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생님. 목젖을 타고 ‘카아’하며 흘러내리는 소주 한 잔과 따끈한 오뎅국물이 그리워지는 겨울의 초입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중학생이셨던 K선생께서 지난 10월31일 전교조경남지부에서 청마의 친일의혹을 제기하는 성명서를 읽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셨지요. 그 당시
‘황국신민서사’를 달달 외우고 매일 궁성조배 한다며 천황이 있는 일본땅을 향해 머리를 90도로 조아렸던 내가 더 친일이라고
말입니다. 요즈음은 하도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횡행하는 세상이라 K선생의 생각을 빌려 청마의 친일덧씌우기의 부당함을 낱낱이 밝히고자
합니다. 해방된지 60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 와서 친일 운운하며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것도 좋고 중요한 일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화뇌동하여
마구잡이식으로 ‘너는 친일이다’ 하는 것은 꼭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입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으면 무죄’라는 그 유명한 말을
상기해야 합니다. 청마가 일제강점기에 살았고 시인이었다는 것을 심증으로. 시 ‘전야’ ‘북두성’ ‘오족협화회’라는 것을 물증으로 들이대며
친일이라는 주장은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 ‘전야’는 1943년 10월20일 학도병 동원을 알리는 규정이 나오자 ‘춘추’ 11월호에
학도병으로 참가하는 학생들 자신의 글을. 12월호에는 학도병 참여를 권유하는 글을 특집으로 마련했는데 청마가 이 잡지에 시 ‘전야’를 발표했다
하여 친일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잡지의 특집은 ‘특집’을 다루고자 하는 공통의 주제들을 모아서 ‘특집란’에 한 묶음으로 다루는 것이
원칙이고 상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춘추’ 12월호 목차에는 시 ‘전야’를 비롯 권환의 ‘秋夜偶吟’. 김종환의 ‘老子頌歌’ 등 세
명의 시가 학도병 권유와는 전혀 관계없이 각각 서로 다른 주제로 노래하며 ‘특집란’ 밖에 별도의 난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학도병의 참여를
권유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만약 청마의 시가 친일이라면 권환과 김종환도 친일이 됩니다. 왜. 유독 청마만 친일이랍니까! 시 ‘전야’는
청마가 만주 오상보성이란 성(城)을 친구들과 여행할 때 지은 “시방 조국의 크나큰 새날이 밝으려는 진통의 전야” (‘오상보성외’시 부분)와 같이
조국의 광명한 미래를 기대한 연장선상의 시로 봄이 타당합니다. 시 <북두성〉은 “우러러 두병(斗柄)을 재촉해 /아세아 산맥
넘에서/동방의 새벽을 이르키다”란 부분을 가리켜 친일 운운하나 이는 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치입니다. 청마는 학교에서 일찍 귀가한 막내딸을
데리고 만주 가신토성 성문 밖까지 나가서 늦게 귀가하는 두 딸을 기다리던 심경을 읊었던(‘경이는 이렇게 나의 신변에 있었도다’. 『생명의
서』.1947.6) 연장선상에서 <북두성〉을 이해하면 대체로 무리가 없습니다. <북두성〉은 시의 앞뒤 맥락에서 살펴볼 때 북만주
광야에서 본 하늘을 묘사한 작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북만주 광야에서 바라보는 북두성은 주먹만한 광채로 유난히 크고 찬란하다고
합니다. 찬란한 성공(星空)아래에 서서 인간의 수유(須臾)와 우주의 무궁(無窮)과의 신비한 논리를 생각하면서 우주와 교감에서 깨달음을 읊은
시입니다. <오족협화회〉란 것도 기록에 의하면. 청마가 거주한『연수현의 협화회는 1932년에 설립한 것이다. 당시 이름은
“협화회연수현판사처(協和會延壽縣辦事處)이었고 직원이 3명밖에 없었다. 1934년 만주제국협화회연수본부(滿洲帝國協和會延壽本部)로 개명했다. 당시
나이가 25세 이상의 군중(群衆)이 모두 협화회 회원이었다. (중략)』 (楊雨春 口述. 李成武 整理.
‘僞滿協和會延壽本部’.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黑龍江省延壽縣委員會文史資料硏究會 編.《延壽文史資料》第3輯.1988.12.p.116.)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시 나이가 25세 이상의 군중이 모두 협화회 회원이었다”는 부분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가입이 강제되어 있었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청마가 자의적으로 가입하진 않았을 것이며 설사 가입했다손 치더라도 본인의 의사에 전혀 반하는 것이었으니 그걸 가지고 친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입니다. 오족협화회에 가입하여 무엇을 했는지 기록에 남아 있는 그 행적을 가지고 친일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이 이치와 사리에
합당할 것입니다. 독립군의 체포에 앞장섰던 국회의원 김희선의 부친은 일경(日警)이란 기록이 남아 있어도 아니라고 하는 마당에. 청마는 아무런
기록도 없는데 친일은 웬 친일이란 말입니까! K선생님. 문학을 무슨 환경이나 노사문제 다루듯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시민단체의 막가파식 주장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봉하고 있는 경남문학인들의 처신에 대해 문학을 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가 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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