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수필에 나타난 대중의 의미 - 김승구(서울대학교)
<국문
초록>
본고는 1930년대 문학이 처한 중대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사회의 도래에 관한 문화 탐구의 일환이다. 일제에 의한 강압적 식민 통치와 더불어 자본주의화를 거듭하던 식민지
사회에서 1930년대는 그 이전과는 달리 대중 주도의 소비 구조가 정착기에 이른 시점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방불한 사회 구조가 보편화된
시점이다. 광범위한 생산과 소비 구조가 사회 저변으로 확산됨으로써 벌어진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확산으로 인해 지식계는 ‘위기의 담론’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운위하게 되었다. 특히 문학 쪽에서는 문학의 위기를 둘러싼 담론이 최초로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위기의 담론’이 태동하던
당대의 상황을 대중과 관련된 김기림의 수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 53 -
그런데 굳이 김기림의 수필이 문제시되어야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기림은 1930년대에 문필 활동을 시작했던 모더니즘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그의 문학은 1930년대의 상황을 밑바탕으로
삼아서 이루어진 철저히 대중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30년대 내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당대 그 누구보다도 그가 세태와 풍속의 변화를 민감하게 촉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써 낸 상당수의 수필은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쓰인 것이다. 김기림에게 있어 수필은 저널리즘의 요구에 따라 쓰인 것이긴 하나 그 결과로 나타난 글들에서 우리는 당대의
사회문화를 조명할 수 있을 만큼의 언어적 밀도와 지성적 판단력을 느낄 수 있다.
본론에서는 우선 1930년대 경성을 지배한 대중이
김기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를 살펴본 다음, 그것이 김기림의 문학관에 끼친 변화를 검토해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소비문화가 확산시킨 대중 사회가 고급문화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소비문화의 확산이 과거 유교적 가부장제 하에서
피억압 계층으로 주변화되었던 여성이 대중으로 등장한 결과라는 점에 착목하여, 김기림이 새로운 주체로 부상한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본고는 기존의 김기림론과는 달리 김기림의 수필을 매개로 하여 1930년대 문학을 둘러싼 변화의 양상을
문화담론적 차원에서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최근 들어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근대성 논의를 확대하는데 본고가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목 차>
Ⅰ. 서론 Ⅳ. 일상생활의 감각과 여성 담론
Ⅱ. 대중의 등장과 시선의 위기 Ⅴ.
결론
Ⅲ. 스펙터클로서의 백화점과 고급문화의 위축
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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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제도화하는 기제로서의 근대문학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정적인 변화의 물결에 휩싸인다. 1930년대가 한국의 근대문학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그 시점이 식민지 조선의 경우 자본주의적 성숙기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 주도하의 공업화 정책과 더불어 경성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화 정책은 비록 제한적이나마 식민지 대중이 조선의 자본주의를 서구 자본주의에 근접한 하나의 제도로 감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에 따라 한국의 근대문학도 그와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어떤 측면에서 길항과 타협을 모색하는 시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근대 초창기에 문인들이 받아들였던 문학적 이념은 1930년대에도 여전히 문인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었지만 그들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1930년대는 그들에게 문학이 놓인 새로운 조건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대중사회 속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들이 설 자리는
무엇인가 등등 문학과 문학인의 존재조건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와 같은 고민이 명백한 담론으로 등장한 적은 없다. 문학인들의
새로운 고민은 그들의 문학 속에서 징후적으로만 드러날 뿐이다.
1930년대 문학인들에게 문학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실천 행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축소된다. 그들은 더 이상 문학의 장에만 자신을 놓지 않는다. 그는 문학 작품의 창작과 더불어 다양한
잡문을 생산하는 ‘문필가’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그가 상대해야 할 상대는 더 이상 일군의 고급독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문자해독력을 가진,
상대적으로 저급한 인식과 다소 천박한 취미를 가진 대중이었다. 1930년대가 한국의 근대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기점이 된다고 할 때,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의 폭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독자층의 비약적 확대는 문학인의 활동 영역을 고급과 저급, 문학과 비문학
등 기존에는 완강하게 유지되던 층위를 벗어날 것을 요구했다. 대중이 주도하는 대중사회는 문학을 대중문화적 시각으로 정향시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학인은 당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제도와 타협하고 길항할 것을 근본적으로 요구받게 된 것이다.
당대 문학인이 겪은 이와
같은 위기는 문학 제도의 심급에서도 발견된다. 유교적 ‘문인주의(文人主義)’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문학은 교양과 지성을 강화시키는 엘리트주의의
발현이라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문학은 교양의 최상급의 표현이자 휴머니즘의 구심으로서 존재했다. 이는 이광수와 최남선이 주도한 1920년대의
민족주의 담론에서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고급문화의 최상급이자 공동체 유지와 강화를 뒷받침하는 유용한 도구로서의 문학은 문학의 전근대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3?1운동 이후 식민지 사회 전반에 만연된 문화주의는 전래의 이념형 문학 모델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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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역시 근대 문학 모델과는 어울리지 않는, 근대 이전이나 이후(만약 상상할 수 있다면)의
모델이라고 할 것이다. 1920년대 문학을 카프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써 그 이념적 원광 밑에서 수많은 문학들이 희미한 그림자로만 남아 있게 된
사실은 카프에 대한 관심이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패러다임을 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카프 중심주의에 대한 은밀한 반발은 모더니즘에 대한
발굴 내지는 복권 현상을 일으켰다. 김기림, 이상, 박태원 등 구인회 문학이나 최명익, 허준 등의 심리주의 계열 문학에 대한 관심의 확대는
이처럼 카프 중심주의에 대한 은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에서 ‘모더니즘’은 특정 문예사조라는 맥락에서 편협한 의미를
부여받았던 한계를 안고 있다.
기존의 연구 모델을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할 때, 필자가 견지하는 입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30년대는 1920년대와는 달리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학 실천들이 본격화된 시기로서 문학 행위의 성격과 다양성이 뚜렷해진
시기이다. 이 같은 변화는 문학이 하나의 제도로서 뚜렷한 변별점과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 사정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 제도는 1930년대
들어 더 이상 고급문화의 엘리트주의를 확보하는 틀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문학의 위기는 비단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 사회에서 보편화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상업적 출판 시스템의 형성과 근대적 교육의 확대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국어국문 교육의 대중적 확대는 문자 해독과 구사 능력의 대중적 확대를 가져왔고, 문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가능한 교양인들의 수를
급격히 확대시켜 놓았다. 그와 더불어 대중 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신문, 잡지와 같은 문자 매스미디어뿐만 아니라 비교적 근래의 과학기술에 힘입은
영화와 라디오 같은 최신의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놓았다.
문학 행위는 더 이상 수양의 방법이나
‘재도지기(載道之器)’로서의 성격을 탈각하게 되었다. 전통적 문학 행위를 뒷받침 해주는 사회 구조는 해체되고 근대적으로 재편된 사회 구조 속에서
문학 행위의 유일한 보증자는 대중과 매스미디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대중의 보증을 구하는 실천으로서의 문학 행위는 문학적 실천의 유일무이한
지반으로서의 성격을 확보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1930년대 식민지 사회에 형성되기 시작한 소비 도시 문화가 배태한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930년대에 활동한 수많은 작가 중에서도 본고에서 김기림을 논의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그의 문학적
실천이 도시 문화의 일상적 실천과 가장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과 영문학이라는 기제를 통해 당대 사회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김기림은 수필을 통해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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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중의 등장과 시선의 위기
1930년대 문인들 중에서 자의식적으로 ‘대중’을 사고한 사람은 김기림이다. 대중은 무정형의
타자적 세계이며, 근대화와 산업화가 만들어 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집단이다. 그러나 이 대중이라는 말은 산업화로 진전된 문화의 성격을 한층
명확히 부각시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대중은 어리석음, 변덕, 집단적 편견, 저속한 취미와 습관에 사로잡힌 타자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며, 바라보는
자의 차별화 욕구를 내포한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중은 바라보는 자의 문화 감각에 대한 부단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김기림에게 있어 이제 막 대도시의 면모를 드러내던 경성은 그가 ‘군중’이라고 지칭한 존재들이 점령한 기괴한 공간으로 이해된다.
비교적 초창기의 글에 해당하는 아래 글 속에서 우리는 김기림에게 있어 경성과 대중이 어떤 인상으로 다가왔는지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異國風俗의 ?그로테스크?한 행렬이 本町 3丁目을 흘러간다. 파리떼와 같이 雜沓하고 도발적인 가장행렬(중략)정열과 어지러운
사람들의 洪水의 흥분이 식은 뒤의 子正이 가까운 밤거리는 ?죽음?과 같이 고요하다.不吉한 침묵이 올빼미의 눈동자처럼 어둠의 底層으로
스며들뿐이다. 어둠을 향하여 짖는 얼빠진 주정군도 있다.(?찡그린 都市風景?, 『조선일보』, 1930. 11.11)
10월 가을밤
경성의 거리를 나선 김기림에게 도시의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경성의 거리 풍경에 대해서 김기림은 ‘異國風俗의 ?그로테스크?한 행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경성의 번화가에 나선 그가 마주친 것은 여전히 우리 것으로 수용되지 못한 박래품들로
자신을 치장한 일군의 사람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기림이 마주친 ‘?그로테스크?한 행렬’의 주도자는 여성들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그의
시선은 차갑고 비관적이다. 가장행렬을 보는 듯한 신기함은 지저분하고 성가신 ‘파리떼’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착종되어 있다. 두 시간 여가 흘러
거리를 메운 인파가 홍수처럼 빠져나갈 때까지 어슬렁거린 뒤 그가 마주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침묵이다. 그 침묵은 김기림에게 마치 ‘올빼미’의
눈과 마주쳤을 때 받게 되는 기괴함으로 다가온다. 불과 두어 시간 만에 화려하고 번잡한 도시는 갑자기 유령이 배회하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된다.
김기림에게 도시 이미지의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시선의 권력을 소유한 주체가 아무 것도 볼 수 없음, 보는 것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는
텅 빔을 경험할 때의 당혹스러움을 유발한다. 이 글에서 그는 그와 같은 시선의 전복을 ‘파리떼’와 ‘올빼미’의 은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김기림은 당대 어느 문인보다도 대도시 경성의 삶을 주도하는 주체가 대중이라는 사실을 선구적으로, 그리고 가장 섬세하게
파악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대중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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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우?의
화사한 인형과 舶來品의 모자와 ?넥타이?에 모여 서고 있는 불건전한 夢遊病者의 무리들은 옆집 악기점에서 흘러 나오는 ?레코드?의 ?왈츠?에
얼빠져 있다.
오- 심장과 뇌수를 ?보너스?와 월급에 팔아버린 機械人間이여, ?부르조아?가 빚어놓은 享樂의 회색지를 反芻하는 飢渴한
?로맨티시스트?---.(?都市風景?, 『조선일보』 1931. 2. 21~24.)
김기림이 묘사하는 대중은 상품진열장 속의 상품에
정신이 팔려 사는 ‘불건전한 夢遊病者’일 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욕망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김기림의 시선은 차갑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풍경들에 끊임없이 착목하며 언어화하는 주체 역시 그런 상황에서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오- 심장과 뇌수를 ?보너스?와 월급에 팔아버린 機械人間이여”와 같이 감탄형으로 표현된 대목에서 우리는 대중과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자아의 자기연민을 느낄 수 있다.
김기림은 쇼윈도 속의 여자 마네킹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그 시선은 사물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완전히 포섭하는 권위적인 ‘시선(look)’이 아니라 보이는 것 속에서 불안과 기괴함, 묘한
이끌림을 되받는 ‘응시(gaze)’로서 드러난다. 쇼윈도 모티프라고 불릴 수 있을 이러한 광경은 근대 도시 소비문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길거리의 대중과 그가 시선을 보내는 사물 사이에 가로놓인 유리는 주체와 대상간의 미묘한 거리의 은유이다. 주체는 대상에 시선을
보내지만, 대상은 주체 내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잔여를 남긴다. 소비 대중과 상품 사이의 이와 같은 관계는 상품 형식으로 물신화된 자본주의의
전도된 인간관계를 담지하고 있다. 모더니즘적 주체에게 있어 근대 도시는 계급, 성, 인종 사이의 차이가 ‘내파(內波)’된 대중의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의 시선에 대중은 소비문화의 열렬한 탐닉자, 소비문화의 쾌락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소비의 주체로서만 존재한다. 대중은 가시성의
영역에서는 뚜렷한 실체로 각인되나 불가시성의 영역에서는 불가해한 존재로서 다가온다.
이와 같은 균열은 모더니즘적 주체에게 있어
분열적 세계 인식을 심화시킨다. 이와 더불어 이와 같은 현상을 목도하는 모더니즘적 주체 자신 역시 자신이 대중이라고 호명한 일군의 사람들 속에서
하나의 불가해한 존재로 쉽게 녹아 들어감을 인식한다. 그는 대중이 바라보는 것들로부터 비판적 인식을 기도하지만, 그 역시 대중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 형식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자신 역시 도시에서 기능화된 일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그의 글쓰기를 조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 58 -이처럼 김기림은 소비 도시로 변화해 가는 경성을 둘러싼 경험의 의미를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반추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한 양상은 일상성의 영역이자 사적 체험의 장인 수필을 통해서 자주 드러난다. 그는 신기성과 새로움,
기이함으로 뒤섞인 경성의 다양한 세부들을 들여다보며 경쾌함과 우울이 뒤섞인 묘한 어조로 소비 도시의 명암을 드러낸다.
도시는
복잡한 미로처럼 뻗어 나가고 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각종 상점과 백화점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대중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현란한 광채를 빛내고
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급속화로 인해 형성된 대량 소비의 공간을 거닐면서 그는 소비의 유혹에 깊이 침윤된 대중의 모습, 그리고 그 대중의
시선을 포착하기 위한 현란한 광고 사이를 오가면서 그 시선들 사이의 변증법을 포착하기 위해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그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변화의 상징적 표상으로 등장한 모던걸의 육체적 관능성이다. 감추어져 있던 육체들이 부분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육체는 가시성과
불가시성의 변증법을 작동하기 시작하며, 소비문화 속의 욕망의 문제를 제기한다. 소비 도시 속의 육체는 이제 더 이상 정신을 담지하는 빈 껍질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가 정신을 압도하는 가치의 영역으로 전도되기 시작한다.
김기림에게 있어 대중은 근대화된 경성이라는 도시
공동체를 움직여 가는 강력한 행위자이다. 모더니즘적 주체는 더 이상 바라보는 자가 가지게 되는 일원적이고 독점적인 시선의 권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런 인식적 혼란은 도시 공동체의 문화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엘리트 집단의 문화적 영향력의 결정적 쇠퇴를 반영하는 것이다. 엘리트적
인식과 시선은 더 이상 도시와 대중에 대한 해석적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대상을 전유하던 인식의 특권화된 위치에 서 있던 자는 대상으로부터
불가해한 잔여나 잉여를 되돌려 받을 뿐이다. 이런 변화는 대중이 공동체의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는 근대 세계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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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펙터클로서의 백화점과 고급문화의 위축
시장의 법규에 종속된 예술, 다른 형태의 생산품과 같은
조건에 구속받는 특수 생산품으로서의 예술은 근대적인 환경 변화에 따른 문학의 새로운 존재 조건으로 등장한다. 이런 변화에 맞서 근대의 예술가들은
크게 두 가지 태도로 대응하였다. 예술을 천재의 소산이자 상상력의 산물로서 보고 대중을 예술가 자신과는 변별적 위치에 놓인 열등한 존재로서 보는
인식 체계가 그 하나이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 내에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 일반은 대중의 감수성을 고양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위치 지워진다. 예술에
대한 이와 같은 낭만주의적 관념은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부터 카프 시기까지 일관된 패러다임으로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근대적 삶의
제반 제도 속에 예술가 자신마저도 속박 당하고 그 과정에 깊이 침윤되어 감에 따라 예술가와 대중을 구분하는 변별점은 희미해지고 예술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특수한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기능인으로 변화되어 간다. 따라서 글쓰기는 더 이상 시간과 생존의 속박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적 속박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산출해야 할 상품 생산의 일종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김기림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림의 모더니즘이 전대의 ‘감상주의’와 ‘편(偏)내용주의’로부터의 탈피를 욕망할 때,
이것은 문학에 부여된 과도한 신화적 환상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20년대 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패러다임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김기림은 자신을 새로운 문학 개념의 수행자로서 명확히 규정하고자 한다. ‘자라는 것’으로서의 문학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서의 문학으로의 변화는
모더니즘이라는 기호 아래에서 실천되었지만, 이는 근대문학의 생성 과정에 있어 하나의 획(劃)시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와 같은 인식 속에서
문학은 더 이상 신화적인 아우라 속에서 진행될 수 있는 창조가 아니라 범속한 일상의 포괄적인 제도화 속에서 하나의 기능적인 축을 구성하는 세부
영역으로 자리매김된다.
- 60 -김기림이 모더니즘을 도시 문명의 소산이라고 했을 때, 그는 도시 문명이 대중문화의 다른 이름이며
모더니즘이 대중문화와의 길항 관계를 내포한 문학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 체제가
우위를 점하고 사회 전반을 규율하는 사회의 문화이다. 이때 대중은 대량 소비 사회의 유지를 뒷받침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산의 영역은
감춰지고 소비의 영역만이 가시화된다. 따라서 대중은 항상 부득이하게 상품 물신주의에 과도하게 탐닉할 수밖에 없고, 예술가들은 대중의 상품
물신주의를 수수께끼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근대도시로 변모해가는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을 묘사한 아래의 글에서 우리는 김기림에게 비춰진
도시의 풍경과 그 속을 활보하는 대중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그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축복 받지 못한
조건으로 인하여 부득이 시대진전의 수준에서 밀려나올 수 밖에 없었던 봉건적 도시인 京城도 차츰차츰 첨예한 近代都市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서울의 복판 이곳저곳에 뛰어난 근대적 ?데파트멘트?의 출현은 1931년도의 大京城의 주름잡힌 얼굴 위에 假裝하고 나타난
?近代?의 ?메이크업?이 아니고 무엇일까.
?근대?는 도처에 있어서 1928년 이후로 급격하게 老朽하여 가고 있다. 이
?메이크업?한 ?메피스트?의 늙은이가 온갖 근대적 시설과 機構感覺으로써 ?젊음?을 꾸미고 황폐한 이 도시의 거리에 다리를 버리고 저물어가는
황혼의 하늘에 노을을 등지고 급격한 각도의 직선을 도시의 상공에 뚜렷하게 浮彫하고 있다.
밤 하늘을 채색하는 찬란한
?일류미네이션?의 人目을 현혹케 하는 변화---수백의 눈을 거리로 항햐여 버리고 있는 들창---.
거대한 5, 6층 ?빌딩?체구
속을 血管과 같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엘레베이터?(昇降機), 옥상을 장식한 인공적 정원의 針葉樹가 발산하는 희박한 산소---.(?都市風景1?,
『朝鮮日報』, 1931. 2. 21~24.)
1920년대 후반부터 경성의 중심가로에는 근대적 건축 형식의 백화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기림에게 경성을 진정한 근대도시로 보이게 한 것은 중심가로를 채운 백화점이었다. 그는 위의 글에서 백화점을 ‘황폐한 이 도시’의
‘메이크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메이크업’이라는 말속에는 다소 경멸의 감이 없지 않으나, 김기림에게 있어 백화점은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공간이다.
야경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백화점 건물의 들창은 그의 눈을 현혹시킨다. 그리고 옥상정원을 포함한 6층
규모의 백화점을 수직 이동할 수 있게 설치된 엘리베이터가 그에게는 피를 온몸으로 공급하는 혈관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여기서 그가 ‘혈관’의
이미지를 연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백화점을 ‘체구’에 비유하면서 시작된 이런 연상은 ‘혈관’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을
오르내리는 대중에 대한 연상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 대중이야말로 백화점이라는 거대한 ‘체구’의 생명을 보증하는 ‘혈액’인 셈이다. 김기림에게
있어 도시풍경의 중심에 항상 백화점이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백화점이야말로 대중의 탄생과 맞물리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라는 말 자체가
암시하듯이 상품의 대량생산과 유통을 가능케 한 자본주의 체제가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탄생을 배태한 메커니즘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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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은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를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센시블?한 도시인의 마음’을 유혹하는 도시의 거대한 물신인 백화점을
‘무형의 촉수를 도시의 가정에 버리고 있는 魔物’, ‘밤의 아들 딸들을 향하여 달큼한 손질’을 하는 ‘娼婦’라고 조롱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백화점은 김기림에게 ‘대경성’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백화점’은 도시의 황폐를 감추는
가면이기도 하다. 백화점은 늙은이의 꺼칠한 살가죽을 위장하는 화장이다. 그러한 위장술의 촉수에 걸려든 대중에 대해서 김기림은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는 상품세계의 화려함에 넋을 잃은 대중을 ‘淫奔한 魚族’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물고기에 비유된 대중의 맹목성은
김기림으로 하여금 그런 풍경을 다소 비판적으로 보게 하지만 그 역시 백화점이 제공하는 감각적 풍요로움의 포로가 되어 있음이 이 글속에 드러난다.
이처럼 김기림은 백화점 풍경에 전적으로 동화되지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도 못하는 혼란을 드러낸다. 그와 같은 혼란이 불어넣은
긴장과 불안이야말로 그가 도시와 대중에 대한 감각과 사유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긴장과 불안은 수필의 영역, 즉
일상성의 영역에서만 유지될 뿐, 그의 시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그의 초기시에는 바다와 태양, 오전처럼 가능성으로서의 근대에 대한
과도한 긍정이 드러난다. 근대적 풍속에 대한 그와 같은 과도한 신뢰는 근대가 내포한 혼란과 불안을 말끔히 제거한 기표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기반한 것이다. 초기 시론과 시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신뢰는 그가 배운 모더니즘 이론의 층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한계를 깨닫게
되었을 때, 김기림은 ?氣象圖?와 같은 새로운 시풍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언어의 조형으로 근대 세계를 명확하게 부조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시를 이전 선배시인들의 시풍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가 되게 한 동력이었지만, 그가 내놓은 새로운 시들은 언어 물신주의의 한계마저 감안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들의 가시화야말로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다. 언어의 회화성에 대한 관심이 이미지즘으로 표면화되었을 때, 그리고
회화에서 인상주의가 압도적인 흐름으로 인식되었을 때, 그리고 신문과 영화, 라디오를 통해 사유의 이미지화가 주도하는 근대 사회에서 김기림의 시가
한 편의 풍경화나 사진, 스틸 컷과 같은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기림의 시에 낭만적, 천재적 자아의 영감과
상상력이 말끔히 제거되고 언어에 대한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구성미가 낯설어지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몇 가지의 가시적 근거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는 김기림에 와서
가시화되었고, 이전까지는 자연스럽던 요소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는 낯선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 62 -김기림의 모더니즘과
더불어 문학에 씌워졌던 고급문화의 주도자로서의 문학의 기능은 쇠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것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제 문학은 더 이상
천재적 자아의 상상력과 감수성의 산물이 아니라 여타의 상품과 더불어 상품으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수행자인 문학인은 대중 소비 사회의 상품들 중
하나를 제작하는 기능인으로서 자리매김 된다. 그리고 문학은 자아의 내적인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투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문화
형식과 긴밀한 조응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필연적인 조건으로 등에 업고 나아가게 된다.
?聽衆 없는 음악회?라는 글은 문학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의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음악회와 청중의 관계를 들어 갈수록 쇠퇴해가는 고급예술의 위상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거론하고
있다. 김기림이 굳이 음악회를 글머리에서 거론한 이유는 음악이 전통적으로 고급예술, 고급문화의 대명사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대에 들어 갈수록 고급예술의 ‘고객’이 사라지고, 그에 따라 또 하나의 고급예술인 시의 독자도 사라져간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현대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예술을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고립시키는 고립주의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중에게 있어 그들이 고급예술을 감식할 만한 충분한 교양과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기림이 거론하는 이와 같은 문제점은 근대
이후 예술의 변화를 규정하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 고급예술의 저변을 침식하는 대중예술, 특히 영화의 위상 변화는 시의
몰락을 가져올 가장 큰 재앙으로 인식된다.
시를 위하여 지극히 불행한 일이 또 있습니다. 문학의 각분야 중에서 시보다는 매우 연령이
어린 소설이 그보다는 ?키네마?가 시의 존재를 위협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
그런데 지극히 최근까지도 예술비평가나
미학자(美學者)가 예술로서 취급하는 것을 불유쾌하게 생각하고 있던 ?키네마?가 오늘날 시뿐이 아니라 소설까지를 능가하려는 意氣는 可驚할 형세에
있습니다.
소설이 사람의 의식 위에 ?이미지?(영상)을 現出시키려고 애쓸 때 ?키네마?는 ?이미지? 그것을 관중에게 그대로
던집니다.
?읽을 수 있는 일?이상으로 더 보편적인 사람의 시각에 ?키네마?는 訴하는 것이외다.
그것은 시의 세계를 유린하고
震蕩하기에 충분한 ?音으로 충만합니다. 시가 대영제국의 ?란스베리?공작부인과 담소할 때에 ?키네마?는 ?칼캇타?의 무식한 紡績女工의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시는 결국 귀족과 승려의 문학이었고, 소설은 시민의 문학이었으며, ?키네마?는 더 한층 내려가서
제4계급의 반려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중이 시의 門前에 도달하기 전에 소설과 키네마는 中路에서 고객의 전부를 빼앗아
버렸습니다.(『文藝月刊』 2권 1호, 1932. 1)
- 63 -
김기림은 위의 글에서 대중이 시보다 소설을 더욱
선호하고, 시나 소설 등 문학보다 영화에 더욱 깊은 매력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을 단순히 구매자의 취향 변화를 염려하는
상인의 우려 섞인 인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기림은 이 글에서 취향의 저급화, 대중의 타락을 조롱하는 고급예술 옹호자의 상투적인
자기옹호를 넘어 읽기로부터 보기로의 문화의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변동을 읽어내고 있다. 시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던 김기림에게 있어
영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자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대중 저널리즘을 무대로 글쓰기를 일관해 온 그에게 영화는 일종의 위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에 활동한 문인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그도 대중의 일원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그 편린을 몇 편의 수필 속에 드러낸 바 있을
정도로 1930년대 경성에서 지식층, 중산층의 영화보기는 보편적인 취미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30년대 경성의 영화 문화는
당대의 미국과 비교할 때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약한 수준이지만, 영화가 던져 준 새로운 감수성은 사회 전반의 지각 체계를 급속도로
재편하였다. 그리고 광고는 한때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욕망을 광범위한 대량생산 상품에 투사함으로써 접근이 용이해진 대중의 욕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광고와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대중이 자신의 육체를 규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영화 산업은 영화와 광고를 통해
세련된 자아의 이미지를 홍보함으로써 상품 소비를 촉진하고 새로운 유형의 소비 패턴을 유도한다. 영화 속 배우의 이미지는 곧바로 거리의 쇼윈도를
채운 마네킹으로 전이되고 여성들은 여배우의 이미지를 거리에서 재현한다. 경성 거리를 주름잡은 당대의 ‘모던걸’이야말로 이와 같은 메커니즘의
체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4. 일상생활의 감각과 여성 담론
개화 계몽기로부터 문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모더니티를 향한 끊임없는 열망 속에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였다. 그 담론들의 궁극적 귀결점은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문화의 탈피와
서구의 진보된 과학기술 문명 수용을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정신과 물질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 생산에 있어 특이점이라고 할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물질의 문제보다는 정신의 문제에 담론의 중심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식민지라는 조건 하에서나마 물질 층위에서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개입된다. 그러나 물질문화의 발전과 항상 불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는 정신문화는 하루아침에 개변하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근대화 초기 지식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균열은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성격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 64 -이러한 사정과 더불어 일본이라는, 같은 동양권의 동일자로 존재하던 국가가 어느 순간 타자로서 조선을 강점하면서부터
조선 지식인의 타자 의식은 이제 단순히 양의 동과 서라는 단순화된 논리를 벗어나 동양 내의 타자와 맞닥뜨려야 하는 곤혹스럽고 복잡한 사정 앞에서
논리화를 서둘러야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의 생활 단위로서 조선을 단자로 놓고 이와 비슷한 생활 단위로서 일본, 그리고 여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을 단자들로 상정하는 민족 담론은 예각화되어 갔다.
그러한 정신화된 민족 담론은 1930년대 들어 더 이상 저항
담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간다. 전대 민족 담론의 열렬한 선전가로 자처한 이광수의 모습은 민족 담론의 기능 상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920년대 가장 유력한 민족주의자였던 이광수마저도 1930년대에는 더 이상 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의 주민이 되기를 거부하고
내지(內地)와 조선(朝鮮)이라는 현대화된 신화에 기반을 둔 ‘상징적 공동체’의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1930년대 이광수가 계몽주의 이데올로그의
위치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내지의 신화를 글쓰기를 통해 수행하는 유명한 잡문가로 전락한다. 이것은 내선일체라는 신화화된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은 민족 담론의 역편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상상적 공동체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의 귀결은 또 하나의 상상적 공동체에 대한 급속한 동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1930년대는 적어도 1937년 중일전쟁으로 사태가 악화되기 이전까지의 1930년대 경성은 억압적 타자인
일제에 대한 저항과 극복을 문제 삼기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과 비판적 화해가 문제되는 일상생활의 공간이었다. 일제의 지배권이 순일(純一)하게
관철되는 한반도 내에서 일본적 타자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외면으로 뻗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문제들 사이에 미묘하게 얽혀 들어가는 내면성의
문제가 되었다.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은 타자의 문제가 외견상 해소된 시대의 대중화된 문학 감각이라 할 수 있다.
- 65
-근대성과 관련한 김기림의 수필 쓰기가 1930년대 내내 첨예한 긴장력을 가지고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즘인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왕성한 필력을 자랑한 김기림의 글에서 드러나는 타자는 일제라는 정치적, 억압적 규율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김기림이 글쓰기 속에서 문제 삼은 타자는 서양으로 통칭되는 근대 세계였다. 그는 서양의 근대를 거멀못으로 놓고 조선에서 서양
근대의 수준에 육박하는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가 등단 초기에 주창한 ‘모더니즘’, ‘모더니티’, ‘주지주의’는
기실 질병과 지체 상태에 놓인 후진적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 구호라고 할 수 있다. 또 경성의 번화한 거리와 그곳을 점령한 대중에
대한 문학적 착목은 1930년대의 조선 사회를 문학적 감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상품 물신주의에
빠져 경성의 거리를 허우적거리던 여성을 비판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남성의 타자로서 여성이 가지는
정신분석학적 의미에 덧대어 여성의 주체성 확립이라는 당대의 사회적 이슈는 김기림에게는 최후이자 최고의 담론 영역으로
부상한다.
1930년대 문학인 그 누구보다도 ‘여성 문제’에 집요한 관심을 가지고 계몽주의적 열정을 발산한 문학인도 드물 것이다.
김기림의 문학적 사유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할 것은 바로 여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근대 담론 자체 그 자체가 어찌 보면
여성주의 담론이라고 할 정도로 ‘여성’은 근대를 기호화하는 중심 표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만의 특이점이라면 서구와는 달리 여성주의 담론의 지배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1930년대 조선에서 여성주의 담론은 철저히 남성 지식인들의 몫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여성을 위해, 여성을
대신해서 말하면서, 여성 억압의 서사와 여성 해방의 서사를 구성함으로써 잃어버린 저자의 권위를 재전유한다.
- 66 -1930년대
잡지들에 지식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상당수 등장하나, 그것은 ‘담론 형성적인 글’이라기보다는 ‘담론 반복적인 글’의 성격이 짙다. 즉, 하위 주체
입장에서의 목소리가 글속에 드러나지만 그 글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진보적 남성 저자’의 억압 서사를 단순 반복하는 ‘가부장적 복화술’을
수행하는 수준의 것이다. 그것마저도 남성의 억압 서사에 인용 부호 안의 목소리로 제한된다.
누구인가 현대를
3S시대(?스포츠???스피드???섹스?)라고 부른 일이 있었지만 나는 차라리 우리들의 세기의 첫 30년은 단발시대라고 부르렵니다.
?봅브?(단발)는 ?노라?로서 대표되는 여성의 가두 진출과 해방의 최고의 상징입니다. ?호리즌탈???싱글커트???보이쉬커트? 등 단발의 여러
모양은 또한 단순과 直線을 사랑하는 近代感覺의 세련된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이 단발하였다고 하는 것은 몇천년 동안 당신이 얽매어 있던
?하렘?에 아주 작별을 고하고 푸른 하늘 아래 나왔다는 표적입니다.(중략) 새 시대의 제일선에 용감하게 나서는 ?미스?코리아?는 선인장과 같이
건강하고 ?튜립?처럼 신선하여야 합니다. 그는 벌써 모든 奴隸的 美學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그의 활동을 구속하는 굽 높은 구두, ?크림?빛 비단
양말, 긴 머리채는 벗고 끊어 팽개칠 것입니다.(??미스?코리아?여 단발하시오?, 『東光』 4권 9호, 1932. 9)
위의
인용문은 당시 김기림이 쓴 중 한 부분이다. 다소 부드러운 어조이기는 하지만 김기림은 이 글에서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훈육하는 듯한 어투를
드러내고 있다. 엄격함이 확연히 드러나는 이런 어투는 남성 필자가 쓴 글이라면 그 당시 저널리즘에서 드물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런 어투가 1930년대 여성주의 담론의 지배자로서의 남성이 가진 확고한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느 잡지나 수시로 여성
문제 특집 기획을 마련하여 남성 문학인들에게 담론 수행자로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전근대적인 의식과 관행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면서도 근대적인 병리나 탈선에 대해 경계하는 이중적인 의식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김기림 역시 여성 문제를 논하는 담론 장에
자주 호명된 문학인이다. 당대 그 누구보다도 여성 문제에 대해 뚜렷한 관심과 명철한 견해를 가진 그는 수많은 글을 통해서 여성 주체성의 고양에
대한 공리주의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貞操問題의 新展開?, ?職業女性의 性問題?, ??미스?코리아?여 斷髮하시오?, ?家庭論?, ?女性과
現代文學? 등이 대표적인 글들인데, 그가 이들 글에서 보여주는 논의의 수준은 당대 지식인들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성의 주체성이 가장 능동적으로 발현되기 마련인 성의 문제에 국한해서는 그의 자유주의적 사고는 유교적 가부장주의로
후퇴한다. ‘직업여성’이라는 우회적인 용어를 통해 당대 매춘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문제 타결의 해법을 제시하면서도, 여성이 가진 상품 소비와
섹슈얼리티 욕망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와 같은 혼란과 모순은 전통적인 가부장주의와 근대적 양성평등주의의 틈바구니에 낀 주체인
1930년대 지식인 남성 일반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림은 대중이 점령한 소비주의의 거리에서 상품물신주의의 비밀이
‘여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였지만, 그에게 있어 ‘여성’은 존재의 핵심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서 비껴가고
있었다.
- 67 -
5. 결 론
이 글에서 탐구하려고 한 중심 과제는 1930년대의 문학이
근대 도시로 면모를 탈바꿈하기 시작한 경성의 소비 자본주의와 그에 부수된 대중문화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정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목적에 따라 당대 문학인들의 문학담론 속에서 그러한 관계의 양상을 담론의 수준에서 확인하고, 그런 논의가 일제 치하 식민지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본론에서는 먼저 1930년대에 대중이 하나의 확고한 실체로
등장한 과정을 김기림이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의 문제를 살펴본 다음, 대중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주도적인 문화 형식으로 부상한 각종 매스미디어의
의미와 이것이 문학의 개념과 문학인의 존재감에 끼친 영향을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역사교과서적 상상력과는 달리 일본적 타자와는
무관하게 흘러간 1930년대 사회에서 김기림이 주력한 여성 담론의 양상과 그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본론에서 살펴본 이와 같은
문제들은 새로운 문화로서의 모더니즘을 주창하며 1930년대 문단에 진출한 김기림이 고민했던 문제들의 목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문제들에 관한 담론이 초기에는 대중이라고 범칭된 무정형의 존재들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어 후기에는 여성이라고 지칭된 성별적 주체에 대한 탐구로
이행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김기림의 문제의식은 한층 예각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남성 지식인의
주체성은 그 의도와 목적과는 달리 불안한 주체, 흔들리는 주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김기림은 1930년대
지식인들 중 그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촉수를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범람하는 새로운 상품과 유행이 장식한 경성 거리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 앞에 세계는 그 정체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타자의 응시로 인해 가로막힌다. 김기림의 글에서
보이는 이와 같은 시선과 응시의 변증법은 갈수록 현란하게 뒤바뀌는 현대 사회 속에 놓인 주체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 68 -
주제어 : 대중, 시선, 백화점, 육체, 소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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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 이 논문은 2005년 11월 30일 투고
완료되어
2005년 12월 12일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06년 1월 16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06년
1월 26일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게재가 결정된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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