신이 우리의 새 지도자에게 풍성한 영적 분별력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복의
근원이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 인류에게 영원히 복을 약속하신 것처럼 … 새로운 계절 가을은 언제나 시인 릴케의 기도문이 생각나는
절기이다.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위대한 여름. 우리는 지금 역사 속의 한 여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이는 이 글에서 심지어 전 두환 씨를 "동방의 한 새로운 별"이라고까지 지칭했다.
이른바 여류
작가들의 망녕
같은 날짜의 [서울신문]에는 지지난해에 한국 여성 문학인회의 부회장을 맡았던 송 숙영 씨가
[장군은 우리의 등불이 돼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전 두환 대장의 전역식 참관기를 썼다.반란의 수괴가 대통령이 되려고 군복을 벗던 날의 모습을
두고 삼십대의 젊은 소설가였던 그이는 "천구백팔십년 팔월 이십오일 하오 두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찌는 듯한 오후, 전 두환 장군의 모습은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달리 무척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의 따뜻한 미소는 억지로 지어보이는 정치적이고 기교에 넘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훈훈한
인간성 깊이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소박한 것이었다"고 감탄했다.
여류 소설가 윤 남경 씨 또한 [한국일보] 팔십년 구월
이일치에 [나라와 새 대통령을 위한 우리들의 기도]라는 제목 아래에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이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동안 이
나라가 잠시 동안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슬기롭게 수습되고 질서 있게 정리된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동안 깊이 곪았던 이 사회 구석구석의 부패와 부조리 등을 과감하게 수술하고 바로잡은 대통령을 선출하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다.
그뿐일까? 수필가이면서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서 온, 월간 [수필문학] 편집인이었던 김 효자 씨 또한 "새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라면 언제 어디서라도 즐겨 듣겠다는 소신을 밝히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을 인의 장막이 새롭게 쳐지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경계하는 뜻을 밝혔다. 국민들은 그 충심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한국일보] 팔십년 구월 사일치)는 글을
썼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김 청조 씨는 전 두환 정권이 그 때에 대표적인 저항 세력이었던 대학생들의 오월 데모를
무마하고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려고 개막 전부터 대대적인 선전을 해 가며 벌였던 "국풍 팔십일"을 취재하여 사실상 찬양하면 쓴 글을
[우리 얼 되살린 여의도 한마당]이라는 제목으로 월간 [정화] 팔십일년 칠월호에 실었다.
뉘우침 없는 문협과
예총
전 두환 군부가 정권 붕괴의 위기를 느껴 "학원 안정법"을 만들어 강제로 통과시키려 할 즈음인 팔십오년 팔월에,
실천문학사에서 발행하는 부정기간행물 [민중교육]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실천문학사 주간 송 기원 씨와 몇몇 필자들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이때에 군부가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총칼잡이들을 공손하게 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한국 보수 우익 문예
조직의 대표들은 "문학의 예술적 본질과 독자성, 자율성을 수호하기 위한 순수 문학인들의 모임"(그때의 김 동리 문협 이사장, 조 경희 예총
회장을 비롯해서 칠십몇명이 모였다)이라 해서 한 자리에 모여 그나마 군부 독재에 저항해 온 민중 문학 작가들을 규탄하고 성토했다. 그이들은 그
자리에서 결의문 육개항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두번째 항과 마지막 여섯번째 항을 살펴보자.
"한국의 문학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 등 모든 영역을 문학 세계의 대상으로 포용하되 그 어느 특정 분야에도 종속되지 않고 문학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준수, 정진시켜
나간다. 우리는 한국 문학의 진정한 발전과 창조 행위의 가치 구현을 위해 자유와 평화와 진실을 지켜 나갈 것이며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문학을 이용하려는 정치주의적 목적주의적 일부 사이비 문학인의 불순한 망발을 엄중히 경고, 규탄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규탄해야
하나? 군부 정권에 종속되어 문학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내란, 학살 수괴들의 철저한 나팔수 노릇을 크고 작게 해왔으니 "사이비 문학인"이 바로
자기들이 아니더냐? 그러나 그이들은 오늘도 양심을 판 죄를 뉘우침이 없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빠른 변신만을 일삼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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