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이광수 비판’을 批判한다

이강기 2015. 10. 1. 13:12

 

이광수 담론의 진정한 부활을 위하여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이광수 비판批判한다

이중오 뉴욕주립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민족성은 존재하는가?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있는가? 아니면 다만 생활하고, 적응하고 변화하는 삶만이 있는가?’

 

정신과 전문의로서 마치 내 생애에 부여된 과제인 것처럼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이는 내가 숱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사는 이 합중국에서 30여년의 세월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된 화두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자료를 접할 때 이 주제와 관련되는 어휘들과 접하게 되면 내 머리는 아연 비상한 긴장상태에 빠진다.

 

내가 지난해(1999) 초 장안의 지가를 올리며 파죽지세로 팔려나갔던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르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중앙 M&B)을 읽게 되었던 것도 순전히 이런 관심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 그는 나의 화두 같은 물음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어버리고 있었다. 민족성은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그 글이 나를 격분시켰던 것은 그 전제의 황당함이 아니라 그 내용의 어처구니 없음이었다. 제목 그대로 맞아죽어도 시원치 않을 이케하라는 그 책으로 맞아죽기는커녕 스타로 떠올라 여러 TV 프로에 출연하여 더욱 황당한 논리를 퍼뜨릴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받아 이런저런 궤변들을 떠들고 다니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결정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그 책을 겉핥기식으로 스쳤을 뿐인 총리가 모든 공무원들이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고 발언했던 것이다. 총리가 모든 공무원이 읽어야 하고 나아가 모든 국민이 읽어야 한다는 그 책의 내용은 간단히 요약하면 한국인들은 맞아죽어야 할 민족성을 가진 족속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시대에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몽땅 때려죽이는 대신 다리를 놓아 주고 철도를 건설해 준 것은 황감한 은혜를 베풀어 준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논리는 나같은 정신분석 전문가도 상당한 분석 끝에야 잡아낼 수 있을 만큼 그야말로 기가 막힌 언어로 호도(糊塗)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한국인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으로 이케하라가 썼을 그 글이 마치 맞아죽는 순간까지 비장한 각오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쓴 것으로 대부분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읽혔다. 내가 확인해 본 바로는 열명 중의 열명이 그런 독자들이었다.

 

사태의 심각함과 전문가로서의 사명을 함께 느낀 나는 즉각 그 음모를 밝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 내의 일간지에 투고하기 위해 독후감 형식으로 원고지 10매 안팎의 분량을 쓸 계획이었으나 격한 마음으로 쓰다보니 한량없이 길어져 그 열배도 더 넘는 150매 가까운 긴 글이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매체를 월간지로 바꾸고 중앙·조선·동아 세 군데에 게재 의사를 타진했다. 조선·동아는 애매한, 납득하기 어려운 거절 의사를 알려왔고 중앙에서는 수정 없이 전재(全載)하겠다는 수락 의사를 알려왔다.

 

그 글이 나간 후 내가 받게 되었던 열화같은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국제전화로 독후감을 전해 주었고, 공개하지 않았던 E메일 주소로 숱한 편지가 날아들었으며 상상 이상으로 많은 미국 내 독자들이 내 글에서 받은 감동들을 전화로 알려 주었다. 독자들은 하나같이 내 글로 해서 양의 탈 속에 숨겨진 이리의 발톱을 보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왜 이케하라는 읽히는데 이광수는 외면받는가

 

그러나 정작 내 글의 수신자이기를 바랐던 저자 이케하라나 총리로부터는 일언반구의 연락이 없었다. 그들이 내 글을 읽었을 경우라고 가정한다면 이 반응은 최소한 다음 세가지 중의 하나를 뜻한다. 내 글이 전폭적으로 옳거나 완전히 터무니없이 틀렸거나 아니면 그들 인간됨 자체에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수많은 내 글의 독자들은 둘째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여지를 내게 주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첫째나 셋째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기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아쉬워하는 것은 이 유예가 아니다. 사실 그런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 가슴에 앙금처럼 남은 것은 그 글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진정한 본문을 쓰지 못하고 있는 나의 갑갑한 현실이다. 그것은 사실 오랜 세월에 걸쳐 내 의식 안에 숙제로 자리잡고 있었던 문제였다. “월간중앙독자들의 열화같은 반응은 나로 하여금 이 숙제를 더 이상 지체시킬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숙제를 이케하라와 연관시킨다면 이런 물음으로 제시할 수 있다.

 

왜 이케하라는 읽히는데 이광수는 읽히지 않는가.’

 

춘원(春園) 이광수는 19세기 말에 한국 땅에 태어난 불세출의 위대한 문호였다. 그는 이미 1922년에 우리 민족의 맹성을 촉구하는 사자후 민족 개조론을 발표했다.

 

이것은 이케하라의 글과 폭과 깊이, 수사나 통찰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민족에 대한 간절한 애정에서 유비(類比)됨조차 허락하지 않을 수준높은 글이다. 이케하라가 지적했던 민족의 단점 어느 하나도 누락됨 없이 짚어내며 우리가 위대한 민족으로 태어나기 위해 척결해야 할 유산들을 정산(精算)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왜 까마득히 우리에게 잊혀져 있는가. 무엇 때문인가.

 

얼핏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이케하라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을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외국인이고 이광수는 한국인이지만 재능을 다 바쳐 일본에 충성한 친일 매국 문필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 실상도 이 답처럼 그렇게 간단하냐 하는 점이다. 나는 이케하라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케하라의 경우 그 답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복잡해도 하루나 이틀의 과제였다. 글로 만들어내는 데서 길게 잡고 늘어질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광수의 경우는 어떤가? 그것은 정말로 지난(至難)하고도 지난한 작업이다. 사실 내가 춘원 이광수에 바친 짧지 않은 연찬(硏鑽)의 역사에서 나는 아직도 친일 문학자 이광수가 결코 요지부동의 증거에 의해 내려진 안정된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해내지 못했다. 나는 이것을 못내 자괴(自愧)하다가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왜 사이비들의 위장과 가식은 칭송되는데 이광수의 진정성은 매도되고 유린되는가에 대한답을 더이상 지체시켜서는 안된다.’

 

나는 직장의 근무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 연구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집필에 들어갔다. 나는 정말 침식을 잊을 정도로 열심히 몇달 동안 전념하여 드디어 지난해 11월 초 이광수를 위한 변명”(중앙 M&B)을 탈고했다. 이것은 10년의 광음(光陰)이 소요된 민족성은 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의 결집이고 이광수를 통해 우리의 민족적 자아를 탐색하는 데 바쳤던 7년여의 성찰의 결론이다.

 

나는 월간중앙제작팀의 정재령 기자를 좋아한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균형잡힌 감각과 빠른 판단력을 갖고 있는 그는 내 글의 전반부만 읽은 상태에서 내 원고의 수정없는 전재를 약속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내 글을 실어주어서가 아니다. 그가 자신이 가진 후각을 믿고 모험을 할 줄 아는 그 센스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늘 갖기를 꿈꾸면서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능력이다.

 

월간중앙200002월호 | 입력날짜 2001.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