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문학적 천재와 정치적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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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반체제의 독일시인 하이네(1797~ 1856). 살아서는 국경
바깥으로 추방된 적이 있고, 사후(死後) 나치 시절에는 그 작품들이 ‘불온서적’으로 분류돼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이를 예견한 듯
“책이 불태워지는 곳에 인간의 영혼도 함께 불살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출생지인 뒤셀도르프 시(市)가 그를 기려 제정한 ‘하이네 문학상’은
독일의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이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게 될 페터 한트케(64)의 이름이 혹 낯설다면,
국내무대에서 30년간 장기 공연된 ‘관객모독’이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작을 썼던 작가가 그다. 그는 약관 이십대 때부터 이미 독일
문단을 뒤흔들었다. 시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왼손잡이 부인’, ‘페널티킥 순간 골키퍼의 불안’ 등의 작품이 있고, 최근 국내에는 ‘세잔의 산을
찾아서’라는 기행문이 출판됐다. 독일 지성(知性) 랭킹 10위 안에 반드시 꼽히는 인물이다.
이렇다면 하이네와 한트케의 조화는 어울리는 것이다. 하이네 문학상
심사위원회도 “한트케는 열린 진실을 고집스럽게 추구해왔다. 사회 여론과 통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시적 세계로 이를 응시(凝視)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선정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그가 하이네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일군의 비평가들이 촉발했고, 이웃 프랑스의 식자층까지 여기에 달려들어 찬반으로
나눠졌다.
수상 자격 시비는 한트케의 정치적 입장에서 비롯됐다. 그가 인종청소로 악명
높았던 ‘발칸의 도살자’ 밀로셰비치를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도 등장해, “그는 자신의 국민을 지켜냈던 인물”이라고
헌사했다. 그 모습은 매스컴에 크게 클로즈업됐다. ‘양식 있는’ 유럽인들로서는 정말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스’는 내년에 예정된 공연 리스트에서 그의 작품을 삭제해버렸을 정도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이네 문학상 심사위원회가 그를 선정했으니 어찌
시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하이네 문학상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스캔들” “밀로셰비치에 희생된 사람들을 모욕하는 행위”에서 “정치적 흐름을
거스르는 작가의 용기”까지….
그런데 이 논쟁은 전혀 다른 곳에서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정치인들이
판관(判官)으로 나선 것이다. “이렇게 논란이 있다면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우리가 철회시키겠다”라고. 하이네 문학상에 딸린
5만유로(6000만원)의 상금 집행은 시의회에서 승인하므로 정치권이 제동을 걸면 철회가 가능해진다.
당초 심사위원회는 “그의 문학적 성취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정치적
바보짓을 했다고 문학적 천재를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런 판단이 늘 옳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이를
정정하는 심판관을 맡겠다는 것은 어떤가.
어느 시절 어느 사회에나 지나친 사명감으로 무장된 판관들이 있었다. 문학의
표현 자유를 ‘사회 풍속(風俗)’의 법조문으로 재단하고, 혹은 정치적 군중들이 특정 작가의 책을 불사르고 상여를 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상황이 문학에만 한정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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